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선교회 신천지 - saengmyeong-uimalsseumseongyohoe sincheo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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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을 찾겠습니다. 로마서 5장 5절 한절만 같이 읽겠습니다.

로마서 5장 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거기까지. 찬양대 아주 적절한 찬송을 잘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들의 곡식을 거의 추수를 했겠지요. 알곡은 곡간에 들여놓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기도 하고 거름으로 쓰기도 하고 성경에 추수 때는 세상 끝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죠. 봄부터 가을까지 만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자연 조건을 다 허락하신 후에 가을이 되면 알곡이 되든지 쭉정이가 되든지 혹은 곡식도 있고 가라지도 있고, 그런데 알곡과 곡식은 거두어서 천국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태운다는 말씀처럼 이제 마지막 영혼의 추수가 가까웠다는 것을 압니다.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이루신 그 복음이 전파 된 이후에 약 2,000년이라는 역사가 지난 이후에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고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와 충분한 시간을 다 허락하시고 우리는 이제 그 마지막 때, 추수 때는 세상 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일이 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신대로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리라고 예언된 말씀들이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세대에 짧은 기간 동안에 거의 다 이루어 졌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이 확실합니다. 첫 번 오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자기가 이루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을 데리러 오십니다. 첫 번 오신 예수님은 씨를 뿌리러 오셨다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자기가 뿌린 씨의 열매를 거두러 오시는 분이죠. 우리 마지막 때에 이 세상 많은 사람 가운데 구원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 되어서 주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와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충실한 알곡이 되어서 주님 오실 때 영광중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죠? 이제 추수 때가 막 끝나려고 하는데 추수 하는 일꾼은 너무 적습니다. 기독교는 온 세계에 전파되었고 21세기 기독교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교파도 많고 교회당도 많고 목사도 많고 교인도 많고 열심도 있고 하는 것 같은데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적다는 것. 구원받을 수 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하는 사람은 너무 적다는 것은 우리가 실감합니다. 외국에 가서 전도해보면 열심히 믿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 많아요. 안 믿는 사람도 있지만 올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하는 말씀대로 올바로 전파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는 복음을 듣지 못하고 막연히 종교생활 하다가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마지막 추숫꾼의 그 역할을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번 내일부터 우리 서울중앙교회에서 가을 대 전도집회, 금년에 마지막 대전도집회인데 이번에 총 동원해가지고요 이번에 많은 열매를 잃어진 영혼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열매가 될 수 있도록 구원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추수꾼입니다. 잠언 10장에 보면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주인은 열심히 일하는데 일꾼들도 열심히 하는데 아들이 잠자고 있으면 낮잠 자고 있으면 그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지금 추수 때입니다. 자기 일에는 열심히 하지만 하나님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게으른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살리심 같이 아들도 죽은 자를 살리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하시잖아요.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 구원하는 일,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고 사도들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증거 하는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겁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자기 일을 하시는데 사람을 통해서 하세요.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큰 역사를 이루는데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에 내가 빠져서는 안 된다 그 말이에요. 내가 안하면 누가 하랴? 그런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4장에 보면 누구누구 이름을 말하면서 저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다. 거기에 평신도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다.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역사하는 사람들, 육신을 입고 있지만 신령한 일을 위해서 역사하는 사람들, 시간 속에 살면서 영원을 위해서 역사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세상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영광스러운 일을 위해서 역사하는 사람들, 놀라운 일 아닙니까? 우리가 그 하나님의 큰 역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도 총동원해서요, 총동원해야 됩니다. 추수 때는 어린아이들까지 이삭이라도 줍잖아요. 한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고 이번에도 많은 영혼의 구원 받은 역사가 일어나도록 같이 기도하고 합심해야 합니다. 이 교제라는 것은 입으로만 교제하는 게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겁니다. 참여, ‘복음의 변명함과 복음의 확증함에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바울사도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말씀 중에 빌립보서 4장 14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그 복음을 전하는 그 고난과 괴로움에 함께 참예했다. 그 참예라는 말과 교제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 일에 함께 참예해야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는 구원하기 위해서 그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수치와 고통을 받으시고 죽음을 맛보시고 그 보배로운 피를 다 쏟아주셔야만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이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죽고 희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이 구원, 그리스도인의 희생을 통해서 또 전해집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수고와 희생이 없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요.‘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죠. 예수님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셔서 죽은 하나님의 독생자, 독생자가 죽어서 많은 아들을 탄생시켰잖아요. 우리도 또 한 알의 밀처럼 우리가 희생할 때, 죽는 다는 건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의 시간도 물질도 자유도 자기의 행복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예요. 그럴 때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희생해서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랬잖아요. 한 영혼이 구원 받기 위해서 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실 때 큰 영광입니다. 한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번에 우리 총동원해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함께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집회 할 때마다 이 집회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됩니다. 언젠가 갑자기 끝나겠죠. 지금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자연계의 현상, 정치적인 사건, 경제적인 것, 군사적인 것, 도덕적인 것, 종교적인 것, 모든 것을 보면 마지막 때에 되리란 예언된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추수꾼으로서 우리가 일할 수 있는 때가 지금이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하고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해 주시고 협력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제가 지난 2주간 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전도집회를 다녀왔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집회를 하고 또 러시아의 생페트부르크,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전도 집회를 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을 겁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역사가 있었고 먼저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함께 복음을 위해서 협력하는 가운데 큰 기쁨과 하나님께 감사를 돌렸습니다. 생페트부르크는 새로이 생긴 교회인데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다른 교단에 있다가 우리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한 교회가. 그래서 100% 러시아 사람들입니다. 목사님 가정 외에는. 거기서 전도하는 목사님은 소비예트가 무너진 이후에 바로 러시아에 전도하기 위해서 모스크바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전도하신 분입니다. 물론 러시아 말을 유창하게 해서 설교를 하시는 분인데 생페트부르크는 목사님 가정 외에는 모두 러시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은 좀 우리가 생각 할 때 사람이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집니다. 실제 사람들을 대하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은요 외국인들이 그렇게 복음을 듣고 기뻐하고 다정하게 느끼고 좋아하는 모습, 제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봤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은요. 그래서 우리는 역시 함께 구원받은 형제자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고 300년 된 루터교 교회당을 빌려서 했는데요 건축한지가 3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별로 수리를 하지 않아서 허술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큰 강당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제자매들이 그 강당을 빌려서 이틀간이나 동원해가지고 청소하고 전기를 새로 약3/4 정도를 새로 조명을 해서 세워 달고 강당을 뒤에다 장치를 하고, 아주 얼마나 잘 만들어 놨어요. 제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미리 준비하고 합심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구원을 받고, 제가 생각 할 때는 앞으로 그 생페트부르크는 큰 구원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백러시아 민스크라는 곳에 러시아 목사님이 오셨어요. 또 보르드카푸카스라는 곳에도 그 40시간을 차를 타고 왔어요. 그래서 참예하고 거기도 물론 교회가 있고 목사님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러시아목사님이 오셨어요. 그리고 아주 은혜 가운데 집회를 잘 마쳤고 모스크바에 우리 교회 외에 다른 교회가 또 생겼습니다. 거기도 러시아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민스크에서도 오시고 보르드카푸카스라는 데에서도 한 20여명이 36시간을 차를 타고 왔어요. 모스크바까지 와서 참여를 하고 그래서 한 150~160명이 참석을 해서 아주 은혜로이 집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구원받은 사람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목사님들도 여러 사람, 거기에 목사님 전도사님이 4분, 거기에 또 전도하기 위해서 훈련 받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고요. 그 외에 많은 모스크바에서 13시간 정도 떨어진 정도 곳에서도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거기에도 따로 모이고 있는데요. 거기도 전도인만 가면 전도가 활발하게 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러시아 쪽에도 마지막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할 일을 맡기셨다고 믿습니다. 이번에도 계속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에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었다고 믿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지금 전 세계 180여개 교회가 있잖아요. 그리고 선교사들이 많이 나가 있습니다. 계속 기도해 주시고 마지막 때에 우리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는 모든 곳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전도하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오실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마지막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고 희생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구원의 역사를 능히 이루리라고 믿습니다. 계속 기도하시고 같이 협력해 주시고 또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물질을 투자해야 됩니다. 내가 선교사로 가지 않아도 내가 다른 사람을 보낸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참여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주일날 아침에 새로 구원받은 분들을 위해서 계속 좀 말씀드려야겠다 싶어서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많이 배우지만 특별히 새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될 가장 중요한 일들을 좀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고 해서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무엇일까? 정상적이라고 하면 정상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사람인데 그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보다 비정상인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렇지 않아요? 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온전한 걸 말합니다. 비정상이라는 것은 그 온전치 못한 거예요. 잘못된 거예요. 가정에서도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자녀로서 올바로 살아가는 게 정상입니다. 아버지가 비정상이고 어머니가 비정상이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비정상이라면 그 가정이 올바로 설 수가 없어요. 부모가 비정상인데 자녀가 정상이 되겠습니까? 정치가들도 정상적으로 되어야 하는데 정상적인 정치가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뭐 개인의 유익과 명예를 위해서 당리당략을 위해서 하는 것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정말 그 사명감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정치가를 우리는 정상적인 정치가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각 분야에서 다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모였을 때는 거기에는 모든 것이 건전하게 온전하게 목적한 대로 잘 이루어질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구원 받으면.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리가 얼마나 놀랍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천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는 것 아시잖아요. 천사는 신령하게 아름답게 하나님 다음으로 능력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합니다. 천사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대단한 겁니다. 천사가 그 앞에 경배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도 생각해봐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기독교인들 보고 그냥 쉽게 크리스천이라고 하는데 그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 사람이에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다, 그 뜻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신분이냐 그 말이에요. 사람은 신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되지 않습니까? 임금이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한다면 누가 그 사람을 임금으로 인정하겠어요? 누가 존경하겠어요? 대통령도 대통령에 걸맞게 모든 품위를 지켜야 되고 행동을 해야 되고 말을 조심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보통 사람이 잘못하면 큰 문제가 안 되도 대통령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관도 마찬가지고 각 분야에 책임을 맡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나 단체나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정상이 돼야 되죠. 정상.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 영적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구원 안 받은 사람과 같이 행동하고 산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뭐냐 그 말이에요. 성경에는 로마서 8장 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는 알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마귀의 영에 잡혀서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이 안에 있어 성령께 사로잡혀서 성령을 따라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천국 갈 사람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에요. 소망이 있으면 소망을 가진 사람답게 살아가야 되잖아요. 그렇죠?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다 소망을 걸어놓고 삽니다. 학생은 앞으로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교를 거쳐서 이제 좋은 무슨 기업에 취직을 한다든지 자기가 목표한 바가 있을 겁니다. 그게 소망이에요. 그 소망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하지 않습니까? 자, 우리의 소망은 땅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영원한 영광스러운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확실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에요. 이 땅에 모든 일은 다 잠시 후에 끝납니다. 너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잖아요.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처럼 이 땅의 것은 다 시들어버리고 끝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썩어지고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흘리신 피로 우리 죄를 영원히 사해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산 소망이 있게 했다. 이 세상의 소망은 죽은 소망이에요. 그리스도인은 산 소망이 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은 기업,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하늘에 속한 모든 그 기업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다. 이 땅의 것이나 아무리 아름답고 좋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그것에 비하면 천분의 일도 만분의 일도 비교가 안 될 겁니다. 그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그 소망을 우리는 받은 사람입니다. 소망이 있으면 목적이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소망이 없는 사람은 사는 목적이 없어요. 소망이라는 것은 달음박질하는 사람이 그 목표 있잖아요. 골인지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 소망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 소망이 있는 사람이 삶의 목적이 확실합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목적이 없어요. 그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그 천국에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지옥 갈 사람처럼 살아간다면 그게 모순이 아니겠어요? 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람이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인도하심 따라서 살아야 되는데 주님이 같이 계신지 안 계신지 생각도 안하고 자기 편리한대로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고 행동한다면 그게 무엇이 그리스도인이냐 그 말이에요. 성경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구원 받았다면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정상적으로. 구원은 받았으니까 조금 비정상일지라고 천국을 가면 안 되나? 그런 안일한 생각, 잘못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 말이에요. 성경대로 구원 받았으면 성경대로 살아야 성경대로 하나님 나라에 갈 것 아니에요. 예수님은 그 열매를 보아 그들을 안다고 했는데 구원 받았다고 아무리 간증을 해도 그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그 삶의 목적이 그리스도인과 합당치 않으면 그게 가짜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가짜 기독교인, 가짜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데요.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는 데까지 내어 주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백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함부로 살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도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가 주일날 모여서 말씀 배우는 목적이 뭡니까? 어떤 사람처럼 기독교인은 주일날 교회당에 가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예배하니까 그 형식적으로 하는 그게 아니다 그 말이에요. 우리는 교회당에 모이는 것은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말씀을 배웠으면 그 말씀을 마음과 생활에 간직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 받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하게 살지 못할까봐 우리는 항상 두려워해야 됩니다. 그래서 빌립소서 2장 12절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랬잖아요. 구원받은 사람답게 합당하게 살아라 그 말이에요. 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되나? 우리의 육신 속에는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옛 성품이 있어서 기회만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해요. 우리 육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싫어해요.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구원받은 사람의 육신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요. 왜? 하나님과 대항하니깐 반항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들 한참 크다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께 반항하는 거 보셨죠. 자기 맘대로 하려는 거 보셨죠? 부모가 속상하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걱정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 뜻대로 살았는데 내 맘대로 살려고 하나님께 반항하고, 그게 뭐예요? 우리 육신의 소욕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제 구원 받은 이후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는데 우리 육신의 세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싫어해요.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해요.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데 자기의 만족과 자기의 기쁨을 구하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부모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식에게 더 사랑을 주고 더 좋은 걸 주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원하시는 게 얼마나 많은데. 구원 받았다고 해서 다 받았습니까? 구원 받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불순종함으로 그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받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 구원받은 사람은 육신의 사랑을 하는 것도 자기 수단방법대로 자기의 열심히 자기의 노력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다 해야 될 일을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수단방법대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왜냐하면 그 사람들 구원받을 때까지 내버려 둡니다. 끝까지 안 믿으면 그냥 지옥으로, 영원히 지옥에 들어 갈 테니 그때까지는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세요.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그날부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날까지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가르쳐주고 잘못하면 꾸짖고 그래도 잘못하면 때려주고 다스리잖아요.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올바로 살기 위해서 우리를 교훈하시고 잘못된 것 고쳐주시고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때로는 채찍질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만일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 일 없다면 성경에 말한 대로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그거는 버린 자식일 겁니다. 그렇잖아요? 우리는 진리를 떠나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는 모든 걸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서 살 때 우리 육신이나 우리의 영혼이나 영육 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야 됩니다. 상급으로 살아야 됩니다, 상급으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걸 더하시리라’ 먼저 하나님 뜻대로 믿음 안에서 살고자 하면 육신에 필요한 건 덤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해야 됩니다. 육신을 따라 살까봐 두려워해야 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나머지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생활이에요. 그걸 성품구원이라, 생활구원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영혼구원 다음에 마음과 생활이 변하는 성품구원, 생활구원. 그건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항상 복종함으로. 그러다가 주님 오시는 날 우리의 몸까지, 우리의 몸의 구원까지 이루어지잖아요. 주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그래서 그런 과정을 우리는 생각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교회당만 왔다 갔다 하고, 성경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 생활 속에 그대로 이루어져야지 성경과 상관없는 것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겁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에 대해서 지금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그중에 이제 지난번에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이 말씀을 제가 여러 시간 말씀드리고 있는데 왜 그러냐 하면, 이거 말씀을 듣고 잊어버릴까봐. 말씀을 듣고도 그 내용을 등한히 여길까봐.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지 못할까봐 두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동차는 수많은 부속이 조립이 돼가지고 하나의 차가 이루어지고 그 모든 부속들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고 돼 있어야만 정상적으로 차가 움직입니다. 작은 부속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고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항상 이 차가 상태가 정상인지 점검하잖아요. 우리 몸도 그렇습니다. 우리 몸의 하나의 작은 지체라도 고장이 난다든지 잘못되면 온몸이 고통을 받고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건강도 항상 정상이 되도록 주의하고 노력하고 하잖아요. 예수님은 머리고 우리는 다 합해서 몸이고 우리 개인은 그 몸의 지체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 받으면 모든 지체도 고통 받는다 그랬잖아요. 손가락이 여기 곪아서 지금 문제가 생겼는데 깨져서 피가 나는데, 다른 몸은 편안하겠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내 자신은 개인이 아니다, 한 무리 안에 한 일원이다, 그 몸에 지체란 걸 잊지 말아야 됩니다. 내 혼자 잘못하면 전체가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고 내가 잘하면 전체가 영광이 될 수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올바로 행함으로써 전체 주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역사가 올바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우리 개인이 정상이 돼야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가 됩니다. 비정상적인 사람이 모여서 어떻게 정상적인 교회가 이루어지겠어요? 그래서 이 첫 번, 에베소서 4장 3절에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구원받자마자 우리는 성령의 하나 된 거다. 한 생명으로.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목자를 떠난 양이 각자 제 길로 갔다 그랬잖아요. 각자 자기 욕심대로 자기 고집대로 자기 편한 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사람 다 하나가 될 수 없어요. 그러나 이제 구원받자마자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한 하나님 아버지, 한 형제자매. 같은 소망과 같은 삶의 목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한 것은 첫 번, 한 생명으로. 믿음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마태복음 23장에 예수님이 ‘너희 땅에 있는 아비를 아비라 하지 마라 너희 아비는 하나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그것은 육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 그 말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그 말 오해해가지고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라고 하지 마. 땅에 있는 아비를 아버지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버지라고 불러보지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잘못된 거예요. 그건 영적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는 거예요, 신부라는 뜻이 뭡니까? 천주교에서는 귀신 아버지입니까, 그러면 그게? 그건 잘못된 겁니다, 그게. 어떤 사람은 자칭 영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겁니다.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요한복음 20장 17절에 보면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그랬잖아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나의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 내 형제들. 히브리서 2장 11절에 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하나에서 났다. 예수님도 하나님께로 났다 했고 우리도 하나님께로, 한 하나님께로 나서 그래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주님이 우리 같은 죄 많은 사람을 부족하고 천한 인간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는 독생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독생자가 아니고 이제는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었다. 맏아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0절에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도록 하셨다고 그랬잖아요. 많은 아들을 탄생시키려고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은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동생들입니다. 그러니깐 주님이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동생이 부족하고 못났어도 자기 동생인데 동생이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님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고 나의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라고.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는 것 있잖아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한 하나님 아버지, 한 형제자매. 소망이 같고 사는 목적이 같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제 남은 생애 고락을 같이 하고 운명을 같이 하고. 우리의 마음과 힘을 합해서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함께 살아가야 될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성령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어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 잊지 말아야 됩니다. 이런 말을 그냥 동화 얘기 듣듯이 듣고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재미있다 하고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놀라운 진리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나님 한 아버지, 우리는 같은 생명을 받았습니다. 소망이 같고 사는 목적이 같고 이제는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운명이 이제 같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생명 안에서 우리를 연합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죠. 우리를 하나로 만드시는 방법이 말씀이에요.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믿음이 하나 되려면 아는 것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알고 믿잖아요. 그런데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마음이 하나가 안 됩니까? 하나님 한 아버지, 하나님이잖아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서로 죽이기도 하고 그토록 싸우고 미워하고. 이유가 뭡니까? 아는 것이 달라요. 하나님을 아는 게 달라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달라요.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믿음이 달라요.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살 수가 없어요.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온전한 사람은 교회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그래서 성령은 우리가 같은 말씀을 같은 은혜로 구원받게 하고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계속 가르쳐서 하나 되게 합니다. 만일 아는 것이 다르면 그 사람은 이제 떠나버려요. 그렇잖아요? 머리에 딴 것이 들어갔으니까. 다른 사상이 들어갔으니까. 그래서 성령은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령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드십니다. 이제 읽은 로마서 5장 5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다시 읽어봅시다.

로마서 5장 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영원한 소망을 위해서 구원을 받았잖아요. 로마서 8장에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소망을 위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소망이 없다면 그건 구원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가는 그 큰 소망이 이제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천국에 가면 얼마나 부끄럽겠어요? 그렇잖아요? 아주 형편없는 그 천하고 더러운 거지를요 아주 초대를 해 가지고 왕궁에다가 들어가게 하면 부끄러워서 못 들어갈 거예요. 그렇죠? 우리 같은 죄인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소망을 주셨는데 그래도 부끄럽지 않다. 왜? 왜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 나라에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이 우리 아버집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어떤 왕이 천한 신분을 가진 여자를 사랑해서 왕비로 삼았다고 합시다. 끔찍하게 사랑했습니다. 자기는 부족하지마는 그 왕이 자기를 사랑한 것 때문에 부끄럽지 않게 왕비로서 왕 옆에 당당하게 앉을 수 있어요. 다른 것 없습니다. 우리는 그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부어주셨어요. 그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깨닫게 하고 끝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어요. 심어졌어요. 요한일서 4장 10절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 하나님에게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겁니다. 사랑. 사랑의 근원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랑은 부모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하는 사랑, 친구가 사랑하는 그런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이라 그럽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거룩한 사랑, 영원한 사랑, 완전한 사랑. 인간 사랑과는 달라요.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그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부족해도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성령께서 일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불길을 계속 우리 안에 일으켜 주시는 거예요. ♬~사랑의 불길이 내 맘에 있도다, 성령이 오셨네, 영광을 돌리세~♬ 사랑의 불길을 계속 꺼지지 않게 불을 일으켜 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로마서 15장 찾겠습니다. 로마서 15장 30절 보겠습니다.

로마서 15장 3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여기에 성령의 사랑으로.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자, 우리가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각 사람을 붙들어 주시고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사랑이라고 하는 건요, 생명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죽음밖에 없습니다. 생명 자체가 사랑이고 사랑이 있는 곳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도 사랑 때문에 하나가 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부족합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약점이 있습니다. 좋은 점이 있는가 하면 약점이 있어요. 처음에 만날 때는 예쁘게 보이려고 좋은 말만 하고 모양도 꾸미고 이제 그래서 그것만 보고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나면 약점이 나오죠? 저럴 줄을 모르고 내가 결혼했다고. 그럴 줄 알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누가 그러더라고 결혼하는 거는요, 한 사람이 두 사람하고 결혼하는 거래요. 사람은 하나인데, 그 사람 속에 성숙한 사람도 있고 아주 유치한 사람도 또 하나 들어앉아있는 거예요. 그걸 각오를 해야 됩니다. 똑같습니다. 서로. 그러니까 좋은 점은 높이 평가하고 약점은, 나쁜 점은 서로 감싸주고 덮어주고 서로 보충하고, 그게 사랑이잖아요. 완전한 사람끼리 뭐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왜요? 왜 오래 참아야 됩니까? 문제가 있으니까 참잖아요. 문제가 있으니까 자기보다도 남의 유익을 구하고. 악한 것이 있으니까 악한 것을 생각지 않아야 되고, 성낼 일이 있으니까 성내지 않고. 완전하다면 뭐 우리가 죄도 없고 완전하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할 거 없을 거예요. 그렇죠. 사랑이란 건 서로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게 필요합니다.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부족한 사람끼리 문제가 있는 사람끼리 허물이 있는 사람끼리 덮어주고 감싸주고 하나가 되잖아요. 사랑 때문에 부모가 자식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어도 감싸줍니다, 형제끼리도. 그래서 사랑은 하나로 만듭니다. 우리가 구원받자마자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자매를 사랑합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로 만드는 거예요. 하나로. 요한일서 잠깐 봅시다. 요한일서 4장 21절부터 5장 1절까지 같이 읽어봅시다.

요한일서 4장 21절 ~ 5장 1절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찌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그랬잖아요. 이 계명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찌니라’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뭐에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앞에 20절에도 같이 읽어봅시다.

요한일서 4장 20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이다고 말씀했습니다.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랬잖아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겨야 되는데 주님은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형제 속에 주님이 계셔. 형제를 사랑하는 게 주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뭘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거예요. 그래서 5장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세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 하느니라’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부모에게 난 형제를 사랑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를 낳아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 형제잖아요.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이것은 거듭난 사람의 기본적인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입니다. 문제가 있어요.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속에 옛 성품이 있잖아요. 천국에 가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처럼 완전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어요. 그러나 아직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믿음도 차이도 있고 생활하는 것도 다 차이가 있어요. 믿음의 분량에 따라 차이가 많아. 조금 성숙한 사람도 있고 아직 미숙한 사람도 있고 어린 사람도 있고 육신에 속한 사람도 있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 성숙한 사람하고 미숙한 사람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하고 아직 육체에 속한 사람하고 구별됩니까? 나뉘어져야 됩니까? 아니에요. 섞여있어야 되요. 한 집안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뭐 큰 형, 작은 형, 막내, 금방 태어난 기저귀 차고 다니는 아기까지 다 한집에 삽니다. 문제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은 허다한 죄를 허물을 가리워지면서 하나로 만들어요. 그래서 성령은 우리를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한 하나님 아버지, 한 형제자매. 같은 삶의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오직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됩니다.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 주님이 주신 사랑을,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실천하다가 가야 됩니다. 실천하다가. 그렇지 않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가만히 혼자 가지고 있으면 소용없어요.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무슨 소용 있어요?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처럼 그 행동으로 옮겨야 되요.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나타내야 됩니다. 샛물도 떠내지 않으면 썩는 수가 있다고 그러잖아요. 사랑을 계속 나타내야 됩니다. 그 사랑이 더 풍부해집니다. 사랑이 아니면 그 사랑이 그만 식어버려요. 사랑이 그만 썩어버려요. 곰팡이 나버려요. 사랑을 계속 활용해야 되요. 사랑은 할수록 점점 더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입니다. 사랑은 주는 겁니다. 사랑은 용서하는 겁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겁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뭐라고 그랬어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것은요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도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했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아무 상을 안 주셔도 구원해주신 것만 해도 평생 주님을 위해서 살기도 하고 죽기까지 해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는데 너무너무 감사한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이제 주님 뜻대로 살고 주님 말씀을 순종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가면 그 모든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반드시 상을 받도록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일한대로 상을 주리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사랑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아세요?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모든 것 자기 전 재산을 팔아서 구제하고.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니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사람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 없이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요 뭘 해놓고 자랑해요. 내가 이렇게 했는데, 내가 모든 걸 다 바쳤는데, 나는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사람 앞에 자랑하지 말라고 그랬죠. 그러면 하나님 앞에 상이 없다고 했잖아요.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사람도요 자기 명예를 위해서, 자기의 어떤 기백을 보이기 위해서,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사람 있어요. 사랑이 없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구제하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 전에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기 전에 사랑을 실천해야 됩니다, 먼저. 사랑으로 해야 된다 그 말이에요. 사랑으로, 그 안에 사랑으로 포함되지 않는 것은 주님이 보실 때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에요. 사랑이 최고입니다. 그 사랑으로 하는 그 모든 것이 주님 앞에 가서 상이 되고 영광이 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너무나 인색하다 그 말이에요. 요한복음 13장 34~35절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예수님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옛 계명은 뭐에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에게 주신 십계명이 옛 계명입니다, 그것은. 옛 계명은 뭐에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게 옛 계명이에요. 새 계명은 뭐에요? 내가 너를 사랑했다 그거예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실천했어요, 먼저. 구원받기 전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나면서부터 이기주의이고 하나님도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는데요.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이루어질 때 우리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어요. 그게 새 계명입니다. 옛 계명은, 지금 여기에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쌀가마니 하나 짊어 지워가지고 저기 언덕 위에까지 지고 가라고 채찍하면서 쓰러지면 두들겨 패고, 어떻게 짊어지고 가겠어요? 쌀가마니 밑에 깔려죽을 거예요. 새 계명은 뭐냐? 힘을 주는 거예요. 쌀가마니. 무엇이든지 번쩍 들을 수 있는 힘을 주고 그리고 가지고 올라가라는 거예요. 그게 새 계명이에요. 쉽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에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생명도, 능력도, 사랑도 주시고 하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새 계명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사랑한 것같이. 그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이 사랑을 실천하라 그 말이에요. 서로 사랑하라. 여기에 서로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끼리입니다. 이게 피차 사랑하는 거예요. 구원을 받은 사람이 구원을 안 받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사랑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이에요.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에요. 구원받은 사람끼리의 사랑하는 것은 인격적인 사랑이에요. 서로 사랑하는 거예요.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소망이 같기 때문에, 사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고락을 같이 하고 운명을 같이 할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주님의 계명입니다. 여러분, 형제 미워하는 사람 있어요? 형제 보기 싫은 사람 있어요, 형제자매? 왜 그래요?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셨는데. 주님이 주신 사랑을 생각한다면 형제자매 조금 어떤 약점이 있다고 그렇게 미워하고 문제 삼을 수가 없어요. 예수님은 그러셨잖아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것을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해 주옵시고. 그건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가 잘못할 때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내가 남을 용서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용서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는 것은 합당치 않은 거예요. 너희가 네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네 허물을 용서치 아니하시리라 그랬잖아요. 그 용서 못하는 마음부터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김같이 우리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심 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그게 사랑을 실천하는 거예요. 어떤 형제가 내게 잘못했다고 그걸 꿍해가지고 그걸 밤낮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잊어버릴까봐 길이 보존해요.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아니 수첩에다 기록해 놓아요. 잊어버릴까봐. 그러면 안 됩니다. 싹 지워버려요. 찢어버려요. 내 버려요. 아세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사랑을 실천해야 되잖아요, 우리가. 그렇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증거가 뭐에요? 서로 사랑하는 거예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야, 저 사람들 과연 그리스도인의 제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다.’ 안다는 것은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그걸 부러워해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해요. 거기에 같이 참여하고자 원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려면요,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마음이 하나가 되면 전도는 저절로 되요. 그 사람들이 뭔가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와요. ‘이상하다. 저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약점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사랑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끼리 서로 사랑해서 저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느냐?’ 우리가 수양회 때 말이에요. 큰 무더위에 남들은 바닷가로 산으로 시원한 곳으로 피서 가는 계절에 하나님께 휴가를 반납하고 시간을 들이고 물질을 투자해가지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구원받게 하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고하는 것을 보면요.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는요 이상하다는 거예요. ‘저 사람들 미친 사람들이 아닌데 저게 뭘까?’ 얼굴에는 땀방울을 흘리는데 입은 이만큼 벌어져가지고 웃으면서 너무 진실해보이고 만족해 보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거예요. 도대체 사람들이 뭘 전하려고 하는가, 그걸 듣고 싶어 합니다. 그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서 말씀 듣다가 깨닫잖아요. 너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저희가 안다는 말은 그들도 믿게 됩니다. 아세요? 구원받은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가지고 찌그락 째그락 다투고 싸우고 마음이 나누어지고, 전도가 안 돼요. 전도가 어떻게 되겠어요? 성령께서는 하나가 된 무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아세요? 보통 저 태양 빛은 물건을 태우지 못하지만 볼록렌즈를 딱 갖다놓고 빛을, 태양 빛을 딱 모아 봐요. 금방 불이 붙잖아요. 우리가 하나가 될 때에 성령이 거기에 역사하십니다. 아세요. 마음이 흩어져있는 사람들 통해서는 아무 일도 못하세요. 베드로전서 1장 22절을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인 게 순종입니다. 구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구원받은 상태죠.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음으로 영혼의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구원받고 나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요. 그 사람이 세상에서 지식수준이 어떻게 되었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인격적으로 훌륭하든 모자라든, 육신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해가지고 구원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 때문에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그 말이에요. 우리 안에.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그 사랑을 활용해야 되요. 사랑을 막으면 안 돼요.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사랑을 활용해야 되요. 돈도 하나님이 돈을 주셨으면 돈을 귀하게 쓸 줄 알아야지 꽁꽁 쑤셔 박아 놓으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사랑은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미천 이예요. 그걸 활용해야 되요. 피차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거짓이 없이. 이 세상에 사람들의 사랑을 보면 간사해요. 내가 저 사람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면 내가 무슨 이익이 있을까? 그 계산하는 사랑. 거기에는 거짓이 섞여있는 사랑이에요. 거짓이 없는 사랑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은 거짓이 없는 사랑입니다. 자식에게 뭘 요구합니까? 아들과 딸을 키워가지고 내가 무슨 덕을 보고, 그걸 계산해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내 자녀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합니다. 그건 거짓이 없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죠. 계산 안 해요. 아무 것도. 자녀가 행복하게 되면 부모는 그것으로 만족해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주님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거예요. 뭐 계산적인 사랑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이라는 것은 뭘 주잖아요. 시간도 주고 물질도 주고 수고도 주고 희생도 주고 그리고는 그것으로 끝내야 되요. 그 대가가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고 내가 화내고 미워하고 그러면 그것도 문제가 있어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그것으로 끝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책임이에요. 우리도 할 수 있는 건 하고 그것으로 끝내요. 그 다음에 잘 되고 잘못되는 것은 그 사람 책임이에요. 요한일서 잠깐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가,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이고 요한일서 3장 16절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의 결과에요. 우리도 그 사랑을 알고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특별한 게 아니에요. 마땅하다는 말은 그건 당연한 거예요. 마땅하는 말은 뭐에요? 닭이 “꼬끼오”우는 것은 당연하죠. 닭이 “멍멍” 하면 ‘어? 저거 미쳤나.’ 그건 비정상이에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요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닭이 닭 울음소리 내고 개는 멍 짖는 소리 내고 너무 당연한 거다 그 말이에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특별한 게 아니에요. 형제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거에요. 아니 때가 되면 필요하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돈 몇 푼 때문에 미워해요? 네? 좀 성질냈다고 그렇게 문제가 되요? 그것도 용서하면 안 돼요?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그걸 길이 보존하고. 그러지 말아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목숨을 버리겠어요, 그래? 나한테 잘하는 사람만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게 아닙니다. 형제를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사람도요 부족한 사람 너무나 많아. 어떤 사람 보면, 저 사람 보면 행동하는 것 보면 아닌 것 같은데 또 간증하는 것 들어보면 확실하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있긴 하는데 끈질기게 교회에 붙어있는 것 보면 또 안 떨어져. 아주 질기게 붙어있어. 그게 구원받았다는 증거예요. 밀어내도 안 나가. 자기 집인데 왜 내가 나가느냐고. 말씀을 배우고 그러다 보면 이제 철이 들 때가 있죠. 요한일서 3장 18절 같이 읽읍시다.

요한일서 3장 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말과 혀로 누가 못해? 어떤 사람은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말 들으면 그냥 홀까닥 해버려 그냥. 행동은 아니에요. 양 대가리 걸어놓고 개고기 파는 거예요 그거. 양 대가리 걸어놓고 양고기 파는 줄 알았더니 속에 개고기 팔더라. 속이는 거죠. 말은 잘 안 하면 밉지는 않지.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행동은 아니에요. 에휴, 진짜 한심해요. 왜 그런지 몰라.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으로 사랑하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에요. 말이 있고 행동은 없는 사람은 거짓된 사랑이에요. 그게. 요한일서 4장을 또 봅시다. 요한일서 4장 7~8절을 또 같이 읽읍시다.

요한일서 4장 7~8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사도요한은 자기를 주의 사랑하는 제자라고 항상 그렇게 표현했어요.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그 십자가 밑에까지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도 이 사도요한은 십자가 밑까지 간 유일한 제자였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자기 사랑하는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했잖아요. 이 사도요한은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가장 오래 살면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늙어서 죽기 전에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러다가 끝까지 사랑하라. 그러다가 갔대요. 사랑은 하나님께로 났으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을 다 아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다음에 남는 게 뭐에요? 사랑이라는 것만 남아. 사랑의 인격이 남아요. 그래서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폐하고 지식도 폐한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다 그랬어요. 사랑은. 그렇죠. 우리가 신앙이 성장할 때에 이제 그 사랑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이에요. 고린도전서 13장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말하는 거예요. 에베소서 5장 잠깐 봅시다. 에베소서 5장 1~2절 같이 읽어봅시다.

에베소서 5장 1~2절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뭘 본받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되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주님은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셔서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도 사랑이라는 그 불길 위에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 될 거에요. 그렇죠. 베드로전서 4장을 또 찾아봅시다. 베드로전서 4장 7~8절 또 같이 읽읍시다.

베드로전서 4장 7~8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무슨 인생입니까?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마지막에 불법이라는 건 죄입니다. 죄가 성함으로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제는요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랑이 깨지고 남편과 아내, 부부끼리도 사랑이 깨지고 친구도 배반하고 철저히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철저히 개인주의, 이기주의. 점점 그렇습니다. 그게 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까지 거기에 말려 들어가면 되겠느냐고? 교회 안에까지 이 세상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입니다. 이 교회는 작은 천국이에요. 천국에서 되어질 것을 교회 안에서 실천해 가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라는 말은 다른 여러 가지 중에 최고가 사랑이다 그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 찌니. 사랑이 식으면 안 돼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약점을 보면 서로 사랑하기가 어려워요. 그렇죠. 약점이 보이는 것은 사랑이 깨진 증거예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할 때는 약점은 안 보고 서로 좋은 점만 보다가 이제 사랑이 식으면요 약점밖에 안 보여. 좋은 점은 안 보여. 사랑이 깨어지면 부모끼리도 원수가 되는 수가 있어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사랑으로. 성령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을 잠깐 봅시다. 빌립보서 2장 1~2절 같이 읽읍시다.

빌립보서 2장 1~2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여기에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3절에.

빌립보서 2장 3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 교회도 문제가 조금 있었어요. 자매들끼리 다툼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빌립보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인데 옥의 티처럼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사랑은 서로 위로하는 거죠. 성령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같은 사랑으로 뜻을 합해서 한 마음으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그래서 성령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고 한 마음과한 뜻으로 한 사랑으로 교제하도록 주님을 섬기도록 하십니다. 그러다가 주님 오실 때 주님 앞에 서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뭐해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 못 받게 방해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은 못 빼앗아 가니까 어떻게 해요? 구원받은 사람 마음을 나뉘게 합니다. 서로 미워하게 합니다. 서로 약점을 보게 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변화되지 않는 옛 성품을 충돌시켜 가지고 서로 다투게 합니다. 그래서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그랬잖아요. 허물을 덮어줘야지 자꾸 그것을 들썩거리면요 안 돼요. 덮어주면 어떻게 되느냐? 말씀 배우다가 스스로 돌이킵니다. 깨닫습니다. 기도해 줘야 됩니다. 말씀으로 권고해주고 하면 됩니다. 그걸 자꾸 비난하고 옆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또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그러면요 친한 형제를 이간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마음들이 나뉘어져요. 마귀는 구원받은 형제자매들 마음을 흩어놔요. 전쟁터에서는요, 전쟁 중에 전쟁터에서는 군인들 자기들끼리 문제가 있어도 다툽니까? 싸웁니까? 전쟁터에 개인적인 문제로 싸우는 사람 없습니다. 적을 향해서 지그 이기느냐 지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서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적이지 아군들끼리 싸우면 되겠느냐고? 한 마음이 되어서 싸워야만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이지 형제자매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형제자매와 싸우고 미워하고 다투고 나뉘어지고, 어떻게 마귀를 이기겠어요? 그래가지고. 고린도전서 3장 3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은요 시기와 분쟁이 있다 그랬어요.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구원 받았지만 아직 어린 아이, 육체에 속한 자. 애들은요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싸우잖아요. 고장 난 장난감 하나 가지고도 싸우고 다투고 할퀴고 울고 막. 별거 아닌 것 가지고요 막 씩씩거리고 막 죽일 듯이 난리가 아니에요.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니에요. 유치한 거예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는 것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마귀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흩뜨려 놔요. 그리고 원망합니다. 야고보서 5장 9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원망은 뭐에요? 누구 탓이라고 원망해요. 자기 탓은 없어. 전부 상대편이 잘못했어. 그러면 원망하면 주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재판장입니까? 그것 잘못한 것 있으면, 문제가 있으면 교회에다가 말하고 형제자매끼리 다투면 안 됩니다. 교회에 말씀으로 해결하도록 맡기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해야 되요. 그걸 가지고 뭘 약점을 잡으면 잘 되었다 싶어가지고 막 걸고 넘어지는데요, 그러면 안 됩니다. 형제를 원망하지 말고 시기와 다툼,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아니라 마귀가 그랬어요. 마귀의 지혜라고 그랬어요. 야고보서 3장에.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요 마귀 적이니’ 그랬어요. 마귀는 조그마한 문제가지고 형제자매를 다투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마음을 갈라놓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또 다른 교훈을 심어놔요. 다른 교훈을. 그래서 바울사도가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고린도에 가서 어렵사리 전도해가지고 구원받은 사람이 생기고 고린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나중에 고린도교회에 거짓 사도가 가가지고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 보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 구나’ 거짓된 교훈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 13절에 보면,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탄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그랬잖아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일꾼들이다. 그런데 그 사탄이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데 고린도 교회가 그걸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어요. 거짓 교훈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두 종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구원을 안 받았기 때문에 거짓에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 구원을 받았어도 아직도 잘 말씀을 모르고 분별을 못 하기 때문에 거짓된 교훈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은 조금 있다가 잘못된 줄 알고 나와요. 그런데 한 번 미혹되면요 신앙에 엄청난 손상을 입습니다. 마귀는 이 거짓된 교훈을 심어줘 가지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갈라디아 교회에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들어가 가지고 바울사도가 이간을 시켜가지고 교회를 아주 분란을 시켰어요. 그래서 너희를 요란케 하는 자들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으리라 그랬죠. 교회를 분리시키는 사람들, 요란케 하는 사람들, 다른 교훈을 심어주는 다른 교훈을 받아들여가지고 어떤 사람은요 다른 데서 뭘 배워가지고 여기 몰래 숨어들어 와가지고 옆에 있는 사람들 자꾸 이렇게 이야기해가지고 데리고 나가요. 우리 교회에도 과거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요즘에 저한테요 편지가 6통이 왔는데 무슨 편지가 왔느냐 하면, “목사님, 신천지에 와서 한번 배워보세요. 제가 이 교회 교인으로 있었는데요. 거기 가서 배워보니까 억세게 좋아요. 목사님도 한번 꼭 배워보세요.” 편지가 6통이나 왔어요. 내가 속을까봐? 우리 교회 왔던 사람은 아니에요. 그것은 가짜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다른 목사님한테도 보내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내고 막 사방 편지를 보내가지고요. 신천지라는 게 뭔지 알아요? 이 과천에 본부가 있는데요. 이만희 라는 사람이 교주인데요. 이 과천에 신천지가 세워진대요, 그게. 그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 신천지가 이루어진데요. 그리고 잠깐 뭐 이래 신문을 읽어보니까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 그 다음에 예수님 시대에 열 두 사도, 지금 열 두 지파가 또 있대요. 자기들이 열 두 지파래요. 그리고 14만 4천이 인치는 자가 있고. 그래서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고. 이것은 완전히 정통이단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런 편지 받았걸랑 속지 마세요. 우리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데 안 가요. 우리 교회에서 말씀 배운 사람이 그런 데 속을 것 같아요?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구원받은 사람이 그런데 갈 거 같아요? 안 가죠. 제가 생각할 때는 그런 데 빠지는 사람은 100%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받았는데 거기에 가보니까 더 좋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속지 마세요.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약한 사람들을요 헷갈리게 마음을 흩어 놓으려고 하는 마귀의 작전입니다. 그렇게 아시길 바랍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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