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 시계 등급 - jeniseu sigye deung-geub

브레게 ‘퓨제 투르비옹’

지난해 6월 작고한 스와치그룹의 니컬러스 하이예크 회장은 스위스 시계산업을 위기에서 일으켜 세운 위대한 사업가다. 몇만원짜리 플라스틱 시계인 ‘스와치’를 팔아서 번 돈으로 최고급 시계인 브레게를 살렸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블랑팡을 부활시켰다. 하이예크 회장은 한꺼번에 여러 개의 시계를 차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양쪽 손목에 3~4개씩 착용해 많게는 8개 정도의 시계를 찬다. 스와치, 라도, 티쏘, 오메가, 브레게, 자케 드로 등 그가 운영하는 스와치그룹의 시계 브랜드만 15개가 넘는다. 이 점을 감안하면 적은 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손목마다 4개의 시계를 찬다는 건 특이한 행동이다.

하이예크 회장을 만난 사람들은 기자든, 딜러든, 사업 파트너든 제일 먼저 이렇게 묻는다. “왜 시계를 많이 차십니까?” 하이예크 회장은 “누구를 만나든 시계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당신이 나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이 바로 시계를 한꺼번에 많이 차는 이유가 아닙니까? 이렇게 저는 누구와도 시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이예크 회장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최근 시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시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시계가 왜 필요해? 휴대폰이 제일 정확해”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시계를 꺼내 차기 시작했고 ‘좋은 시계 하나 살까?’라는 마음을 먹고 백화점 시계 매장을 기웃거린다. 남자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자동차와 여자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이제는 시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은 롤렉스, 태그호이어, 까르띠에 같은 브랜드 이름은 익숙해도 과연 그 시계가 왜 좋은지, 왜 비싼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준 오래된 시계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만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냥 방치해 두기도 한다. 실제 주간조선에 실린 시계 기사를 보고 필자에게 증조부 때부터 내려오던 시계의 가치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의뢰한 독자도 있었다. 그 독자가 보여준 시계는 1900년대 초 제작된 론진의 회중시계였고, 현재 스위스 본사에 정확한 제작연도와 가치를 의뢰해 놓은 상태다.

신문과 잡지의 시계 광고와 기사 때문에, 혹은 한번쯤 본 적 있기에 알고 있는 브랜드 말고, 세상엔 정말 많은 시계 브랜드가 존재한다. 그중 우리나라에는 롤렉스와 태그호이어, 브레게, 까르띠에를 포함해 50여개의 시계 브랜드가 정식 수입되고 있다.(엠포리오 아르마니나 펜디, 셀린느, 버버리 같은 패션 브랜드에서 나오는 패션 시계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패션에도 명품이 있듯이 시계에도 당연히 명품이 있고, 명품에도 등급이 있듯이 명품시계에도 등급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종종 명품시계의 등급을 자동차와 비교하는데 최고급 시계를 두고 ‘롤스로이스급’이라 하고, 그 다음 등급을 ‘벤츠급’이라 한다. 이렇듯 패션과 자동차, 시계 모두 각각 등급이 있는데 유독 시계 등급만 잘 모른다.

시계 브랜드에는 다소 민감한 부분일 수 있지만 시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등급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계식 시계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시계업계 종사자와 남성잡지 시계 담당 기자 그리고 시계 관련 책을 펴낸 저자에게 국내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시계 브랜드의 등급을 매겨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들이 정한 등급이 100% 정답이라거나 절대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수백만원 이상을 주고 큰맘 먹고 시계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나 지인들과 시계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주간조선을 통해 시계 기사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시계 브랜드의 등급을 소개함으로써 시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함이다.

특급 브랜드 ‘빅 5’

바쉐론 콘스탄틴 ‘패트리모니 트레디셔본’

세계에서 가장 비싼 최고급 시계 브랜드를 꼽으라면 브레게와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블랑팡 그리고 파텍 필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와 전통을 가졌으며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계라 하기엔 너무나 위대한 기계를 만들어 내는 브랜드들이다. 브레게는 시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1775년 설립한 브랜드로 기계식 시계 애호가라면 브레게 시계를 생전에 하나쯤 꼭 갖고 싶어한다. 기계식 시계 최고의 기술로 꼽히는 투르비옹을 처음 발명한 브랜드답게 다량의 투르비옹 모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앞선 기술력으로 지금까지도 기계식 시계 시장을 선두한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부터 나폴레옹을 고객으로 둔 브레게는 18~19세기 신분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이런 브레게가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에 설립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이라는 수식어에 이의를 제기할 브랜드가 있다. 1735년 설립된 블랑팡인데, 설립연도는 바쉐론 콘스탄틴보다 20년 앞서지만 1970년대 쿼츠파동과 오일쇼크 당시 시계 생산을 멈춘 적이 있어 바쉐론 콘스탄틴과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라는 수식어를 두고 종종 대립한다.

바쉐론 콘스탄틴도 브레게와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사랑한 시계 브랜드 중 하나로 1880년부터 사용한 십자가 로고는 최고급 시계의 상징이다. 100% 수작업으로만 제작하기에 1년에 제작 가능한 시계의 수량도 지극히 제한적이라 극소수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으로도 유명하다.

브레게가 스와치그룹에 속해 있고 바쉐론 콘스탄틴이 리치몬드그룹에 속해 있다면 오데마 피게와 파텍 필립은 몇 안 되는 독립 시계 브랜드다. 그중 1875년 설립된 오데마 피게는 창립자의 후손이 지금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유서 깊은 브랜드로 앞서 언급한 다른 브랜드들처럼 무브먼트 제작, 조립 등의 시계 제작을 위한 일체의 과정을 브랜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매뉴팩처 브랜드다. 2007년 국내 첫 매장이 생겼을 당시 2억7000만원짜리 시계가 팔렸고, 2010년에는 11억원짜리 ‘로열오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가 팔리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하는 브랜드는 바로 파텍 필립이다. 시계 애호가들은 파텍 필립을 ‘종착역’이라 부른다. 종착역이라는 것은 그 이상의 고급 시계가 없다는 뜻이다. 엘리자세스 2세 여왕, 앨버트 왕자, 로마 교황, 러시아 니컬러스 2세, 달라이 라마 그리고 사르코지 대통령 등 전 세계 유력 정치인과 왕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바로 파텍 필립이다.

‘빅 3’ vs ‘빅 7’

파텍 필립 ‘노틸러스 컬렉션’

앞서 언급한 5개 브랜드(브레게,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블랑팡, 파텍 필립)가 모두 절대적인 최고의 브랜드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떤 전문가는 블랑팡이나 브레게 대신 파르미지아니나 랑게 운트 죄네를 포함시켜 ‘빅 5’를 구성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피아제와 블랑팡, 예거 르쿨트르 등을 모두 포함시켜 ‘빅 7’으로 부르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0년 넘는 전통을 지닌 스위스 시계 브랜드만 최고급 시계의 자리를 지켰지만 최근 랑게 운트 죄네 같은 독일 시계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아예 파텍 필립, 랑게 운트 죄네, 파르미지아니만을 묶어 ‘빅 3 시계 브랜드’를 구성하는 전문가도 있다.

가장 대표적 인물은 이현숙씨다. 시계 업계에 10년 정도 종사하면서 스위스 시계산업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시계 전문가 이현숙씨는 “27년이라는 짧은 역사와 대중에게 상업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파르미지아니를 ‘톱 3 브랜드’ 안에 넣어야 한다”라며 “그 이유는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 손꼽히는 시계 복원가이자 시계 장인인 미셸 파르미지아니의 천재성으로 탄생한 마스터피스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위스의 유명 제약, 부동산, 미술 사업재단인 산도스재단이 지분을 소유한 파르미지아니는 시곗바늘, 다이얼과 케이스, 무브먼트, 시계부품 및 헤어스프링, 디자인연구실 등 6개의 시계 공방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많은 브랜드들이 자사 매뉴팩처(시계 브랜드의 공장)에서 시계의 모든 공정을 담당한다고 자랑하지만 파르미지아니처럼 시계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100% 생산하는 라인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반드시 3대 브랜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현숙씨의 생각이다.

(왼쪽부터) IWC의 시계 장인. 롤렉스 ‘데이토나’. 샤넬 ‘J12 크로매틱’

남성잡지 아레나의 패션디렉터 성범수 기자는 ‘빅 5’ 브랜드에 꼭 블랑팡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계식 시계의 암흑기인 1970년대 쿼츠파동과 오일쇼크로 인해 블랑팡은 처참히 무너졌었다. 확실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버틸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이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위블로의 CEO를 맡고 있는 마케팅의 귀재 장 클로드 비버의 손에 의해 1990년대 재도약하긴 했지만 그건 단순히 마케팅의 힘만은 아니었다. 블랑팡은 브랜드의 300년에 가까운 오랜 역사에서 그 답을 얻어 시계 역사에 길이 남을 마스터피스를 소개함으로써 원래 있어야 할 최고의 자리로 다시금 돌아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성범수 기자가 블랑팡을 최고의 브랜드로 꼽는 건 1991년 선보인 ‘1735 마스터피스’ 시계 때문이다. 하나의 시계에 미닛 리피터(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스플릿 세컨즈(두 개의 시간을 하나의 시계로 측정하고 그 시간 차까지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 크로노그래프(스톱워치 기능), 투르비옹(중력으로부터 오차를 줄여주는 기능), 퍼페추얼 캘린더(자동 날짜표시 기능), 문페이즈(달 모양으로 달의 크기와 주기를 알려주는 기능) 그리고 오토매틱 와인딩(차고 있으면 자동으로 가는 기능)을 모두 담아낸 것이 바로 ‘1735 마스터피스’다. 성범수 기자는 “20년 전인 1991년에 손목시계에 이 모든 기술을 한꺼번에 구현한 블랑팡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은 모두 자동차로 치면 롤스로이스와 견줄 수 있다. 롤스로이스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는 기계가 만들지만 사람의 손길이 더 많이 가는 공정으로 인해 생산량도 제한적이다. 브레게와 오데마 피게, 바쉐론 콘스탄틴, 랑게 운트 죄네, 파르미지아니, 블랑팡, 예거 르쿨트르 같은 시계 브랜드 역시 기계로 만들지만 사람의 손이 더 많이 가는 시계 브랜드로 생산량이 제한적이라 희소성이라는 가치도 있다. 만약 아버지가 물려준 시계에, 앞서 언급한 브랜드 이름이 적혀 있거나 누군가가 그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나왔다면 비싸고 좋은 최고급 시계라는 것을 눈치채야 할 것이다.

벤츠급 시계들

파르미지아니 ‘뉴부가티’

롤스로이스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벤츠를 타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벤츠를 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벤츠급 시계들 또한 마찬가지다. 롤스로이스급처럼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마감한 예술품까지는 아니지만 최고의 기술력과 브랜드 네임 자체의 가치로 인해 손목에 차는 순간 자부심이 생긴다.

벤츠나 아우디, 페라리와 비교되는 1급 브랜드에는 율리스 나르덴, 위블로, 제니스, 쇼파드, 해리 윈스턴, 프랭크 뮬러, 로저 드뷔 등이 있다. 역사와 기술력, 예술성, 브랜드 파워에 있어 앞서 언급한 특급 브랜드보다는 뒤지지만 어떤 면에서는 특급 브랜드에 포함시켜도 될 만큼 우수한 시계들을 선보이는 브랜드들이다. 1급 브랜드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기보다는 특급과 1급의 경계를 자주 오간다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하다. 가격대 역시 기본 1000만원대부터 시작해 1억원이 넘는 시계들도 많다.

지난해 국내 정식 론칭한 율리스 나르덴의 경우 전문 무브먼트 회사에서 구입한 무브먼트를 장착한 수백만원대 모델부터 투르비옹과 미닛 리피터 등을 장착한 고사양의 시계까지 제품군이 광범위하다. 율리스 나르덴뿐 아니라 쇼파드나 해리 윈스턴도 마찬가지다.

2011년 가을 국내 론칭한 제니스는 100%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시계 제작의 모든 공정을 자사에서 담당하는 매뉴팩처 브랜드지만 특급이 아니라 1급인 이유는 바로 합리적인 가격대 때문이다. 지난 12월 2일 제니스의 국내 론칭을 기념해 내한한 제니스의 CEO 장 프레드릭 듀포는 “145년 전통의 100% 인하우스 무브먼트야 말로 제니스 최고의 경쟁력이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시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듀포 회장의 말처럼 시계 품질은 우수하면서 동시에 생산량을 늘려 합리적인 가격대의 시계를 제공하는 것이 1급 브랜드 최고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급 시계 브랜드 역시 일반인들이 쉽게 구입하기엔 비싼 시계임에 틀림없다.

벤츠 E 클래스 혹은 아우디 A6급

랑게 운트 죄네 ‘백케이스’

2급 브랜드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롤렉스부터 오메가, 불가리, 브라이틀링, 까르띠에, IWC, 크로노스위스 등 많은 브랜드들이 여기에 속한다. 벤츠는 벤츠지만 중저가 등급인 C 클래스 혹은 E 클래스쯤으로 말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 브랜드는 롤렉스다. 롤렉스는 스위스 시계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계 업계의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다. ‘시계이야기’의 저자 정희경씨는 “럭셔리 패션에 입문할 때 루이비통, 구찌가 관문이 되는 것처럼 시계에 있어서는 태그호이어나 롤렉스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고 누구나 알아보는 시계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롤렉스는 스와치나 리치몬드 같은 거대 시계 그룹에 속해 있지 않지만 단일 브랜드로서 전 세계 시계 판매율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한 브랜드다. 100% 자체 생산한 시계에 롤렉스만의 특허기술을 더해 단단하고 견고한 시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롤렉스와 더불어 오메가, 태그호이어는 비슷한 디자인과 컨셉트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비교된다. 이해를 높이기 위해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롤렉스, 오메가, 태그호이어 순이겠지만 이는 판매순이라기보다는 가격대와 선호도 순으로 봐야겠다.

태그호이어는 30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중저가 모델로 롤렉스나 오메가보다 한 등급 아래인 3급 브랜드에 포함시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최근 자사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고사양의 크로노그래프 모델을 출시하면서 2급 브랜드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3급 브랜드는 샤넬, 디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의 럭셔리 패션하우스에서 시작한 브랜드부터 보메 메르시에나 벨앤로스 같은 수백만원대 시계를 선보이는 브랜드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은 브랜드들을 2급, 3급, 4급이라고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까르띠에 ‘칼리브 드 까르띠에’

금인지 스틸인지, 기계식인지 쿼츠인지, 자사 무브먼트을 사용했는지 등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아닌 디자인과 취향이 시계 선택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현숙씨를 비롯한 시계 전문가들도 그러한 이유로 특급 브랜드 이외의 등급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시계 제조의 오랜 역사와 기술력, 무브먼트를 비롯한 외관의 예술성,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브랜드 파워 등을 잣대로 명품시계 브랜드 등급이 정해진다. 기계식 시계 애호가들 대부분이 “기계식 시계는 우수한 기술력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하기 위한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미술 애호가들이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비싼 가격을 주고 작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기계식 시계 애호가들 역시 시계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시계를 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가치와 아름다움의 가치가 바로 시계의 등급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정해진 가격이나 등급이 아니라 ‘소장하고 싶은 가치’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100만원짜리 시계일지라도 100년 동안 소장하고 싶은 귀한 물건이라 여긴다면 그것이 바로 명품시계이다. 그러니 등급은 등급일 뿐, 목숨 걸진 말자.

파텍 필립 이브 카바디니 부사장 내한

“한국 시계시장 커져… 파텍 필립도 영업전략 적극적으로 바꿨다”

ⓒphoto 연합

파텍 필립은 “당신은 파텍 필립을 소유한 게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맡아두고 있을 뿐이다”라고 광고한다. 12월 9일 조선일보 A15면 전면 광고에도 이 문구가 등장한다. 파텍 필립은 이 광고 카피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파텍 필립의 영원한 가치를 홍보한다. 최고의 시계로 알려진 파텍 필립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에 매장을 열었다. 1839년 설립 이래 17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최상의 기술력과 희소성, 전통과 혁신을 기반으로 시계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파텍 필립. 매장 오픈을 맞아 서울에 온 파텍 필립의 영업담당 부사장 이브 카바디니(Yves Cavadini)를 만났다.

- 파텍 필립 매장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아케이드와 면세점에 이미 있다. 원칙을 바꾸어 서울 강남에 단독 매장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 몇 년 전부터 들어와 있었지만 매장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파텍 필립은 브랜드 특성상 공급량이 충분치 않아 일절 마케팅 활동 없이 작은 규모로 운영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고객의 주문이 점점 늘어나고, 브레게와 바쉐론 콘스탄틴 같은 최고급 브랜드가 한국에서 최고의 판매 실적을 올리는 것을 보고 보다 적극적으로 판매를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 한국의 여러 시계 수입사가 파텍 필립의 공식 수입업체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것으로 안다. 기존 에이전시(보난자)가 아닌 우림 FMG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보난자와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한국 내 명품시계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서울 강남의 단독 매장을 열어 보다 많은 고객이 쉽게 파텍 필립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우림 FMG를 선택한 이유 또한 한국 내 사업 확대를 위한 최고의 파트너라고 믿기 때문이다.”

- 파텍 필립과 견줄 수 있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들이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다. 한국 시장을 공략할 마케팅 전략은 무엇인가.

“파텍 필립은 수요에 비해 공급 물량이 부족한 편이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순 없다. 기계식 시계의 열풍이 이제 남자에서 여자로 옮겨가고 있다. 파텍 필립은 앞으로 여성 고객을 위한 다양한 시계를 선보이며 여성 고객이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파텍 필립의 매력을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주문 제작을 강화할 예정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파텍 필립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파텍 필립 시계 중 한국 시장에서는 주로 어떤 상품을 주력할 생각인가.

“한국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선호하는 모델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 모델들인 칼라트라바(Calatrava) 및 노틸러스(Nautilus) 판매 실적이 매우 우수하며, 기본 컴플리케이션인 애뉴얼 캘린더(Annual Calendar) 또한 인기가 높다. 한 모델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모델을 선호하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수량 확보에 무엇보다 주력할 생각이다.”

- 기계식 시계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기계식 시계는 3세기 넘게 축적된 스위스 시계 제작 전문성에 대한 완벽한 표현이다. 벽시계, 회중시계, 손목시계를 창조한 시계 장인들의 유산이며 가장 뛰어난 스위스 산업 중 하나다. 기계식 시계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유산을 소유하는 데 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장인의 숨결을 가장 작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기계식 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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