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게스의 반지 줄거리 - gigeseuui banji julgeoli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

옛날 리디아에 욕심 없고 착하기만 했던 한 양치기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기게스(Gyges)', 양을 치던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지진을 맞게 된다.

지진이 일어난 자리에는 땅이 갈라져 동굴이 생겼고, 그는 호기심이 생겨 갈라진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굴 안에서 거인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시체의 손가락에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기게스는 거인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반지의 흠집 난 곳을 안으로 돌리면 자신은 투명인간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보이지 않는 힘', ‘절대 마법의 반지를 갖게 된 기게스는 나쁜 마음을 먹게 된다.

가축의 상태를 왕에게 보고하는 전령으로 궁전에 들어간 그는 마법 반지를 이용하여 투명인간이 된 후

왕비를 간통하고, 칸다울레스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리디아의 왕이 된다  

기게스의 반지 줄거리 - gigeseuui banji julgeoli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라는 우화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 2권에 나오는 가공의 마법반지다. 이 반지는 소유자의 마음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다.

플라톤은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통해 일반인이 만약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도덕의 수단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기게스의 반지

소피스트인 글라우콘은 도덕은 내가 무능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자, 소크라테스는 도덕을 그렇게 생각할 경우 도덕이 수단화 되는 것이므로 옳지 않다고 답하면서,‘자기의 이익=올바르게 행동하는 의무감=사회 전체의 이익과 결부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의무와 자기이익이 같게 된다는 것이다.

뒤이어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요술반지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부정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부정으로 얻는 이득이 아무리 크더라도 행복은 오로지 도덕적 행위에서만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은 소크라테스보다는 소피스트인 글라우콘의 말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로마의 시인 루카누스 역시 힘은 정의의 잣대다라고 일갈했다. 힘이 곧 정의라는 것이다. 따라서 힘 있는 자는 정의를 내팽개치고 필요에 따라 지켜야 하는 불편한 의무감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치권, 자본가층, 조직의 CEO,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의 행태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랬다. 한낮 양치기에 불과했던 기게스도 절대마법의 반지를 손에 넣는 순간 머리 회전이 빨라졌다. 돈과 명예, 그리고 욕망을 가장 빨리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권력'이었다. 카톨릭의 역사가 존 액턴 경은 권력은 타락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틀림없이 타락한다고 경고했다. 인간은 필요할 때만 정의를 지키고 기회만 있으면 나쁜 짓을 하려 든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틈만 나면 나쁜 짓을 꿈꾼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이란 신과 야수사이의 밧줄위에 놓인 어정쩡한 존재다라고 한탄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신의 모습에 다가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동물쪽으로 다가가는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는 미완성의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권력이나 힘을 가지면 동물의 습성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 말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말한 모든 독재는 타락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기게스의 반지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은밀한 자유'(exousia)를 상징한 것으로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사례이다. 결론은 권력이나 힘을 가지게 되면 인간의 본성은 대부분 악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즉 순자의 성악설이 맹자의 성선설을 이긴다는 의미이다. 한때 광풍을 몰고 왔던 영화 <반지의 제왕>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절대적인 힘을 주는 반지'를 두고 영웅이던 요정이든 심지어 성자도 악의 물에 물든다는 것, 나아가 그 반지를 낀 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반지를 두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하지만,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있는 악마의 힘이라고 했다.

따라서 개개인의 도덕성만으로는 사회의 비도덕적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의 신학자인 니부어(R. Niebuhr)<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사회구조의 개혁을 강조하였다. 책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그는 도덕적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라고 하더라도 비도덕적 사회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니체가 말한 신과 야수 사이의 어정쩡한 존재라는 말과 상통한다. 개인은 동정심도 있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이타심이나 이해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일단 집단구성원이 되면 집단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 구조와 제도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개인의 도덕성만으로는 사회의 비도덕적 현상을 해소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정의를 외치지만 여전히 세상은 정의를 불편한 의무정도로 치부하는 부수적인 카테고리에 포함시키고 있는 듯하다.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가 생각난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다가 조용해질 겁니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합니까?"

인간세상이 글라우콘이 말한 고상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돼지들의 도시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정의로운 것이 불행을 겪고 정당하지 못한 것이 번영을 누리는 시대는 청산될 수 있을지. 자제는 욕망에 대한 통제가 되고 정의가 영혼의 전반적인 가치로 자리 잡을 날은 언제가 될른지. '나의 것'과 '너의 것'이 없다면 불화의 씨앗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철학자들의 외침은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나의 것'과 '너의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사유재산제를 채택하는 자본주의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당시 목동이었던 기게스보다 훨씬 우수한 재능과 지식을 가진 우리들, 지금 양심을 독살하는기게스의 반지를 손에 넣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기게스처럼 무지막지한 권력을 휘두를 것인가, 양심의 소리에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할 것인가. 양치기 기게스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고전을 읽는다인간의 양심과 도덕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바꿀수 있는 것이라면 역사도 고전도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수천 년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 그 자체가 별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와 고전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 출신이지만 로마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는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했다.

만약 무슨 짓을 하던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사람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슴속에 '무지막지한 마법의 반지',기게스의 반지를 꿈꾸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기게스의 반지'가 정의의 필터없이 통용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뱃속은 넘쳐나고 머리속은 텅텅 비어가는 사회는 역사의 선구자가 될 수 없다. 철학이나 인문학을 '배부른 자의 선택지', '여유로운 자의 취미'쯤으로 여기는 사회가 모범적인 사회로 전진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기게스의 반지와 도덕을 결부한 내용은 우리나라 대학입시 논술시험이나 기업의 입사시험에도 자주 등장하는 지문이다. 철학을 철학으로 해야 하는데 의무감이나 시험용으로 한다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지식 쌓기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인문학의 부재에 몰린 상아탑에서 늦었지만 최근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심리학과를 심리학부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은 학문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며 "융합학문의 중추 역할을 맡기 위해 문과대 소속 학과가 아닌 학부로 독립해 나가는 것"이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상아탑의 인문학을 리더하는 대학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