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해링 그림 기법 - kiseuhaeling geulim gibeob

키스해링 Keith Haring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키즈해링은 미국의 미술가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예술은 그의 삶이었고, 그의 삶은 예술 그 자체였다.

31세, 짧은 생이었지만 뉴욕의 거리문화 그래피티에 영향을 받아 회화의 한 영역을 개척했다.

키스해링은 그래피티 아트를 새로운 회화 양식으로 끌어올려 20세기 현대미술의 지경을 넓힌 작가다.

키스해링이 10년의 짧은 활동 기간에 작업했던 페인팅, 드로잉, 조각, 앨범 아트와 포스터 등 주요 작품 175점을 선보였

키스 해링의 그림은 예술이라는 것이 높은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누리는 문화가 아니라, 나이와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소유하고 즐길 수 있게 한다. 그의 그림은 티셔츠, 수영복, 휴대폰 케이스, 컵, 휴지곽 등 각종 생활 용품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다양한 용품들은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해링의 철학과 만나 우리의 일상을 더욱 즐겁게 해 준다.

전시장은 여덟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키스해링의 작품 활동 과정과 경향에 따른 작품을 보여준다.

| 표출의 시작, The Beginning

키스 해링이 처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곳은 뉴욕의 지하철역이다.

지저분하고 위험하기로 유명한 뉴욕의 지하철은 전동차와 함께 역사 곳곳에 불법으로 그린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해링 또한 역의 게시판이나 벽면에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로 그래피티를 남기곤 했다이 지하철 드로잉을 통해 키스 해링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키스해링이 지하철역에서 그래피티 작업 중인 모습

인상이 맑고 진지해 보인다.

이 시기의 해링은 흰색 분필을 사용하여 검은 종이로 덮인 광고판에 아기, 동물, 텔레비전, 사람 등을 그려 넣곤 했다.

탄생과 죽음, 사랑, 전쟁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표출하여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 것이었다.

<무제> 흑지에 흰 분필, 123.5x172.2cm, 1981-1983

|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 Story Telling

해링은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다가 에이즈로 사망하게 된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배경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였다.

그는 여러 편의 아동 도서를 출간하기도 했고, 팝아트 제품과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상품을 디자인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도시에서 아이들과 합동으로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 작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작품을 해석하는 창조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빨강과 파랑의 이야기> (21개 시리즈), 종이에 석판, 56x42cm, 1989

 

<빨강과 파랑 이야기> 21개의 석판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자유롭게 구상할 수 있도록 해링이 배열해 놓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이미지이다.

해링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어린이들이 각각의 판화들을 보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각기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길 원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이야기될 수도 있고 20개의 시리즈가 합쳐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도했다

 <빨강과 파랑 이야기>는 미국의 많은 학교나 어린이 미술관의 교재로 채택되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이야기 경연 대회에도 사용이 되었다

 세개의 석판화, 1985년

| 예술적 환각을 통한 초월, Transcend

전시장에는 작은 암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형광 페인트로 제작된 해링의 그림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테마 놀이공원에 입장한 것처럼 환상적인 기분이 든다. 해링은 활동 당시 형광 페인트를이용하여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들곤 했는데, 이때 형광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블랙 라이트라는 비가시광선 조명을 함께 사용하여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고 한다.

<무제> 종이에 실크스크린 1983

<무제> 종이에 실크스크린 1983

블랙 라이트는 해링이 작품 활동을 하던 1980년대 미국의 클럽 인테리어 장식으로도 자주 사용된 조명이기도 하다.

해링은 블랙 라이트 조명 아래에서 형광 물감으로 작업한 작품을 전시하고 전문 DJ와 함께 밤새도록 댄스 공연을 진행한 적도 있다.

| 음악을 통한 발언, Message and Music

작가로서 해링이 가진 주된 관심사는 에이즈 예방, 성 소수자의 인권, 인종 차별 철폐, 마약, 전쟁, 폭력 및 환경보호와 같은 문제들이었다. 이에 해링은 자신의 그림체를 살린 포스터를 제작하여 사회 이슈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촉구하고자 했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해링의 작품들이 재미있고 발랄해 보이는 이미지 뒤에 사·정치 문제에 대한 확고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해링의 삶과 예술에 있어 음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당대의 많은 뮤지션들과 협업을 하여 음악의 메시지를 시각화한 앨범 자켓을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데이비드 보위의 1983년 앨범 <위드아웃 유> 앨범 커버이다. 밝게 빛나는 두 사람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는 형태로 그려진 이 간결한 그림은 해당 앨범이 담고 있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반영하고 있다.

<Without You> 데이비드 보위 앨범 커버, 18x18cm, 1983

 <안전한 섹스, 1987> / <단속하라! 1986> / <에이즈에 대한 아트 어택>, 미시간 주 트로이, 서머셋 몰 1988

<몽트뢰 재즈 음악 페스티벌> 3개의 포스터, 1983

| ‘해링 코드’, Symbols and Icons

빛나는 아기, 서 있는, 하트, 천사 등…….

빛나는 아기/ 서있는 개/ 천사

시선을 사로잡는 단순 명료한 이미지들은 키스 해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작품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호이다.

해링은 이러한 기호들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그리곤 하였는데, 해당 이미지 중에서 아기는 원초적인 생명력과 모든 가능성을, (짖는 개가 아닌) 서 있는 개는 권위적인 정부나 억압 체제를 상징하고 있다. 한편 천사는 영적인 존재나 인간의 수호자를 뜻할 뿐 아니라(참고로 해링은 비종교인이었다), 동시에 우리네 삶의 복잡다단함이나 권력, 혼란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들은 198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 , 죽음, 대중문화 및 정치에 관한 주제들을 다루는 데에 사용되었다.


 

 <심볼과 아이콘> 종이에 실크스크린, 117x208cm, 1989

| ‘종말이라는 디스토피아, Uncovering the Dystopia

해링은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와의 협업을 통해 22개의 초현실주의 석판<종말>을 제작했다.

이 작업에서 해링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버로스의 묘사를 자신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한 편의 콜라주를 제작하였다.

<종말> 종이에 실크스크린, 1988. 윌리엄 보로스와의 협업

작품에는 광고 이미지뿐 아니라 미술사 자료들이나 가톨릭 신학 자료 등 다양한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어딘가 음산할 정도로 뒤죽박죽 모여 있는 이미지들은 해링이 경험한 혼돈의 감정과 그가 상상한 지옥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종말>시리즈 작업은 윌리엄 S. 버로스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버로스는 10개의 산문을 썼으며 키스해링은 이것을 일러스트로 해석해서 10점을 그림으로 그렸다. 세상에 대한 종말을 말하고 있는데 콜라주 기법을 사용했다이 작품이 완성된 해인 1988년 키스해링은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 원시 에너지와의 조화, Primeval Energy

해링은 자신의 모든 작품이 토속 미술과 전문적인 예술 사이에, 그리고 창작과 차용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아즈텍, 에스키모, 아프리카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다.

<피라미드> 금속에 아크릴 1989

아프리카 미술은 해링뿐 아니라 피카소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전시장에는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받아 활동하던 원시주의 시기의 작품과 유사한 것이 걸려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해링의 작품 속 무수한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 태양과 피라미드, 바디 페인팅과 토템 등은 아프리카 지역이나 고대 문명이 지닌 원초적인 힘과 신비함을 잘 담아내고 있다.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 1986

 이집트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 키스 해링이 그린 T. 존슨 보디페인팅

| 시작의 끝 그리고 끝의 시작, The End of the Beginning

해링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그는 자신이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에 만들었던 블루프린트 드로잉들을 복제해 17개의 실크스크린 포트폴리오를 제작하였다. 여기에는 피라미드, 비행접시, , 뱀 등이 등장하고 기어 다니는 아기가 많은 사람들과 외계 생명체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인간의 욕망이 극에 달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해링은 자신의 마지막 포트폴리오에 대하여 이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내가 처음 뉴욕 생활을 하던 그 아름다웠던 시기로 돌아가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삶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자신의 초기 작품을 정리했던 키스 해링. 해링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17점의 드로잉은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작품이다.

키스해링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제작한 블루프린트 드로잉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모두를 위한 예술!

모두를 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해링에게 이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찾은 사명감이리라.

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중략)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키스 해링 저널>

나는 하루하루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아기를, 어린아이를 사랑한다. 

몇몇 사람, 대부분의 사람, 아니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Keith Allen Haring

1958. 05. 04 ~ 1990. 02.16

Art is Life. Life is Art

예술은 삶, 삶은 곧 예술이다

키스해링은195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났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13녀의 장남이었던 키스해링은 어린시절 TV만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그림그리기에 흥미가 생겼다. 뉴욕에서 시각예술을 공부했고, 뉴욕 길거리에 그려진 낙서에서 영감을 얻어 길거리, 지하철, 클럽 등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해링은 다른 낙서화가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작품을 거리와 지하철에서 벗어나 티셔츠와 장난감, 공익광고와 포스터,벽화 등으로 제작하였고 상업화하였다. 그는 탄생과 죽음, 사랑, 전쟁과 평화 등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활동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표현하고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교육,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의 사회문제를 다루었다. 상위예술과 하위예술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려 노력한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생애

195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남

1976: 피츠버그의 아이비전문예술대학교에 입학하여 그래픽디자인을 공부

1978: 뉴욕 기삿예술학교에 입학

1985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 보르도(Bordeaux) 현대 미술관에 작품 전시회를 열고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

1986소호(SoHo)에 팝 가게(Pop Shop)를 열고 자신의 예술품들을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등으로 상품화하여 팔기 시작함

상위 예술과 하위 예술의 장벽을 무너트리려 노력하였으며, 팝 가게의 개점과 함께 그의 작품들은 더욱 더 에이즈(AIDS) 인식, 코카인 전염병 등과 같은 사회-정치적인 주제들을 반영하기 시작함  

1988에이즈 진단을 받음.

1989년: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하여 에이즈단체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에이즈에 대한 경각성을 일깨우는 데에 힘씀

같은 해 6월에 피사 Sant'Antonio의 교회의 후면 벽에 마지막 작품인 토투몬도(Tuttomondo) 벽화를 그림

1990년: 216일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

전시작 175점은 모두 일본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의 소장품이다. 미술관 대표인 카즈오 나카무라는 과학자이자 사업가다. 1980년 미국 유욕 출장길에 올랐다가 해링의 그림에 반해 할부로 작품을 구매했다. 이후 이런 만화 같은 그림에 돈을 쓰다가 파산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링의 작품을 사모았다.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키스해링을 하룻밤 사이에 뉴욕의 전설로 만들어 버린 작품 지하철 드로잉시리즈를 비롯해 해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무제’(1895) 등을 수집했다. 2004100점 이상을 모으게 됐다.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 2007년 그는 일본 고부자치아에 자신의 대규모 컬렉션을 소장하는 키스해링 미술관을 세웠다. 지난 1123DDP를 찾은 그는 해링의 작품 속에서 과학자인 내가 갖고 있는 광기같은 면을 봤다면서 해링이 살아 있어서 이 전시를 본다면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장소 :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지하2층 디자인전시관

기간 : 2018.11.24.()-2019.3.17.() 오전 10-오후 8

도슨트 : 평일 오전 11, 오후 1, 3, 5(4)

요금 : 일반 13,000, 청소년 11,000, 어린이 9,000

문의 : 02-325-10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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