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요 - ingan-eun eotteohge sal-aya haneungayo

삶의 품격에 대하여

리처드 노먼 지음 석기용 옮김/ 돌베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가장 궁극적으로 던진 질문’은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철학 등 인문학이, 또 문학과 예술이 재현하고자 했던 문제다. 서양은 이를 휴머니즘이라 부르며 삶의 가치를 종교가 아닌 인간의 모습에서 찾고자 시도했다.

영국 켄트대학교 명예교수인 리처드 노먼 박사는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과학이 인간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에 인간은 무엇이고 삶의 의미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다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처드 박사는 휴머니즘의 유래와 무신론과 휴머니즘의 교류, 그리고 기독교와 대립 등을 먼저 다룬다. 이 과정에서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신학자들과 휴머니스트간의 대립은 다윈의 진화론에 이르러 또 다른 전기를 맞는다. 과학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기독교 교리의 오류가 지적되고, 종교의 위치가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신학자들은 “도덕적 관점에서 종교가 있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많은 철학자들처럼, 리처드 노먼 박사도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를 인간으로 본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얽매는 종교가 아니라, 인생의 답을 제시하는 종교가 바르다고 역설한다. 종교와 철학에 대한 바른 이해는 결국 “유일무이한 자기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리처드 박사의 조언이다.

[불교신문3233호/2016년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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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최진석교수

경쟁력의 실체=근본적 사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 제목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인데 오늘 내가 집을 나오기 전에 우리 같이 살고 있는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자기도 어떻게 사는지 모르면서 뭘 가서 이야기 할라 그러냐!

사실 저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가끔 헤매고 또 힘들어 하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내용을 기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이 주제를 놓고 제가 오늘 드릴 말씀들은 항상 제가 오랫동안 해왔던 생각들의 결과들이에요. 저는 어떤 생각을 계속 했었느냐 하면은 왜 어느 나라는 새로운 물건들을 톡톡 만들어내고 어느 나라는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지 못하고 만들어진 물건들을 가져다 쓰는가? 어느 나라는 판을 짜는 전략 국가로 살고 어느 나라는 짜진 판 안에서 사는 어떤 전략 국가 들의 전술 국가로 사는가?

어 또 어떤 사람들은 고유함과 자신만의 특별함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또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 내가 어떻게 다른가하고 비교하는 삶을 사는 거나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생각의 결과들을 가져다 쓰고 있는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것을. 아 오랫동안 좀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어! 우리는 어쨌길래 일본으로부터 삼십육 년 동안이나. 아 식민지로 살았는가? 일본은 어땠길래 또 우리나라를 16년 동안 지배할 수 있었는가 또 왜 우리는 중국 옆에 붙어서 그렇게 속국처럼 중국 눈치를 보며 살았는가. 그걸 우리는 알고 있을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그 과거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그런 결심들을 우리는 하고 있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엄태경 : 저는 자세행복연구자입니다. 교수님! 반갑습니다. 저는 일본은 어떻게 했길래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여 열강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왜 죽을 쒔는가라는 생각이 저의 지구사회에 대한 관심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얻은 답은 선진문물에 대한 오랜 갈망, 무인 중심사회, 섬나라의 장점 등이 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보다 좀 더 잘 사는 어떤 전략국가 선진국가 이런 나라들의 삶의 어떤 형태와 그러지 못한 나라들의 삶의 형태를 좀 비교를 해봤고, 그런 선진적이고 전략적인 높이에 있는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나라들은 분명히 사유가 철학적인 높이까지 가 있다.

엄태경 :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경쟁력 확보인 점이 살짝 씁쓸한 느낌이 들게 하는군요! 그러나 뭐 어떻게 출발하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어떤 나라들은 그러지 못한 나라들은 이 철학들을 수입해서 그것을 내면화하는 것으로 자기 철학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더라 하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러려면 우리도 이제는 다른 사람이 철학을 한 결과를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철학을 하는 도전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아 이런 결론을 갖게 됐어요.

그렇다면 그런 나라들이 생각을 한다는데 우리가 말하는 생각은 뭐 떠나간 첫 사랑이 막 떠오르고 그다음에 어제 친구들과 다퉜던 얘기들이 생각하기 싫어서 떠오르고 이런 것을 생각이라고 하는가 그런 것은 생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그냥 잡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잡념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엄태경: '생각'에 대한 당신의 정의가 독특하군요! 생각에 대한 값 매기기는 아니겠죠?

그 역사를 이 높고 미래적으로 끌고 나가는 생각은 역시 아직 있지 않은 것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과 추구 이것이 핵심이더라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엄태경 : 역사 흐름의 결정적 변수가 호기심의 추구인 역사였음에 동의합니다. 학계에서 현재의 인류를 대표하는 유전적 특징을 약 4만년 전의 D4 돌연변이 탐색추구 유전자로 보는 것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진전은 따뜻한 아프리카를 벗어나 북유럽으로 진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인터넷의 발명, 스마트폰의 보편화, 우주여행 등의 기존에 없었던 무언가를 출현시킴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진전이 이러함에서 기인함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주변 사람들이 기존에 없었던 무언가에 대해서 얘기하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편입니다.

인간의 실체

오늘 우리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인데 그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려면은 자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부터 제가 생각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사는 무대는 두 덩어리로 돼 있어요 두 세계를 하나의 무대로 해석합니다. 한 세계는 인간이 안 만든 세계예요. 인간이 안 만든 세계는 우리 인간이 부여한 원칙이 아니라 지가 가지고 있는 원칙에 따라서 지가 알아서 저절로 돌아가요.

이걸 한자로 하면 뭐가 되겠어요. 이걸 자연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한 덩어리는 인간이 만든 세계인데 이거를 문명이라고 그럽니다. 문명이라고 할 때 그 문자는 문자가 들어가면은 어떤 것이든지 다 인간이 만든 거예요. 문이라는 거는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문자 인간이 만든 거죠. 문명 인간이 만든 거죠. 문학 인간이 다 만든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이 만든 문명과 인간이 안 만든 자연을 하나의 무대에서 살아요. 그래서 인간은 이 문명과 자연에 대해서 전부 알면 지적으로 완벽해집니다.

엄태경 : 저는 인간이 사는 무대는 세덩어리로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언급한 것들에 '인간' 혹은 '인류'로도 표현할 수 있는 '나'가 추가됩니다. '나'는 현재까지의 지구 역사를 이끌어온 주체이자 지구사회가 보다 불안정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근원으로 보입니다. 이 '나'는 최근 뇌과학 등을 통해 관련 지식이 많이 생산되고 있긴 하지만 이 '나'의 몸과 마음관련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보입니다.

우리 몸의 오감(시각, 청각, 후각,미각, 촉각)에 대한 감각기관이 대체로 외부 현상에 대한 인지를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내부 조절 시스템은 자동조절 개념으로 설계되어있는 것이 '나'에 대한 지식 부족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어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몸은 달리기 중심사회에 적합하게 진화되어 있으나 문명화를 통해 앉아있기 중심사회로 삶의 환경을 스스로 바꿔버렸습니다. 우리 몸의 내부조절 시스템은 달리기 중심사회에 적합하게 자동조절 개념으로 설계되어있기 때문에 앉아있기 중심사회화는 자동조절 시스템으로는 정상적인 작동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을 필연로서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혈기 방장할 때 지적으로 완벽해지면 안 된다. 해가지고 고등학교 이학년 올라갈 때 둘 중에 하나만 골라라. 둘 중에 하나만 골라라 해가지고 어떻게 해요. 문과를 가든지 이과를 가든지. 그러죠 수학2 때문에 갈라지는 게 아니고 인간이 만든 것에 관심이 있으면 문과를 가고 인간이 안 만든 것에 관심이 있으면 이과를 가는 거야 어쨌든 인간은 우리가 안 만든 자연 위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존재죠

그렇게 해가지고 만들어진 것을 문명이라고 그래요. 이 문명을 만드는 인간의 활동을 문화라고 그럽니다 문화. 문화라는 건 뭐냐.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을 그 분류할 때 호모 하빌리스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 등등 여러 가지로 나누죠 그건 뭐냐.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만드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인간을 분류하죠 그러니까 그런 모든 인간 분류를 하나로 보면은 인간은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란 말이에요 인간이 문화적 존재라는 거 뭐예요.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예요. 그런데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어떤 의미입니다.

여러분. 여기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이 스마트폰을 누군가 만들었어요 만들면은 이 스마트폰이 있기 전과 만들기 후가. 세상이 같은 세상이요. 다른 세상이에요. 다른 세상이죠 내가 여기서 주먹질을 했어. 여러분들한테 하지 않겠습니다마는 주먹질을 했어요. 이 주먹질을 하기 전과 한 후가. 이 세상이 같 은 세상일까. 다른 세상입니까. 다른 세상이죠.

그러니까 인간은 무슨 행위를 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저는 인간을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 정의하라 그러면은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 이렇게 정의를 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한다는 이 정의가 내려지는 순간 인간은 격이 달라져 버려요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고 누군가는 만들어진 변화를 수용합니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문화적 존재인데 즉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인데 이 정의가 내려지는 순간 인간은 두 격으로 나뉜다 하나는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이야기하는 존재고 인간이고 다른 인간은 누군가 하고 만들어서 이야기해 놓은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수용한다.

엄태경 : 인간을 '무슨 행위를 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로 정의하는 당신의 생각에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무슨 행위를 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시키지 못하는 존재는 인간 취급도 하지 아니하는 생각의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고 보지만 그렇게 쓰일 소지는 충분해 보이는 군요! '무슨 행위를 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행위'들이 인류 역사 흐름의 변곡점을 만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정의를 그렇게 내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어 보입니다. 인간은 위대한 면이 있지만 사실 보기에 따라 그 위대함은 별것 아닌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노자를 연구한 학자라는 분의 생각이 그러함에 살짝 당황스럽군요!

또한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은 무슨 행위를 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들입니다. 단지 생태계 전체의 판도까지 바꾸는 변화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종은 인간만인 것이겠지요.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이야기할 때 이때 인간을 우리는 자유롭다. 종속적이다 아니 자유롭다 주체적이다 독립적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해 놓은 변화를 수용하는 단계를 우리는 종속적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이야기할 때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이 상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활동성을 우리가 창의적이다 이렇게 표현해요.

창의적이다. 그러니까 창의성이라는 거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에서만 나올 수 있지 누군가 해놓은 말을 내면화하거나 누군가 야기에는 변화를 수용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한테는 나타날 수 없다. 자 그렇다면은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이야기할 때 이 야기된 변화는 무엇인가를 만들 때 보이던 곳이에요 안 보이던 곳이에요. 안 보이던 것이죠 안 보이던 것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은 보이던 곳에서 살다가 안 보이던 곳에로 이동해서 거기서 자기 영토를 건축하는 존재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은 인간은 안 보이는 것을 꿈꾸는 존재다 만져지지 않은 곳을 꿈꾸는 존재다 해석되지 않은 곳을 꿈꾸는 존재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은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는 아직 해석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은 그 세계로 넘어가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은 우리가 좀 촌스러운 논리를 가지고 볼 때 보이는 것이 더 센 거예요. 안 보이는 것이 더 센 거예요. 안 보이는 것이 더 다 센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엄태경 :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는 아직 해석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은 그 세계로 넘어가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유의 힘=기술, 과학, 예술

자 이 서양 문명을 말할 때 bc 5세기 경에 살았던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를 뺄 수가 없어요 이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철인 통치 그러니까 인격적으로나 사유 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이 하는 나와 정치 형태를 꿈꿨어야 그런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분이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열었어요

그런데 그 아카데미아라는 학교 문 위에 기하학(도형 및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부문)을 모르는 자는 이 문을 들어오지 마시라 이렇게 써 있었다고 그래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에 들어오지 마라. 또 달리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해석을 어떻게 하냐면은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는 능력이 준비되지 않은 자는 이 문을 들어오지 마라.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왜 그러느냐 기하학이라는 건. 뭐 여러분들 여기 어 여기는 서울이죠.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라는 도가 있어요. 경기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경기. 경기라는 말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은 거의 서울이란 말이에요. 거의 서울. 근데 서울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거의 서울이란 말이에요. 경기 기하가 뭐냐. 자 지금 얘가 제가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이 뭐죠. 뭐예요 원이죠. 자 원이라는 것이 이 세계에 실제합니까. 실제하지 않습니까. 실제 하지 않죠 공책에다가 오늘 그렸어요. 그건 원입니까 아닙니까 아니죠 그런데. 거의 원이죠 오늘 아니에요 이 세계에 구체적으로 삼각형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어요. 없어요 실제 합니까 안 합니까 실제하지 않습니다 직선이 실제 합니까. 안 합니까 실제하지 않죠. 점 직선 삼각형 원 이런 것들은 어디에만 있어요?

머릿속에 말이죠. 관념으로만 있어요. 관념으로. 봐 있어 관념으로만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공책에다가 삼각형을 그릴 수 있어요. 그 삼각형은 삼각형이에요. 아니에요.

삼각형이 아니죠. 거의 삼각형이에요 삼각형 직선 점원. 이거는 이 세계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거예요 그건 철저히 관념으로만 존재해.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들이 거의 있는 것 같아. 그것을 기하학기라고 그래 기야. 거의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아니야.

자 그러면은 기하학의 대상들은. 기하학의 대상들은 이 세계에 실제 해요 안 해요. 실제하잖죠. 여러분들 원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여요. 만질 수 있어요 없어요. 못 만집니다. 이 세계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기학을 가지고 이 세계를 다루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난다. 그것이 왜 큰 차이가 나는가를 보도록 하죠.

오늘 저 이 세계에 여러 나라들이 있는데 고고학이 제일 발전한 나라를 들라면 어느 나라를 드시겠어요. 고고학 여러분들 머릿속에 이미 몇 나라가 있죠 바로 그 나라들입니다 야. 근데 보통 우리는 고고학이 제일 발달했다 그러면은 어. 영국을 들죠.

영국 영국 프랑스 뭐 독일 중국 일본 미국 이런 나라들이 이 고고학 선진국들이 고고학이 제일 발달한 나라 자 이런 나라들은 여섯 개. 나라를 제가 고고학 선진국을 들어봤어요. 이게 어떤 느낌이 드세요. 지구상에서 제일 센 나라들 중에. 여섯 개죠.

한 번쯤 제국을 꿈꿔봤던 나라 한 번쯤 제국을 운용해 본 나라들입니다 자 영국이 그 나라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영국이 고고학 유물도 이 세계에서 제일 많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구학적 유물은 영국보다 더 많은 나라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나라 이름을 말하면은 불편하니까 그냥 어떤 나라라고 그러죠. 고고학적 유물은 어떤 나라가 더 많아요. 그런데 영국은 고고학이 발전했어. 그런데 고고학적 유물이 더 많은 어떤 나라보다 고고학이 발전한 영국이 더 세다. 더 센 나라다.

그러면 우리가 두 번째로 논리를 촌스럽게 전개해 보죠. 그러면은 구체적인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구체적인 유물은 눈에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이죠. 만져져요 안 만져져요. 안 만져집니다. 물론 만지지 마세요 이렇게 써 있기는 하지만 만져지는 거예요. 만져지는 걸 만지지 마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물은 만져지지 않아요. 아니 만져져요. 그리고 눈에 보여. 그런데 학은. 자 우리는 학은 지식으로 되어 있죠.

지식은 지식 삼각 함수. 그다음에 3차 방정식 이런 지식들은 이 세계에 실제 하는 거예요? 이 세계를 설명해 놓은 거예요? 설명해 놓은 거죠. 지식은 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해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구체적인 것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구체적인 것을 설명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더 세죠 지금 이거 어려운 얘기 아니죠 구체적인 것을 갖고 있는 것보다 구체적인 것을 설명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세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만져지고 보이고 하는 이 구체적인 것을 현상이라고 그래요. 현상계 현상계. 혹은 경험계 현상계 그다음에 이 현상계를 설명해는 지식계. 여기를 우리가 추상 세계라고 그래요 쌍세계. 자 그러면 우리가 현상 세계에 접촉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더 세겠어요 추상 세계를 접촉하는 능력을 갖는 게 더 세겠어요 추상 세계를 접촉하는 거죠 우리가 현상 세계를 막 이 개념이 막 나오니까 재미가 없으시죠. 그런데 내가 거의 마지막이에요. 저 좀만 참으시면 돼요. 자 현상세계를 접촉할 때 인간이 사용하는 능력이 있어요. 그것을 감각이라고 그래. 감각을 가지고는 현상 세계를 접촉해 그 다음에 현상 세계를 설명해 놓은 추상 세계 이 세계를 접촉하는 능력을 우리가 사유라고 그래요. 사유 그러면은 감각 능력이 세요 사유 능력이 세요. 사유 능력이 세죠. 자 그러니까 물론 감각과 사유가 절대 분리될 수 없어요. 감각에 자극이 없는 사유는. 맹탕이에요 사유 없는 사유하는 능력이 없는 감각은 질서가 없어요. 물론 이것이 매우 밀접하게 함께 작동하지만 우리가 시선의 높이를 이야기한다면은 분리해서 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은 감각 능력보다 사유 능력이 세죠. 감각적 레벨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기능이라고 그래요.사유의 레벨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거를 기술이라고 그래요. 기술이 셉니까. 기능이 셉니까 기술이 세죠 과학은 기술에 가깝게 있어요. 기능에 가깝게 있어요 기술에 가깝겠죠. 그러니까 과학 기술이라는 말은 있어도 과학 기능이란 말은 없어요. 기술 과학이라는 말을 있어도 기능 과학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과학은 기술과 가까이 있어요. 이 감각적 레벨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걸 기능이라고 하고 사유의 레벨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거를 기술이라고 그랬어요그러면은 감각적 레벨에서 무엇인가 쾌락을 만드는 일을 뭐라고 해 있어요. 예능이라고 그럽니다 얘는 사유의 높이에서 무엇인가 쾌락 즐거움을 만드는 일을 자극을 만드는 일을 예술이라고 그래요.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센 사람이에요. 예능을 즐기는 사람이 센 사람이에요. 예술이에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사유 능력 그러니까 이 세계를 설명하는 원리 규칙 패턴과 관련된 괜하게 추구 그 예술에 접촉 익숙하게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높다. 자. 여기서 제가 이것을 분류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뭐냐.

우리는 많은 창의성을 이야기하고 창의성을 이야기하고 사유를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행복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행복이나 여러분들들도 제가 사는 목적이 뭡니까 물어보면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는 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유를 추구한다는 분이 굉장히 많아요 자. 행복은 행복은 자연적으로 이 세계에 실제 하는 겁니까. 인간이 삶을 해석한 결과입니까 행복 인간의 인간이 해석한 겁니다. 해석해서 그것을 자기 안에서 감각화 하는 거야 자유 이 세계에 원초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해석과 설명의 산물입니다. 행복과 자유도 감각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유의 대상입니다. 사유의 결과물입니다그러니까. 행복하고 싶은 사람 자유롭고 싶은 사람은 기능과 예능의 단계에 있어야 되겠어요 기술과 예술의 단계로 상승하려고 노력해야 되겠어요. 내가 이것을 읽기는 했는데 어디서 읽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내가. 이게 환각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으니까 이건 뭐. 뭐 이렇게 어디서 그냥. 거짓말 한 건 아니에요.

자유와 행복

자 우리는 보통 삶을 감각적 쾌락으로 꾸리면서 자유를 추구하거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싶어 해요. 그리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고 싶어 해요.

그런데 자기 삶과 즐거움이 감각적 단계에 서 향유 되면서 행복 자유 창의성 이런 것을 갖기 원한다. 이걸 아인슈타이인은 정신 분열이라고 그랬어요.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안 나요. 그런데 아이슈타인이 말을 안 했더라도 그것은 일리가 있는 말 같애요

그것은 일리가 있는 말 같아요 내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어디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가. 내가 어디에서 쾌락을 얻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 자체가 어디에 있는가를 결정한다. 자 여전히. 우리는 행복 자유도 사유의 레벨이 있는 것이고 인간의 지적 활동의 결과다.

지적 활동의 결과라는 것은 뭐냐 있는 그것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과 설명의 능력을 발휘해서 그것을 2차적으로 상승시킨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지적 활동이에요 그러니까 행복. 자유 이런 것도 전부 인간의 지적 활동의 산물이고 이것이 뭐냐. 결국 사유의 레벨이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싶은가? 행복하고 싶은 가? 그러면은 지적이어야 된다. 그 지적인 행위가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 접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고 만져지는 것 다음을 추구하는 거다.

엄태경 : 자유롭고 싶고 행복하고 싶다면 지적이어야 된다라는 당신의 얘기에 공감합니다. 저도 오랜 연구 과정을 통해 자유와 행복이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늘 비교 우위를 점하는 지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연 그리고 문명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 이상의 비교 우위적 지식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교 우위적 지식이 지구사회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비교 우위적 지식은 행복한 사람들의 숫자를 소수로 제한합니다. 그보다는 자연, 문명 그리고 나의 실체를 이해하는 깊이만큼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인간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지적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문화적 활동을 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문화적 활동이라는 것이 내용은 뭐냐. 결국은 보이고 만져지는 거 내가 있는 여기서 아직 해석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은 그곳으로 옮겨가려는 활동이다.

질문=위대함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 이것은 이미 있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것을 이미 있는 것으로 다루는 지적 행위를 우리가 대답이라고 그러고. 이미 있는 것. 안에서 아직 나한테 해석되지 않은 것. 아직 나한테 포착되지 않은 거 아직 나한테 알려지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어떤 동물적. 충동 이것이 있을 때 나오는 지적 활동을 우리가 질문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문화 활동은 대답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관련됩니다. 이 세계에 새로운 것 위대한 거 높은 거 앞선 것들은 전부 다 질문의 결과입니다. 대답의 결과로 나온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대답이란 것은 뭐예요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그대로 먹어가지고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다시 뱉어내는 일입니다. 이때 승부는 어떻게 갈려요. 누가 더 많이 뱉어내는가. 누가 더 빨리 뱉어내는가. 누가 더 원래 모습 그대로 뱉어내는가 문제는 원래 모습에 있습니다 원래 모습은 실제로 하면은 과거예요 미래예요 과거죠 그러기 때문에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이 채우는 사회는 거의 모든 논쟁이 과거 논쟁입니다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은 미래를 여는 도전에 나서는 것보다 이미 있는 과거를 철저히 따져야 더 진실한 삶을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도록 훈련됐어요.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은 절대 미래를 살기가 어렵습니다 과거를 삽니다 그래서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이 채우는 사회는 문화적 확장을 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문화적 결과를 다루고 재배치하는 것에 더 열심입니다. 문화적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살았다

앞으로는 문화적 활동을 해서 더 선도력이 있는 문명을 가져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있다면은 대답에 길들여진 영혼을 가지고 과거를 살고 있는 자기를 들여다 봐야 돼요. 분명한 것은 질문하는 일보다 대답하는 일에 더 재주를 발휘했고 더 바빴던 영혼들은 미래를 살기 어렵다 과거를 산다.

그런데 질문은 보세요. 질문 질문은 내 안에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세계에 오직 하나밖에 없어. 나한테만 있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질문을 할 때만 자기한테만 있는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요. 인간은 질문할 때만 자기 자신이에요. 대답할 때는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전달하는 잔재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이 머물다가는 중간역으로만 존재합니다 이때는 자기가 더 권위 있고 더 완벽해 보이는 지식과 이론의 전달자로 존재함으로써 분열돼 있고 자기한테만 있는 궁금 통증과 호기심이 발이 될 때 이 존재는 자기한테만 있는 것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단일한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질문할 때만 인간은 자기 자신이다.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을 때만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뭐냐.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려는 충동이 만들어낸다.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충동이다. 그래서 다시 조금 돌아가 보면은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 문화적 존재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려는 충동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려는 충동을 일으키는 지적 활동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런데 그 질문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독립적 존재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거의 많은 경전들 선 지식들 철학자들 현인들은 다 가장 중요하게 묻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니가 너냐? 너는 누구냐? 이 질문을 가장 궁극적인 질문으로 삼습니다. 니가 너냐? 너는 누구냐? 너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행하거나 전달하는 사람이냐 니 생각을 하는 사람이냐? 너는 다른 사람의 꿈을 대행하고 있느냐? 니 꿈을 꾸고 있냐? 니가 너냐? 너는 누구냐? 이 질문은 종교적으로 의미 있어서 같이 있다기보다는 모든 위대함이 태어나는 터전이에요. 모든 위대함이 터져나오듯 모든 위대함은 여기서 나옵니다. 모든 위대함은 여기서 나와요.

예술=훈련된 지성

인간이 만든 문명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로 승화한 것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그럽니다 예술이란 게 뭐예요. 훈련된 지성이라면 제가 여기서 훈련된이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지성은 훈련돼야 돼요 고단한 노력을 거치지 않고 지성이 고양되는 길은 없어요 훈련된 지성이라면 예술품 앞에 서면 일정하게 반복되던 호흡과 맥박이 그 일정함을 상실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지성은 이발소 그림하고 반 고호도 구별할 수 없어요. 훈련된 지성이라면 예술품 앞에 서면 그 예술품이 주는 압도적인 위압감 때문에 자기 자신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불균형 상태로 빠집니다 불안정 상태로 빠집니다 이걸 우리는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감동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이고 불균형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술품에 어! 예술품의 감상자를 불균형에 빠뜨리는 그 압도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의외성입니다. 의외성 예술적 경지에서 그 예술품의 그것을 예술품이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무엇이냐. 의외성!

의외적이지 않은 것은 예술적이지 않습니다. 의외적이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니야! 의외적이지 않은 것은 위대해 본 적이 없어요!

엄태경 : 당신의 예술에 대한 정의는 제가 지금까지 접한 것들 중에서 가장 명쾌한 정의로 느껴집니다.

그럼 그 의외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어디서 나오는가 고유함이에요 고유한 자기에게만 있는 고유함! 다른 사람과 적대적으로 분열되는 분열시키는 다른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자기에게만 있는 그 고유함 그것이 의외성에 의외성이 태어나는 터전이에요. 그렇다면은 우리가 고유함이라는 거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엄태경 : 고유함을 "다른 사람과 적대적으로 분열시키는 다른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자기에게만 있는" 으로 해석함에 당황스러움을 느낍니다. 제가 느끼는 고유함은 '누구나 공유하고 있으되 아직 인식하지 못한 묻 생명과 물질의 본질까지도 공유하는, 전체로서의 '나' 중 일부를 개체로서의 내가 다른 개체로서의 나에 앞서 발견하는 인식으로서의 앞섬' 정도로 인식합니다.

고유함=세로운 세계의 발견

그런데 이 고유함 즉 너는 누구냐 할 때 다시 말하면 너는 무엇으로 너의 고유함을 표현할 수 있느냐? 그 고유함을 부려 고유함을 드러낼게 할 수 있는 작동 기재 그것이 궁금증과 호기심이에요. 이 궁금증과 호기심 이것이 그 사람을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고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은 자기에게만 있는 그 고유함 궁금증 호기심 그것을 정확하게 강하게 잡아야 돼요.

성공한 사람의 뭐 일곱 가지 습관 성공한 사람들의 무엇 무엇 무엇 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그 성공한 사람들의 몇 가지 습관이라는 이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은 몇 명일까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숙도 하고 그것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만나보고 싶어요. 나는 그런 책이 나와서 성공한 사람은 두 명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자하고 출판사 사장!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하고 만났어요 궁금증과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돌아가셔서 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찾아내실까요? 책을 읽는 일, 강연을 듣는 일! 가식적이기가 쉽습니다 자기를 속이기가 쉽습니다 그건 마치 다이어트하고 똑같아요. 다이어트에 대해서 고민하고 결심하고 연구하고 하는 것을 다이어트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혁신에 대해서 세미나하고 혁신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혁신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좋은 강의을 듣고 나면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놓은 책을 읽으면 자기가 성공한 성공할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여기에 무엇을 하든 자기 궁금증 자기 호기심 자기 고유함이 빠져 있으면 그것은 자기한테는 어떤 것도 큰 의미 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엄태경 : 저도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일전에 책을 읽지 말고 왜? 라는 질문을 던지라는 글을 쓴적이 있지요.

그러면은 자기를 정말 자기이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다시 반복하지만 궁금증과 호기심이라고 할 때 이 궁금증과 호기심의 내용은 무엇이냐. 결국은 아직 없는 것 아직 보이지 않는 것 아직 해석되지 않은 것에 나아가려는 충동이다. 이미 있는 거 이미 해석된 것 그것들을 받아들이면서 만족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넘어가려는 그 힘은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할 수 밖에 없다.

자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간단하게 줄거리만 이야기하겠습니다. 과거에 과학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기술의 시대일 때는 동양이 서양을 압도했습니다. 과학의 시대로 오면서 서양이 동양을 압도했습니다. 그 계기가 아편 전쟁입니다. 그러면은 서양과 동양에서 서양은 과학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 그럼 과학이라는 거 뭐냐 과학은 기술보다 훨씬 안 보이는 거야 훨씬 안 보이는 거!

그렇다면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훨씬 안 보이는 것을 다루는 혹은 집착하는 습관이 서양이 더 세게 가지고 있었다는 거 알 수 있죠. 수학에서 동양은 연산 대수까지는 아주 발전했어요. 그런데 기하학을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서양은 기하학이 발전한다. 거의 있는 거예요. 거의 있는 거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세상을 다루는 그런 영혼을 가지고 있었죠.

엄태경 : 서양이 기하학이 발전한 것은 맞지만 없는 것에 대해 동양에서 관심 없었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굳이 차이라면 서양은 근거를 제시하면서 없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면 동양은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없는 것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서 모래성을 쌓는 면이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양에서는 근거 제시 없이 공자 가라사대, 맹자 가라사대, 부처님 가라사대라는 말로 다른 이들을 설득하려는 경향이 일반적이었지만 서양에서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증명하려 하였습니다. 또한 서양은 직선적 발전적 세계관을, 동양은 원형적 정체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점이 큰 차이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동양은 협동이 필수적인 벼농사를, 서양은 협동이 불필요한 밀농사를 오랫동안 지어왔기때문에 주체성, 관계성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하데요.

맞는 말로 보입니다. 한편 그러한 특성들 때문에 동양은 관계의 늪에 빠지기 쉬워서 일정수준에 도달하면 정체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서양적 사고는 개인주의적 성향때문에 관계의 늪에 덜 빠져서 계속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수용력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자와의 관계를 만드는 스타일도 내 삶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화=상상력=틀을 깨는 힘의 원천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신화입니다 신화! 신화 서양은 주도적인 문명은 아직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듭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동양 신화에 비해서 황당 무개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키울 데 없어 어떤 사람이 메두사 목을 번 벳는데 그 메두사 흘린 피에서 날개가 달린 말이 태어납니다. 폐가 수스하고는 말이 태어나요. 제우스의 부인 헤라를 좋아하는 액시온한테 제우스가 구름으로 헤라를 만들어서 보내니까 그 액시온이 해라를 품고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에 어때 돼요? 상체는 사람인데 하체는 말인 반인 반말을 만들어 냅니다. 페가수스는 벼락과 천둥을 데리고 다닙니다 얼마나 황당해!

그런데 이걸 가지고 황당하다고 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개인의 크기든 문명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뭐냐 신화의 크기에요 신화의 크기를 우리는 뭐라고 그러냐 황당 무게함이라고 그럽니다 자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곳 해석되지 않는 것은 항상 이상한 것이고 위험한 것으로 분류가 됩니다. 이상하고 이해 안 되고 위험한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우리가 모험이라고 그러고 그 모험을 하는 사람을 황당무개하다고 표현합니다. 모험의 크기가 황당 무게함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이것은 문명의 신화적 요소입니다. 신화적이었 습니다. 누가 더 큰 황당무개한 신화를 가졌느냐. 이것이 누가 더 지적이냐 누가 더 높은 곳에 있느냐를 결정한다.

엄태경 : 와우! 멋진 해석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 신화가 개인한테 들어왔을 때 그것을 꿈이라고 그렇다 꿈이라고요. 요즘 꿈을 꾸라는 말은 당연한 말로 회자됩니다. 모험을 하라는 말도 당연한 걸로 해줘야 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꿈을 꾸고 싶어도 사회적 조건이 꿈을 꾸게 할 수 없어 안 한다. 모험을 하고 싶어도 사회가 허용을 안 한다. 이건 꿈을 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모든 모험 모든 꿈은 기존에 있는 조건을 극복해 나가면서 돌파합니다. 기존에 있는 조건으로 자기 꿈이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으로 해석되고 거기에서 좌절한다. 신화를 쓰지 못할 것입니다.

엄태경 : 현재적으로 거부됨이 없는 꿈은 꿈일 수 없어보입니다. 현재적 틀 밖에 있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겠죠.

여러분들 오늘 우리 강연에서 이렇게 만났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신화를 쓰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 신화를 쓸 수 있을까요 질문해야 된다. 질문할 수 있을까요? 핵심은 그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질문하지 못하는가. 왜 좋은 책을 보고 변하지 않는가? 핵심은 뭐냐 신화를 쓰려는 도전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무엇인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꿈꾸고 계신다면 제가 이렇게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떻게 살다 가고 싶으십니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죽기 전까지 이루어 이루어야 말겠다는 여러분들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원하는 것이 없으면 궁금한 것이 생기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이 높이 높이 올라서 시간과 공간의 동의를 얻어내는 일 이걸 우리는 신화라고 그럽니다. 다시 꼼꼼히 우리가 생각해 보기로 약속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합니까? 나는 무엇을 원합니까?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지를 자기가 원해야 됩니다! 짧은 인생에서 여러분 모두 승리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엄태경 : 당신의 얘기들에 번득이는 지혜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위험한 것과 연결될 수도 있는 것들도 눈에 띕니다. 근본적으로 당신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공부가 약해보입니다.

제가 공부해본 '나'는 물질, 좀 더 궁극적으로는 에너지적 실체로서 나뉨 없는 온 우주를 아우르는 유일무이한 전체인 '나'와 전체의 근본적이고 실체적 본질을 온전히 갖고있는 개체적 '나'가 있고, 그 개체적인 내 의식이 보는 넓이와 깊이에 따라 분리와 하나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유발시킨다. 삶이라는 장애물을 헤쳐나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실체를 깨닫는 회귀여행을 하는 존재다. 지금 내 의식은 본질적 의식의 표면 위에 떠있는 논리 회로 상태다. 심연의 근원적 회로에 접속될 기회는 개별적 나의 고유함이 된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세부적으로는 몸, 자세, 뇌과학, 인류학에 대한 공부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좋은 재료로 보입니다.

한편, 저는 인간이 '서서히 바뀌는 그리고 지속적인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 기능', '과충족 상태 관리 기능' 및 '복합정보 단순화 기능'이 잘 발달되어있지 못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다소 전투적인 문장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작금의 인류사회를 위협하는 코로나19, 혐오, 불평등, 공정 문제 등은 모두 우리 자신인 '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로 보입니다.

님의 얘기에 비판의 내용이 좀 많았지만 당신의 생각들은 제가 만나본 최고의 인식들이었습니다. 행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반론이 있으시면 기꺼이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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