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예술 찬성 - ingongjineung yesul chanseong

최근 인공지능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겼던 예술 창작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지만, 고도의 사고와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예술은 인간만의 특권이며, 최후의 저지선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술, 음악, 문학, 기사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이 구현해내는 창작물들은 단순한 모사 이상의 수준을 보여준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제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 있게 됐다는 위기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예술마저도 인공지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인지, 아니면 예술의 자유에 날개를 달게 된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인공지능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겼던 예술 창작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 창작 시스템의 확장

음악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유망 산업으로 꼽힌다.

실제로 1957년에 미국의 ‘일리악(illiac)’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곡한 클래식을 선보인 이후 전자악기와 전자 장비, 작곡 소프트웨어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최근 순환 신경망(RNN, Recurrent Neural Network)이 고안되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고, 이를 조합하여 세상에 없던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토양이 진작에 만들어진 이유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마젠타(Magenta)’라는 창작 전문 AI 프로젝트, 아마존의 딥컴포저(DeepComposer), 오픈 AI(Open AI Jukebox)는 대량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음악을 생성한다. 아이바 테크놀로지가 출시한 아이바(AIVA)는 최초로 작곡가 협회에 이름을 등록하고, 고전음악의 작곡 방식을 학습하여 각종 사운드 작곡에 활용되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유망 산업으로 꼽힌다. Ⓒ게티이미지뱅크

미술 분야 역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세계적인 경매시장에서 고가로 낙찰되며 미술계에 큰 충격을 불러왔다.

당시 크리스티 경매의 리처드 로이드(Richard Lloyd)는 ”AI가 향후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예견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미술시장에 충격을 줄 여러 기술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인공지능은 ‘AI 아트’로 불리는 새로운 장르로의 확산세가 두드러진다.

주로 빅테크 기업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스타트업과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프로젝트 작업, 전시 등이 눈에 띈다. 구글은 유명 화가의 화풍이 적용된 그림을 그리는 ‘딥드림(Deep Dream)’을 개발했고, ING와 MS는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렘브란트의 화풍을 닮은 창작물을 선보였다.

현재까지는 주로 ‘AI아트’에 관심이 있는 작가들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도구로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미술계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인공지능은 음악과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 분야, 뉴스 기사에까지 활약하며 소위 ‘필력’을 뽐내고 있다.

ING와 MS는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렘브란트의 화풍을 닮은 창작물을 선보였다. ⒸThe Next Rembrandt 홈페이지

창작의 ‘0’, 기술에 인색하지 말 것

예술의 기원을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예술의 본질을 ‘모방’이라고 정의했다. 이 명제는 매우 긴 시간 동안 예술을 이끌어 온 모티브다. 그리고 여러 사조를 따라 창작의 기술과 방법이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고민은 어디에 닿아있었을까?

구본권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는 <로봇시대 인간의 일>에서 “로봇의 창작활동을 접하기 오래전부터 예술은 도구의 사용을 놓고 고민해왔다”고 말한다. 도구란 곧 기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어떤 분야의 ‘0’를 찾아 거슬러 가보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항상 사회에 ‘충격’을 던졌지만, 사람은 기계와 공존하는 방법을 곧 깨닫는다.

최근에 등장한, 가장 획기적인 도구인 인공지능이 예술에 던진 충격 역시도 그렇다. 자연의 무수한 대상을 재료로 새로움을 창작하는 과정, 즉 인간이 이성과 정신적 활동의 치열한 경계 싸움이 인공지능의 딥러닝 알고리즘과 닮아있다. 그래서 창작에 더해진 이 기술은 인간과 알고리즘의 협업, 창조적 협력 관계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는 모양새다.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화두,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사실 ‘경쟁’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인간의 고유한 사유행위의 산물로 여겨지는 예술 창작을 기계가 수행한다는 것은 ‘치열한 경쟁’을 전제한다. 하지만 ‘0’부터 과학기술을 쌓아온 우리는 늘 현명한 균형을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지금, 우리는 치열하게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 경쟁이 아닌 상생의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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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인공지능이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인간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던 예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인공지능 작품이 독창적이고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아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예술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기계가 예술가도 대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모든 분야를 인공지능 담론으로 다시 한 번씩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책 <특의 점의 예술>은 예술 분야에서 그러한 사유를 돕는데 훌륭한 책이었다.

이 책에는 "인공지능이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생각과 결론이 담겨있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훌륭한 조력자임을 말하면서, 동시에 인공지능 자체도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몇 가지 사례와 근거로 뒷받침한다. 인공지능이 뛰어난 조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인공지능의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그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순수한 도구로써 인공지능을 활용한 창작의 가능성에 대해 고찰해보려고 한다.

인공지능의 한계

먼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동시대 기술에서 인공지능이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한다. 인간이 학습하는 것처럼 기계도 학습을 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이 설계한 프로그램(모델)이 방대한 데이터에서 어떠한 패턴을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학습해 놓았던 모델을 바탕으로 추후에 새로운 입력이 들어왔을 때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인공지능은 "인간이 정해준" 기준 대로만 학습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무언가를 원해서 학습을 시작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 학습할 데이더 조차 인간들이 일일이 분류(레이블링)해주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보다 나은 학습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일일이 재 조정해주어야 할 매개변수 값도 상당하다. 인공지능을 전공한 내 지인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머신러닝을 수공예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머신러닝을 기능적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학습할 대상 및 기준 선택 (2) 학습 모델 개발 및 학습 (3) 완성된 모델을 통해, 입력값에 따른 결과 생성(예측). 인공지능 예술가라고 불리는 주체는 대부분 3번만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1), (2) 번의 과정은 그 인공지능 작가를 만든 누군가(예술가나 개발자 등) 즉, 인간이 수행한 것이다. 인공지능 작곡을 예를 들어 보자. 그 곡들이 꽤 들을만하다. 인공지능은 음악을 어떻게 작곡할까? (1) 기존의 음악 데이터를 원하는 기준에 맞게 분류하고 레이블링 한다. (2) 학습모델을 구현하고 학습시킨다. (3) 원하는 입력값(리듬, 시간, 악기 등등)을 입력하여 결과물(곡)을 생성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작곡 서비스도 제법 있다. (1), (2) 번까지 개발을 마친 기업 혹은 개발자가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용자가 직접 (3)을 입력해서 결과물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기존에 인간들이 창작했던 수많은 좋은 곡으로부터 학습을 했기 때문에 결과물 품질은 분명 훌륭할 것이다. 인공지능 회화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인공지능 예술의 기능을 세세하게 나누어 보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인간이 상당히 많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학습을 시작하고, 어떤 입력값들을 선택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런 인공지능 창작물을 순수하게 인공지능이 창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아니라 그 인공지능을 도구로 사용한 인간이 창작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작품의 제작과정보다 아이디어와 개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이다. 창작과정 자체가 아무리 자동화되고 결과물이 완성도가 높아도, 작가가 아이디어를 스스로 제시하지 못했다면 창작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아무리 창작의 과정이 자동화되어도, 적어도 그것을 최초로 시작한 주체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 예술가가 만든 작품도 결국 인간이 의도로 창작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창작의 주체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이미지 A와 각 화풍(좌측 작품사진)을 인공지능에게 전달하면 인공지능이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해준다. 출처: A Neural Algorithm of Artistic Style

인간의 한계 - 시대에 따라 변하는 예술의 정의

지금까지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인공지능이 스스로 의도를 가지고 창작하지 못했다고 보자. 기술적 한계는 결국에 기술적으로 극복된다. 그것은 시간문제다. 미래에 인공지능 기술은 스스로 자아를 갖고 직접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인공지능을 진정한 인공적 "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강-인공지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때에는 분명 인공지능도 스스로 의도를 가지고 독창적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가 되면 앤디 워홀 같은 스타 인공지능 작가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의 신작에 열광할지도 모른다. 내가 명작으로 뽑는 단편영화 <넷플릭스 러브-데스-로봇, 지마 블루 편>에 그러한 미래의 인류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에 강-인공지능이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술"은 절대적이고 고정 불변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인간들이 약속한 합의이기 때문이다. 뒤샹의 변기는 100년 전에 인간들이 이것도 예술에 포함시키자고 합의하고 결론지었기 때문에 예술이 될 수 있었다. 책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서 저자는 심지어 "미술"이라고 불리는 정의는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합의는 시대적으로 계속 바뀌어왔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의 발명 이후 예술이라는 것의 성격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사진 기술이 예술의 정의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어디 사진뿐일까? 그동안 기술은 끊임없이 탄생하고 변화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미디어나 기술 등으로 인해 시대적으로 변화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합의한 예술의 정의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변화 해왔을 것이다.

먼 미래에 기계도 스스로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들은 예술을 무엇이라고 합의할까? 나는 그 새롭게 정의된 예술에 인공지능이 비빌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그들이 약속하고 합의 내린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 고작 기계 따위가 창조한 예술도 끼워줄까? 모든 것 위에 군림하고 스스로를 무엇보다도 우월하다고 여기는 위대한 인간들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간들만의 가치 경계는 너무나 견고하고 꽉 막혀서 기계가 침투하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때 되면 인간들은 기계를 따돌리고 예술이라는 정의(합의)를 다시 새롭게 내리지 않을까? 어쩌면 인공지능은 영원히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붓이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의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서, 인공지능 자체는 창의적일 수 없으며, 인공지능이 창작한 것도 결국 인간이 의도하고 창작한 것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로 인해서 인공지능이 예술가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임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점의 예술> 책의 제목처럼 동시대 예술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특이점에 도달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인공지능은 예술가를 대체하는 창작의 주체가 아닌, 예술가를 돕는 새롭고 뛰어난 "도구"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예술은 언제 탄생하는가? 과거에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탄생했고,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을 때 탄생했다. 새로운 도구와 재료가 등장했을 때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예술의 새로운 재료이자 도구로 부상하였으며 어쩌면 이것이 예술에 지각 변동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예술이라는 정의는 사람들이 합의한 약속이며,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했다. 동-시대에서 예술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나는 동시대의 예술은 미학적인 소비 대상뿐만 아니라 시대와 주장이 담긴 미디어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대에 예술로 인정받는 작업들은 어떠한 담론을 다루며 관람자에게 어떠한 질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대상을 포착하기도 한다. 그러한 동시대 예술의 작업 프로세스는 (1) 주제 및 담론 선택 (2) 리서치 (3) 구현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은 (1)이다. 안타깝게도(?) 인공지능은 스스로 시대적 담론을 포착하고, 공감하고, 질문하고,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몫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도구로써 (2) 리서치와 (3) 구현을 매우 훌륭하게 보조할 수 있다. 기존의 도구와는 다르게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한계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오랫동안 인류가 만들어온 정석에 없던 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붓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우리의 경쟁자이자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확장하는 도구로 여겨야 한다. 우리가 도구로써 인공지능을 잘만 활용한다면 분명 인류는 새로운 예술을 얻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은 어쩌면, 광속의 제약을 벗어나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DNA텔로미어 단축을 방지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인간을 수명을 늘려줄지도 모른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지도 모른다.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자립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소수자와 주변인들을 차별과 배척에서 해방시킬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단순 반복적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우리를 더욱 창의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전하며 몇몇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현상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는 항상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며 분노하고 반발했다. 인간들은 항상 과거의 기술은 과소평가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기술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럴 때마다 인류는 지혜롭게 잘 대처해 왔다.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인정하고 온전히 맡겨버리고, 인간은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다. 나는 인간만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는, 인간 스스로가 가진 우월성을 내려놓는 것이 인류가 진보하는 과정이라 믿는다. 인공지능 기술은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간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더욱 진보시켜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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