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블경제 이후 - ilbon beobeulgyeongje ihu

일본 경제 역사

일본경제사 - 일본버블경제이후 경제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고잡이사업가 2020. 12. 16. 22:50

일본 중앙은행의 지속된 금리인상(2.5%~ 6%)은 고점징후가 보이던 닛케이 일본 주가 지수의 폭락을 야기시켰고, 부동산 규제까지 실시하며 1991년부터는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일본 주가 지수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금리만 빠르게 인하했더라도 지금까지 불황이 이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일본경제사 - 일본버블경제의 형성과정과 붕괴 과정

일본 버블 경제 당시 20대 초봉 천만엔(일억), 면접만 봐도 만 오천엔(15만원), 여자들이 평균적으로 생각하는 남자친구의 연봉 (2천만엔) 2억원, 고등학생들 세뱃돈 평균 300만원, 경기가 너무 좋아

monsterofcapitalistic.tistory.com

1989년 말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90년대 당시 걸프전으로 인해 20달러를 밑돌던 유가가 40달러까지 폭등을 하게 되는데 일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예방하기 위해 자국 금융시장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늦추게 됩니다. 이러한 잘못된 대응으로 일본의 경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 상업용 부동산은 고점대비 83%가, 주거용 부동산도 50%가 빠졌으며 주가는 39,000에서 1992년 말 17,000엔 선으로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일본 내에 있는 수 많은 국민들과 기업들 너도 나도 대출 받아서 주식도 사고 부동산을 사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당시 상황이 실감이 안 가실 겁니다. 

예를 들어서 10억짜리 집을 사기 위해서 5억을 대출받았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런데 집 값이 80%가 하락하면서 2억이 되버렸네요? 10억짜리 자산을 사기위해 5억을 대출 받았는데 10억짜리 자산이 오르진 못할 망정 가격이 폭락해 2억이 되버린 겁니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집값이 하락했으니 하락한 만큼 대출을 줄여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대출받은 5억은 계속 갚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선택을 하실건가요? 다달이 대출이자를 갚으며 살아나갈건가요? 아니면 그냥 못 갚겠다고 할 건가요?

기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가는 거의 반토막이 나고 대출이라는 대출은 모두 받아 부동산 투자를 했는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기업들과 가계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없는 불량 채권들을 일본 은행들이 다 떠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무분별한 대출로 인해 부실해진 은행들 추가적인 대출에 있어야 굉장히 신중해지기 시작합니다.

정작 자금이 시급한 기업들 조차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며 장기 불황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은행과 기업들은 장부가평가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10억 자산이 5억으로 폭락을 했는데 그냥 장부에 10억이라고 그대로 나두었고 은행과 기업들은 부실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겉으로 보면 문제없는 장부이지만 대차대조표(장부)는 매우 악화된 상태였으며 이때부터 일본 기업들 어떻게든 벌어서 빚 갚는데 집중을 하게 됩니다.

일본의 이러한 경제상황을 대차대조표 불황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이 투자를 하면서 고용을 증가시키고 가계들은 그 돈으로 소비를 하면서 경제가 돌아가야 하는데 모든 게 멈춰 버립니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합니까? 가계이며 기업들 빚 갚는다고 정신 없으니 당연히 주식시장 또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당시 뒤늦게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991년 7월 6%에서 5.5% 인하를 시작으로 1995년 0.5%까지 단계적으로 금리인하를 실시하지만 붕괴 후 뒤늦은 유동성 공급은 기업들과 가계들이 족족 빨아들이며 빚을 갚는데 쓰고 은행들 또한 추가적인 대출을 하지 않으며 시중에 돈이 흐르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각 주체들이 긴축을 하며 몸을 사립니다.

정부입장에서도 자산시장이 폭락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부터 대대적인 경기 부양을 시작하는데 일본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다시 활성화 시키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하기 시작합니다. 정부가 도로 깔고 다리 놓으면서 고용을 창출시키며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하는데 정작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곳은 부실채권을 가득 떠안은 은행들이었습니다.

1985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버블로 인해 웬만한 지역에는 인프라 투자가 진행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여 실시한 경기부양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으나 그래도 이러한 정부의 지속적인 건설투자로 인해 1994년 초부터 경기가 약간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습니다.

일본은행은 1995년 정책금리인 금리를 1.5%까지 내리지만 일본경기는 반응하지 않았고 그해 0.5%까지 내리게 됩니다. 금리가 내려가면 당연하게 이자에 대한 부담이 줄어 대출에 대한 수요가 느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로 인해 다시 부동산과 금융시장 가격상승효과를 가지고 오는데 버블경제 당시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잘 돌아가더니 이제는 전혀 먹혀 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은행들은 대규모 부실채권을 계속 안고 가야 했으며 그로 인해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은 여전히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버블붕괴 이후 민간의 수요는 사라졌고 기업의 투자는 증발했으며 은행들의 유동성공급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은 오로지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경제를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고베대지진

그런데 이러한 경제 부양책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바로 고베 대지진입니다. 안되려는 국가는 뭘 해도 안되나 봅니다.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후 엔화는 초강세를 보이게 됩니다. 일본의 각 종 보험사들 또한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낮은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에서 마땅히 투자할 투자처는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더 높은 이자를 주는 해외로 투자를 한 상태 였습니다.

그런데 대지진이 일어나 보험 가입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당연히 해당 보험금을 엔화로 줘야 겠죠? 해외자산을 팔고 달러를 받아 그 달러를 엔화로 환전해서 일본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너도나도 엔화의 수요가 급증하니 엔화가 강세로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엔화의 계속되는 강세는 붕괴 이후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고 있었던 정부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수출기업들 또한 엔화 초강세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일본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에 1995년 4월 G7 정상회담을 통해 엔화 약세를 요구했고 과도한 엔화 강세를 제어하는 차원에서 G7은 엔화 약세유도에 동의하게 되는데 이 합의를 역플라자 합의라고 부릅니다. 역플라자합의 이후 빠르게 엔화 가치는 약세로 전환되며 수출기업들의 수출이 증가하지만 그래도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경기부양은 여전히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1990년대 후반기가 되서야 금융기관의 부실 문제가 심각한 요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하시모토내각

그리고 1996년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겠다며 하시모토 내각이 출범하게 되는데 개혁의 골자는 재정지출을 줄이며, 그 동안 증가한 재정적자를 각종 세금을 인상하여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부실화된 채권을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듣기만 하면 너무 좋은 정책들 입니다. 하지만 불황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이러한 정책은 이제 막 싹이 자라나는 걸 바로 뽑아가 버리는 정책이었습니다.

간신히 천문학적인 돈을 부으며 재정정책으로 버티고 있어쓴ㄴ데 세금인상이나 구조조정과 같은 정책들만 골라서 하니 경기는 살아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되려고 하면 정말 안되나 봅이다. 일본에게 무슨일이 생긴걸까요? 다음 게시글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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