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소화락 엄벙덤벙 뜻 - damsohwalag eombeongdeombeong tteus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希:희 - 바라다 望:망 - 기다리다 歌:가 - 노래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에 희망과 절망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탕자[탕아]들에게 왜놈들은 조선인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이 <희망가>를 유포시켰는데 우리는 알고나 불렸을까.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좌를 보아도 우를 보아도,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요즘 들리는 것은 우울한 절벽의 소리뿐이다. 유행어에 3포세대, 5포세대, 심지어는 7포세대까지 포기세대(抛棄世代)라는 신조어만 들릴 뿐이다. 따라서 출산절벽, 취업절벽, 경기절벽이라는 절벽세대에 ‘희망가’라도 언급해볼까 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이 노래제목을 <절망가(絶望歌)>, <실망가(失望歌)>, <천년경계가(千年警戒歌)>, <탕자경계가蕩子警戒歌>, <탕자자탄가蕩子自歎歌>, <일요일가(日曜日歌)>, <금주창가(禁酒唱歌)> 또는 <희망가(希望歌)>라고 부른다.

이 가요는 암울하던 일제강점기, 희망은 없고 절망만 보이던 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퍼트린 대중가요이다. 이 곡은 1850년대 영국의 ‘포크댄스’ 곡인데, 이를 미국인 제레미아 잉갈스(Jeremiah Ingalls)가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When we arrive at home)’라는 찬송가로 개작했다. 그 후 1910년에 일본으로 전래돼 자기의 슬픈 사연에 맞춰 불렸다. 당시 일본에서 강을 건너던 배가 뒤집혀 여학생 12명이 참사했다. 마치 우리의 ‘세월호’ 참사와 같았다. 그때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여교사 미스미스즈코(三角錫子)가 ‘새하얀 후지산의 뿌리(眞白き富士の根)’라는 내용으로 이 찬송가를 부른 것이 전국으로 퍼졌다. 이 진혼곡이 유가족과 일본인에 많은 위로를 얻었다.

이를 잘 파악한 일본은 일제에 신음하던 조선에 이 곡을 퍼트리면 위로가 돼 일제 압박을 상쇄될 수 있다는 심보에서 한반도로 유출시킨 것이다. 이에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 심정에 맞닥뜨린 것이다. 이로써 1920년대에 절망과 좌절에 시달리는 국민들 사이에 ‘망토’차림에 모자를 쓰고 대중가요로 부르다가, 1930년 최초의 대중가수 채규엽의 ‘레코딩’을 통해서 대중에 파고 들어가 인기가 대단했다.

제목은 ‘희망가’이지만 가사는 우울하고 비탄적인 분위기로서, 다분히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사회를 반영해 한탄조의 현실 도피적 염세적인 색채가 짙다. 지난 1970~80년대 현실이 암울할 때도 유행한 바 있다. 한말에는 ‘망국가’가 등장했고, 일제시대는 ‘희망가’가, 1980년 광주사태 때에는 ‘아침이슬’이 유행했는데 요즘은 ‘절벽가’가 나오지 않을까 예견된다.

[열린 광장]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정 홍 택 / KOCHAM 고문·필라델피아

마른 하늘에 벼락치듯 깜짝 놀랄 뉴스들이 매일 터져나온다. 가끔 나는 '여기가 내가 살던 그 지구 맞아?' 자문자답해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쌩퉁맞게도 희망가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다시 또 꿈같구나/담소화락에 엄벙덤벙 뉴스보기에 골몰하니/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192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라는데 그 이후 백 년 가까이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바이벌해 부르고 또 부른다. 저마다 기분대로 조금씩 가사를 바꾸는데, 이것저것 비교하며 듣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슬비에 속옷 젖는다고 자꾸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덧 가사가 외워지고 작사자의 마음이 진하게 전해온다. 나는 가사 중 '주색잡기'를 '뉴스보기'로 바꾸어 보았다. 가수 장사익이 부르는 것을 들어보니 그도 중간에 흥을 돋구는 구절을 삽입해 자기만의 노래를 만들었다. '그렇다!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끝내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다' 하고는 첫 구절로 다시 돌아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노래와 어깨춤으로 무대를 한 바퀴 도니, 그 큰 홀이 황홀의 도가니로 변한다. 그런가 하면 여가수 유지나는 이렇게 노래의 끝을 맺었다. '반 공중에 둥근 달 아래 갈길을 모르는 저 청년아/부패사업을 개량토록 인도하소서'. 마치 지금 우리 현실을 그린 듯 하다. 나는 장사익의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와 유지나의 "갈길을 모르는 저 청년아" 를 합쳐서 노인과 청년이 정답게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장면으로 그려본다.

노인들은 긴 세월 살아오면서 '인생이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절대진리를 몸으로 체득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손잡고 알려줄 수는 없을까. 지금은 단절의 시대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귀를 막고 소리지른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너희들이 촛불집회를 여니, 우리는 태극기 집회를 열겠다'식으로 맞불을 놓아버리면 어쩌나. 타버리는 것은 우리 강산이요 말라 비틀어지는 것은 우리 마음이요 요절나는 것은 대한민국 장래가 아닐까. 일본 신문들은 요즘 한국 뉴스를 밀착취재해 연일 특집 기사로 다룬다고 한다. 매일 아침 한국 기사를 가십처럼 읽는 저들의 얼굴을 상상하면 마음이 숯이 된다. 세상 재미 중의 재미는 남의 집 불타는 구경이라니 우리가 일본사람 앞에서 자기 집을 태우고 있구나.

에라, 이것도 헛된 생각이로다. 차라리 노래나 부르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일제 말기에 태어난 나는 칼 차고 모자 쓴 일본 순사가 높이 말 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저기 순사 온다!' 하면 울던 아기들이 금방 울음을 멈출 정도로 그들은 무서웠다. 그 후에 내 눈앞에 전개되는 민족적 역사적 상황은 각 시대마다 '행렬, 행진'의 파노라마로 이어졌다.

8.15 해방 플래카드를 앞세운 시민들의 행진(서울운동장 앞), 6.25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행진(미아리고개 밑), 9.28 서울 수복 행진의 국군 행진(중앙청 앞), 1.4후퇴의 피난 행렬(서울역 앞), 서울 귀환 행렬(서울행 부산 기차정거장 앞), 4.19 학생 행렬(경무대 앞), 5.16 국군 행진(한강다리 건너)….

더 이상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행진 행렬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한민족의 공통적 수난의 역사는 끝날 줄 모르고 흘러간다. 남의 힘으로 독립한 값을 톡톡히 치르는가 했더니 이제는 우리끼리 핏발 선 대결이다.

희망가는 묻는다.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나는 대답한다. "조용히 살고 싶다." 그러면서도 나는 저 잡음 같은 뉴스 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미국 뉴스를 틀면 트럼프 대통령의 성난 얼굴이 심사를 틀어 놓고, 다시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꺼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도저도 심사가 불편한 나의 하루 일과를 희망가로 풀어보면;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뉴스듣기에 골몰하니/세상만사를 잊겠단 말, 허사 중 허사라'.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마음을 다부지게 고쳐먹는다.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이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이렇게 춘몽 같이 살아갈진대, 지금 죽으나 30년 후에 죽으나 무엇이 달라지나? '우물쭈물하며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말이 생각난다. 차라리 지금 죽으면 내 몰골도 그런대로 좀 보아줄 만하고, 장례식에 친구들도 더 많이 올 텐데.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 쇼의 비문이 오역(誤譯)이란다. 비문에는 'I knew if I staye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으로 적혀 있는데, 뜻으로 번역하면 '아-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가 결국 죽는 일도 있네'라는 것이다. 죽음도 삶의 한 순서로 생각하고 편안히 받아들이는 작가의 인생관이 부럽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지금 한국에서 태극기 들고 행진하는 이들은 대개 60대 이후 노인들이고, 촛불 군중은 5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대다수라고 들었다. 노인들이 태극기 마구 흔들어 촛불을 강제로 꺼버려 후진들의 기개를 죽이면 이 나라의 장래는 어찌 될 거나. 차라리 태극기로 촛불을 감싸 같이 한 방향으로 행진할 수는 정녕 있을 수 없는 일인가? 그러면 '정신적 한강의 기적'이라고 세계가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태극기와 촛불을 함께 보듬어서 그 힘으로 한국호(韓國號)를 국제사회에서 확실하게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

어제 시카고에 살고 있는 지인 한분께서 전화를 주었다. ‘미국의 경기가 조금은 좋아졌다고 하는데 자기는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들고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소비산업도 위축되다보니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하는 사람보다는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이 풍진세상(風塵世上)이란 노래가 있다. 이 뜻을 풀이해보면, 편안하지 못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뜻하는 말이다. 어느 사람에게는 살기 좋은 태평성세의 좋은 시절이라고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세상이 고르지 못하고 살기가 힘들다며 현실을 탓하고 우울하고 비관 속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에서 보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더 갈구하고 더 많이 말한다. 1921년경 레코드 음반으로 출시된 한국최초의 대중가요 “희망가”도 그 점을 잘 말해준다. 가사의 내용만 볼 것 같으면 희망가가 아니라 절망가이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니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1910년경 일본서 여학생 12명이 강을 건너다가 익사, 사망한 후 그녀들을 추모하기위해 영국의 찬송가 곡조에 일본인들이 노랫말을 붙여 만들어졌다는 그 노래를 즐겨 부른 이들 또한 내일이 없는 술집작부들이나 낙백(落魄)한 지식인들이었다. 여기서 나는 낙백이라고 썼는데 이 낙백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생명력을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관념이 있다. 여기서 육적(肉的)인 생명력을 우리는 정(情)이라하고 영적(靈的)인 생명력을 신(神)이라고 대개들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정과 신이 기(氣)에 의해 하나로 합쳐져 있지만 죽으면 기가 흩어지면서 정과 신이 따로 분리되고, 사람의 몸속에서 빠져나간 육의 생명력을 백(魄)이라했고 영의 생명력을 혼(魂)이라고 했다. 또 육의 생명력은, 백은 땅에서 얻어지는 물과 음식에서 활력을 얻고 죽은 후에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의 생명력인 혼은 하늘에서 나오는 대기의 호흡에서 활력을 얻고 죽은 후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낙백(落魄)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궁한 형편에 처함’이라고 풀이되어 쓰여 있는 것도 육의 생명력이 취하고자하는 땅위의 명예나 권세, 호사에서 멀어졌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그래서 “낙백”은 육체적인 불만족, 즉 그러한 불만족스러운 육체를 달래는 데는 술과 섹스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고이래 한량들이 개똥철학으로 읊어가며 주장한 그들만의 경험담이고 객설이다. 술을 마시고나면 뇌와 척추로 구성된 중추신경계의 활동이 억제되어 고뇌와 고통의 감(感)도 또한 감소되고 무뎌진다는 것은 그들 경험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거니와, 섹스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고 육체적 쾌락은 물론 자신감을 향상시켜 주는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현대의학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낙백한 사람들이 술과 여자를 찾는 것이야말로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인 각성, 술과 여자로 육적인 허기짐을 달랬다고 하더라도 사내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파묻혀 있을 수는 없다는 다른 한면의 영적인 배고픔은 어떻게 채우고 달랠 것인가?………
과거 나의 젊었던 시절, 내주위에는 한창 꿈과 포부로 미래를 설계하며 희망에 부풀어 현실에 도전하며 열정을 다 바쳐 사업에 투자한 친구 한명이 있었다. 나와는 무척 가깝게 지내며 벽이 없고 허물없이 모든 마음속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자기부모님께서 애써 일궈놓은 많은 재산과 시골의 논, 밭을 다 팔아 성원해주어 일궈낸 사업체가 몇 년도 안돼서 실패를 하고 말자, 그 친구는 실의에 빠져 죽고만 싶다며 신세한탄을 곁들여 매일같이 술과 더불어 세상을 불행 속에 살아갔다. 그런 생활 중에는 기생집에 들러 술집기생이 따라주는 한잔 술에 위로를 받으며 이 풍진 세상을 한탄하고, 술과 여자만이 세상에서 가장 자기의 맘을 알아주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존재이며 대상이라고 주석(酒席)상에서 외쳐댔다.
한옆으로는 그 친구가 너무나 안됐고 불쌍하기까지도 한 그 친구의 마음과 현실을 백프로 이해하면서도, 사나이로 세상에 태어나 낙백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루어 짐작을 해본다. 이렇게 낙백한 나머지 주색잡기에 빠지는 이 친구나 기타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허지만 그래 봤자 남는 건 빚덩이와 술집여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박행(薄行)한 이름뿐, 그 누구 아무개는 팁도 안주거나 짜배기더라. 기분 내켜 안주하나 더 시켰다고 인상을 쓰더라. 요새는 돈 떨어져서 긋고 마시더라. 이런 저런 추태로 자신의 이름이 그런 천박한 술집접대부들의 안주꺼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의 자신이 느끼게 되는 초라하고 비참함이란 어땠을까?………
영적인 배고픔은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세상을 비관하며 살기 싫고 낙망에 젖어 좌초에 걸려 헤메는 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알고나있는지?……….
살기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 내일과 미래의 희망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탓하는 사람들, 그러나 비전과 희망이 없는 세상은 없다. 무엇이던 자기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으로 갖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상이 희망이 없다는 말은 다만 희망을 잃은 몇몇 사람들만이 그것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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