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날짜 - nagtaejoe pyeji naljja

2021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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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낙태죄 없는 2021년 맞이 기자회견

2021년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낙태죄는 사라졌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낙태죄 조항에 대한 대체입법이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여성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 헌재 낙태죄 판결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 '낙태죄 헌법불합치' 1년, 여성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 아르헨티나, '임신 14주 이내' 낙태 허용... '중남미의 큰 승리'

1월 1일부터 발생한 입법 공백 때문이다. 아직 안전하고 건강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그간 정부와 국회가 미진한 대처를 보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선 지난해 야당이 참석하지 않은 공청회가 한 차례 열렸다.

여당에서도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안(임신 14주 이내 처벌 금지), 권인숙 의원의 ‘낙태죄 완전 폐지안’, 임신 24주 이내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 등이 공존한다.

처벌 조항은 사라졌지만, 낙태를 재정의하고 임신중지 지원책을 논의하는 작업이 남아있다.

임신중지 방법

임신중지 방법에는 약물을 이용한 방법과 외과적 수술을 통한 방법이 있다.

일명 '미프진'으로 불리는 유산 유도약은 현재 전 세계 67개국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돼 사용하고 있고, WHO 또한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지 수술만 규정하고 있고, 약물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정부는 개정안을 공개하며 앞으로 자연유산유도 의약품 허가를 신청받고 필요한 경우 허가 신청을 위한 사전상담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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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출산과 관련해 내리는 모든 선택인 '재생산활동'은 여성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30일, 국회에서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관으로 여성계·의료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낙태죄 폐지 이후 입법 정책 과제 도출을 위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토론회에서 "낙태가 단순히 죄이던 것이 죄가 아닌 것이 된 수준이 아니라 빠른 시일 이내로 의료 시스템으로 연착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임신중지 관련 정보제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전문의는 일반인에게는 약물적 임신중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방법과 예후 안내 등이, 의료인에게는 표준 가이드라인과 약물적 임신중지 이후 관리 방안 정보, 그리고 교육 의무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임신중지 시술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진료비의 책정이나 통제도 합법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임신중지와 피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도 중요한 사안이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가장 맞물려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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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의 이야기

이중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기관의 상담은 건강보험을 급여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임신 중단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범위로 급여를 할지, 비급여로 남겨둘지는 아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분간 법의 공백으로 현장에선 혼란도 예상된다. 임신중단 의료 행위를 한 의사에 대한 처벌 조항과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은 사라졌지만, 합법적인 임신중지의 범위는 모호하기 때문.

산부인과학회는 28일 낙태죄 폐지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여성의 안전을 지키고 무분별한 낙태를 막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임신한 여성의 낙태는 임신 10주 미만에만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회적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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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낙태법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감격하고 있다

낙태죄는 사라졌지만, 여성의 재생산 선택(여성이 출산과 관련해 내리는 모든 선택)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낙인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다.

류민희 변호사는 긴급토론회에서 “임신중지라는 필수적 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의 거부는 범죄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접근성의 감소, 낙인화, 보건의료서비스 종사자들의 방임적 혹은 부정적 태도로도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임신 중지를 단순히 ‘범죄로 보지 않음' 정도의 중립적인 대우를 넘어 여성의 건강권을 실현하려면 법률, 정책, 문화 규범 등 모든 관련자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인구정책과는 분리된 독립적인 보건의료 정책 영역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접근성의 중요성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사회에서 실제로 적용되려면 처벌 규정 개정 이외에도 보건의료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 등 사회 전 영역에서의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차인순 수석전문위원은 지난 4월 BBC 코리아에 임신중지 과정에서 국가와 의료진의 상담서비스 제공을 의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결정을 내리는 "당사자인 여성이 단지 의료적 정보뿐 아니라 자기결정에 필요한 임신·임신중단·출산 그리고 양육과 관련된 종합적인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임신 20주 안에 임신부가 임신중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뉴질랜드는 임신중지 전후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낙태죄가 폐지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임신중지를 위한 유산유도제 도입 등 제도적 보완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는 유산유도제 도입 및 임신중지 의료행위의 건강보험 적용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은 헌법을 위반한다고 인정되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조화시키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지 3년, 시한으로 정한 날짜가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제도적 보완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등 20여 개 단체가 모인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은 1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산유도제 도입·임신중지 의료행위의 건강보험 적용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유산유도제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임신중지에 접근할 방법인데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를 미루고 있다며 신속한 승인을 촉구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떳떳하게 임신중지를 요구할 권리가 있음에도 여전히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의약품을 구매한다"며 "유산유도제를 임신초기에 쓰면 99% 이상 확률로 안전하게 임신이 중지된다. 유도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임신중지 시 모자보건법상 제한적 조건에서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여성들이 대출 등에 손을 뻗으며 사회경제적 위험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대부분의 여성이 임신중지 비용을 개인적으로 부담하며, 지불 능력에 따라 권리 행사에 장벽이 있는 상황"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집에는 체계적인 건강보험 정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안세진 기자 기사모아보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71개 단체가 2018년 7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낙태죄 처벌 조항’의 효력이 없어진 지 8달이 지났다. 그 사이 임신중지를 선택하고자 하는 여성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 정부는 인공임신중절약을 신속하게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나, 연내 도입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공임신중절약 도입은 ‘가교임상 시험’ 등을 구실로 늦춰지고 있다. 여성계는 “세계적으로 검증 절차를 거친 약물인 만큼 가교임상 시험을 생략해 여성들이 불법적인 임신중절약물을 쓰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효과적인 임신초기 중절약으로 알려진 미프지미소의 품목허가와 관련해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자문을 받기 위해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었다. 중앙약사심의위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식약처장에게 의약품의 기준·안정성·부작용 등에 대해 조언하는 법정 자문기구다. 이날 위원회에는 의료계·여성계·학계 인사 등 10여명이 참고위원으로 참석해 3분씩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쟁점은 ‘가교임상’을 진행할지 여부다. 가교임상은 글로벌 임상 시험을 거친 의약품이더라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다시 임상 시험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절차다. 이날 중앙약사심의위에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가교임상을 거쳐야 한다는 견해를 냈고,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가교임상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모낙폐는 국내 제약사인 현대약품이 지난 7월 정식 허가 신청한 ‘미프지미소’의 주요 구성 약품(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국제 기구의 공인과 여러 국가의 검증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미페프리스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바 있다. 중국·대만 등 인종 구성이 한국과 차이가 없는 아시아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 75개국(2019년 기준)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소프로스톨은 국내에서 현재 위궤양 치료제의 용도로 허가되어 쓰이고 있는 약품이다. 또 이 약품은 위궤양 치료 목적 외에도 의료현장에서 분만 후 출혈, 자연유산 치료, 유도분만 등 오프라벨(허가범위 외 사용)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게 모낙폐 쪽의 설명이다. 반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사용하는 병용요법 데이터가 부족한 만큼 가교임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프지미소 가교임상을 진행할 경우 품목허가 결론을 내기까지 최소한 1년의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임신 초기 가장 효과적인 임신중절 방법으로 알려진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의 합법적인 접근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한 임신중지약물 불법 판매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중앙약사심의위에 참석한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2019년 한 해 동안 적발된 유산유도제 판매 불법광고만 2465건에 달하는 등 의약품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방치되고 있다. 인공임신중절의약품 품목허가가 시급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했다.

여성계에서는 현장의 요구는 시급한데 식약처의 움직임은 굼뜨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불필요한 절차때문에 유산유도제 도입을 지연하는 것은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는 여성들의 피해와 권리침해를 방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토론회에서 채규한 당시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과장은 “인공임신중절의약품은 안전사용을 전제로 해 허가되도록 할 것”이라며 “토론회에서 중요성이 이야기된 만큼 (허가) 신청이 되면 다른 의약품에 우선하여 신속히 허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식약처는 약품 품목허가 신청일로부터 업무일 기준 120일 이내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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