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반출생주의(反出生主義, Antinatalism 또는 anti-natalism)는 인간의 출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1 개요[편집]
반출생주의자는 인간이 아이를 만듦으로써 탄생되는 존재에게 그와 미리 합의[2]되지 않은 고통 가능성을 강제하고, 이는 도의적으로 옳지 않기에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출생주의는 생물의 본능인 삶에 대한 애착과 번식 욕구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상이기에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아무래도 지배층·기득권 입장에서는 피지배 집단의 인구 증가를 원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3] 근대까지만 해도 안락사를 포함한 자살·독신[4]·무자녀 부부·동성애 등 출산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은 악랄하게 탄압당했고, 현재도 지역에 따라 탄압당하고 있다. 그리고 탄압까진 아닌 지역도 이러한 개인의 선택권을 무시하려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번식하는 게 자연의 섭리이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옳다는 식의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고통·불행·악이 상존하는 곳이고, 고아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아이들도 많다. 또한 인구도 과밀하여 인간이 충분히 귀하게 여겨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 없이, 동의 없이 부모에 의해 이 세상에 강제로 던져진다(하이데거의 '피투성被投性').[5] 물론 누군가는 충분히 배가 불러서 세상에는 쾌락과 행복을 포함해서 좋은 것도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것들이 개인의 고통과 불행이라는 부조리를 상쇄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는 상존할 수밖에 없다.[6] 인간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기성 가치의 권위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염세주의·허무주의[7]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사상들이 자연과학과 무신론적 사고를 포함해서 인간의 이성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근대부터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창조주(조물주)라는 개념이 사실상 궁극의 부모[8]와 같다는 점에서, 신무신론·반신론·반종교주의와 통하는 면도 있다. 현대의 코펜하겐 해석 이후에도 여전히 거시계는 결정적이다. 인간은 뇌손상·뇌수술·호르몬 등으로 인해 성격이 바뀔 수 있다.[9] 기억은 저장하는 과정에서 변질되거나, 그냥 시간이 지나기만 해도 변질된다. 최면이나 반복적인 상담만으로도 오기억을 심을 수 있다. 심지어 뇌에 가해진 특정 자극을 의식하지 못할 경우 그 자극으로 인한 반응을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 것이라고 오해한다.[10] 따라서 신·사후세계·영혼·자유의지 등은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존재 가정이 무요하다.[11] 즉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반출생주의를 배격하는 출생 편향적 신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 부분 또한 종교·신비주의적 사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출생주의 사상에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종교·신비주의적 입장이라고 모두 반출생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영지주의나 이에 영향을 받은 여러 교파는 임신 및 출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정치 기득권과 이해가 일치한 종교 기득권에 의해 이단, 사이비로 몰려 잔혹하게 탄압돼왔다. 인도 종교[12]의 윤회 사상도 반출생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고통의 유전적 재생산을 은유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불교·자이나교 등은 세상을 고통으로 가득찬 곳으로, 인간을 윤회의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이는 반출생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탈과 열반 개념 또한 깨달음을 통해 번식 욕구라는 번뇌를 극복하고 되풀이되는 삶과 고통의 굴레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13] 현대의 인구과잉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인권 문제,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 문제, 인간의 영리를 위해 잔인하게 희생당하는 가축과 실험동물 문제 등 동물 윤리•생명 윤리•환경 윤리와도 관련이 있다. 반출생주의적 담론에 대해 혼자 자살하면 되지 않냐는 조롱이 곧잘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무섭고 싫은,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구태여 후손에게 강요하지 말자는 반출생주의의 취지를 망각한 논점 일탈이자 본능적 거부감 표출에 불과하다. 살 만큼 살았다는 노인도 막상 죽음이 임박하면 두렵고, 자는 중에 의식하지 못한 채 안락하게 죽길 바라는 법이다. 하물며 끔찍한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여달라는 불치병 환자도 안락사를 바랄지언정 자살은 쉬이 하지 못한다. 이렇듯 자살은 이미 태어난 이상 고도로 진화한 생존 본능 때문에 실행이 어렵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뿐더러, 사회 역시 자살을 억제하기 위해 편안한 실행 방법을 최대한 차단하고 불편과 고통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듯 후손에게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강요하면서 억울한 개인이 자살하면 그만이라는 것은, 결국 자살하는 피해자를 계속 양산하는 부도덕을 옹호하는 것과 같다. 그 외에도 자살자 주변인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 고통 문제 등이 있다. 1.1 역어에 대해[편집]우리가 원해서 출생한 게 아니니 '반출생주의' 대신 '반출산주의'가 낫다는 의견이 있다. 이런 의견의 배경에는 페미니즘에 반감을 지닌 입장에서 출산 부담을 여성에게만 지운다며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부르자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으로 인해, 반출생주의라는 단어 역시 정치적인 조어로 보여 생기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출생이라는 단어의 적절성 문제를 떠나서 반출생주의도 위와 같은 경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출생주의'란 단어는 국적과 관련한 동음이의어로도 존재한다. 서양에서 구체화된 반출생주의를 한국보다 먼저 수입한 일본에서는 반출생주의로 거의 굳어진 상태다. 따라서 서양 학문을 번역할 때 일본을 참고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 역시 저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안티 나탈리즘'으로 음역한 경우도 많이 보인다. 단 실제 영어 발음은 '앤티-내이털리즘' 또는 '앤타이내이틀리즘'에 가깝다. '인구 억제주의'로 의역한 기사도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신맬서스주의(Neo-Malthusianism)'와 혼동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1.2 기독교와의 관계[편집]기독교 주류는 반출생주의(Antinatalism)가 배격하는 출생주의(Natalism)를 지지한다. 이 때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일렀다는 구절을 그 근거로 든다.[14] 어차피 정치 기득권이나 종교 기득권이나 부양받을 피지배 계층 인구가 많을 수록 좋은 게 보통이고 이런 면에서는 서로 일치하는 편이다. 따라서 출생주의는 지배층과 종교가 유착[15]하여 상부상조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반출생주의는 기독교와 상극에 가깝다. 기독교는 멋대로 자신이 그렇게 창조해놓고 무고한 아이와 동물까지 홍수로 몰살시킨 창조주를 절대선으로 숭앙하는 종교이다. 그리고 인류가 악의 존재로 인해 고통받는 이유를 자유의지 탓으로 돌리는데,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에 의해 강제로 주입당한 자유의지로 인해 창조주의 맘에 안 드는 일을 하고 에덴에서 추방당했다는 이유로 인류 전체에게 연좌제로 원죄를 적용,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대속' 신앙을 요구한다.[16] 이 때 불신자는 죽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데, 자녀가 불신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기독교인 부모가 그 자녀를 신실한 신자로 키우지 못하고 천국에 보내는데 실패한다면, 이 부모는 설령 고의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악질의 아동 방임·학대·살해 부모가 자녀에게 가한 고통보다 더 끔찍한 지옥의 고통을 자녀에게 선사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런 끔찍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일단 낳고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으며, 아예 낳지 않는다면 적어도 불신자인 자식은 생기지 않으며 최소한 이런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신학계에서는 연옥 같은 개념을 지어내 물타기를 시도하거나 견강부회식 성경 해석으로 나름의 합리화를 시도하지만, 평신도 중 이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후 낳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비자발적 불신자의 처우 문제[17] 등은 지옥에 대해 회의하게 만든다. 여호와의 증인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옥의 이미지가 하느님의 공의에 어긋나며 성경 내용과 상이하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한다. 자녀를 낳고 싶고 그럴 여력이 있다면 그만큼 입양을 하면 된다. 모세·예수·에스더는 사실상 입양아였고, 로마서·에베소서 등에서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에 기독교에서는 입양 역시 장려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혈연에 집착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의외로 성경에는 반출생주의를 대변하는 듯한 구절이 곳곳에 존재한다. 솔로몬 왕의 저작이라는 전승이 있는 전도서에는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더 복되고 태어나지 않은 자는 더더욱 복되다는 실레노스의 지혜와 유사한 구절이 있다. 그 외에도 욥기, 예레미야 등에 생일을 저주하며 차라리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 죽는 게 좋았다는 구절이 존재한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가룟 유다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독신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생일을 이교적·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생일을 기념하지 않는다. 사실 기독교(가톨릭·개신교·정교회 등)가 인구 면에서 대표적일 뿐, 유대교·이슬람교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자체가 (현대에) 출생주의적인 면이 타 종교에 비해 강한 편이다. 1.3 페미니즘과의 관계[편집]페미니즘은 분파가 여럿인만큼 사상에 따라 공통분모를 보이기도, 반목하기도 한다. 낙태 찬성파, 비출산 옹호 계열 페미니즘과는 '여성은 재생산 도구가 아니다'라는 점을 함께 긍정하지만 '출산은 여성의 권리이며 생명을 낳는 어머니는 위대하다'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즘과는 마찰을 빚고 있다.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고 교육을 받는 국가일수록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비율에 매우 적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중립, 긍정적인 관점을 보인다. 1.4 채식주의와의 관계[편집]동물의 고통에도 관심을 보이는 반출생주의자 중에서는 채식주의를 겸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반출생주의 서브레딧에서도 채식주의자 여부 투표 결과를 보면 타 서브레딧에 비해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향후 육식을 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채식주의 강요로 본인이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는 자식을 낳는 부모 채식주의자에겐 반감을 보인다. 1.5 입양에 대한 시선[편집]압도적으로 긍정적이며, 많은 반출생주의자들이 입양을 했거나 고려한다. 이 때문에 자식을 아예 두지 않는 childfree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인간 뿐 아니라 동물들도 비인륜적인 재생산을 하는 펫샵이 아닌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기다리는 버림받은 개체들을 입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동물에도 반출생주의를 적용하는 경우, 펫샵을 전부 폐쇄하고 남은 동물들은 중성화 후 인간이 죽을 때까지 보살피고 더 이상의 재생산은 중단하자는 의견도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면 편의에 의한 중성화, 성대수술, 유기동물 등 인간이 저지른 온갖 만행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1.6 그 외[편집]
2 데이비드 베너타의 논리[편집]위 사상은 본디 명확한 구심점 없이 파편화된 상태에 가까웠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베너타에 이르러 본격적인 논증이 이뤄졌다. 베너타는 누군가를 존재시키는 행위는 결코 그 존재를 위한 행위일 수 없으며, 항상 해악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18]에 따르면,
인간이 위 논리에 거부감을 느끼고 삶의 질에 대해 비이성적인 평가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베너타의 반출생주의 논증은 '비동일성 문제(미래 개인의 역설)'[20]의 유력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2018년 법학적성시험(LEET) 언어이해 제시문으로 위 베나타의 논증이 출제되었다. 3 생명 윤리, 환경 윤리 문제[편집]David Benatar, Gunter Bleibohm, Gerald Harrison, Julia Tanner 등의 반출생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의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도의적인 관심을 기울이길 촉구한다. 이들은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인간 만큼 파괴적이고 해로운 생명체는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제외한 수십억의 동물은 매년 육식성 식자재 생산을 비롯하여 각종 실험에 이용당한 후 아무렇게나 폐기된다. 또한 서식지 파괴를 비롯하여 벌어지는 각종 환경 파괴 등으로 인해 무수한 종의 생명체가 학대•학살당하며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오로지 인류라는 종의 가학적인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행해진다. 이렇듯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부조리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위 반출생주의자들은 그저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종에 해를 끼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동물권 사회운동가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동물 권익과 환경 보존을 위한 가장 확실한 해결책으로 인위적인 인구 억제가 거론되는데, 이는 반출생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간이 더 적어지거나 혹은 완전히 없어질 수 있다면, 그들에 의해서 다른 지각 있는 생명체가 겪게 되는 피해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아이를 한 명 덜 낳는 것은 환경을 고려하는 다른 활동보다 20배 가량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다.[21] 4 반대 의견[편집]피터 싱어와 같은 공리주의 철학자는 '인간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반출생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인간은 수많은 백신과 기계를 만들어냈고 투쟁을 통해 인권을 신장 시켰으며, 달에 가는 것을 넘어서서 화성에 테라포밍을 할 계획을 넘볼 정도로 발전 중이라는 게 근거다. 현대에도 난민, 동물 학대, 질병, 환경 파괴와 같은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인간은 그걸 극복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 반출생주의대로 모든 인간이 번식을 멈추면 110여년 이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인간이 환경을 딛고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한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고 만다. 다만 그와 동시에 피터 싱어는 반출생주의를 인구 억제를 위한 효용적 수단으로 인정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4.1 수혜 없이 의무만이 있는 사상[편집]반출생주의에 따르면 가장 좋거나 나쁘지 않은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어떻게든 존재 - 태어나게 된 이상 나쁨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며, 이를 보상받을 길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존재하게 되어 남을 존재하게 할 능력(새로운 생명의 탄생 능력) 이 있는 이상, 존재하는 이는 남을 태어나지 않게 할 의무가 있다. 반출생주의에 따르면 보상 없이 수행할 의무만 있는것이다. 기독교의 구원 사상, 미륵불 사상, 민주주의적 평등 사상, 공산주의 사상 등의 공통점은 지금은 없다 할지라도 먼 미래에나마 주어질 수혜가 있다. 기독교나 미륵불 사상 같은 경우에는 전능한 구세주가 우리를 생의 고해로부터 구원한다는 수혜를,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적 평등 사상에서는 신분적, 계급적 차별로부터 철폐된 평등사회라는 수혜의 전망을 제시한다. 그러나 반출생주의 사상에서는 수혜자가 없다. 비존재하는 잠재적 인간들은 원래부터 비존재하였으며, 비존재하는 이상 어떠한 추가적 이익을 안겨줄 수 없고, 존재하는 사람은 존재라는 '나쁜' 상황에서 구원받을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 인생을 혐오하여 자살하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22] 심지어 자신을 낳은 부모에게조차 화풀이할 수 없다. 반출생주의는 자신의 부모를 증오하여 폭력이라도 행사하는 순간 그것을 고통으로 간주해 악행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출생주의는 기독교나 미륵불,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인기를 얻었듯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구석이 없다. 결국 데이비드 베너타 등이 잠시 책을 쓰고 화제가 된 것을 빼면 반출생주의는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일부 염세주의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혐오할 때의 레퍼토리로만 쓰일 뿐이다. 어떤 반출생주의 옹호자들은 도덕적 만족감을 제시하는데, 문제는 반출생주의자들이 한사코 우리와는 다르다! 우리와는! 을 외치는 죽음 옹호 사상(Promortalism)의 지지자들도 똑같이 '도덕적 만족감'을 수혜로 제시할 수 있다. 그들이 실제로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살인을 하거나 자살하지 않는 수행모순과는 별개로, 그들은 이러한 사상이 도덕적으로 옳다 주장하며 도덕적 만족감을 수혜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출생주의자들부터 그 도덕적 만족감에 동의하지 않으며, 유감스럽게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반출생주의를 따르는 데서 오는 '도덕적 만족감'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출생주의자들이 죽음 옹호 사상의 도덕적 만족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반출생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도 반출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만족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23] 또한 데이비드 베너타가 분석철학적으로 정립한 반출생주의 사상은 지지자들도 인정하다시피 의무론적이며, 그 행위가 옳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어떤 반출생주의자들이 도덕적 만족감, 출생 감소로 인한 환경 파괴의 감소 등의 '좋은 결과'를 제시하는 것은 의무론적인 윤리에서 결과주의적 효용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모순이다. 옳기만 할 뿐, 그 외에 아무런 현실성도 없는 주장을 우리는 공염불이라고 한다. 4.1.1 반론[편집]의무주의는 인기, 이익, 결과에 상관 없이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에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무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반출생주의에 대해 인기, 이익, 결과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사상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결과주의와 비결과주의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다. 사상이 갖는 인기와 사상의 정당성은 무관하다. 여러 형태의 집단 이기주의가 더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노예 제도가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다고 해서 노예 제도가 옳은 것은 아니다. 대다수가 친자 번식에 집착한다고 해서 입양의 가치가 무시되지는 않는다. 반출생주의는 '최대한으로 신속한 멸종'이라는 결과에 집착하는 결과주의 사상이 아니다. 단지 모두가 반출생주의를 수행한 끝에 멸종된다면 어쩔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할 뿐이며, 끝없는 비자발적 희생자의 생성을 멈추기 위해 '자발적이며 점진적인 멸종'을 추구한다. 4.2 부양 단절 및 국가 경쟁력 약화[편집]반출생주의가 개인에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다고 충분히 볼 수 있지만,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경우 출생률 저하에 따른 인구 데드크로스 현상을 겪어 2020년에 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태어나는 사람은 적은데 부담해야 하는 노인 인구는 늘어 부양금이 증가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뉴스 국민 연금의 고갈 뉴스 역시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가속화되고 있어 반출생주의가 마냥 개인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고는 보기 힘들며, 사회에 만연하게 될 시 오히려 개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한국은 특히 국토 내의 자원이 희귀해 인구가 매우 중요한 나라다. 4.2.1 반론[편집]반출생주의의 정당성과 경제 문제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반출생주의는 현재 세대의 향략을 위해 미래 세대를 수단화, 자원화하고 희생시키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설사 개인 입장에서의 결과적 측면을 놓고 보더라도, 반출생주의의 수행 방식인 비출산이 출산에 비해 개인에게 경제적 손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경제 성장 둔화와 막중해진 부모의 책임 등으로 인해 당장 금전적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자녀에게 투자해봐야 그만큼 노후에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신의 노후를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이 오히려 낳지 않는 것보다 그 개인에게 더 큰 손해가 된다는 것이다. 부양 부담이 급증한 원인은 수명의 비약적 증가로 인한 고령화이다. 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미래 세대를 낳는 것은 미래 세대를 희생양 삼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는 시한폭탄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인구와 수명이 증가할 수록 그만큼 피부양 인구도 증가한다. 인구 폭발과 그로 인한 환경 파괴 속도는 기술 발전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경우, 많은 전문가들은 출산 장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으며, 인구 절벽(인구 지진)으로 인해 연금 고갈 등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거나,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희생자 수라도 줄이는 것이 부모는 자녀 양육 때문에 자신의 노후 준비가 더 어려워지고 자녀는 부모보다 더 커진 부양 부담을 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5 인물[편집]
6 종교 및 단체[편집]
7 영화[편집]
8 외부 링크[편집]
8.1 언론 보도[편집]
9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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