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야드 키퍼 피투성이 못 - geuleibeuyadeu kipeo pituseong-i 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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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레이브야드 키퍼 피투성이 못 - geuleibeuyadeu kipeo pituseong-i mos

  • My Son (A-deul)

    2007년 109분

    출연

    차승원 ,류덕환 ,김지영 ,이상훈 ,이문수 ,이한위 ,장재석 ,공호석 ,이철민 ,김학규 ,배성일

    그레이브야드 키퍼 피투성이 못 - geuleibeuyadeu kipeo pituseong-i mos

  • 중학 화산댁  

    Madam Hwasan ( Hwasandaek )

    1968년 110분

    출연

    황정순 ,김진규 ,신성일 ,남정임 ,최남현 ,김신재 ,남미리 ,전영주 ,김웅 ,지방열 ,최일

    소장유형

    필름 비디오 동영상 포스터 스틸 스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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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과 운명(농민편 2부)  

    2002년 83분

    출연

    김영숙 ,최대현 ,리순정 ,김철 ,리광국 ,조성신 ,김동선 ,리정천 ,리경희 ,리혜성 ,려용구

    그레이브야드 키퍼 피투성이 못 - geuleibeuyadeu kipeo pituseong-i mos

  • 그레이브야드 키퍼 피투성이 못 - geuleibeuyadeu kipeo pituseong-i mos

  • 12 아들의 방  

    The Son's Room

    2001년 96분

    출연

    난니 모레띠 ,로라 모란트 ,자스민 트린카 ,쥬세페 산페리스 ,소피아 비글리아 ,레나토 스카퍼 ,로베르토 노빌 ,파울로 데 바이타 ,로베르토 데 프란체스코 ,클라우디오 산타마리아 ,안토니오 페트로셀리

  • 홍진기

    , 배우#@#조명

  • 홍성유

    1928 ~ 2002 , 시나리오

  • 정상기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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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 (595)

  • 연재 [사사로운영화리스트]사울의 아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수많은 올해의 영화들이 존재하지만, 이 지면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헝가리 감독 라즐로 네메즈의 데뷔작 < 사울의 아들 >이다. 개인적으로 더 강렬한 감흥을 받았던 허우샤오시엔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아름다운 영화, < 자객 섭은낭 >과 < 찬란함의 무덤 >을 제쳐두고 이 작품을 소개하려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두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관람 기회가 요원할 것 같았다(고 적었으나 이 글을 쓴 이후 <사울의 아들>이 내년 2월경 개봉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둘째. 홀로코스트라는 위험한 소재 속으로 대담하게 뛰어든 이 영화의 용감함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셋째. 아직은 낯선 라즐로 네메즈라는 이 신인감독의 이름을 더 많은 한국 관객들이 기억했으면 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사사로운 이유를 들자면, <사울의 아들>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중 무언가 새로운 것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내게 처음으로 줬던 작품이었다. 영화제 초반부 상영작이긴 했지만,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사울의 아들>로부터 받았던 방식의 충격과 감흥을 선사하는 작품은 보기 드물었다. < 사울의 아들 >은 1944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손더코만도로 일하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사울의 이틀을 조명한다. ‘손더코만도’라는 낯선 용어에 고개를 갸웃할 틈도 없이,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사울이 이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어떤 일을 해오고 있었는지 알려준다. 한무리의 유대인들이 알몸으로 샤워실에 들어간다. 사실 그들이 샤워실인 줄 알았던 그곳은 가스가 뿜어져나오는 살육의 공간이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끔찍한 비명과 절규가 들려온다. 모든 것이 끝나면 사울의 업무가 시작된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수감자들이 벗어놓은 코트에서 귀중품을 챙기고, 알몸의 시체들을 가스실 밖으로 끌어낸다. 온갖 분비물로 더럽혀진 가스실 바닥을 닦는 것 역시 사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손더코만도들이 가스실을 비워내면 또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학살은 그렇게 도돌이표처럼 계속되고, 유대인 포로이지만 수용소 안에서 나치에 의해 고용된 잡역부(손더코만도)인 사울은 기계적으로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반복한다. 그에게 죽음은 일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초점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사울에게 뚜렷한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수용소에서 한 남자아이의 시체를 보고 나서부터다. 사울은 그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소년에게 유대인으로서 합당한 장례를 치러주고 싶어한다. 사울은 아이의 시체를 화장터로부터 빼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수용소 안에서 아이의 장례를 치러줄 랍비를 백방으로 찾아다닌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용소 안에서 나치에 대한 반란을 준비하던 손더코만도 일행을 돕는다. 사울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극영화를 통틀어 가장 당혹스러운 주인공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죽은 자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죽은 자의 육신을 합당한 방식으로 거두기 위해 종종 동료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그의 행동은 홀로코스트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윤리의 질문 저 너머에 있다. 사울에게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가 반드시 해내야겠다고 결심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것이다. 그 임무가 이치에 맞지 않고 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처럼 느껴지더라도, 인간성이라곤 절멸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울의 행동은 가장 인간적인 제스처로 다가온다.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겠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도 여타의 홀로코스트 영화와 < 사울의 아들 >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행해진 수많은 살인과 잔혹 행위들의 참상을 재현하고 기록하는 건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곳에 무엇이 있게 될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울의 아들>의 접근방식이다. 라슬로 네메즈가 이 영화를 위해 4:3의 화면비를 취한 건 바로 그러한 선택에 따른 게 아닌가 싶다.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사울의 얼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사울의 아들>은 주인공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을 최대한 협소하게 보여준다. 충격적인 오프닝 시퀀스의 가스실 학살장면이나 포로들을 구덩이에 모아놓고 무차별적으로 총살하는 야밤의 비극적인 사건은 오직 사울이 체험하는 범위 안에서만 관객들에게 보여질 뿐이다. 프레임 밖으로 잘려나가거나 흐릿하게 처리된 이미지들의 공백을 메우는 건 사운드다. 단언컨대 < 사울의 아들 >은 올해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사운드를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철컹거리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가스실에 갇힌 이들의 소름 끼치는 비명, 감독관들의 호령 소리, 폴란드어, 독일어, 유대어 등 수많은 언어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정체불명의 화음은 관객이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사운드 디자이너 타마스 자니가 만들어낸 <사울의 아들>의 음향은 날카롭고 명확하기보다 강렬한 울림과 긴 여운을 지니고 있는데, 이처럼 풍성하게 연출된 사운드가 제한적이고 압축된 시각적 이미지와 맞물려 효과적인 대구를 이룬다는 건 이 영화가 이뤄낸 기술적 성취를 짐작하게 한다. 장편영화 데뷔작 < 사울의 아들 >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라슬로 네메즈는 벨라 타르의 2007년 작 < 런던에서 온 사나이 >의 연출부를 맡았던 경험이 있다. 유려한 페이스의 롱테이크 이외에도 그가 스승에게 물려받았다고 짐작되는 유산이 있다면, 그건 바로 대담함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는 스승의 말대로, 라슬로 네메즈는 여전히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를 소환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금기의 질문들을 용감하게 돌파해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의 아들>은 기억되어야 할 영화고, 지지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 사울의 아들 >과 더불어 선정한 영화들에 대한 소감도 이 지면을 빌려 간략하게 전한다. 허우샤오시엔의 < 자객 섭은낭 >은 과연 글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 영화의 미학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색감과 앵글, 리듬과 호흡. 허우샤오시엔의 그 모든 선택과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 영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 찬란함의 무덤 >은 올해 본 가장 인상적인 설치물이 등장하는 작품이자 아피찻퐁의 최근작 중 가장 감상적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 스파이 브릿지 >는 <사울의 아들>과 정확히 반대되는 이유로 좋았는데, 예민한 소재를 누구나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풀어내면서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화로 만들어낸 스필버그의 연출력을 기억하고 싶었다. < 캐롤 >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배우 때문이다.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늠하면서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두 여자의 심리 묘사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영화다. < 산하고인 >은 시간과 사람에 대한 지아장커의 애상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 폭스캐처 >는 스티븐 카렐의 괴물 같은 연기와 베넷 밀러의 차분한 연출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는 알프스 산맥처럼 정교하고 미스터리하게 흘러가는 내러티브의 묘미,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꽤 매력적인 조합이었던 세 여배우-크리스틴 스튜어트, 줄리엣 비노쉬, 클로이 모레츠-의 앙상블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정했다. <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 >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필립 가렐의 신작인데, 대사의 날카로움은 여전하고 흑백화면은 여전히 파리 특유의 정서(지금은 다른 이유에서 좀 더 특별해졌다)를 머금고 있다. 마지막으로 루카 구아다니노의 < 비거 스플래쉬 >는 정말로 사사로운 이유 때문에 선정한 작품이다. 이 리스트를 선정하기 위해 고심하는 순간, 풀장으로 첨벙 소리를 내며 뛰어들던 <비거 스플래쉬>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프랑소와 오종의 < 스위밍 풀 >과 같은 원작을 공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여인의 육신보다 입수 장면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몸과 물이 맞닿는 순간의 마찰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비거 스플래쉬’를 몹시도 감각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by.장영엽(씨네21 편집장) 2015.12.10
  • 연재 [임권택X102]장군의 아들 The General's Son, 연작 (첫번째 이야기) 고백. 내가 영화에 홀린 까닭은 단순하다. 영화가 활동사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다. 사진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간, 거기서 더 이상 사진이기를 중단하고 갑자기 새로운 시간이 시작하는 순간, 내 눈앞에 있는 모든 현실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그 무언가의 힘 안으로 들어가 버린 다음 거기서 시침 뚝 떼고 다시 세상이 시작할 때, 거기서 나는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되어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거기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나는 몇 번이고 거기서, 라고 썼다. 거기서, 라는 지칭. 오랫동안 영화에서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들>을 보았을 때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거기서 내가 왜 그렇게 영화에 홀렸는지를 보았다. 똑같은 이유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 스트롬볼리 >를 보았을 때 그걸 확인하게 되었다.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예술이 아니다. 그와 똑같은 의미로 꿈을 구성하는 예술이 아니다. 영화는 현실과 나 사이에 놓여진 간격의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영화를 보는 나는 그 간격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영화를 향해서 질문을 던질 때 그것은 그 간격의 구성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그때 영화는 둘 사이의 매개가 아니다. 그건 그 자체로 하나의 활동하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우리는 영화를 담론 안에 살게 하면 안 된다. 이 기나긴 싸움. 담론과 형상. 물론 언어는 침식하듯이 다가와서 형상적인 것들을 잡아먹으면서 분절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언어가 그것을 자기의 체계 안으로 내재화시켜도 끝내 바깥에 머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중단된 이행. 그 사이의 침묵. 말하자면 침묵은 언어 바깥에 머물 것이다. 그때 나는 침묵에 시선을 돌릴 것이다. 침묵을 보는 일. 그게 영화를 지키려는 내가 할 일이다. 그 침묵을 통해서 비로소 영화가 언어에 의해서 상실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의 가장자리에 놓여진 입구로서의 액션이라는 활동을 보게 된다. 이때 액션은 이미지이자 동선이며 시간이자 감각이고 무엇보다도 활동하는 형상이다. 아니, 차라리 나는 그걸 시네마틱 센스의 제 일 법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나는 이 법칙을 앞으로 좀 더 발전시킬 것이다. 영화적, 이라는 능력의 첫 번째 의미. 영화를 부정하려는 모든 이미지의 위협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우리들의 투쟁을 위한 첫 번째 방어선. 여기엔 다소 긴 서문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여기서 두 편의 영화를 오가게 될 것이다. 임권택 의 < 장군의 아들 >과 왕가위의 < 일대종사 >. 1990년과 2013년. 종로 우미관(優美館) 앞과 광저우의 불산(佛山, Foshan) 금루(金樓). 일본 제국주의. 김두한과 엽문. 그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대신 그 둘은 서로를 보충하고 있다. 그 둘이 서로에게 무언가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놓여진 간격을 경유하여 이것을 저것의 자리에서 서로 각자 자기의 것으로 끌어당기려는 것, 바로 그 힘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거기에 놓인 유일한 교집합. 액션이라는 동선. 액션이라는 설계. 액션이라는 이미지. 액션을 둘러싼 시청각 기호들. 액션이라는 감각. 그리고 액션이라는 시네마토그래프. 활동하는 사진. 하지만 활동을 시작하자 사라져버린 사진. 서로 다른 카메라의 능력.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두 개의 활동하는 힘. 나는 둘 사이를 과도하게 도식적으로 묶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지금 액션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 위험한 생각. 내게 조언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건 스펙터클의 문제에요. 나는 지금 황홀, 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있다. 그 말을 파토스에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에서 액션은 동물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거기서 영화의 수학을 본다. 왜 그렇게 영화에서 액션은 기술(記述)하기 어려운 기술(技術)일까. 나는 여기서 설명하는 대신 단지 기술할 것이다. 그때 이 기술은 선과 속도, 점과 위치, 그리고 방향과 강도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이 둘을 놓고 아무것도 이것을 저것에로, 혹은 저것에서 이것으로 환원하지 않을 것이다. 액션은 접촉이라는 문제라는 걸 생각해주기 바란다. 나는 두 영화를 가져다 놓은 다음 조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접촉의 방법을 확인하고 거기서 교차하는 영화적 경험을 보고 싶다. 단순하게 말하자. 여기서는 하나의 장면을 절단한 다음 저기에 올리고 저기의 것을 끌어다가 여기에 연결시켜서 하나의 집처럼 만든 다음 두 개의 층을 번갈아 오가게 될 것이다. 각각의 층. 나는 서로의 층이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 둘 사이에서 마치 하나의 활동처럼 연결 지어져 있는 선을 따라가 볼 것이다. 왜 그럴 필요가 생겼는가. 하나를 본 다음 다른 하나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아니, 차라리 하나가 다른 하나를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분리하는 대신 하나 안에서 출현하는 다른 하나를 겹쳐놓아 보기로 하였다. 말 그대로 배치. 그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을 설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현재라는 시간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내 기억의 발견과 그 안에서 진행되는 미래의 배움을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인상에 대한 믿음. 거기서 시작된 감각. 나는 순진한 시선으로 그 둘 사이를 따라가 볼 것이다. 그때 서로에게 부여하는 다양한 힘의 방향들, 서로 다른 간격의 문턱들, 편집의 층위들, 동선의 단층들을 둘러볼 것이다. 단지 둘러보기. 그 말을 당신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두한. 엽문 물론 좀 더 친절한 유사성이 있긴 하다. 먼저 < 장군의 아들 >. 청계천 수표교 다리 밑에서 자란 김두한은 우연한 기회에 싸움에 말려들어 종로 주먹패들 안에 들어가게 된다. 종로패는 혼마치깡(지금의 충무로)를 점령한 일본인 하야시패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김두한은 차례로 아래서부터 자신과 맞서는 상대를 무릎 꿇게 만들면서 위로 올라간다. 종로패 우두머리 김기환은 김두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위기에 처한 학생패 신마적 엄동욱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 하야시와 그가 고용한 (김두한의 어린 시절의 인연이자 유일한 싸움 경쟁자인) 김동회를 물리친다. 엄동욱은 김두한에게 종로를 넘겨주면서 그를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2편으로 이어진다.) < 일대종사 >. 궁보삼은 북방 무술과 남방 무술이 서로 교류하는 장을 만들고 자신의 은퇴 이후에 ‘일대종사’라는 명예를 넘겨줄 무술가를 찾기 위해 불산 금루에서 대결의 연회를 연다. 여기에 영춘권을 익힌 엽문이 양광 국술계를 대표하여 차례로 아래서부터 물리치고 올라선다. 궁보삼의 제자 마삼도 그 자리를 탐내지만 궁보삼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삼은 스승에게 반기를 들고 궁보삼은 대결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딸 궁이는 정혼을 파기하고 마삼과 대결하여 그룰 굴복시킨다. 엽문은 ‘일대종사’가 되지만 홍콩으로 건너가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모두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잊혀져간다. 둘의 공통점,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둘은 (영화 제목이 부여하는) 명예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 다음 엽문과 그 모든 인물들은 위에서 아래로 역사의 힘에 의해서 추락한다. 세 편의 이야기 끝에 김두한은 김동회의 부축을 받으면서 종로를 떠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둘 사이의 줄거리의 유사성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단지 장면 안의 인물들의 동선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칭하는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만 이 줄거리를 이용하기 바란다. 임권택 그리고 약간의 사연. < 장군의 아들 >은 임권택 이 이어나가던 창작의 선 안에서 일종의 만곡처럼 보인다. 1972년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를 만들고 난 다음 임권택은 두 번 다시 다찌마와리 영화를 연출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이 영화의 제목이 그 자신의 선언처럼 읽힌다. 그런 다음 < 잡초 >를 만들었다. 새마을영화, 전쟁영화, 반공영화를 만들었지만 다찌마와리에 대해서는 마치 돌아보기도 싫다는 듯이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장르의 영화가 몰락한 것도 아니다. 그런 다음 < 족보 >를 만들었다. 차례로 자기의 탐구를 이어갔다. < 만다라 >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 길소뜸 >과 < 티켓 >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어지면서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새로운 미학적 형식의 기준이 세워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건과 인물, 형식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 씨받이 >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 개벽 >. 천도교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전기. 더 높이 더 멀리 뛰면서 이 땅의 개벽을 소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다음 갑자기 <장군의 아들>을 찍었다. 장르영화에로의 복귀. 물론 누군가는 <개벽>에서 <장군의 아들>로 이어지는 인물의 전기에 대해서 설명할지 모른다. 하나의 선. 나는 가능한 (모델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은 초상화와 같은 탐구가 없다. 여기서 김두한은 캐리커처처럼 단순해졌고, 종종 배경은 평면적이거나 흐릿해져서 공간적인 설정이 아니라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서 그런 단순함을 사랑한다. 하지만 거기서 인물의 가시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한다. 가시성의 형상. 가시성의 장소. 가시성의 방법. 방법의 배열. 인물에게 비치는 빛과 그림자. 불투명성과 투명성 사이의 긴장.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사이의 분배. 우리는 영화에서 그려내는 초상화가 가시성의 체계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임권택은 좀 더 직접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 < 아제아제 바라아제 > 이후 < 하류인생 >까지 영화를 제작했던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이 나한테 자꾸만 한번 하자는 거예요. 처음엔 화를 냈다니까. 그런데 자꾸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 이걸 해보고 싶은 거예요.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게 보고 싶어진 거지요” <장군의 아들>은 임권택 자신에게 (그의 첫 번째 다찌마와리 영화인) 1964년 < 욕망의 결산 >에서 1972년 <떠나야 할 자와 돌아와야 할 자>에 이르는 (<잡초> 이전까지의) 영화와 다시 대면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여기서 배수의 진을 쳤다. “압구정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참 사내답지 않은 아이들이 지천인 거예요. 그 아이들을 데리고 1930년대 경성 거리에서 살아간 사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죠” <장군의 아들>에서 ‘협객’으로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처음 영화에 출연하는 신인들이었다. 남자 배우도 그렇고 여자배우도 그렇다.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배우들. 그 ‘아이’들은 종종 발성이 되지 않았으며, 연기의 동선을 알지 못했고, 씬의 연결에 대해서 현장에 와서 처음 구경했다. “내가 영화를 찍다 중간에 겁이 덜컥 나보기는 처음이에요. 어쩌려고 내가 이런 건가, 라는 순간을 매번 촬영 때마다 마주친 거요. 그래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활기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그걸 놓치면 안 된다, 라는 심정으로 찍어나간 거죠” (아직은 시인이었던 영화감독) 유하 가 양귀자 의 소설 제목 <바람 부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를 패러디해서 <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를 막 발표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시인을 문학과 지성사는 104번째 시집으로 초대하였다. 압구정 거리와 경성 종로통. 두 시대의 ‘모던 뽀이’들. 왕가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왕가위는 < 화양연화 >와 < 2046 >을 만들고 난 다음 잠시 멈추었다. 물론 캘리포니아에 잠시 다녀온 짧은 바캉스와도 같은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가 추신처럼 그 뒤에 달려있다. 나는 <화양연화>의 월드 프리미어 시사를 2000년 9월 18일 오후 7시에 홍콩에서 보았다. (그해 5월 칸 영화제에서는 워크 프린트가 상영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만찬회장으로 가는 차를 함께 타고 갔다. 왕가위는 이제야 끝났다는 약간 지친 표정으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언제나처럼 호화찬란한 홍콩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화양연화>를 지금 막 본 다음이었기 때문에 출렁이는 내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이제까지 당신이 만든 모든 영화들보다 더 훌륭합니다. 왕가위는 선글라스는 벗으면서 고마워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문득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에요. 이 수상한 첨언.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말처럼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말은 수수께끼처럼 내게 머물렀다. 그때는 그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왕가위의 타이밍. 기다리고 있는 배우들. 양조위, 장만옥. 그의 스텝들, 장숙평. 박수소리. 예술적 승리. 술과 요리들. 나는 그 말을 곧 잊었다. 그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러니까 5년이 지난 다음, <2046>을 보다가 문득 극장에서 그 말을 떠올렸다. 집(home)은 그가 살고 있는 집(house)이 아니라 그의 고향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왕가위를 처음 만났을 때 질문했다. 홍콩은 당신에게 어떤 곳인가요. 왕가위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홍콩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단지 홍콩에는 아버지를 따라와서 잠시 머물고 있는 것뿐입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왕가위는 다섯 살에 상하이를 떠나 홍콩에 왔다. 다섯 살의 어린 아이. 그 아이는 홍콩에서 살면서 그 후로 한 번도 여기가 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떠돌고 있는 주인공들. 발 없는 새. (< 아비정전 >)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무사들. (< 동사서독 >) 홍콩에서 캘리포니아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 중경삼림 >) 불면증에 시달리는 킬러. 홍콩의 밤. (< 타락천사 >) 세상 끝에 가보고 싶어요. (< 해피 투게더 >) 앙코르와트. 내게 만일 표가 두 장 있다면 함께 떠나주실래요. (<화양연화>, 혹은 <2046>) 그리고 이번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한 번 홍콩을 반복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1997년을 지난 지 10년도 넘게 지났다. 1936년 광저우 불산. 왕가위는 (이소룡의 스승으로 알려진) 엽문의 전기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오랜 동안 < 상하이에서 온 여인 >을 찍으려던 계획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엽문은 북방무술과 남방무술의 교차로인 불산에서 ‘일대종사’가 되지만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공산당의 전쟁 중에 홍콩으로 거취를 옮긴다. 거기서 어린 이소룡에게 영춘권을 전수하지만 영화는 그 전에 끝난다. < 일대종사 >는 이제까지 홍콩을 떠나거나 떠나지 못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왕가위의 영화와 반대의 지리적 방향으로 진행된다. 혹은 역사적 수순을 따른다. 왕가위는 < 일대종사 >를 만들겠다고 결심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국 전역에 흩어져있는 무술 명가의 일대종사들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무술을 ‘감상’하고, 그들의 안무를 촬영하고, 그런 다음 조언을 구했다. “<일대종사>는 내게 중국의 정신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중국에서는 과거의 유산이 많이 사라졌거나 아니면 바뀌어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치도 버리거나 부서져버렸습니다. 아직 유산을 담고 있는 무언가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무술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정신의 방법을 알고 있는 스승(Master, 一代宗師)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왕가위는 마오쩌둥의 노선에 대한 비판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 해방 이후 유교전통과의 투쟁. 195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의 분서갱유. 문화혁명과 조반유리(造反有理). 일부 수정주의 노선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을 표면적으로 개방했지만 여기는 지금 중국 사회주의 한복판이다. 나는 좀 더 < 일대종사 >의 배경을 설명하고 싶다. <일대종사>는 왕가위의 첫 번째 무술영화이다. 이 영화는 두 번째 무협영화가 아니다. 물론 왕가위는 자신만의 무협영화를 만들었다. < 동사서독 >. 명백히 호금전의 그림자 아래 놓인 영화, 후 샤오시엔을 감탄시킨 사막의 풍경화. 서극은 <동사서독>을 보고 난 다음 탄식을 했다. 나는 이제 더 빨리 찍을 수 밖에 없어요, 왕가위는 가장 느린 무협영화를 만들었어요. 명백히 서극은 < 칼 >을 찍으면서 왕가위를 의식하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미술은 장숙평이다) 장르 안에서의 경쟁. 말하자면 장르라는 경기장. <일대종사>를 만들었을 때 왕가위는 무술 영화의 전통 안에 처음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이건 그가 해본 적이 없는 장르이다. 물론 왕가위는 재치 있게 대답했다. “<일대종사>는 쿵푸영화가 아니에요. 이 영화는 쿵푸에 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때 왕가위는 이번에는 장철의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장철은 < 복수 >를 전환점으로 해서 무협영화에서 무술영화에로 옮겨갔다. 새로운 동작들. 검(劍)은 권(拳)이 되었고, 피아노 줄은 수명을 다했으며, 트램펄린과 편집의 이음새는 좀 더 정교해졌고, 대결의 거리는 좁아졌으며, 더 많은 피를 흘리는 대신 뼈가 부러지는 사운드가 가세하였으며, 몸은 새로운 형태의 도면이 되었다. 피와 살. 신경조직들. 그때 새로이 몸에 자리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시지각의 관계 안에서 몸이 불러일으키는 반응. 때로 타격을 받아 산산이 부서져버리는 몸. 그 안에서 흩어져버리는 생명. 각자의 고유한 몸. 살과 고기. 액션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라는 물(物). 쇼 브라더스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골든 하베스트는 홍콩 액션영화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결정적인 새로운 스타 이소룡, 그의 죽음 ‘이후’ 성룡. 비극에서 희극에로. 정창화 (가운데) 나는 여기서 희미하게, 거의 지워질 듯 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가까스로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이름을 호명하고 싶다. 정창화 . 임권택 에게는 (그 스스로) 영화를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는 정창화 이외의 감독에게서 연출부를 한 적이 없다. “내가 만일 < 장군의 아들 >에서 해낸 액션 장면들이 인상적인 것이라면 대부분은 정창화 감독의 연출에서 가져온 경험들인 거예요” 정창화는 1968년 홍콩 쇼 브라더스에 가서 액션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 천면마녀 >는 홍콩에서 만든 다음 서울에서 개봉하였다. (그리고 유럽에 개봉하였다) 나는 그 영화를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보았다. < 아랑곡의 혈투 >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 철인(天下第一拳) >을 연출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미국에 <5 fingers of Death>로 개봉하여 주말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란티노는 2002년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 투표에서 자신의 10 베스트 영화중의 한 편으로 선정하였으며,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운드트랙을 < 킬빌 >에 인용하였다. 정창화가 홍콩 쇼 브라더스에서 연출할 때 장철은 같은 스튜디오의 경쟁자였다. 그리고 오우삼은 장철의 연출부였다. 물론 오우삼은 정창화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걸 오우삼이 < 첩혈가두 >를 찍을 때 물어보았다. “정창화의 연출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지요. 그 전에는 드라마와 액션 장면을 서로 다른 것으로 여겼어요. 하지만 정창화는 드라마 없는 액션은 감정이 없다고 생각 했어요” 정창화의 시간은 짧았다. 그는 한국에 돌아왔고 1981년 홍콩 뉴 웨이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우삼은 파토스가 충만한 액션 활극을 연출했다. 그게 전적으로 정창화의 영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종종 주윤발의 코트자락, 적룡의 표정, 장국영의 노래 부르는 것만 같은 제스처들에서 그림자가 묻어난다. 임영동은 두 번째 새로운 물결이 되었다. 임영동은 오우삼의 전통에 저항했다. “난 장르 안의 리얼리즘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왕가위는 그를 위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약간 소설처럼 쓰고 싶다. 그는 저 멀리 잠시 동안 머문 다음 떠나간 한국인을 쳐다보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정창화의 영화들은 홍콩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그때 정창화는 무협에서 무술영화에로 이행하는 (혹은 접합하는?) 시기에 잠시 걸쳐 서 있었다. 나는 둘 사이에 있을 지도 모르는 영화적 진동판을 건드려보고 싶다. 영화라는 커뮤니티. 영화사라는 시간적인 울림. 배움의 전이. 경험의 공집합. 방법의 정식화. 자기의 유한 세계 안에서조차 자신이 포함된 세계의 법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방법을 완전하게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이건 위험한 가설이다. 여기서 왕가위 영화의 뿌리는 1960년대 쇼브라더스 무협영화가 아니라 1950년대 광동 오페라양식의 멜로드라마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는 몇 차례이고 광동 오페라에 대한 자신의 매혹을 반복해서 고백했다. 그리고 그 고백을 < 동사서독 >, < 화양연화 >, < 2046 >, 여기에 그 어떤 영화보다도 < 일대종사 >에서 메아리처럼 듣는다. 일그러진 균형. 계속해서 사라지는 등장인물들. 군무와 아리아. 사람들은 이 영화를 대부분 오해했다. 경극과 오페라의 기기묘묘한 착종. 이 무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1950년대 홍콩영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들은 (이 장르의 호사가들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다음 왕가위는 1950년대 할리우드영화와 1960년대 유럽 영화들에 이끌렸다. 그는 십대 소년시절을 영화관에서 보냈다. 왕가위는 그만큼 임권택과 멀리 있다. 왕가위가 그의 첫 번째 영화 < 열혈남아 >를 만들었을 때 임권택은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 아비정전 >을 촬영하고 있을 때 <장군의 아들>이 제작되었다.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미 말했지만 강제로 임권택 과 왕가위의 선을 연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은 내게 방법에 관한 전략의 문제이다. 영화에서 액션은 결국 과정을 보는 기술이다. 그때 우리는 방법의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그것을 보는 지식에 대한 일련의 질문을 위치지어야 한다. 액션의 성질, 동선의 출발. 이 선이 연결하는 변주들. 그 사이의 법칙과 목표 사이의 긴장. 물론 우리는 상황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액션의 시퀀스란 결국 집합의 문제틀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움직이는가. 거기서 집합은 어떻게 분산되고 다시 하나로 모이는가. 누가 장소를 채우는가. 그 장소를 어떻게 채우는가. 동시적인 질문. 말하자면 영화적 순간들의 활용이라는 문제와 우리는 여기서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이때 왜 그 둘이 필요해졌는가. 나는 여기서 임권택을 임권택이라는 집합으로부터 빼내오고 싶다. 우리는 자칫하면 잘못된 운동의 가능성에로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 편의 < 장군의 아들 >은 이 영화들을 둘러싼 < 개벽 >과 < 서편제 >로부터도 이상한 방식으로 떨어져 나와 있으며, 동시에 1960년대 임권택의 다찌마와리로부터도 달아나있다. 그러므로 나는 같은 방법을 따르고 싶은 것이다. 차이와 반복은 여기서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방법이다. <장군의 아들>을 보면서 이 주변을 둘러싼 영화들과 연결 지어 동일하게 다루는 관점을 먼저 피한 다음 모든 것이 뒤에 남겨진 다른 모든 영화들로부터 만들어진 연결과의 차이로부터도 나와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바르뜨의 말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나에게는 가시적인 것의 가시성과 가시성의 가시적인 것 사이에서 <장군의 아들>에서 내가 본 것을 < 일대종사 >가 (마치)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결국 보는 것 속에 위치 지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Ceci n´est pas une pipe 내게 약간의 유머를 허락해주었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르네 마그리뜨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파이프라는 형상. 그때 그 곁에 애매하게 달려있는 언표. 그 설명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푸코는 간명하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상사(相似)는 자신에게로 되돌아갑니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펼쳐졌다가 다시 자신 위로 접히는 것입니다. 나는 같은 방법으로 설명을 흉내 내고 싶다. 그 둘을 동일한 운동 안에 집어넣은 다음 그 둘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서로가 동시에 활동하는 영화적 법칙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형상에 대한 언표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형상으로서의 언표. 언표로서의 형상. 그때 여기서는 어느 쪽에도 우선권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둘 사이의 성격과 형질, 그리고 동선과 과정이 다르더라도 그 안에서 법칙은 언제나 영화라는 과정 안에서의 결정이 행사하는 방식에서 출발하고 그런 다음 귀결된다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보고 싶은 것이다. 임권택 의 결정. 왕가위의 결정. 대부분 영화에서 그 결정은 과정 안에 신비롭게 숨어있다. 나는 그걸 끌어내서 가시성의 할 수 있는 한 가장 순수한 이것임, 을 설명할 수 있는 긍정의 아니다, 에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액션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방법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첫 번째 활동. < 장군의 아들 >에서 김두한의 첫 번째 대결은 영화가 시작한 다음 24분 55초,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하고 4분의 1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처음 나온다. 이 씬 앞에 김두한이 종로패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 싸움,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의 우미관 앞에서의 대결, 그리고 전라도에서 올라온 망치와 김두한의 싸움이 있지만 여기까지는 싸움의 규칙, 인물들 사이의 관계, 지리적인 이동의 체계, 종로와 충무로, 무대로서의 공간의 소개를 위한 것이며 사실상 <장군의 아들>에서 액션 장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씬은 양적으로 매우 짧다. 고작해야 1분이고 그리고 조금 넘은 다음 몇 초 정도를 더한다. <장군의 아들>에서 액션 씬들은 예외 없이 모두 짧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내내 액션 장면들만을 보고 나온 기분이 든다. “액션은 결국 분위기인 거예요, 거기다가 몰아넣기까지가 힘든 거요,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는 빨리 거기서 빠져나올 궁리를 해야만 되요. 이게 길어지기 시작하면 허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제 억지를 부리게 되는 건데, 싸움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기예를 익힌 선수들의 시합을 보아도 정말 잘하는 게 무언지는 그 세계를 아는 사람들의 눈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 내가 무엇을 찍으려는 건지를 먼저 정한 다음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 거예요.” 이 장면은 김두한이 종로패에 막 들어가고 난 다음 거리에서 조선 학생 깡패들과 일본학생 깡패들의 싸움에 휘말려 드는 대목이다. 약간의 설명. 1930년대 경성에서는 조선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이 종종 싸움이 붙었으며, 이 싸움은 민족주의적 파토스가 거기 함께 담겨있어서, 일종의 자존심 대결 같은 양상을 보였다. 물론 이 설명은 역사적인 배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후일 이 시대를 다시 재각색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일 것이다. 홍성유의 원작소설에서 김두한과 그의 종로 깡패들을 협객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싸움에서도 예와 의를 지키면서 승패를 겨루었다. 그건 일본 혼마치깡패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현실 세계 안에 공존하는 일종의 상상적인 또 하나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장르의 규칙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는 또 하나의 세계. 김두한은 여기서 현실세계로부터 장르 안의 세계 질서 안으로 옮겨간다. “거 주먹세계, 거 별거 아니더라구” S#_1 S#_2 S#_3 S#_4 S#_5 S#_6 S#_7 S#_8 S#_9 S#_10 S#_11 S#_12 S#_13 S#_14 S#_15 상황의 설명. 풍미당 빵집에서 지금 막 큰 형님으로부터 가죽 잠바를 물려 입고 배부르게 빵을 먹고 있는 김두한을 청계천 수표교 다리 밑 움막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 진영이 찾아온다. 진영에게 우쭐해진 김두한은 그에게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주면서 책을 사보라고 한 다음 자기는 돈이 필요 없는 자리에 갔다고 큰소리친다. “거 주먹세계, 거 별거 아니더라구”라고 하자 진영은 “너 그러다 종로 휘어잡겠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말에 문득 김두한은 자세를 고치면서 “잡지, 잡고 말고”라고 대답한다. 말하자면 종로패의 우두머리를 위한 첫 걸음. 이제 그 자리를 향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상승이라는 선. 당신은 이 방향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물론 선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는 드라마의 운동. 김두한은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혹은 운명이 그를 그 자리에로 이끈다. 마치 그 대답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두 개의 대답의 차이) 그때 종로패 한명이 뛰어 들어와 김두한에게 다급하게 말한다. “두한이 형, 일본 학생하고 조선 학생하고 한판 붙었는데, 그 왜 있잖아, 오찌아이라는 깡패 두목 그 놈한테 걸린 모양이야”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선. 이때 풍미당 바깥으로 나가면서 김두한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간다. 동선이라는 문제. ( S#_1) 두 가지 설명. 이 대결에 김두한이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김두한이 달려간다. 효과의 이유. 김두한은 의협심이 있으며, 게다가 일본인에게 조선인이 맞는 상황을 참지 않는다. 말하자면 장군의 아들. 아버지 김좌진의 피. 하지만 이 효과는 심리적으로 김두한을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게 허락한다. 김두한은 즉흥적이며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미처 계산하지 못한다. 종종 김두한이 (전체 안에서) 수동적인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능동성에 이끌리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행동의 결정은 시종일관 반복된다. 그리고 이 결정이 종종 사건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설명. 김두한은 운명에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의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증명해야 한다. < 장군의 아들 >은 먼저 말한 다음 거기에 대해서 사건이 다가오고 그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때 마치 김두한은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중적인 반어법. 김두한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항상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때 그래도 김두한이 하는 것은 언제나 대결이다. 우리는 이 대결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으면, 임권택 의 말을 빌리면, 싸움의 분위기 안으로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항상 이미 거기에 있었던 대결. 그 자리에 불려가는 김두한. 우리는 이 대결이 일종의 소급효과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운명의 벡터. 김두한이 달려간 장소는 좁은 골목 안이다. ( S#_2) 김두한과 그를 부르러 온 종로패 사내를 뒤따라 카메라는 그 안으로 약간 흥분한 듯이 함께 안으로 흔들리며 직진한다. 이때 보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흔들림의 신호와 음악의 청각적 기호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카메라를 레일 위에 올려놓았거나 안전하게 크레인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마치 들고 찍은 것처럼 움직일 때 그 흔들림이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인 신호처럼 가시화된다. 물론 이 장면은 장소의 힘이 불러일으키는 구도의 긴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사선으로 이어진 깊이 안으로 우리를 이끌 때 여기에는 두 개의 운동이 있다. 하나는 카메라가 김두한과 종로패 사내와 함께 우리를 이끌고 들어가는 전진의 인력이지만 다른 하나는 사선의 깊이 안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가상선의 교차점에 서 있는 오찌아이의 존재감이다. 이 골목에는 오로지 직선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선은 양쪽으로 교차하듯이 가운데를 향하고 있다. 거기서 김두한은 자기의 첫 번째 대결을 치러야 한다. 이때 이 골목이 단지 수평 직선이 아니라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상승의 방향으로 저 뒤쪽 배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올라서야 하는 계단. 그 첫 번째 대결의 장소. 일종의 장면을 설정하는 쇼트(master shot). 김두한의 자리에서 멀리 있던 카메라가 단숨에 대결 장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임권택은 오찌아이에게 얻어맞는 조선학생이 땅바닥에 뒹구는 모습으로 바로 뛰어 들어간다. ( S#_3) 이 쇼트는 앞의 쇼트에서 이어져야 할 두 개의 다이어그램에서 김두한을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시선의 교차점을 잘라낸 것이다. 시선의 교환 사이의 데쿠파주. 김두한은 구경꾼의 자리에 있으며 오찌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오찌아이가 그를 바라보는 것(reverse_shot)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선을 성립시키지 않으면 그 둘을 대결의 관계로 이어붙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두 개의 집합 중에 바깥의 블록으로부터 내부의 블록 안으로 시선의 고정점을 들여보내야 한다. 오찌아이를 찍은 다음 장면( S#_4)에서 그는 손가락을 들고 화면 정면을 향하여 “다음 놈은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물론 그 손가락은 조선 학생들을 향한 것이지만 ( S#_5) 앞의 장면과 마주보는(reverse_shot) 다음 쇼트의 9명의 인물 중 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은 김두한이다. 이때 임권택(과 정일성 )은 오찌아이와 김두한 사이를 오가면서 두 인물의 크기를 거의 동일하게 맞춰놓았다. 이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9명을 세워 놓으면서 아무도 인물들 사이에서 겹쳐 세워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 9명은 좁은 골목 안에서 반대로 수평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김두한을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 학생복을 입혔기 때문에 짧은 쇼트지만 시선은 김두한을 꼭짓점으로 하여 옆으로 벌어져 보인다. 임권택은 골목의 사선과 면 사이에 인물을 세워놓을 때 반복적으로 수평 구도로 늘여놓는다. 패배감에 조선학생들이 등을 돌려 돌아가려 할 때 김두한은 그들과 함께 등을 돌리면서 슬그머니 가죽 잠바를 벗는다. 등 뒤에서 오찌아이가 “이제 없는가?” 라고 물어볼 때 ( S#_6) 김두한이 돌아서면서 “여기 또 있다”라고 대답한다. 이 쇼트는 하나의 행동을 둘로 나눈 것이지만(double_action) 동시에 방향을 바꾸면서 상대방에로 시선을 돌리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다. 이때 임권택은 동시에 9명 속에 섞여있었던 김두한을 그들로부터 떼어내는 효과를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김두한이라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이 골목은 너무 좁아서 45도로 비틀기에 적절한 위치가 없다. 어쩌면 벽면의 붉은 색 벽돌은 이 골목의 연속성으로부터 인물의 행동을 고립시킬 수도 있다. 임권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돌아보는 김두한과 그 시선을 따라가면서 벽면과 사선으로 평행이 되도록 세워 놓았다. 김두한의 대답이 오찌아이가 돌아보는 쇼트(reverse_shot)를 성립시킨다. ( S#_7) 구경꾼들이 배경으로 수평으로 늘어서 있고, 돌아가려는 일본학생들이 멈칫 할 때 오찌아이만이 마치 조건반사처럼 정확하게 돌아본다. 그들 사이에서 최고의 싸움꾼. 김두한과 겨뤄야 할 첫 번째 상대. 그가 보여주는 예민한 신경. 그 힘을 다시 이쪽으로 옮겨오기 위해서 거기에 먼저 힘을 실어야 한다. 오찌아이는 일본학생들 사이를 걸어 나온다. 정면으로 직진하는 오찌아이를 바라보며 그 앞으로 나서는 김두한의 얼굴을 가까이 다가갈 때(close_up) 거기서 보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표정 속의 눈이다. 마치 상대방을 반사하는 것만 같은 눈 안의 빛. 얼굴 위에 덧 쓰여진 표정. 그 위에 상대방을 향하는 시선, 그 시선의 방향을 따라 김두한이 화면 바깥으로 이동할 때(out_of_frame) 그는 마침내 오찌아이의 프레임 안으로(into_frame) 들어서는 것이다. 이제 두 개의 다른 블록이 하나가 된다. 혹은 여기서 저 안으로 이동한다. ( S#_8) 이때 김두한과 오찌아이는 먼저 서로를 마주보면서 상대방을 가늠한다. 물론 김두한이 블록 안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먼저 김두한의 등 뒤에서 오찌아이를 바라보고 ( S#_9) 그런 다음 (reverse_shot) 오찌아이의 등 뒤에서 김두한을 쳐다본다. ( S#_10) 여기서 오찌아이가 김두한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할 때 그를 마주보는 김두한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동선의 일치이다. 탐색전을 벌이던 두 사람을 동일하게 한 프레임으로 잡을 때 갑자기 카메라가 그들의 머리 위로 올라간 다음 수직으로 내려다본다. ( S#_11)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의상밖에 없다. 이 프레임의 구도는 오찌아이를 왼쪽에 세우고 김두한을 오른쪽에 세운 다음 골목을 마치 경사 앵글처럼 비스듬하게 세운다. 이 구도가 이들의 대결을 역동적으로 만든다고 설명하는 것은 상투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이 쇼트는 독립적인 프레임이 아니라 리듬 안에 놓여진 것이다. 김두한과 오찌아이가 서로를 마주볼 때 이 좁은 골목에서조차 오찌아아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내려왔고( S#_9) 김두한은 아래서 위로 오찌아이를 올려다보면서 올라간다. ( S#_10) 결합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위와 아래. 이 높낮이를 만들면서 동시에 이 균형관계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카메라는 구태여 왼쪽과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서 중앙 소실점의 성립을 피하고 있다. 그런 다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때 수직으로 내려다보이면서 동시에 경사진 구도에서 오찌아이가 왼쪽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움직일 때 김두한은 오른쪽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움직인다. 물론 이 시선은 영화를 보는 쪽에서만 성립되는 높낮이이다. 그러나 임권택은 두 인물을 각자의 동선을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이 둘을 하나로 만드는 블록 안에서 높이의 배치를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둘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S#_12) 갑자기 구경꾼들 바깥으로까지 빠져나간 다음(long_shot)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좀 더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내리 누르듯이, 찍은 구도에서 오찌아이가 저 멀리 보이고 그 앞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김두한의 위치는 잘못된 배치이다. 영화 문법적으로 이 두 사람의 배치는 김두한과 오찌아이의 상상선이 맞지 않는다. 약간 에매하지만 둘 중의 하나가 맞지 않거나 혹은 위치가 바뀌었다. 하지만 수직으로 내려다본 카메라의 위치가 완전히 이 시선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에 마치 이 쇼트는( S#_11) 일종의 인서트처럼 쇼트 사이를 그냥 건너간다. 물론 이 쇼트 자체는 인서트가 아니다. 간단한 설명. 이 쇼트를 삭제하면 두 개의 쇼트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 S#10_ S#_12) 여기서 갑자기 이상한 쇼트의 교환이 일어난다. 완전히 구경꾼 바깥으로 빠져나갔다가 김두한이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 때( S#_13) 카메라는 두 사람 사이 안으로 가깝게 들어와서 순간적인 디테일을 보여준다.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액션의 속도 자체에 변화를 주어서 스텝 프린팅의 방법으로 다시 변속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재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 S#_14) 이때 앞의 디테일의 쇼트와 다음 장면을 연결시키는 것은 스텝 프린팅의 변속으로 이어지는 액션의 리듬이다. 이 효과는 우리에게 클로즈 업 다음에 바로 뒤이어 완전히 뒤로 물러난 롱 쇼트로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 디테일의 전부를 하나의 연속된 장면으로 본 것만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다음 김두한의 발아래 땅바닥에 쓰러진 오찌아이를 다시 가까이 다가가서 보여준다. ( S#_15) 이 4개의 쇼트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쇼트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힘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어떤 미학적 원칙에 따른 것인지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무언가 각 쇼트마다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만든 다음 서로 유기적인 체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그룹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자, 나는 같은 질문을 왕가위의 < 일대종사 >를 보면서 다시 던져볼 것이다. 물론 그런 다음 다시 < 장군의 아들 >로 재빨리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대종사>를 돌아볼 것이다. 궁가 64수의 창안자인 궁보삼은 최고의 필살기 노원괘인을 마삼에게 설명한다. “이 초식의 정수는 고개를 돌려보는 것이다. 타격이 아니라 돌아보는 것이지” 나는 그 말을 믿어볼 참이다. (첫 번째 이야기 끝, 두 번째 이야기 계속) 장군의 아들 1990년 108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태흥영화㈜ 각색 윤삼육 촬영 정일성 조명 차정남 편집 박순덕 음악 신병하 박상민 김두한 신현준 하야시 이일재 김동희 방은희 화자 by.정성일(영화평론가,영화감독) 2013.09.13
  • 연재 [임권택X102]장군의 아들 The General's Son, 연작 (네번째 이야기) ... (네 번째 이야기)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걸 지젝은 외설적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 순간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가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순간과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사 속에 수 없이 등장한다. 아마 누군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버스터 키튼의 < 셜록 주니어 >를 떠 올릴지 모르겠다. 정반대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지가 베르토프의 < 카메라를 든 사나이 >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나는 그냥 별다른 검색을 하지 않고도 이 자리에서 백편 이상의 제목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영화 안의 영화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여기서 내가 다루려는 영화 안의 영화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영화 안의 영화는 두 가지 영화가 있다. 하나는 버스터 키튼이나 지가 베르토프처럼 영화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영화 안의 영화를 (말 그대로)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영화 속의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이 영화를 보러가는 바람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이다. 이때 이 영화는 여기서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영화의 필요에 의해 그 영화를 만들어내는 경우이다. 금방 떠오르는 예. 우디 앨런의 < 카이로의 진홍빛 장미 >.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첫 번째 설명의 예가 될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그저 무턱대고 다른 영화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화 안에 끼어드는 경우이다. 물론 오로지 다른 누군가의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차이밍량의 < 안녕, 용문객잔 >은 내내 호금전의 < 용문객잔 >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배회하면서 그 영화를 보다말다 하기를 반복한다. 그런 다음 이 사이에 수많은 변주가 있다. 영화가 영화 안으로 들어갈 때 즉각적으로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영화 안의 영화는 그 영화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는 한편으로 서로에게 의지하지만 동시에 모든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영화 안의 영화는 자기를 표명하는 대신 자기의 존재 방식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어떤 영화는 대화를 나누지만 어떤 영화는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가장 이상한 경우는 독백을 하기 시작할 때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 둘은 고스란히 겹쳐지지 않는다. 같은 말이지만 (반대의 방향에서 즉각적으로 저항하자면) 그 위에 덧씌워지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영화 각자의 고유한 존재의 권리 행사. 이때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오는 순간이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만큼 항상 아방가르드한 것은 아니며 대중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 영화에서 저 영화에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영화 안에 영화를 감금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반대로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올 때 영화의 환대란 순환이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어떤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안의 영화는 그 영화가 꾸는 꿈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 안의 영화는 영화의 안에 들어온 바깥이다. 영화 안의 영화는 가까스로 하나로 모아놓은 영화의 서로 다른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면서 영화 안의 모든 기호들을 분산시키려들 것이다. 그런 다음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경험에 대한 한계를 일깨우고 갑자기 그 바깥으로 나가려 들 것이다. 영화 안의 영화는 단지 +1이 아니다. 블랑쇼의 말처럼 바깥이란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든다. 이때 영화 안에서 영화를 잡아당길 때, 끌어들일 때, 감싸 안을 때, 잠시 한눈을 팔 때, 원컨 원치 않건 그 안으로 단지 다른 영화가 들어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역사가 끼어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단지 구조 안에서의 대화에 머물지 않고 여기에서 저기로, 그런 다음 다시 저기서 여기로 이행할 때 그 과정 중에 전혀 다른 두 개의 리듬이 공존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른 존재가 역사 안에서 견뎌가는 자기의 근거를 내세우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근거의 지평. 근거의 각자의 전술. < 외아들 一人息子 > (오즈 야스지로, 1936) 나는 곧장 임권택 의 두 편의 < 장군의 아들 > 안에 머무는 두 편의 영화 안의 영화로 달려가기 전에 두 편의 경험을 먼저 말하고 싶다. (좀 수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다 말고 영화 안의 영화를 보게 된 적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즈 야스지로의 < 외아들 >을 보다 말고 갑자기 빌리 포르스트의 <미완성 교향악>을 보게 되었을 때 어떤 쇼크를 느꼈다. 이 영화는 오즈의 첫 번째 토키이다. 언제나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진행하던 영화가 35분 19초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와 아들은 제국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두 세 개의 텅 빈 방안 장면을 보여준 다음 보는 쪽은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게도) 느닷없이 <미완성 교향악>의 한 장면이 마치 다음 쇼트처럼 이어진다. 물론 오즈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영화를 보기 위해서 극장까지 가는 장면을 찍지 않았으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빌리 포르스트가 1934년에 연출한 첫 번째 영화 <미완성 교향악>의 쇼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갑자기 이어질 때 누구라도 멈칫 거기 서버릴 것이다. 마치 영화가 중단된 듯한 기분. 프란츠 슈벨트와 소프라노 가수 카롤린의 사랑을 담은 이 영화의 원제는 연가곡 ‘백조의 노래’ 중의 한곡인 ‘세레나네’의 첫 구절 “Leise flehen meine Lieder (나의 노래를 나지막이 노래하네)”이지만 일본에서 <미완성교향악>으로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고 비평가들로부터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오즈가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1936년에는 매년 써 오던 일기를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오즈는 슈벨트와 카롤린을 보여준 다음에야 비로소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 어머니와 아들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그런데 자꾸만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그만 고개를 떨군다. 아들은 약간 부끄럽지만 금방 그런 어머니를 미소를 머금으며 쳐다본다. 두 개의 영화는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가기 시작한다. 오즈의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멈춰 서 있지만 빌리 홀스트는 화면의 크기를 바꿔 가면서 두 연인을 보여주다가 밀밭 사이를 걸어가는 카롤린을 따라 수평으로 바람결처럼 쫓아간다. (horizontal_tracking)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체계, 다른 리듬, 다른 원칙, 다른 배우, 다른 국적, 단지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멀리 있다. 여기서는 어느 쪽도 어느 쪽에 안주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오즈는 <미완성 교향악>의 장면을 그대로 가져오긴 했지만 <외아들>의 진행 리듬에 맞추어 잘랐기 때문에(decoupage) 기괴하게도 원래 영화의 장면은 알겠는데 빌리 포르스트의 리듬을 가늠할 수가 없다. 뭐랄까, 여기엔 잘 설명하기 힘든 불화 속의 무효가 있다. 오즈는 <미완성 교향악>으로부터 아무 것도 이용하지 않는다. 두 영화 사이의 침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에서 분할의 관계는 일단 구조 안에 들어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립적이고, 더 적대적이며, 더 주관적이고, 더 분명하게 서로의 주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말하자면 여기서 (그것이 원래의 의도인지 아닌지를 주장하긴 어렵지만) 결국 쇼트가 연결된다는 것은 서로를 잡아당기면서(attraction) 다시 한 번 에이젠쉬테인 프로그램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이젠쉬테인이 종종 인용한 윌리엄 브레이크의 말. “내가 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체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Film en douze tableaux > (장 뤽 고다르, 1962) 두 번째 예. 물론 가장 잘 알려진 예는 고다르의 < 비브르 사 비 >이다.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이 영화 세 번째 장 <아파트 관리인, 폴, 잔 다르크의 수난, 저널리스트>에서 안나는 극장에서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을 본다. 하지만 오즈처럼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insert_shot)이 먼저 나온다. 고다르는 그걸 약간 카메라를 비스듬히 누여서 한밤중에 극장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네온사인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여기가 극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왼쪽에 매달린 사인인데 CINE만 보이고 MA는 꺼져있다. 이 극장이 별 인기없는 변두리 극장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아마도 그런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라면 지금 하는 영화는 철지난 영화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른쪽 아래 비스듬히 < JEANNE D’ARC >라고 제목이 걸려있는 네온사인이다. 잘 알려진 잔 다르크에 관한 영화는 세 편인데 하나는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 >이고 다른 하나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으로 나온 (빅터 플레밍 연출의) < 잔 다르크 (Joan of Arc) >,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 잔 다르크 재판 (Le proces de Jeanne d’Arc) >이다. 그런 다음 한참 뒤에 자크 리베트는 <잔느 성처녀>라는 제목 아래 <전쟁터>와 <감옥>을 찍었다. (나는 여기서 구태여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셈에 넣지 않았다. 물론 몇 편의 잔 다르크 영화가 더 있다) 다만 브레송은 고다르가 <비브르 사 비>를 찍고 있을 때 그 영화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고다르(의 주인공들)은 보러갈 틈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구태여 한글 제목 옆에 원제를 병기한 것은 아래 비스듬히 보이는 제목 < JEANNE D’ARC >라는 네온사인은 아무래도 <비브르 사 비>를 위해서 제작한 것 같기 때문이다. 드레이어의 영화 앞에는 < La passion... >이 붙어있고 빅터 플레밍은 영어식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 번째 장을 시작하면서 ‘...잔 다르크의 수난...’이라고 표기했지만 이것이 영화 제목이라는 별도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극장 간판이 보이고 난 다음 나나는 극장에 들어간다. 화면을 향해서 바라보는 관객을 오른쪽에서 수평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화면에서 무슨 영화를 상영중인지 알 수가 없다. 불이 꺼져있기 때문에 영화를 상영중이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 소리도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무슨 영화를 상영중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가 무성영화라는 것이다. 뒤에 앉은 남자는 따분하게 바라보고 있고, 앞에 앉은 남자는 옆에 앉은 여자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는다. 나나는 그들을 지나 더 뒤에 가서 앉는다. 고다르는 나나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여주는 대신 그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잔 다르크를 연기하는 팔코네티의 커다란 클로즈업을 보여준다. (잔혹연극으로 알려진) 앙토넹 아르토가 연기하는 사제가 잔 다르크에게 화형이 구형되었음을 알려주러 온 그 유명한 대목이다. 사제는 약간 비웃는 듯도 하고 또 그만큼 가련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 소식을 전한다. “사형이 결정되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묻는다. “무슨 형인가요?” “화형입니다” (물론 이 대사는 자막으로 진행된다) 그때 아무런 분장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짧게 깎은 팔코네티가 연기하는 잔 다르크는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는 눈꺼풀을 참아가면서 극심한 두려움을 참아낸다. 그저 단지 이 얼굴을 클로즈업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피로에 지친 피부. 자기도 모르게 감기는 것만 같은 눈. 생명이 거기서 증발하고 있다. 그때 그 얼굴은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만 같은 시선. 드레이어는 그 장면에서 기적에 가까운 쇼트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마치 자기의 시선을 거두는 것만 같은 표정. 영화에서 불가능의 성립. 그때 고다르는 재빨리 이 클로즈업에 나나가 마치 넋을 잃어버린 것처럼 바라보는 클로즈업을 이어 붙인다. (reverse_shot) 물론 잔 다르크의 시선 없는 표정은 나나의 얼굴이 바라보는 시선과 (노엘 버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접합되지 않는다. 그때 이 접합의 핵심은 나나를 (앞의 쇼트인) 잔 다르크에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나를 (다음 쇼트인) 사제가 바라보는 것처럼 연결시키고 있다. 시네마데크에서 머물러 살다시피 한 고다르는 이 쇼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고다르는 나나가 영화(속의 잔 다르크)를 바라보는 모습을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상상선을 따라가면서 찍었다. 영화 이론은 이 장면을 고다르가 브레히트를 따라 이화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마치 누군가 훔쳐보고 있는 것처럼 찍었다고 다소 따분하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설명한다. 누가? 바로 우리가. 그래서 이 장면을 우리에게 영화란 훔쳐보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도덕적인 쇼트라고 불렀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나의 쇼트를 잔 다르크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대신 사제가 바라보는 쇼트라고 설명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판본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사제는 두 사람을 겹쳐놓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때 한 명은 물론 잔 다르크지만 다른 한 명은 나나가 된다. 물론 이 두 개의 쇼트는 단순하게 교환되지 않는다. 고다르의 믿음. “씬을 어디까지 지속해야할 지를 아는 것은 이미 몽타주이다” (<나의 멋진 근심, 몽타주>) 지속의 문제는 동시에 중단의 문제이다. 이때 무엇을 무엇과 연결시킬 것이라는 결정은 본다는 동사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고다르가 영화를 종종 (구조주의자들과 아무 연관 없이) 언어처럼 다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개의 주어. 하나의 목적어. 그 사이에서 고다르는 동사를 구부러뜨린다. 영화 안의 영화를 영화의 안과 바깥으로 나누는 대신 영화 바깥을 영화 안으로 밀고 들어간 다음 두 명의 주인공을 영화 안에서 바라보게 만들 때 나나는 잔 다르크의 자리로 간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나의 눈물을 정말 브레히트적인 방법으로 쳐다볼 수 있게 된다. 벤야민은 브레히트를 설명하면서 중단을 끌어들인 다음 거기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도 비유할만한 감정이입의 전도를 본다. 고다르는 그 방법을 영화적인 판본으로 조금 더 밀고 나아간다. 나나는 잔 다르크처럼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화형을 당하게 될 자신의 운명을 거기서 말 그대로 자기 눈으로 자신의 미래를 본다. 마지막 장면. 총에서 불을 뿜으면서 추운 겨울날 대낮 거리에서 버림받은 개처럼 죽게 될 신세. 임권택 은 조금 다른 경로를 따라간다. < 장군의 아들 >에 갑자기 다른 영화가 침입하는 순간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첫 번째 편이고, 다른 한 번은 두 번째 편이다. 그리고 세 번째 편에는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이 없다. 두 번 모두 물론 오즈처럼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고다르처럼 감정교육의 프로그램에 따라 구성한 것도 아니다. 임권택은 우리에게 충분히 준비를 하게 만든다. 우선 세 편의 <장군의 아들> 중 첫 번째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을 둘러싼 줄거리에 관한 약간의 설명. 이제 막 수표교 굴레방 다리 거지패을 떠돌던 김두한은 극장표를 얻었다가 그것 때문에 종로패 ‘똘마니’들과 시비가 붙고 거기서 보여준 주먹 솜씨 때문에 쌍칼의 눈에 든다. 하지만 김두한은 극장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쌍칼은 그런 김두한을 우미관의 주먹패 우두머리인 김기환에게 데려간다. 아직 김두한의 솜씨를 모르는 김기환은 그에게 극장 안에서 상영 전에 좌판을 메고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군것질 거리를 파는 일을 맡긴다. 임권택은 여기서 삶을 불어넣기 위해 김두한의 생활을 묘사하는 디테일을 살려 놓는다. 이 장면을 둘러싸고 겹겹이 종로의 시장통 일상생활이 담기고(insert_shot) 여기서 쇼트는 종종 초상화와 장르화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그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 장면들은 단지 활기를 불어넣거나 혹은 화면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키려든다기보다 그 이상으로 종로 거리 자체를 하나의 고유한 시간 질서를 지닌 세계로 이끌어 올린다. 말하자면 여기서 이 일상의 디테일들은 다른 시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 질서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사이에서 인물과 일상 사이의 친화성이라는 관계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임권택이 영화 안에 영화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시간의 질서라는 리듬 안에서 찾아야 한다. < 국경 > ( 최인규 , 1939) 김두한이 우미관에서 일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영화의 무대는 종로 2가 89번지에 자리한 극장 앞으로 옮겨온다. 한국영화사 속에서 수많은 영화 이야기가 여기서 모이고 흩어지곤 했던 전설적인 우미관은 1912년 12월 9일 개관을 한 1,000석 규모의 대형극장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극장이었다는 뜻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미관은 한국전쟁 중에 전관 소실되었고, 휴전 이후 다시 문을 열었지만 1959년 화재로 전소한 후 재개봉관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 쇼 무대와 영화를 번갈아하면서 역사 속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은 1939년이다. 단성사와 함께 경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극장. 오늘 오후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이 우미관 앞에서 종로 상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벼르던 대결을 벌일 것이다. 그 하루를 시작하면서 종로 빵집 유리창 너머로 우미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간판이 슬쩍 보인다. 간판에는 < 國境 >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 감독 崔寅奎 , 그리고 주연에 金素英 , 李錦龍 , 崔雲峰 , 이라고 써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경>은 한국영화사에 두 편이 있다. 한편은 1923년 1월 24일 단성사에서 단 하루 개봉하고 (기술상의 이유로) 간판을 내린 김도산 의 연출 작품이고, 다른 한편은 1939년 5월 20일에 개봉한 최인규의 연출작품이다. 나는 < 장군의 아들 2 >와 < 일대종사 >의 상상의 연표를 재구성하면서 이 두 편의 영화 사이에서 1940년에 서로 우연히 스쳐지나가듯 이어진 서로 다른 계절의 각자의 대결에 대해서 셈했다. 그 셈에 따르면 < 장군의 아들 > 일편은 그 전해인 1939년의 이야기일 것이며 여기서 상영중인 <國境>이 최인규의 영화인 것은 연대기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국경>은 한국영화사 속에서 사라진 영화중의 한편이기 때문에 <장군의 아들>에서 사용된 장면은 임권택 이 연출한 영화(found_footage)이다. 하지만 여기에 약간 복잡한 문제가 있다. 이때 임권택 은 간판에 최인규 의 < 國境 >를 내걸고 있지만 그걸 장면에 담으면서 이 영화를 참고한 것 같지 않다. KMDb의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K국경지대의 밀수단 두목 이금용 에게는 애첩 김소영 이 있었다. 애첩 김소영은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려 한다. 한편 이금용의 부하 전택이 는 김소영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전택이는 김소영을 도와 밀수단 소굴에서 탈출한다. 이금용 일당이 그들을 추격한다. 격투가 벌어졌다. 피투성이가 된 전택이는 사력을 다해 이금용 일당을 때려눕히고 김소영과 함께 국경을 넘어간다”라고 되어있지만 아마도 이 줄거리는 1923년에 만든 김도산 의 < 국경 >의 줄거리인 것 같다. 같은 KMDb의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국경지대의 밀수단 두목의 애첩과 그 부하간의 사랑을 위한 도피행각을 그린 영화”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최인규의 <국경>은 김도산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니다. 좀 더 믿을만한 최인규의 <국경>의 줄거리 소개는 다소 장황하지만 이렇게 이어진다.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에 사는 빈농에 사는 김용태에게는 외딸 영자와 그의 약혼자 이세림이 있었다. 세림은 어렸을 때부터 용태가 키워온 고아였다. 늙은 용태에게는 그들의 성장과 혼례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을 키우기 위하여 생긴 채금(債金)이 항상 붙어 다녔다. 어여쁜 영자에게 딴 마음을 두고 있는 박동일도 그 채권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용태에 대한 그의 수단을 볼 때 양자로써의 세림의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기야 세림은 동일에게 얼마만한 기한을 약속하고 영자나 용태에게 아무 말 없이 마을을 떠나 신의주 밀수자들의 무리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처럼 꿈꾼 일확천금의 꿈은 흩어지고 몸까지 상하여 가지고 그는 뜻에 없는 귀향을 하게 된다. 세림이가 돌아온 그날 밤 세림과 동일 사이에는 영자를 중심으로 대소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를 두려워하여 사랑하는 양인(兩人)이 아무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날 수 있게 하려는 마음으로 용태는 늪에 몸을 던지나 한편 세림도 또한 그릇하여 칠성이란 백치의 사내를 죽이게 된다. 이리하여 고향은 그들에게 안주(安住)를 허락지 않고 세림은 치사죄로 팔년의 징역을 간다. 영자는 감형운동으로 평양에 공소(控訴)하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몸을 팔았으나 결국 무죄는 안 되고 삼년의 감형이 되었을 뿐이다. 그 대신 영자는 몸값 삼백 원 때문에 상술집 계집으로 창녀라는 윤락의 길을 밟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림에 대한 사모의 염(念)은 영자로 하여금 여급으로까지 구하여낼 수 있었다. 마을의 비극 이래 동일은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행방불명이 되나 삼년이 지난 어떤 날 안동에서 영자와 기이한 해후를 한다. 영자는 그가 너무나 양심적 인간으로 변한 것에 고민하나 그러나 압제(壓制)할 수 없는 복수지념(之念)에 이끌려서 품었던 비수로 동일을 찌를 때 도리어 실수하여 절벽에 다리를 떨어져 다리를 상한다. 일 년 후 절름발이가 된 영자는 동일의 호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애처로운 여자였다. 어떤 날 밤 은(銀)밀수를 밀고한 이가 밀수자에게 붙들렸을 때 영자는 비로소 동일을 떠나서 살 수 없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운명의 장난! 영자는 그저 동일의 품에 안겨서 흐느껴울 뿐이었다. 그리하여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아름다운 생활을 꿈꾸면서 평양의 감옥을 나온 세림이가 본 영자는 이미 동일의 아내였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스런 어린 것까지 있었다. (끝)” (동아일보 1937년 5월 7일자, 이 소개 중 한자를 한글로 표기했으며, 지금과 다른 맞춤법 일부를 수정한 이외에 그대로 옮겼다) 그러나 < 장군의 아들 > 속의 <國境>을 보고 있으면 임권택은 김도산의 판본과 최인규의 판본 어느 쪽도 따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간판에 따라 최인규의 <국경>을 염두에 두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이 영화가 무성영화라는 점이다. 최인규의 판본은 토키영화이며 개봉 당시에 이 영화는 “빼어난” 녹음으로 당시 신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최인규 자신도 “보기 좋은 영화의 첫째 조건으로 나는 화면과 음향이 깨끗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철학적인 것보다도 그 형식이 미려한 것을 취하고자 합니다. (...) 내가 <국경>을 연출하는 데 취한 첫 의도는 그렇게 화창한 것이었습니다” (동아일보 1938년 11월 16일자)라고 대답했다. 임권택은 (꼭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한국영화사 안에 존재하는 <국경>을 영화 안으로 가져온 다음 최인규의 영화와 상관없는 <國境>을 만들 때 이 디테일은 단지 시대적인 고증과 상관없이 (혹은 심지어 그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영화 안의 영화로부터 영화의 일부에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국경>은 너무 유명한 영화이기 때문에 만일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다소 까다로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나는 임권택이 영화 안에서 얼마나 디테일의 세부 안으로 들어가서 그 자체로 하나의 증언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國境>이 <장군의 아들> 서사 안에 개입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일부를 연결하거나 혹은 어떤 계기, 전환의 순간, 희미하지만 둘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 설명을 시작하는 사건(이나 인물 사이)의 환유, 아니면 결정적인 궤도의 이탈, 때로 전혀 상이한 맥락에서 마주치게 되는 두 개의 상황 사이의 텔레파시, 그런 것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國境>은 내게 단지 일부가 잘못된 지식이 아니라 잘 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무언가 다른 것을 지칭하면서 거기 그렇게 머물고 있는 측면 원근법적 장치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S# 10 ​​​​​​​S# 11 ​​​​​​​S# 12 ​​​​​​​S# 13 ​​​​​​​S# 14 ​​​​​​​S# 15 ​​​​​​​S# 16 나는 먼저 영화와 영화 안의 영화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우미관에서 상영하는 < 國境 >의 간판을 보여준 다음 영화가 상영하는 극장 안까지 들어오기 위해서 임권택 은 거의 굽이굽이 안을 돌아가듯이 한참을 극장 건물 안 여기저기를 돌아본 다음에야 비로소 객석으로 들어온다. 표를 사지 않고 창문을 넘어 몰래 화장실 변기통 밑에 숨어 있다가 영화를 보려는 아이들을 따라가는 것은 단지 한 시대의 풍속이라기보다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서사의 경제성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이 아이들은 김두한의 어린 시절을 압축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김두한을 상상하는 우리들의) 감정적인 진동판을 건드린다. 그런 다음 붙잡힌 아이 중의 하나를 끌고 가서 대걸레로 씻겨주고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객석에 들어설 때 (그게 다소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인격의 일부로서의 행동을 보여주는 절차가 된다. 하지만 임권택은 영화 <國境>을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김두한의 동선을 끊어낸다. 누구라도 여기서는 멈칫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마치 줄거리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슬그머니 극장 무대 커튼을 걷고 (관객이 얼마나 찼는지를 보기 위해) 객석을 몰래 쳐다보는 변사의 얼굴이 보인다. ( S#_1) 나는 여기까지 보면서 단 한 번도 변사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떤 소개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갑자기 시선의 방향이 옮겨갔다. 마치 여기서부터 극장이라는 건축이 자기의 시선을 갖고 활동하듯이 슬그머니 시선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임권택의 연출이 종종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내기의 순간, 슬그머니, 라는 보이지 않는 단락(短絡). 마치 그걸 우리에게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순간적으로 마치 암전된 것처럼(fade_out) 검은 화면을 그 사이에 넣기라도 한 듯 카메라 앞을 완전히 가로 막았다가 지나쳐서 변사가 무대 위로 올라온다. 마치 막이 다시 열리는 듯 한(wipe_out) 검은 화면의 순간적인 이동. 변사가 의자가 앉으려는 순간 저 멀리 왼쪽 화면 끝에서 거의 같은 동작으로 극장 맨 끝자리보다 더 뒤에 자리한 입검석(立檢席)에 일본 경사 두 명이 앉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 극장 불이 꺼지고 변사가 대사를 낭독하기 위해 책상 위의 전등을 켠다. 저 멀리 영사실에서 영사기의 불빛이 한줄기 쏟아져 나온다. 말하자면 영화가 시작된다. ( S#_2) 갑작스러운, 차라리 이제까지 < 장군의 아들 >을 보던 관객들에겐 난데없는 흑백화면에 그려진 그림. 그때 변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국경, 아 살얼음 치는 국경!” (voice_over) 나는 여기서 멈칫 설 수밖에 없었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1.85 사이즈의 영화가 없다. 그런데도 <國境>은 태연자약하게 이 화면 사이즈로 시작한다. 물론 위아래를 잘라낸 것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1.33 화면은 무조건 양 옆을 검게 만들 것이다. (black_masking) 그러면 <國境>과 <장군의 아들>은 서로 완전하게 떨어져나가게 될 것이다. 임권택은 두 영화 사이를 흑백과 칼라로 나누는 정도에서 멈춘다. 그런 다음 그 둘을 변사의 목소리로 이어 붙인다. ( S#_3) 이어지는 변사의 목소리. “조선과 만주를 가르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한 많은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느냐. 서해로 가느냐, 태평양으로 가느냐,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때 화면은 이미 영화가 시작한 극장 안으로 김두한과 소년이 들어오는 것을 보여준다. ( S#_4) 즉각적인 질문. 그렇다면 <國境>의 첫 장면을 김두한은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약간 까다로운 논제와 마주치게 된다. 만일 우리가 김두한을 경유하지 않고 영화 안의 영화를 보게 된다면 우리의 시선(sight)이 머무는 자리(site)는 어디인가? 나는 뒤늦게 극장 안에 도착한 김두한이 만들어낸 균열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나는 여기서 김두한이 <國境>을 본다기보다는 <國境>을 보는 김두한을 본다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 뒤이은 <國境>의 장면은 김두한이 그 장면을 보기 때문에 되돌아왔다기보다는 마치 잠시 김두한에게 한눈을 팔았기 때문에 원래의 화면에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 S#_5) “한편 여기는 국경도시 의주, 쫓기는 사나이들이 있었으니 앞선 사나이는 김영철이오, 또 한 사나이는 박동일이었다” (변사) 당연한 말이지만 임권택은 무성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단지 흑백으로 찍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장군의 아들>을 따라온 우리에게) 이 첫 화면의 구도와 질감은 이상하게 보인다. 전체 구도가 모두 초점 거리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deep_focus) 약간 과도할 정도로 밝게 찍혔다.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한국영화는 아직 디지털 색 보정이 도입되기 전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넣어두기 바란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인물로부터 카메라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전체를 보여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master_shot) 경사진 이 동네의 지붕들과 저 멀리 하늘이 조금이나마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너무 멀리 있다. 물론 회화를 염두에 두고 무대와 같은 구도(tableau)를 만든 초기 무성영화에 관한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와 운동)의 이론이 있다. (David Bordwell, Ben Brewster, Noel Burch, Richard Abel, Charles Musser, Thomas Elsessar, Tom Gunnung, AND...)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이다. 인물의 동선을 화면 아래쪽에 배치한 다음 왼쪽 골목에서 나와서 오른쪽 담벼락에 몸을 숨긴다. 이때 김영철과 박동일은 단지 아래서 찍었기 때문이 아니라(low_angle)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코트자락에 감춰지기는 했지만 거의 무릎까지 보인다. (knee_shot)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나타난 인물들도 화면 아래 부분에서만 오갈 뿐이다. 만일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 귀로 듣는 대신 자막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면 당신은 김영철과 박동일을 추적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자막에 가려 거의 보지 못할 것이다. 추적자를 다른 길로 따돌린 것을 보면서 김영철이 박동일에게 (변사) “동일아, 우리 하루삔에서 만나자” 라는 대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하자면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마치 그 장면에서 대사를 클로즈업 하듯이 다가가서 다시 찍은 것(bust_shot)은 쇼트 분할의 낭비이다. ( S#_6) 임권택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나는 처음 볼 때 다시 영화 안의 영화에서 빠져나와 김두한에게 돌아오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 S#_7) 다음 장면은 내리막길에서 서로 재회를 기약하며 손을 흔들면서 각자의 길을 떠나는 두 사람을 할 수 있는 한 멀리서 찍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듯 변사는 목소리를 높인다. (변사) “이들은 왜 쫓기는 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는가” 마치 김두한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혹은 이 세 개의 쇼트는 한 씬이기 때문에 서로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듯, 서로 이어 붙어있다. 그런 다음 마치 대꾸를 하듯이 영화 안의 영화를 보는 영화 장면의 쇼트가 연이어 세 개 이어진다. ( S#_8) 변사는 영화에 빠져든 표정으로 마치 웅변이라도 할 것처럼 낭독한다. (변사) “아! 드디어 때는 바야흐로 시베리아에서 휘몰아쳐오는 북풍한설이 매운 기세로 휘몰아쳐오는 엄동시절에...” ( S#_9) 재빨리 이어 붙은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 순사. 한 명은 <國境>에는 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객석을 쳐다보기를 반복하고 다른 한 명은 대본을 들여다보면서 변사의 낭독을 감시한다. (변사) “.... 조선의 백성들은 추위와 허기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 S#_10)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영화에 완전히 빠져든 김두한과 그가 데리고 들어와 옆에 앉힌 (몰래 화장실을 통해 공짜로 영화 구경을 하려다 붙잡힌) 소년(과 그 곁의 몇몇 관객)을 보여준다. 그때 변사의 낭독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변사) “아! 조선의 백성들아, 백성들아!” 이 세 개의 쇼트에 대한 세 가지 질문. 첫째, 영화 안의 영화로부터 나와서 <國境>을 바라보면서 진행 되자 변사의 낭독에는 대사가 없고 지문만 있다. 단지 영화가 영화 안의 영화를 바라보는 순간에는 <國境>의 대사 안으로 침입할 수 없다는 듯이 갑자기 이야기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두 번째, (앞의 질문에 이어서) 게다가 이 지문은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건 일제 식민지 강점하 조선의 상황에 대한 심정의 비분강개에 가까운 웅변이지 지금 진행 중인 <國境>을 위해서는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세 번째. 낭독하는 변사와 입검석의 두 명의 일본 순사, 그리고 김두한과 소년, 이 세 개의 쇼트는 각자 영화 안의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접합되어 있다. 변사는 <國境>의 목소리라는 방식으로 영화 안의 영화 바깥에서 활동하는 기계장치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 쇼트는 ( S#_8) 영화 안의 영화의 외부적 확장이다. 혹은 이 쇼트를 보는 것은 <國境>의 장면을 청각적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의 ‘본다’라는 설명이 서로 다르게 활용되고 있음을 유심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 순사는 ( S#_9) 영화 안의 영화를 쳐다보고 있지만 동시에 <장군의 아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역사적 기호 이외의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 이 쇼트는 양쪽 모두에 기생한다. 그 당시의 모든 영화는 그렇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도 다시 검열 받았다.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순사는 1939년 영화의 일부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개봉관에는 입검석이 반드시 맨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영화 검열을 위한 자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 대한 감시의 체제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극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언제나 그런 장소는 의견의 광장이자 일순간에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권력은 언제나 공개적인 장소를 감시했다. 내가 아니라 푸코가 한 말이다. 입검석은 1939년 극장의 일부이다. 그런 다음에야 영화 안의 영화를 보는 김두한의 쇼트가 등장한다. ( S#_10) 김두한(과 소년)은 약간 지나칠 정도로 영화에 빠져들어서 바라본다. <國境>은 <장군의 아들>과 직접적으로 접합되지 못한 채 우회의 경로를 택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國境> 안으로 되돌아간다. ( S#_11) 옥순의 집 안 방문 앞에서 문을 열고 옥순이 나와 김영철과 포옹을 한다. (변사) “옥순아! 하루삔으로 가자, 어서! 어서!” 영화 안의 영화로 돌아가자 변사는 재빨리 다시 복화술사처럼 영철의 목소리를 대신 한다. 두 가지 지적. 첫 번째, 신기할 정도로 정교하게 영화 화면과 목소리를 연결한 때 두 번 모두 영철의 목소리만이 일치한다. 두 번째. 이 화면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이상하다. 이 구도는 의도적으로 방문을 중심에 놓은 다음 양 옆에 어떤 장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왼쪽은 조명이 닿지 않아 그림자마저 생겼다. 나는 전체 화면을(master_shot)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집의 구조를 알지 못한다. 이때 방문을 중심으로 이 화면은 기묘하게도 1.33 사이즈의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내게 좀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정면으로 찍은 구도이다.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정면 쇼트와 마주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장군의 아들>에서 두 사람을 세워 놓은 다음(two_shot) 정면으로 찍는 경우는 없다. 구태여 그렇게 앉은 장면은 하야시 구미(組)가 다다미 실내에 앉아있는 일부 쇼트들뿐이다. 정면으로 인물을 찍으면 영화는 다음 장면의 진행에서 심각한 문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찍었다. 그때 이 장면은 두 사람을 장면 분할 없이 진행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영철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장면을 변사로 옮겨갔다. ( S#_12) 변사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가면서 옥순의 대사를 낭독한다. (변사) “못가요, 못가요! 부모 형제를 놔두고 어찌 만리타국으로 가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 다음 목소리를 바꾸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영철의 대사를 한다. (변사) “옥순아, 우리는 가야 한다” 이 정면쇼트는 오랜 시간 동안 내게 머물러 있었다. 뭐랄까, 여기서 만들어진 이상한 디테일의 사실감이 <장군의 아들> 전체의 어느 장면보다도 1939년이라는 인상을 만들어냈다. 나는 구태여 여기서 느꼈다, 는 말 대신 만들어졌다, 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디테일이 만들어낸 것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그런 다음 화면은 ( S#_13) 영철이 옥순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서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변사) “부모냐 사랑이냐, 망설이던 옥순은 애인을 따라 나서고 말았으니 이들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장면은 <國境>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것처럼 현대적인 방법으로 찍혔다. 카메라는 집을 나서는 옥순과 그녀를 잡아 이끄는 영철을 재빠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따라가면서(pan_shot) 동시에 눈에 보이게 이동하고 있다. 멀리 사라져가는 두 연인은 <國境>의 두 번째 장면, 김영철과 박동일이 쫓기던 그 골목으로 사라져간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國境>이 한창 상영되고 있을 때 김두한(과 소년)이 앉아있는 뒤편 입구, 그러니까 입검석 바로 옆에 난 문으로 종로패 사내가 두리번거리면서 들어온다. ( S#_14) 그가 김두한에게 귓속말로 이르자 김두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다 말고 나간다. 물론 변사는 아랑곳없이 더 열을 올리며 낭독을 한다. (변사) “여기는 압록강, 김영철과 옥순은 인정 많은 어부를 만나 쪽배를 구할 수 있었으나, 아 그러나 아뿔싸, 그 자가 경찰의 끄나플일 줄이야, 그 누가 꿈엔들 알았으랴” 김두한이 우미관 앞마당에 나왔을 때 막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이 대결을 벌이기 위해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 S#_15_16) 영화 속의 영화 <國境>은 여기까지이다. 그런 다음 김두한도, 임권택도, 영화도 <國境>을 잊어버린 채 진행된다. 두 번째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의 환기. < 國境 >을 보는 내내 이상한 것은 자막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당시의 관객들 상당수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변사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막은 당시 영화의 일부였다. 무성영화에서 무자막 형식이 시도된 것은 1924년 프리드리히 W. 무르나우의 (종종 <최후의 인간> 혹은 미국 개봉제목인 < 마지막 웃음 >으로 알려진) <밑바닥 인간(Der Letzte Mann)>에 이르러서다. 물론 지금 <國境>을 보는 건 1939년의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영화사에서 무자막 형식의 무성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무자막 무성영화의 역사는 매우 짧다. 왜냐하면 첫 번째 토키영화 <재즈 싱어>가 1927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에 다시 이 질문에로 돌아올 것이다. 두 번째 영화 안의 영화는 < 장군의 아들 >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온다. 약간의 설명. 김두한이 구치소에서 나오자 혼마치깡 하야시 구미(組)가 기다렸다는 듯이 새벽에 기습을 한다. 어이없이 패배한 다음 김두한은 종로 한복판에서 종로 상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야시 앞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한다. 뒤이어 구치소에서 종로패의 두목인 김기환이 출소한다. 상황을 파악한 김기환은 김두한과 함께 혼마치깡의 사쿠라(櫻) 카페에 가서 하야시와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는다. 여기서 그만 술에 취한 김두한은 모자를 두고 온다. 그래서 사쿠라 카페의 여주인 세츠코는 김두한에게 모자를 돌려주기 위해 종로를 찾아온다. 둘은 종로 빵집에 마주 앉지만 김두한은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종로패 중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워싱톤을 부른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워싱톤이 그녀에게 묻는다. “무슨 말이었습니까?” 세츠코는 약간 수줍게 대답한다. “영화도 구경할 겸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워싱톤이 김두한에게 “영화를 보러 왔대요”라고 전해주자 김두한이 호기롭게 대답한다. “내가 보여주겠다고 그래”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상영중인 영화 간판을 보여준다. ( S#_1) 영화 제목은 <最後の復?>. 내게 1940년 일본영화 연감이 없기 때문에 이 영화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감독 이름이 나를 미심쩍게 만든다. 감독 池田忠雄(이케다 다다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 시기에 활동한 일본 영화인 이케다 다다오는 시나리오 작가이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의 1930년 영화 <아가씨>를 시작으로 1947년 <세입자 인명록>까지 각본을 썼다. 그런 다음 노다 고고와 함께 오즈는 < 만춘 >을 쓰고 그의 유명한 가족의 순환이라는 우주로 들어선다.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동명이인의 영화감독이 있을지 모른다. 또한 <最後の復?>라는 영화가 정말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경국립근대미술관 내 국립영화박물관에서 <最後の復?>는 검색되지 않으며 이케다 다다오는 각본작가의 이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하필이면 (누구라도 떠올렸겠지만) 김두한을 찾아온 카페 여주인의 이름은 <만춘> 이후 오즈 영화의 영원한 노처녀 하라 세츠코(原節子)와 동명이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오즈로부터의 연상을 멈출 생각이다. 김두한은 호기롭게 세츠코를 대동하고 우미관 극장문으로 들어선다. ( S#_2) 우미관 안쪽에서 들어서는 김두한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것이 전부인 장면. 입구에 기도가 서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도 끊지 않고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제 더 이상 첫 번째 이야기, 그러니까 작년의 김두한이 아니다. 앞에 서있던 기도도 김두한에게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어서 옵쇼, 라고 목청 높여 인사를 한다. 그는 여기에 늘 이런 식으로 드나들 것이다. 뒤를 따라오던 세츠코는 기도를 보고 멈칫 서서 망설인다. 김두한은 들어서다 말고 돌아서서 그냥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자 그녀는 기쁜 기색으로 따라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오던 종로패 부하들은 멀리 서서 그 모습을 보면서 “개판이다, 개판이야”라고 빈정거린다. 아마도 돌아온 김기환은 하야시 구미(組)에게 세금까지 바쳐 가면서 종로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고 김두한은 그런 상황에서 일본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장면은 우미관 간판과 영화 안의 영화 <最後の復?> 사이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권택 은 다시 한 번 우미관 극장 안의 디테일을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설명이긴 하지만 김두한은 세츠코에게 우미관을 소개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장면 진행은 다소 교묘해 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영화 안의 영화 < 國境 >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장면으로 타이틀 자막이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타이틀 자막을 보여주는 대신 우미관에 매달려있는 간판 <最後の復?>를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제목과 감독, 주연배우, 여기에 더해 이 영화의 장르가 찬바라(チャバラ,칼과 칼이 ‘찬찬찬’ 부딪치는 시대 활극물(時代 活劇物)) 라는 것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장르에 성차(性差)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40년 경성 종로에 있는 유명한 극장 우미관에서 하는 찬바라 영화를 보러 세츠코가 찾아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설정이다. 경성에 영화관이 단 하나 뿐은 아니었으며, 그 시대에 찬바라 영화는 남자들의 장르이며 나미나(淚, 멜로) 영화는 여자들의 장르라는 식으로 멋대로 구분해버린 다음 찬바라를 여자가 보는 것은 흉한 광경이라고 생각하는 시절이었다. 당신은 모던 걸의 시대이기도 했다고 반박하고 싶을지 모른다. 세츠코는 혼마치깡에서 종로까지 김두한을 찾아오면서 기모노를 입고 온 여자이다. 그런 다음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신식의상을 입은 적이 없다. 게다가 그녀는 하야시 오야붕이 종로패 김기환과 화해(를 빙자한 협상)의 술자리를 가질 때 찾아갈 만큼 고급 요정의 마담이다. 그러므로 세츠코는 ‘가오(顔)’를 중요시여길 것이다. 그런데도 김두한을 만나서 영화를 보겠다고 한 다음 우미관에 <最後の復?>를 보러왔다. 당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반대로 말하면 모자를 돌려주기 위해 종로까지 찾아온 세츠코에게 고맙다고 김두한이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한 다음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치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데려온 것이 아니다. 게다가 김두한은 이미 이 영화를 여덟 번이나 보았다. 그렇다면 왜 <最後の復?>를 보러 온 것일까.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싶어 온 사람은 임권택이다. 몇 가지 가설. 첫 번째, 세츠코를 따라서 (일본 영화사전의 분류에 따라) ‘인정(人情)’ 영화나 ‘연애(戀愛)’영화를 보러 간다면 원래의 영화인 < 장군의 아들 >이 만들어놓은 ‘다찌마와리’로 돌아오는데 (임권택의 표현을 빌리면) “애를 먹거나” 아니면 “한참 다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가설에 더 기대고 싶다. 임권택은 <장군의 아들>을 통해서 자신이 1970년대에 보낸 ‘다찌마와리’의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 보고 싶었다고 몇 차례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 대답을 <장군의 아들> 일편에서 만족스럽게 얻었을 것이다. 1990년의 관객들은 기꺼이 이 영화를 환영했고 비평적으로도 환대를 받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를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은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후 ‘살아남은 거장’의 대접을 받기 시작했지만 <장군의 아들> 이전에 흥행의 시장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 다른 한 가지. 1980년대 비디오의 백화제방을 통과하면서 성장한 (아마도 박찬욱으로 대표되는) 완전히 새로운 시네필 세대는 B급영화와 컬트영화들을 새로운 고전의 반열에 올리면서 비평의 엄숙주의와 전투를 벌였고 영화와 미학 사이에서 새로운 접속 방식을 찾아낸 다음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긴장을 때로 통과하고 때로 가로 막으려는 도그마와 전투를 벌이면서 새로운 바깥의 출구를 찾고 있었다. <장군의 아들>은 제 시간을 찾아서 도착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은 두 번째 <장군의 아들>을 만들면서 영화 안의 영화로 자신이 1970년대에 만들었던 ‘다찌마와리’ 영화들보다 더 천대받았던 ‘으악새’ 영화를 끌어안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칼을 한 번 휘두르면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으악’ 소리를 내면서 죽는다고 충무로 내에서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장르. 물론 그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무언가 여기에는 대면의 느낌이 있다. 물론 여기서 더 밀고 나아가면 안 된다. 여기가 비평의 임계점이다. 나는 재빨리 우미관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아니, <最後の復?>로 들어갈 생각이다. ( S#_3)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김두한이 세츠코와 함께 우미관에 들어서자 다음 쇼트는 <最後の復?>의 장면이다. <國境>과 같은 점. 두 영화 모두 흑백으로 찍었다. 그리고 영화 안의 영화 장면을 보여줄 때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 풍경의 중계 없이 곧장 영화 안의 영화를 보여준다. 다른 점. <最後の復?>는 토키영화이다. 그러므로 <國境>에서 볼 수 있었던 변사가 없다. 물론 상당한 기간 동안 토키와 무성영화는 공존하였으며, 일본영화에서 토키는 1931년에 만든 <이웃집 부인과 나의 아내>에서 시작되었다. 오즈도 한참을 망설인 다음 1936년에야 첫 번째 토키영화 < 외아들 >을 만들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두 번째 다른 점이다. 여기서 <最後の復?>는 1.33 사이즈로 상영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제까지 1.85로 진행되던 화면에서 양옆을 어둡게 한 다음 첫 장면을 볼 수 있다. 임권택은 이 화면 사이즈를 만들면서 단지 양 옆만을 어둡게 잘라내는 대신(masking) 위아래도 지워내면서 화면 전체를 영화 안의 영화라기보다는 영화관에서 바라보는 기분을 내면서 두 편의 영화, 영화 안의 영화와 그 영화를 바라보는 영화를 공존시키고 있다. 그때 이 장면에서 바로 앞 장면, 그러니까 김두한이 세츠코와 함께 우미관에 들어서던 장면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장군의 아들>은 좁은 세트를 넓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양옆을 펼쳐놓거나 수평으로 만든 쇼트들의 구도로 진행된다. 그건 세 편 모두 그렇다. 다만 대결 장면을 벌일 때에만 종종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실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미관이 야외에 지어진 세트인데도 불구하고 김두한이 세츠코와 우미관에 들어설 때 극장 안에서 두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수직의 구도로 찍었다. 출입구이기 때문에 양 옆은 유리문으로 닫혀 있고 오로지 앞과 뒤로만 인물의 동선이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쇼트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김두한이 들어선 다음 나가려다 말고 뒤 돌아서서 세츠코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그래서 우미관으로 두 사람이 들어간 다음 그 뒤를 따라오던 종로패들이 “개판이다, 개판이야” 대사까지 모두 하는 장면을 고정된(fixed) 카메라로 편집없이 모두 찍었기 때문에(long_take) 심리적으로 길게 느껴진다. 물론 이 쇼트를 불필요한 편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롱 테이크로 찍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때 이 방법은 전형적인 학습의 쇼트이다. 무엇을 위한 학습? 1.85를 좁은 구도로 좁혀놓은 다음 어떤 개입도 없이 이어진 쇼트에서 1.33의 구도로 전개될 <最後の復?>를 준비하고 있다. ( S#_3) 숲속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가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화면 바깥에서, 아마도 그녀의 뒤에서, 그러니까 화면 오른쪽 바깥에서 그녀를 쫓아오면서 “거기 서”라는 소리가 일본어로 들린다. 이때 자막은 오로지 지금 영화를 보는 당신을 위해서만 제공된다. 만일 1940년 우미관에서 그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위해서였다면 당연히 화면 왼쪽에 세로 쓰기로 씌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1937년 내선일체를 강요한 일본은 이듬해 조선어 교육 금지를 명령하였으며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1940년은 창씨개명이 요구된 해였다. 그날의 우미관 관객들은 일본어로 영화를 보아야 했을 것이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달려가는 것과 거의 같은 속도로 숲속을 카메라가 수평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같은 속도와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카메라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쫓는 검은 옷을 입은 자객들을 따라서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이동한다. ( S#_4) 교과서에서 금기시된 방법. 하지만 임권택은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반복한다.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 S#_5) 왼쪽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 더 멀찍이 물러나서 이동하던 카메라를 저 멀리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멈춰 세우기라도 하듯이 거기 그렇게 문득 서 버린다. 나무 뒤에서 홀연히 등장하는 한 남자. 우리는 협객물의 약속을 잘 알고 있다. 여인이 자객들에게 쫓길 때 그 앞에 나타나는 남자는 언제나 구원자이다. 이 낯선 남자를 향해서 자객들은 저마다 “비켜라” “누구야”를 외치지만 모두들 흠칫 물러선다. 이 세 개의 쇼트는 모두 수평의 동선과 구도로 진행된다. 하지만 세 번째 쇼트 다음 장면은 낯선 남자와 자객들 사이의 ‘찬찬찬’ 검술 살진(殺陣)이 아니라 <最後の復?>를 보고 있는 김두한과 세츠코의 모습이다. 세츠코는 열심히 영화를 보고 있지만 김두한은 따분한 표정을 짓다가 하품마저 하고 만다. ( S#_6) 물론 내용이 재미없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화면에서는 칼을 빼든 자객들로부터 “죽여라”(voice_out_of_frame)는 외침이 터져나오면서 이제 막 결정적인 활극장면이 펼쳐질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은 영화 안의 영화 <最後の復?>를 (이론적으로만 설명하면) 김두한이 아니라 세츠코를 경유해서 보는 중이다. 서사의 차원에서 설명은 단순하다. 우미관은 김두한의 ‘나와바리’이고 게다가 <最後の復?>은 찬바라 영화이기 때문에 김두한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달리 할 일이 없을 때마다, 혹은 순전히 재미로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건 하나도 이상한 제스처가 아니다. 내 질문은 거기에 있지 않다. 김두한과 세츠코의 쇼트는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자리에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쇼트는 마치 <最後の復?>의 결정적 순간을 보려는 관객들, 그러니까 영화 안의 영화를 보려는 우리들을 불만족스럽게 만들려는 의도의 자리에서 몰입의 리듬을 방해하고 있는 중이다. 김두한과 세츠코의 감정적 관계는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며 이후에도 (함께 영화를 본 다음 데이트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들의 궁금한 기다림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음 쇼트는 다시 영화 안의 영화로 돌아간다. ( S#_7) 기모노 여자는 나무 뒤에 서서 바라보고 있고 낯선 남자는 자객들과 일대 사로 대결을 한다. 이때 이 장면의 구도는 기이하게도 남자와 자객들 사이의 일대 사의 대결이 막 시작되려는 광경을 눈 앞에 펼치는 대신 나무 뒤에 숨은 기모노 여인의 뒤에 (두 개의 뒤라는 말을 염두에 두어서 이 장면을 다시 보라) 서서 바라보고 있다. 칼 바람소리와 비명소리가 날 때 기모노 여인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close_up) 쳐다보고 있다. ( S#_8) 낯선 남자는 자객 네 명을 모두 쓰러트린 다음 조금도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은 채 칼을 절도있게 칼집에 넣는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여자가 나와 무릎을 꿇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고 (카메라가 서 있는 맞은 편으로) 성큼성큼 걸어 떠나간다. ( S#_9) 김두한은 그걸 보다가 하품을 하면서 눈을 감고 잠이라도 잘 기세다. 그러자 영화에 빠져들었던 세츠코는 김두한을 보면서 “面白くないですか (재미없습니까?)”라고 물어본다. 그 말을 못알아듣자 손바닥을 가로 흔들며 “ゼミ(재미) ないですか” 라고 다시 물어본다. 일본말을 못하는 김두한은 변명이라도 하듯이 손가락 여덟개를 펴 들고 “나, 저 (영화) 여덟 번째야, 여덟 번”이라고 말한다. 세츠코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런 다음 장면은 없다. 그 낯선 남자가 누구인지, 기모노 여인은 왜 쫓겼는지, 그 여인의 운명은 어찌되었는지, 자객들의 복수는 이루어졌는지, 무엇보다도 최후의 복수는 성공했는지, 아무 관심도 없이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는 거기서 끝나고 화창한 초여름날 야외에서 데이트하는 김두한과 세츠코로 옮겨간다. 내 질문은 간단하다. 왜 영화 속의 영화를 거기서 끝내도 괜찮은 것일까. 얼핏 보면 거기서 <最後の復?>의 한 시퀀스가 끝났기 때문에 우미관 극장 안의 씬과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의 숲 속의 대결 씬을 맞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때 내 반론은 그렇게 되면 김두한과 세츠코의 이야기도 거기서 끝난 다음 재빨리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서사의 진행에서 차라리 방해라고 할만한 두 사람의 고궁에서의 데이트 장면에로 옮겨간다. 이 씬은 우미관 장면의 감정적인 연결이다. 여기서 핵심은 세츠코가 김두한의 손가락 여덟 개를 펼쳐든 모습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제스처에 있다. 입을 가리고 웃을 때 세츠코는 이미 기모노 여인의 운명에 관심이 없다. 그녀의 운명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복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 제스처는 영화 안의 영화가 더 이상 영화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절의 동작이다. 왜 거절의 제스처가 성립하는 것일까. 나는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의 타이틀이 미처 우미관에 들어가기도 전에 마치 영화 속에 삽입(indert_shot)되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이 영화는 김두한이 보고 싶어서 세츠코와 온 것이 아니라 세츠코가 보고 싶어서 김두한이 함께 온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의 영화에 이끌리는 시선은 김두한이 아니라 세츠코를 중심으로 이끌린 응시와 그 반응이다. 심지어 김두한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는 하품을 하고 눈을 감고 금방이라도 잘 것만 같다. <最後の復?>에서 우리가 보는 첫 장면은 이 영화를 보는 세츠코와 일치를 시키기라도 하듯 숲 속을 달리는 기모노의 여인으로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다소 기계적인 동일화의 도식을 따라가볼 생각이다. 물론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이 장르영화라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고 여기서 시선의 네트워크가 불러 일으키는 문법적인 전이 효과만을 계산에 포함시킬 것이다. 그런 다음 문득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 낯선 남자가 등장하기까지의 장면( S#_3_4_5)은 단조롭긴 하지만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하품을 하는 김두한과 곁에서 온통 영화에 빠져든 세츠코가 화면을 바라보는 장면( S#_6) 이후는 마치 영화를 보는 쪽에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를 분리해낼 수 있다면 기모노 여인을 구하러 나타난 낯선 남자가 자객들과 마주하는 장면( S#_5) 다음 쇼트는 ( S#_7) 나무 뒤에서 기모노 여인이 숨어서 대결을 바라보는 것을 그녀 뒤에서 찍은 장면이다. 두 개의 쇼트 사이에 김두한과 세츠코의 장면이 없었다면 이 두 개의 쇼트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혹은 순간적으로 연결시킨다 할지라도 이상할 정도로 어색해보인다. 왜 그렇게 이상해진 것일까. 그건 대결을 나무 뒤에 숨어서 훔쳐보는 기모노 여인의 얼굴(close_up)을 보기 위해서이다. ( S#_8) 그렇지 않으면 대결이 중심에 있는 화면에서 그 바깥에 있는 여인의 얼굴을 잘라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흥을 깨는 일이다. 그때 이 여인의 얼굴은 세츠코가 이 씬을 바라보면서 감정을 몰입하는 주관적인 쇼트처럼 보인다. 혹은 영화를 바라보는 세츠코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영화 안의 영화 바깥으로 나갔다 되돌아올 필요없이 두 쇼트를 하나로 겹쳐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동일화 효과이다. 말하자면 쇼트의 경제성. 기모노 여인이 아니라면 이 순간 세츠코는 도대체 누구에 의지해서 <最後の復?>를 보고 있겠는가. 가장 이상한 쇼트는 낯선 남자가 자객들을 물리치고 나자 나무 뒤에 숲어있다가 나타나는 기모노 여인의 장면이다. ( S#_9) 그녀가 무릎을 꿇고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지만 낯선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떠난다. 나는 그녀가 나타난 방향 때문에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어떤 원칙으로 이 숲길에 상상선을 그은 것일까. 숨어서보던 그녀는( S#_7) 반대쪽 방향에서 나와서( S#_9) 인사를 한다. 두 가지 원칙. 첫째, 네 개의 쇼트는 카메라가 모두 정지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액션 장면을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지만 장면의 성질로 볼때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서 찍었다. 둘째, 이 네 개의 쇼트는 180도를 기준으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찍은 것일까. 유일한 이유. 언제든지 진행을 중단할 수 있다. 네 개의 쇼트는 어떤 원심력도 갖지 못하고 모두 제각각 떨어져나간 것이다. 이때 이 쇼트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절단의 힘은 그저 세츠코가 관심을 잃으면 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最後の復?>를 보는 까닭은 세츠코가 보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때 세츠코가 영화 속의 영화로부터 눈을 거두고 감두한에게 눈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영화 안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라도 한듯 세츠코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김두한을 보는 것은 하나의 중단이자 새로운 연결의 신호이다. 아쉽지만 <最後の復?>는 이 순간 이미 끝난 것이다. < 장군의 아들 3 > 엔딩 ​​​​​​​아쉽지만 < 장군의 아들 > 세 번째 편에는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상한 기시감이 든다.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난 다음, 그러니까 김두한과 김동회가 힘을 합쳐 혼마치깡에 쳐들어가 하야시 구미(組)와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세 편의 <장군의 아들>에서 수없는 대결장면이 있었지만 이렇게 혈겁(血劫)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광경은 거의 유일하다. 그런 다음 김동회는 김두한을 부축하여 떠난다. 그런데 김두한은 종로를 떠나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 장면은 내게 두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나는 이제 이 긴 연작이 끝났다는 작별인사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힘겹게 비틀거리면서 떠나가는 두 남자. 여기에는 그 동안 김두한을 둘러싸고 등장했던 어떤 인물도 곁에 없다. 그들은 마치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것만 같다. 하나의 계열의 소멸. 더 이상 작동할 것이 남아있는 않은 장르 기계. 저물어가는 석양의 햇살. 여기에 남은 쓸쓸한 기호들. 물론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그저 덧붙여진 감상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의 감상을 더 할 생각이다. 이 장면을 보았을 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장군의 아들> 일편에서 본 영화 속이 영화 < 國境 >에서 찍지 않은 쇼트를 본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이 장면만을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희미해보이게 찍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fog_filter) 나는 김두한과 김동회가 사랑도 잃고 조국도 잃고 오직 그 둘만이 서로를 의지하며 그들의 유일한 고향인 종로를 떠나는 뒷모습에서 김영철과 박동일의 마지막 모습,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國境>의 마지막 장면을 본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보았다. 물론 이 설명은 그저 부질없는 소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중얼거렸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 사이의 화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영화에서 영화 속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세르주 다네가 말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부활의 시간을 설득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 둘이 대립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에서 과거에로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할 때 그와 동시에 이미 본 영화의 과거의 시간이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현재의 시간 속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설명하고 싶다. 나는 영화 안의 시간을 무한정 팽창시키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거의 유일한 임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번 이야기 끝, 그리고 계속) by.정성일(영화평론가,영화감독) 20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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