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비판 - yeonghwa gisaengchung bipan

사회학자인 이원재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11일 CBS노컷뉴스에 "봉준호 감독 작품들 속에서 양극화 문제는 무 자르듯이 쉽게 해석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 시대 철학이나 예술이 지닌 보편성은 '프롤레타리아는 착하고, 부르주아는 부도덕하다'는 과거의 명제보다 훨씬 복잡한 지점을 건드리는데, 이것이 '기생충'에서 '냄새', '예의'라는 장치로 치환된다"고 설명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빈자는 부자보다 착해질 기회마저 줄어든다.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빈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 마련인데, 국가가 복지정책을 만들 때 구성원들이 최소한 존엄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여건을 사회적 합의로 마련하려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이른바 '노예 상태로부터의 자유'로 표현되는 시민적 평등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될 때 세금과 같은 시민적 책임도 정당성을 지닌다."

실제로 봉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선악을 뚜렷하게 구분짓지 않는다. 이러한 서사는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관계 안에서 주인공들이 비극으로 치닫도록 만드는, 사회 '구조'를 향한 직시로까지 관객들을 이끈다.

이 교수는 "현대 사회가 지닌 핵심 문제의식은 '우리는 왜 이토록 일관되게 불행한가'라는 물음에 녹아 있다"며 "이는 필연적으로 '일관된 불행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물음으로 연결된다. 그 해법으로 개인에게 '시골로 내려가 무소유 삶을 누리라'고 할 수는 있어도 집단에게 적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 제럴드 앨런 코헨(1941~2009)은 수십 년 전 이미 '기본소득' 개념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체제이지만,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일관적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물질적 풍요가 사람을 갈수록 불행하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해법으로, 그는 기본소득 보장을 주장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기본소득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에는 코헨 역시 무력했다."

그는 "결국 집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수밖에는 없는데, 절대다수를 위해 검약하고 환경친화적이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합의하자고 할 때 소수 엘리트 계급에게 더 많은 부담이 전가되기 마련"이라며 "이러한 맥락에서 평등한 사회와 불평등한 사회를 구분하는 지점은 소수 엘리트들이 사회적 합의로 마련한 법과 제도를 공평하게 지키고 있느냐에 있다"고 했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집단을 이루고 산다. 이른바 '조직화'다. 조직화 과정에서는 계급이 만들어지는데, 똑똑한 존재가 리더가 될 경우 집단 전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유일하게 약한 동료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연에 반하는 이러한 특성은 결과적으로 인류가 다른 종들과의 전쟁에서 이기도록 만들었다. 근대 복지 제도와 법 역시 이러한 정신에 근거를 뒀다."

◇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절망…"저들은 우릴 얼마나 대변하는가?"

이 교수는 "과거에는 이렇게 역사가 발전해 나가면 계급이 사라지는 등 인류가 지상낙원을 이룩할 것이라고 본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우리네 경험적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는 시나리오"라며 "우리는 현실에서 사회 개혁과 노동권 신장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부동산을 늘리려 애쓰는 엘리트 계급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은 현재 자기 모습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5년, 10년 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한국 사회 불안은 교육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데서도 단적으로 확인된다. '내가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자신이 지닌 자원 대부분을 쓰는 셈이다."

그는 "이러한 교육 문제 해법은 그것이 되도록이면 낮은 비용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며 "결국 개인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인데, 이는 '내가 최선을 다하면 이 사회는 응답한다'는 믿음이다. 그 다음부터 실패는 개인의 책임이 되고, 전체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조국 사태처럼,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수와 진보 사이 갈등으로 여겨지는 사건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공평하게 지키고 부자들에게 세금도 더 걷자'고 한다. 이와 반대로 '아니다. 나는 더 오르기 전에 강남 아파트를 사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전자를 외치면서 후자의 삶을 사는 엘리트들에 있다."

이 교수는 "공평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구성원 모두가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있다"며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피해가 덜하다고 여기는 세력은 그 사회 엘리트들이다. 결국 우리 사회 논쟁 대다수는 부자와 빈자의 갈등보다 '출세한' 엘리트 세력과 '출세를 욕망하는' 엘리트 세력 사이 투쟁"이라고 진단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 이야기를 예술이나 학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계급은 상위 10% 안에 집중돼 있다. 이 안에서 나뉘는 두 엘리트 세력이 과연 대다수 사회 구성원을 얼마나 대변하고 있는지 한 번쯤 되물어야 할 때다. 이 프레임 자체가 과연 보편적인 것이냐고 말이다. 그들이 내놓고 절대다수에게 지키기를 요구하는 법과 제도를 그들 스스로 과연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 역시 우리네 역할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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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토크] 영화 ‘기생충’ 장르 비평

지난 23일 영화 <기생충> 관객수가 개봉 25일 만에 900만을 돌파했다. 국내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68만여 명을 동원했다. 프랑스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다 관객수다. 이 정도 흥행은 누구나 예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높은 인지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닌가. 국내 평론가들도 감독과 영화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관심사는 전작 <설국열차>가 넘지 못한 ‘천만 관객 동원을 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기생충>이 봉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을 뛰어넘어 천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황금종려상 수상을 계기로 ‘봉준호’는 단순한 감독을 뛰어넘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비유’를 통해 드러낸다. SF 액션의 틀을 지녔던 <설국열차>에서는 ‘기차’라는 설정을 이용했다면, 이번엔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을 대비했다. 그러나 ‘빈부격차’를 화두로 던진다는 점은 두 영화 모두 같다. ‘봉준호 장르’의 첫째 요소다.

‘상승’과 ‘하강’ 구도로 드러낸 빈부격차

이 영화에는 빈부격차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들이 가득하다. ‘상승’과 ‘하강’ 구도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기택(송강호) 가족과 동익(이선균) 가족은 철저하게 ‘위’와 ‘아래’로 분리돼 있다. 첫 장면은 기택네가 ‘반지하’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들 기우(최우식)와 딸 기정(박소담)은 와이파이 신호를 잡기 위해 집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변기에서 우스꽝스럽게 고군분투한다. 반지하에서는 흔히 화장실이 거실보다 높은 곳에 있다. 물을 잘 흐르게 하기 위해서다. 반면 동익네 집은 부촌의 상징인 ‘언덕에 위치한 고급 단독주택’이다. 가정부 남편인 근세(박명훈)가 ‘기생’하던 곳은 동익네 지하에 위치한 비밀공간이다. 세 가족은 계층적 수준에 따라 ‘지하’ ‘반지하’ ‘언덕 고급주택’으로 분화되어 거주한다.

이런 구도는 동익과 연교(조여정)의 ‘소파 신’에서 정점을 찍는다. 동익과 연교는 푹신한 소파에서 애정을 나눈다. 반면 기택은 탁자 아래 불편하게 누워 둘의 애정행각을 그대로 들을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동익이 ‘냄새’로 기택 가족을 구분한다든가, 막내아들 다송(정현준)이 그린 초상화 인물이 근세였다는 점 등등, 영화 곳곳에 디테일 장치들이 숨어있다. 관객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관객들은 관람 이후에도 숨은 장치를 찾아내거나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봉 감독이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봉준호 장르’의 두 번째 요소다.

디테일로 참신함은 얻었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개연성은 떨어진다. 기택 가족이 동익네 집에 침투해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것이 영화 서사의 뼈대다. 어떻게든 기택 가족을 동익네에 침투시키는 것이 스토리의 첫 과제였다. 이때 연교가 ‘심플’한 성격이라는 설정이 사용된다. 그 설정 하나를 기반으로 기우가 연교를 속여 동익의 딸 다혜(정지소)의 과외교사가 된 뒤, 기택의 부인 충숙(장혜진)이 가정부로 입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별다른 위기도 겪지 않는다. 분명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설정이다. 

‘우화’에 가까운 비현실적 상황 설정

세 번째 요소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극적인 흥미를 높이는 것이다. 지하실에 문광과 근세가 없었다고 가정해도 영화의 핵심 줄거리를 이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스토리 전개가 밋밋해지고 참신함도 떨어졌을 것이다. 문광과 근세가 등장하며 장르적 변주가 이루어지고 비극적인 '을 vs 을‘ 구도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개인 사업에 실패한 근세가 사채업자들을 피해 동익네 지하에 ’기생‘한다는 설정이 사용된다. 분명 참신하지만 비현실적이다. 이외에도 기택 가족이 대충 옆으로 치워둔 술판을 동익 가족이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거나, 느닷없이 문광이 사망하여 비극으로 전환되는 장면에서도, ’정교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비현실성을 놓고 보면, 영화는 차라리 ‘우화’에 가깝다.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인위적 설정들이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참신함을 느낄 수 있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운 영화다. 많은 사람이 영화의 기발함에 감탄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가 거기 있다. 

‘장르적 완성도’에 가려진 ‘도식적 현실 인식’

극 중 ‘악행’을 저지르는 쪽은 전부 ‘빈자’다. 기택 가족과 근세는 속임수로 동익네에 기생하게 됐으며, 기택 가족이 벌이는 술잔치는 엄연히 불법이다. 끝내 기택이 동익을 죽이는 결말도 마찬가지다. 기택은 ‘냄새’를 맡는 동익을 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만, 거기까지 이어지는 정서적 연결고리가 약하다 보니 통쾌함보다는 찝찝함이 남는다.

현실 세계의 ‘빈자’들에게 이 영화는 공감되지도 않는 스토리에 자신들이 범법자로 표현된 잘 짜인 영화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빈부격차’라는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가난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영화에 ‘공감’이 필수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기생충>의 메시지가 2013년 <설국열차>에서 던졌던 그것과 크게 나아가지도 달라지지도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장르가 SF에서 우화로, 무대가 기차에서 주택으로 바뀐 것이 전부다.

▲ 한국 사회에서 ‘빈부격차 심화’는 20여 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홍석희

‘한국 사회에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부분 그 사실을 알지만 말하기를 꺼린다. 영화는 다양한 영화적 기법을 첨가해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미디어가 사회문제를 환기했다는 면에서는 의미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이제는 ‘빈부격차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가 중요한 시대다. 

같은 주제, 비슷한 영화적 장치들의 변주는 ‘봉준호 표’ 패턴이 됐다. 비평가들은 이를 ‘봉준호 장르’로 격상했다. 가 없었다면, 혹은 6년 전이었다면 봉준호와 에게 드는 아쉬움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 감독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테크닉을 다소 줄이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다음 작품을 통해 ‘봉준호 장르’가 한층 진화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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