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라임 위치 - laeb laim wichi

저번글에서 버벌진트의 라임론에 대해 언급하며

피타입에 대한 글을 적겠다고 했죠. 

기존에 적던 시리즈를 적어야 해서

좀 미룰까 하다가 

이왕하는거 한번에 하기로 했습니다. 

시리즈는 조금씩 작성 중.. ㅠㅠ

형식과 내용

세상의 거의 모든 부분은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죠.

물을 마시려면 그릇(형식)과 물(내용) 이

있어야 하고

안무를 잘 추려면 자연스러운 움직임(형식)에

안무에 대한 숙지(내용)가 필요하며

수학을 잘하려면 사고력,응용력(형식)에

수학의 개념(내용)이 요구됩니다.

라임운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저번글에서 설명드렸다시피

버벌진트는 라임의 배치(형식)과

라임자체(내용)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죠.

즉 라임운용에 필수적인

'형식'과 '내용' 모두를 제시한거에요.

따라서 유난히 '내용'측면에 특화된

피타입의 라임운용과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대척점에

위치하지는 않게됩니다. 

피타입의 대척점에 있는 라임운용이라면

'형식'측면에 특화된 랩을 구사하는

래퍼여야 하고 그러한 랩 스타일을

가장 잘 구사하는 래퍼가 이센스라고

생각해서 글의 제목을 위와 같이 지어봤습니다.

이 글에서는 피타입의 라임운용을 다루고

다음글에서 이센스의 라임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피타입류 라임운용

버벌진트가 워낙 말도 안되는 업적을 세워버려서

피타입을 위시한 여러 라임장인들의 업적이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버벌진트가 한글라임 개발의 선구자이자

대표격이지만 결국 라임의 발전은

피타입 등의 1세대를 비롯하여 그 이후

래퍼들과의 협업을 통해 더욱 더 이뤄졌는데,

그 부분은 비교적 덜

언급되니까요. 특히나 뒷부분에 나오는

라임몬스터 화나의 연구는

절대 잊혀져서는 안되는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읽기만 해도 랩고수가 되는 가사"

이게 뭔지 궁금하시다면 쭉 읽어주세요!

피타입의 라임운용을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피타입류의 특징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라임' 인데요.

비슷한 형태의 라임을 반복하며

나열하는 식으로 랩을 전개합니다.

*피타입류라고 제가 임의적으로

용어를 붙인 것일 뿐이지

피타입이 이러한 방식'만'

이용한 것도 아니고 동시에

이러한 방식을 피타입 '만'

이용한 것 역시 아닙니다. 

이러한 랩 전개방식을 즐겨쓰는

대표적 래퍼가 피타입이기때문에

글의 재미를 위해 용어를 도입한 것이니 

양해부탁드립니다 ㅎㅎ..

이 피타입류 랩핑은 4WD의

노자벌스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힙합의 성역? 저리가서 성형이나 해라
니 이상형 현주가 미소 짓겠끔
미워죽겠군. 따라와. 니 개꿈 깨게끔"

(성역) (성형) (상형) 을 나란히 배치하고

(겠끔) (겠군) (개꿈) (깨게끔) 을 나란히 배치하는

라임을 보여줍니다. 

초기형태인 만큼 다소 조악한 형태이죠.

하지만 이 라임이 조악하다고 느낄 수 있는건

이후의 발전된 피타입류

랩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피타입의 앨범 Heavy Bass 수록곡을 

보겠습니다. (2004년발매)

"사막 같은 도시를 사나운 바람

벗 삼아 걷고 있는

사나이 세상 앞에 울부짖는 숫 사자다."

피타입-서시 중

(사막)같은 도시를 (사나)운 바람

벗 (삼아) 걷고 있는 (사나)이

세(상앞)에 울부짖는 숫 (사자)다.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시죠?

텍스트로 보면 괄호와 괄호 사이에

간격이 느껴지지만

실제 랩을 들으면 ㅏㅏ 라임을 쉴새없이

몰아치기 때문에 라임이 상당히

반복적으로 들리게 됩니다.

*사나운 '바람' 이 부분도 ㅏㅏ라임인데

강세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은 라임이라 괄호에서 제외.

"정체를 부채질한 자들의 무책임한

흔적과 껍데기만 요란한 자들의

기만적인 모습에 비난은 커녕

쓰레기만도 못한 제 얘기만 노래한 그대

기나긴 시간 동안 무모한 행동앞에

본질 또한 굳이 의도하지

않았대도"

피타입-언더그라운드 중

정체를 부(채질한) 자들의 무(책임한)

흔적과 껍(데기만) 요란한 자들(의 기만)적인

모습(에 비난)은 커녕

쓰(레기만)도 못한 제 (얘기만) 노래한

그(대 기나)긴 (시간) [동안]

무[모한] 행[동앞]에

본질 [또한] 굳이 의[도하]지

않았대도

ㅐㅣㅏ라임의 지속적인 사용과 함께 랩을

이어나가다가 슬쩍

ㅗ ㅏ라임으로 바꿔주며 다시 곡을 이어나가는

방식.

(위 가사 이후에는 또 슬쩍

 다른 라임으로 바꿉니다.)

현재 래퍼들도 즐겨 쓰는 방식이죠.

특히 '기만'이라는 '소리'를

여러가지 단어에서 추출하여 '라임'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껍데 (기만) 

(기만) 적인

쓰레 (기만)

얘 (기만)

피타입의 벌스 중에서도 피타입류를

극단적으로 활용한 곡이 그 유명한

불한당가죠.

"불한당가 불안감과
억울한 밤 따위 금한다
따분한 감각들 아까운가
그 맘 다 안다 그만 간 봐
붉은 물 든 한강과 남산 자락들
안방 같은 서울거리 놀이판 벌인
불한당 답을 안단다"

-피타입 불한당가 벌스 중-

(불한당가) (불안감과)

(억울한 밤) (따위 금한다) (따)

(분한 감각) (들 아까운가) 

(그 맘 다 안다) (그만 간 봐)

(붉은 물 든 한)강 (과 남산 자락)

(들안방같) 은 

[서울거리] [놀이판 벌인]

(불한당 답) (을 안단다)

이 벌스는 압도적인 라임폭풍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강하게 자리잡았죠.

"남산 자락들 안방 같은 서울거리" 

이 가사를 보면 라임을 떼어놓고 봐도 

문학적인 감각도 느껴지구요.

다른 래퍼의 예시도 보겠습니다.

피타입류 라임운용을

완벽하게 계승하고

사실상 완성시킨게 바로

라임몬스터 FANA(화나)이죠.

지금 보여드릴 두 곡은 그냥

읽기만 하면 랩고수가 되버리는

마법의 곡입니다.

소리내서 가사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 곳에 가면 우선 모두 가면을 써가며
늘 서로 가벼운 넉살을 가미한 후
살가운 면을 요구하며 웃어.
감언이설 가득 찬 그 거머리 소굴.
시꺼먼 입술과 머릿 속 잔뜩 커버린
썩은 욕망, 또 위선."

화나-가면무도회 중

그 [곳에] (가면) [우선] 모두 (가면)[을 써](가며)
[늘 서]로 (가벼)운 [넉살]을 (가미)한 [후
살](가운 면)을 요구(하며) [웃어].
(감언)[이설] (가)득 (찬) 그 (거머)[리 소]굴.
시(꺼먼) [입술](과 머)[릿속] 잔뜩 (커버)

[린 썩]은 욕망, 또 [위선].

가사를 읽기만 해도 랩이 나와버리죠?

라임 연구의 끝판왕 수준입니다. 

자음과 모음을 넘나들며 라임의 형태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랩을 전개합니다. 

크게 보면() 부분과 []부분 두가지의 라임형태로

벌스를 구성한거죠.

마법의 벌스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가슴 깊이 열망을 키워나갔던 이 열한 명이

온 아이디얼 잔뜩 쥐어 짜,

다 휘어잡고 뒤엎자는 일념 아래 일어나.

그 뒤 얼마를 뛰었나? 곧이어 나온 앨범.

큰 희열만큼 피어난 꿈이여,

바로 Bangerz. 드디어 밝은

Soul Company 역사의 태동."

화나-샘,솟다 중

가슴 깊(이 열망)을 (키워나)갔던

(이 열한) 명(이온 아)이(디얼 잔)뜩

(쥐어 짜) 다 (휘어잡)고 (뒤엎자)는 (일념 아)래

(일어나) 그 (뒤 얼마)를 (뛰었나) 

곧(이어 나)온 앨범 큰 (희열만)큼 (피어난) 꿈(이여)

바로 뱅(어)즈. 드(디어)

밝은 소울컴퍼니 역사의 태동.

화나의 진정한 실력은 이런 마법의 라인을

만들 정도로 라임을 많이 쓰면서도

메세지적으로 억지스럽거나 작위스러운 부분이

없다는 거죠.

단순한 라임의 나열이 아닌

하고픈 말을 라임에 꾹꾹 눌러담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

피타입류의 완성 그 자체 입니다.

피타입류 라임 즉

꼬리에 꼬리를 무는 라임을 사용하는 것에는

장점이자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임펙트가 크다는 거'

이건 그냥 장점아닌가? 싶지만

16마디 혹은 한 곡 정도 라면 몰라도

앨범 전체를, 커리어 내의 모든 곡을

극단적인 피타입류 라임으로 풀어내려하면

만드는 입장에서도 피곤하고

듣는 입장에서도 과하다고 느끼게됩니다.

감정을 끌어올리고 클라이막스에서 

터뜨리는 고음은 전율을 돋게 하지만

5분내내 고음을 지르면 설득력이 떨어지듯이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피타입이나 화나도 상당히 힘을

조절해 가며 사용하고

여타 래퍼들도 아주 자주 활용하기보다는

임펙트를 주고 싶을 때 그들의 라임운용을

채택합니다.

특히 비트킬링을 할 때.

"Veni vidi, bitch 말했어 이미 의미는 희미
남은 건 서른다섯 전 이민이니
인지 오류 피해 의식 끼리끼리 놀아
나는 선보이니 받지 박수 기립 기립 what"

-Diablo가사 중 저스디스의 벌스-

(배니) (비디) (비치) 말했어 (이미)

(의미)는 (희미) 남은 건 서른다섯 전

(이민)(이니) (인지) 오류 (피)해 (의식)

(끼리)(끼리) 놀아 나는 선보

(이니) [받]지 [박]수 (기립) (기립) what

"뭐든 쉽지 뭐를 하든 간에

난 안 지침

랩은 걍 미침 뒷짐 지고

헛 기침하며 꼰대같이

일침 할 때 i ain't bitchin'

i be eatin' rice"

도끼-Beverly 1lls Remix 가사 중

(뭐든) [쉽지] (뭐를 하든) {간에} {난 안}

[지침] 랩은 {걍} [미침] [뒷짐] [지]고

{헛} [기침] 하며  꼰대[가치] [일침]할 때

I ain't [비친] I be [이틴]

"yes ,how we do it

도플갱음 크루지

열어 두길 두귀 부귀

누릴 우리 music

fuckin' groovy 불이 붙지 불이 쿵칫 딱 

그 리듬이 흠칫"

던말릭-와사비룸 프리스타일 중

예쓰 하(우위) (두잇)

도플갱음 크(루지)

열어(두길) (두귀) (부귀)

(누릴) (우리) (뮤직)

뻐킨 그(루비) (불이) (붙지)

(불이) (쿵칫) 딱

(그 리)(듬 이) (흠 칫)

지금까지 형식(라임의 배치)보다는 

내용(라임자체)에 방점을 둔 라임운용방식인

피타입류에 대해서 다뤄보았습니다.

다시말씀드리지만 피타입류라고해서

형식(라임의 배치)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여기죠.

내용물이 많으면 그만큼 큰 그릇이 필요하듯

라임자체를 많이 다루려면 그만큼 라임의

배치가 중요합니다. 다만 배치와 라임자체에

대해 어느쪽에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두었냐가 

포커스였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한편

피타입류 라임운용을 하다보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바로

'라임 떡칠' 입니다. 

무조건 라임을 많이 맞춘다고 해서

좋은 라임이 아닌데 이를 간과하고 

뻔한 라임을

뻔한 위치에 

뻔한 플로우와

심지어는 덜 익은 톤으로

뱉는 경우

라임떡칠이라는 혹평을 듣는거죠.

"그놈의 레이블 빨 믿고는 내 이름 까

대체 언제 이룰까 정당한 네 이름값"

-2008년 오케이본의 곡 번개쏭 Pt2-

그놈의 (레이블빨) 믿고는 (내이름까)

대체 언(제이룰까) 정당한 (네이름값)

라임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눈으로만 봐도 굉장히 정직한 라임배치입니다.

4음절 라임을 정직한 위치에 배치했으니

응당 플로우도 정직해질 수 밖에 없죠. 

심지어 오케이본의 톤도 굉장히 덜 익은 느낌이라

이 곡은 큰 혹평을 받았습니다.

번외로,

국내힙합에 한정했기 때문에 

라임에 라임을 꼬리무는 래핑을

피타입류라고 칭하긴 했지만

본토의 힙합까지 생각하면

다소 민망해지는 용어긴 합니다.

"A pen and a paper,

a stereo, a tape of Me and Eric B

 and a nice big plate of"

Rakim-Paid in Full (1987년)

A (pen) (and) a (paper)

a s(tereo) a (tape) of Me (and) (Eric) B

(and) a nice big p(late) of

무려87년에 타이트한 라임을 보여주고

계신 라킴옹..

*강세 위주로  크게 묶으면

(A pen and a paper)

(a stereo, a tape of) Me and Eric B

 and (a nice big plate of)

이런식으로 묶을 수도 있을 거같아요.

이런 느낌이라는 거만 참고해주세요!

"Who shot ya?

Ooh got you new spots to vandal?
Do not stand still, boast yo' skills
Close but no krills, toast for po' nils, post no bills
Coast to coast Joe Shmoe's flows"

Madvillain-Figaro (2004년)

(Who shot ya) (Ooh got you) (new spots)

[to vandal] [Do not stand] [still, boast yo] 

[skills Close] [but no] [krills, toast]

[for po' nils] [post no bills] [Coast to coast]

Joe [Shmoe's flows] 

MF Doom의 Figaro 벌스 일부입니다.

피타입의 불한당가나 화나의 가면무도회에서

나온 읽기만 해도 랩고수가 되는 랩

영어버젼이자 오리지널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라임표시는 연음등을 고려하면

한참 모자란 표시지만 대략적으로만

한 것입니다.

" just hoping that they will listen
Start a new coalition against corrupt politicians
It's not enough pots to piss in

 too many murder convictions"

Joey Badass-Land Of Free (2017년)

 just hoping (that they will listen)
Start a new (coalition) against (corrupt politicians)
It's not enough (pots to piss in)

too many (murder convictions)

Joey Badass가 Land of free에서 

비트킬링을 할 때 라임을 쏟아내는 

부분의 일부분입니다.

*이 라임표시도 대략적 표시

이처럼 본토에서 먼저 타이트한

라임운용을 개발한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간 외국의 문화를

일일이 곱씹으며 번역하고 해석하고

연구해서 한글라임을 만들고 개발해준

이들에 대한 리스펙은 여전히 유효하죠.

독학해서 서울대를 간 사람이

학원다녀서 서울대 간 사람보다 

좀 더 재능있는 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서울대를 갔다는 건 그 자체로

의의를 갖듯이, 

한글라임이 외국의 영향을 받아서

개발됐을지라도 한글과 영어의 구조적차이를

극복하며 우리말로 빚어낸

재창조이자 창의력의 산물이므로

그 가치는 빛이 난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다음글에서는

많은 리스너들의 의문점인

'이센스는 라임이 분명 들리는데

막상 찾아보면 찾기가 힘들다'의

답변이 될 수 있는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