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 교직원 - gwangjugwahaggisul-won gyojig-won

광주과학기술원 교직원 - gwangjugwahaggisul-won gyojig-won

광주과학기술원 기업소개

연혁

2014

02 제2013학년도 학위수여식(학사1회 졸업생 배출)

2010

03 제1회 학사과정 입학식 개최(총100명)학사과정 기공식 거해

2008

06 제5대 원장 선우중호 박사 취임

2004

03 기관 영문 GIST(Gwangju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로 변경

2000

02 제4회 학위수여식(박사 1회 졸업생 배출)

1998

11 사무소 이전 : 광주시 북구 오룡동 1

1995

03 개원식 및 제1회 석사과정 입학식

1993

10 초대원장 하두봉 박사 취임 및 기공식 거행

1993

08 광주과학기술원법 제정.공포(법률 제4580호)

출처 : NICE평가정보

사업부문 및 직원구성

이 기업에 꼭 입사해야하는 이유

  • 우수기업 공인 기관의 우수기업 인증서 획득이 확인된 기업입니다.
  • 가족친화기업 여성가족부에서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된 기업입니다.

Korean-American Scientists and Engineers Association (KSEA)
1952 Gallows Rd., Suite 300, Vienna, VA 22182
(Voice) 703.748.1221 | (Fax) 703.748.1331 | (Email)

Copyright © 2019 KSEA, All Rights Reserved

Korean-American Scientists and Engineers Association (KSEA)
1952 Gallows Rd., Suite 300, Vienna, VA 22182
(Voice) 703.748.1221 | (Fax) 703.748.1331 | (Email)

Copyright © 2019 KSEA, All Rights Reserved

취업 준비하며 우리 공준모 까페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특히 고시 준비 등으로 취업이 늦어지신 30세 이상 분들께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심은 통하더라고요.

* 아래 합격수기는 조금(?) 깁니다.^^

-----------------------------------------------------------------

작년 12월 9일 광주과학기술원 교직원(일반행정직) 최종 합격 통지를 받고 1월 1일 자로 임용이 되었습니다.  

광주에 내려온지도 어언 2주가 되었네요. 선배 분들께 인사드리고 업무를 파악하느라 정신 없이 보낸 것 같습니다.

전 무경력자 치고는 나이가 많습니다. 81년생입니다. 신묘년 새해 31세가 되었죠. 200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좀 더 준비해보고자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까닭에서인지 고시 공부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불안함과 조급함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입니다. 대학원 공부는 기대했던 것과 달랐고, 저의 선택에 자꾸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친구들은 2~3년차 직장인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건가 싶었죠.

2009년 스물 아홉이 되고 2010년 서른살이 되면서 불안감은 커져갔습니다. 토익 점수도 엉망이고, 공모전 수상 경험도 부족하고, 대기업 인턴 경험도 없는데 석사학위 하나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온라인 취업게시판에서 "서른 넘으면 대기업은 힘들어여~" 따위의 리플을 볼 때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는 사실에 바싹바싹 침이 말랐습니다.

2010년 초, 과감히 고시공부를 그만 두고 궤도를 변경했습니다. 토익 학원 수강신청을 하고, KBS한국어능력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나이를 덜 본다는 언론사 경영직을 노려볼 심산이었습니다. 사실 고시공부를 하면서도 고시수험서보다는 다양한 인문사회서적들을 더 많이 읽었기에 오히려 언론사 시험에 더 자신이 있었습니다.

토익 점수는 계속 엉망으로 나왔지만, 2월에 치른 KBS한국어능력시험에서 1급을 받아 잠시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언론사 시험을 대비한 스터디를 시작했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다녔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자 본격적으로 언론사 전형이 시작되었습니다. SBS는 필기시험까지 통과했으나 1차 면접에서 떨어졌고, EBS는 최종면접까지 갔으나 아쉽게도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렇게 9월이 가고, 10월이 왔습니다. 가장 가고 싶었던 KBS와 MBC도 아쉽게 떠나보냈습니다.

가을을 느껴보기도 전에 찬바람이 불어오더군요. 사실 당장의 밥그릇이 급한 사람에게 계절을 호흡하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10월 25일, 10월 3일에 치렀던 조선일보사 미디어경영직 필기시험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29일에 실무면접이고 30일에는 신체검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붙는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여기저기 원서를 계속 써야했습니다.

취업뽀개기 까페에 들어갔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 공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와, 神의 직장인 교직원이다. 그런데 광주과학기술원? 카이스트(KAIST) 말고 이런 곳도 있었네? 오, 여기는 지스트(GIST)라고 하는구나.

교직원은 대기업 경력자만 뽑는다는 소문을 자주 들었고, 고향인 서울을 벗어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왠지 모르게 끌렸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지스트는 국가가 설립한 특수대학법인으로 교수님들의 연구 성과가 엄청나고 카이스트, 디지스트(대구경북), 유니스트(울산)와 함께 정부가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으로 선정한 곳이더군요. 올해부터는 학부생도 받는 등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무척 높아 보였습니다.

저는 행정고시에 합격해서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면서 또 수많은 인문사회서적을 읽으며 소위 '문과'쪽에서는 절대로 서구인들의 사유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고, 결국 대한민국이 살 길은 과학기술뿐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비록 고향인 서울을 떠나야 하지만 충분히 제 인생을 걸만한 직장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조선일보에 실린 지스트의 홍보(?)기사를 중심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소개서에는 해당 회사에 대한 관심이 아주 면밀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원서접수는 철저한 아날로그 방식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위시한 각종 서류를 11월 1일 월요일까지 총무팀으로 직접 접수해야 했습니다. 10월 30일 토요일 아침 조선일보 신체검사를 마치자마자 당일 특급으로 부쳤습니다. 나중에 우체국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토요일은 학교가 휴무라서 마감일인 11월 1일 월요일 오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더군요.

2주 후인 11월 12일 조선일보사에서 실무면접 합격소식이 들려왔습니다. 24일이 최종면접이라고 했습니다. 미친듯이 조선일보를 읽고 또 읽으며 최종면접에 대비했습니다.

11월 16일에는 지스트에서도 서류합격 통지가 왔습니다. 11월 20일 토요일에 필기전형과 실무면접을 함께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20일 오전부터 전형이 시작되는지라 19일 오후에 KTX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자리가 좀 좁아서 그렇지 빠르긴 빠르더군요.

광주역에 내려섰는데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광주역에서 지스트는 꽤나 멀었습니다. 서울로 비유해서 광주역이 용산 정도라면 지스트는 일산 정도의 위치거든요.

5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리니, 드넓은 캠퍼스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경이 꽤나 멋졌습니다. 학교 앞에는 꽤 큰 호수공원이 있었고, 그 뒤로 유흥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필기시험과 면접 준비를 하려했지만 생각만큼 집중이 되지 않아 그냥 푹 잤던 기억이 납니다.

20일 날이 밝았습니다. 캠퍼스는 꽤나 넓었습니다. 16년 밖에 되지 않은 학교라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운치 있는 건물은 없었지만 실용성을 고려한 듯 한 벽돌건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겨울이라 앙상했지만 캠퍼스 곳곳의 수목들도 봄이 되면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낼 것 같았습니다.

필기시험은 객관식이었는데 대체로 국어와 경제학 문제가 많았고, 일반상식도 있었으며, 고등학교 이후로 까맣게 잊었던 물리와 화학문제도 있었습니다. 필기시험 이후에는 인성검사를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학생과 외국인 교수 비율이 높아 영어를 중시하고 면접에서도 영어인터뷰를 시킨다는 소문을 들었던지라 계속 영어 자기소개를 연습하며 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2인 1조로 면접장에 들어섰습니다. 면접관들은 40대 중간관리자 분들이신 것 같았습니다.

먼저 서울에서 계속 생활했는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냐고 질문 하셨습니다. 행정학을 전공하며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이 많았고,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을 키우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행정인턴 경험에 대해서도 물어보셨습니다. BSC를 구축하는 업무를 했었거든요. BSC에 대해 여쭈시고 대학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습니다. 학습과 성장 관점이라고 답하고 그 이유를 설명 드렸습니다.

그 밖에 한글프로그램에서 장평과 스타일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있었지만, 대개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질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영어인터뷰...앞에 놓인 파일 3개 중 하나를 고르게 하셨습니다. 뒤집어보니 영자신문 기사더군요. 한 페이지 정도를 읽고 간단히 요약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발음과 독해력을 보시려는 것이었겠지요. 순간 눈앞이 캄캄. 열심히 자기소개만 준비했는데...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생각만큼 매끄럽게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발음도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요약이 끝나자 이번에는 지금껏 자신이 가장 성공적으로 한 일에 대해 영어로 말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이 역시 더듬더듬 간신히 구색만 맞춰 말했습니다. 영어회화 학원이라도 다닐 걸 후회가 되더군요.

그렇게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교문을 나섰습니다. 허무하고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비싼 KTX 요금만 날렸다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귀가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동안은 24일에 있을 조선일보 최종면접을 위해 매진했습니다.

그러나 11월 25일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종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EBS 최종면접 탈락 때의 고통이 다시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슬픔도 잠시, 곧 문자메시지 한 개가 도착했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 필기전형과 실무면접 합격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12월 1일 최종면접을 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내가 붙었을까? 토익 점수가 800점 후반이고 영어인터뷰를 그렇게 망쳤는데도, 왜 나를? 내 어떤 점을 높게 보신 걸까? 뛸듯이 기쁘면서도 온갖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종면접에는 부모님께서도 여행 삼아 동행해 주셨습니다. 드넓은 캠퍼스를 보시며 여기에서 일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행정직에서는 총 9명이 올라왔더군요. 2~3명 정도를 선발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들 쟁쟁해 보였습니다. 모두 준비해 온 두툼한 자료들을 읽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면접장에는 부총장님, 행정처장님, 연구처장님 등 고위 간부님들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분위기는 실무면접 때보다 오히려 편했습니다. 이력서에 적힌 한자능력1급 자격증을 보시고는 물고기 어(魚) 3개가 모여 있는 한자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하셨고, 좋아하는 팝송을 불러보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행정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는데 혹시 행정고시를 했냐고 질문하시기도 했습니다. 모두 솔직히 답했습니다.

물고기 어(魚) 3개가 모인 한자는 모르겠고, 팝송은 존 레논의 <Imagine>을 '완창'하고자 했으나 중간에 가사를 까먹어 죄송하다고 했고, 행정고시를 준비했었으나 그만두었고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업무에만 열중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시기에 "매스미디어에서는 지스트가 한국의 칼텍(캘리포니아 공대)이라는 비유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스트의 가족이 된다면 몇 년 뒤에는 칼텍이 미국의 지스트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낯 뜨겁지만 당시로서는 최상의 멘트였습니다.^^

그리고 12월 9일,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아, 나도 드디어 취업이 되는구나. 그것도 꿈의 직장이라는 교직원에...정말 기뻤습니다.

며칠 뒤에는 석사학위 논문도 통과 했습니다. 빡세게 취업 준비를 하며 준비한터라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무척 기뻤습니다.^^

6월 SBS를 시작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제 생애 가장 열심히 살았던 6개월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취업은 인연을 찾아나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사의  경우 최종면접장에서 국장님께  "필기시험 성적이 상당히 뛰어나네."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당연히 붙으리라 생각했었죠.

그러나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필기시험 점수와 같은 정량적인 요소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우리 조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요건들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다름 아닌 나와 그 회사와의 인연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제2의 고향 광주에서 인생의 2라운드를 힘차게 시작해야겠습니다.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되는지 걱정하고,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라는 <논어>의 말씀을 늘 간직하며 부단히 자기계발을 할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 꼭 원하시는 곳에 취업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아울러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쪽지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