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비창 2악장 해설 - betoben bichang 2agjang haeseol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Pathetique', op. 13 - II. Adagio cantabile

- Beethoven, 1798년 작곡(그의 나이 27세), 1799년 공개

요즘 나에게 소리에 반응하는 감각이 하나 더 생긴 듯하다. 설마 원래부터 귀가 하나 더 있었던건가? 거울을 돌려보며 여기저기 찾아봐도 없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큼큼. 찾고있는 내가 한심한건 알겠는데 감각이 하나 더 생긴 건 분명하단 말이지. 나이가 들어가니 눈도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청력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단 말이지. 바벨을 열심히 들면 근육이 생기듯이 새롭게 시작할 레퍼토리를 찾는데 마음을 활짝 열어두니 그쪽으로 감각이 진화한 듯 안들리던게 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연습할 곡을 선정할 때 그냥 듣기 좋은 곡으로 결정하는 건 아니다. 이리 재 보고 저리 생각해보고 결정한다. 도전의욕이 생기면 좋긴 한데 너무 어려우면 나 스스로 괴로워지니 뭐든 적당해야한다. 연습하면서 배워가는 재미, 완성하면서 얻는 성취감 이런것들까지도 생각하니 까다로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거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에 와 닿아야 하는 게 제일 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와 닿기만해서 도전했다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 무서웠겠나? 나의 능력은 끝이 없다,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는 잠시 접어두고 현실타협한다. 그렇게 베토벤 비창 2악장이 시작되었다.

베토벤 비창 2악장 해설 - betoben bichang 2agjang haeseol

위, 아래 같은 곡이지만 첫 번째가 원전에 가까운 악보이며 (Henle version등) 두 번째가 변형된 악보이다. 대중적으로 두 번째 악보가 많이 출판되나 입시나 콩쿠르 등 원곡에 충실함(?)이 필요하기에 첫 번째를 요구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왜 두 번째로 변형되었을까? 첫 번째 악보는 연주 난이도나 핑거링에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감지하지 못한 왼손과 오른손의 차이.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 중에 하나인 비창(悲愴)이다. 베토벤은 총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였고 그 중 손 꼽는 3대 피아노 소나타라고 하면 No.8 Pathetique(비창), No.14 Moonlight(월광), No.23 Appasionate(열정) 를 가리킨다. 세 곡 모두 어느 하나를 들어도 중간에 쉽게 끊기 어려운 흡입력이 있다. 그런 대중성이 갖추고 있었기에 명 소나타로 살아남아 인기를 누리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하나 더 꼽으라면 Tempest 정도 추가하고 싶고...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모두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뭐 아는 척 하는건 참 부끄럽다)

2악장은 Adagio Catabille 로 시작한다. Catabille... 노래하듯이... 비창(悲愴, Sorrow). 이 언밸런스는 뭔지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하여 Pathetique 의 의미를 찾아보면 '슬픈 노래'이라고 하기보다는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에서는 비장함에 가깝다고 설명되어 있다. 다시 Cambridge French - English Dictionary 을 찾아보니 간단하게 한 줄 'A pathetic situation'으로 설명되어 있다. 의미를 그대로 풀자면 '괴로움을 떠올리는 애처로움과 감정적인 동요 상태' 정도로 이해된다. 베토벤 본인이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도 아니고 출판사가 붙인 'Grande Sonate Pathetique'가 그대로 굳어진 것이라하니 이 출판업자의 기분이 Pathetique 했을지언정 베토벤이 슬프고 우울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토벤은 이 아름다운 비창 2악장을 귀가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지 않는 시점에 작곡하였다고 한다. 청력을 잃어가는 음악가는 상상하기 어렵고 그 본인의 고통은 더 했을 법도 하지만 그가 적어 내려간 선율은 그가 그런 고통에 있었다는 걸 전혀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혹, 출판업자가 베토벤의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아름다움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그 불굴의 의지의 아이러니를 슬프다고 생각했었다면 영혼을 보듬는 적절한 제목인듯 하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도 좋고. 여하튼 비창이라는 제목은 출판사 담당자의 느낌을 우겨댄 결과인 것이니 아무래도 슬픈노래 비창은 너무 멀리 나간 게 아닐까?

그래서 대중들이 이 곡의 이름만으로 슬픈 감정을 떠올린다는 게 사실 불편하다. 2악장만 조금 서정적이지 나머지 1, 3악장은 힘차고 신나기까지하다. 2악장도 후반부는 산뜻한 봄날같은 기분마져 느껴진다. 애써 찾으려해도 나는 그 어떤 슬픔도 찾지 못하겠다.

베토벤 비창 2악장 해설 - betoben bichang 2agjang haeseol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

총 73마디로 구성된 론도형식이다. A-B-A'-C-A. 일단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차근차근 연습해 나가는데는 무난했다. 즉흥환상곡에 들어가기 전 손풀기 연습곡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곡 전체를 연주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수준에 와버렸다. 42~43마디 부분의 왼손 화음이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화음기초가 없기에 처음에는 매번 짚어야 할 위치를 한칸 한칸 세어보곤 했지만 30분 정도 반복하면 눈을 감고도 위치를 짚어낼 수 있다. 속도를 높이는 건 지금 능력으로 안되는 한계가 분명 있지만 속도가 빠르지 않은 화음은 공을 들이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이렇게 왼손을 먼저 익히고 그리고 오른손을 연결해본다. 하지만 3~4 손가락을 동시에 눌러야 하고 동일하게 반복되는 화음들의 연결은 근육의 통증을 느끼게 한다. 필요한 근육의 힘이 약하고 아직 손가락의 위치가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이니 하논이든 체르니든 다른 연습곡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음 외에 두 번째로 어려운 부분을 꼽으라면 셈여림이다. 베토벤 곡에는 특유의 강한 충격과 여린 터치의 조합이 많다. sF, Fp, p, pp. 강렬하게 울릴 곳에서는 울려주고, 여리고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야 할 부분의 표현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감정이 살아난 표현이 된다. 연주할 때의 감정에 따라 음의 높낮이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기호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기본은 지켜야 할 것이다.

베토벤 비창 2악장 해설 - betoben bichang 2agjang haeseol

42~43, 왼손 화음만 30분 정도 반복한다. 그러면 눈을 감고도 옮겨갈 수 있게 된다.

베토벤 비창 2악장 해설 - betoben bichang 2agjang haeseol

50마디에서 약지를 누른 상태에서 나머지 네 손가락에서 균일하게 누르는 부분과 57마디 이후 자주 반복되는 세 번째 스타카토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가지고 표현해 내야하는 부분이다.

느릴수록 감정표현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속도가 빠른 곡은 어느 연주자가 하더라도 단지 기술적으로 깔끔하다 이런 느낌은 받을 수 있겠지만 감흥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하지만 느린 곡은 그 연주자의 스타일이 느낄 수 있다. 연주시간에서도 각양각색이다. 그런 의미에서 KBS 섬마을 콘서트에서 해진 후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바다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백건우의 연주는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의 일품 연주가 되었다.

https://youtu.be/TqtdehDHz_4

'2악장은 기도를 하는듯한 서정적인 주제로 잔잔한 마음의 풍경을 음악으로 그리게 만든다' - 영상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