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해설 - syopaeng piano hyeobjugog 2beon haeseol

Chopin: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21 · Krystian Zimerman · Los Angeles Philharmonic · Carlo Maria Giulini

Chopin: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21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Op.21

Fryderyk Franciszek Chopin1810-1849 폴란드/프랑스

1. Maestoso

2. Larghetto

3. Allegro vivace

Chopin: Piano Concertos

℗ 1980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Released on: 1999-01-01

Krystian Zimerman · Los Angeles Philharmonic · Carlo Maria Giulini

쇼팽 피아노 협주곡 총설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을 두 곡 작곡했는데, 그 곡들은 작품의 연대와는 반대로 순서가 뒤바뀌어 출판되었다. '2번 바 단조' 작품 21로 알려져 있는 곡은 1829년에 작곡되어 1836년에 출판되었으며, 그 곡보다 작품 번호가 빠른 '1번 마 단조' 작품 11은 '바 단조'의 이듬해인 1830년에 작곡되어 1833년에 출판되었다. 두 곡 모두 쇼팽의 청년 시절, 즉 고국 폴란드에 있을 때 창작된 것이어서 후년의 원숙기 작풍에서 보이는 내용의 깊이와 작곡 기법의 변화 및 완벽성이 부족하다는 흠이 있다. 그러나 청년기 특유의 깊이 있는 정서, 신선한 감각, 표현의 다양함과 현란함 등 후기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엿보인다. 더구나 이것을 19~20세 청년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거기에 번뜩이고 있는 하늘이 준 재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협주곡들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평이다. 따라서 훗날 많은 사람들이 관현악 파트에 손을 가했는데, 그 중에서도 '바 단조'에 대한 클린드워드(Karl Klindworth, 1830~1916), '마 단조'에 대한 타우지히(Karl Tausig, 1841~1871)의 개정이 유명하다. 협주곡 전체의 양식에 후멜(Hummel)을 비롯한 당시의 비르투오소 양식의 영향이 배어 있는 것도 놓칠 수 없다.

쇼팽(1810~1849)은 평생동안 거의 피아노곡만을 작곡했고 음악사를 통틀어 피아노란 악기를 얘기할 때 쇼팽과 견줄만한 작곡가는 드물다. 쇼팽은 2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두 곡 모두 청년기에 작곡하였다. 그래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관혁악부의 상대적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청년기 쇼팽의 예민한 감수성이 배어있어 더없이 애틋하고 아름답다. 쇼팽은 1829년 19세에 피아노 f단조 협주곡을 작곡하나 유럽 여행 중 이 악보를 분실한다. 그래서 1830년 작곡한 e단조 협주곡이 1833년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먼저 출판되고 뒤이어 1836년 f단조 협주곡이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출판된다. 사실상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쇼팽의 첫번째 피아노 협주곡인 셈이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쇼팽의 첫사랑이었던 콘스탄티아에 대한 젊은 날의 연민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 2악장 라르게토는 첫사랑 콘스탄티아에 대한 청춘의 애환과 순정이 그대로 건반으로 옮겨져 건반 하나하나에 쇼팽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이 쏟아 질 듯이 아름답다. 별이 많은 밤에 이 대목을 들어 보면, 피아노의 한 음 한 음이 모두 별을 그려내는 듯하여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쇼팽이 혁명의 불꽃을 피하기 위해 고국 폴란드를 떠났던 것은 1830년 11월 그의 나이 20살 때였다고 한다. 바르샤바에서의 공개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폴란드의 흙을 밟지 않았던 쇼팽. 그가 남긴 2곡의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파리로의 망명 직전에 완성된 작품들이다. 이 두 작품은 그 작곡배경에 있어서 공통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두 곡 모두 쇼팽의 안타까운 첫사랑이었던 여가수 콘스탄쩨 글라드코브스카(Konstanze Gladkowska 1810-1889)에 대한 사랑으로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이 곡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비록 쇼팽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나기는 했다지만 쇼팽은 자신의 음악원 후배이기도 했던 이 오페라 여가수를 끔찍히도 사랑했던 것이고 그녀에 대한 바로 그러한 뜨거운 마음으로부터 이같은 감미롭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피아노 협주곡들이 탄생케 되었던 것이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해설 - syopaeng piano hyeobjugog 2beon haeseol

Gustav Klimt - Schubert at the piano

1번 2악장의 느린 로만체는 달콤하기 그지 없으며, 도취적인 기분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2악장을 쓸 때 쇼팽은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낭만적이고 조용하고 감상적인 마음으로 썼다. 나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생각하며..."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쇼팽이 사랑했던 여인과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며, 고국을 떠나는 자신만의 이별 의식이었다.

이 '피아노협주곡 2번 F 단조'를 감상하시면서 특히 Larghetto로 느리고 우아하게 연주되는 이 2악장을 감상하시면 '피아노협주곡 1번 E 단조'에서와 비슷한 느낌을 상당히 많이 받을 것이다. 가슴 속으로 남 몰래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 약관의 청년 쇼팽(chopin)의 연분홍 감정,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우면서도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설레임과 부끄러움이 선율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승화되어 있음을 느끼 수 있을 것이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 Chopin, Piano Concerto No.1 op.11 & No.2 op.21 ]

스무 살의 쇼팽이 살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독립을 위한 민중 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혼란스러움을 벗어나고자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가족과 마지막 휴가를 보낸 뒤 1830년 10월 11일 폴란드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열었고, 바로 이 자리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를 초연했다. 환송식이 열린 자리에서,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은잔이 그에게 수여되었다. 11월 2일, 쇼팽은 “죽기 위해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라는 느낌을 뒤로 한 채 다시는 밟아보지 못할 폴란드의 땅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피아노 협주곡에 담긴 첫사랑에 대한 은밀한 고백

1829년 8월 빈에서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치고 바르샤바로 돌아온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바르샤바 음악원 졸업과 빈에서의 성공은 쇼팽이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계획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렵 열 아홉 살의 쇼팽은 처음으로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쇼팽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이 났지만, 처음 느끼는 강렬한 기분과 뜨거운 가슴이 고스란히 음악으로 녹아들어 바르샤바 시대의 절정을 장식하는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친한 친구인 티투스 보이체코프스키(Tytus Woyciechowski)에게 1829년 10월 3일에 쓴 편지에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숭배할 수 있는 이상형을 찾았다네. 매일 밤 그녀 꿈을 꿀 정도야.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본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나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네. 협주곡 f단조의 느린 악장을 작곡하면서 그녀를 떠올리곤 하지.”

그 상대는 폴란드 음악원의 학생이었던 성악가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Konstancja Gladkowska)였다.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쇼팽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고, 쇼팽이 세상을 뜨고 난 뒤 모리츠 카라소프스키(Moriz Karasowski)가 쓴 쇼팽 전기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곧 잊어버리게 된 이 풋사랑에 대한 감정이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의 라르게토 악장과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의 로망스 악장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음을 쇼팽 생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오직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뿐이었다. 그의 소심한 마음 때문인지 이 [2번 협주곡]은 글라드코프스카에게 헌정되지 않고, 몇 해 뒤 파리 시절 친교를 맺은 미모의 백작 부인 델핀 포토카에게 헌정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어법이 탄생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낭만주의 협주곡 양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불균형이 단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받아 왔다. 쇼팽 스스로도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솔로 파트만 연주했던 것을 미루어본다면, 그가 오케스트라 부분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파리 시절에도 주위에서 폴란드 고유의 양식을 대변할 만한 오페라를 작곡하라고 부추겼지만, 자신의 미숙한 관현악 기법을 알고 있었던 쇼팽은 솔로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더욱 집착했다. 그러나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많은 작곡가들이 그 관현악 파트를 보강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개정판으로 쇼팽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 칼 타우지히(Karl Tausig)가 교정한 [1번 협주곡]과 카를 클린트보르트(Karl Klindworth)의 [2번 협주곡]을 꼽을 수 있다.

쇼팽은 피아니스트로서 단 30여 회의 대중 연주회를 가졌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특히 1번을 자주 연주했다. 1830년 11월 폴란드를 떠난 그는 빈, 브레슬라우, 뮌헨, 파리를 경유하며 개최한 연주회에서 [1번 협주곡]을 연주했지만 그 이전에 작곡한 [2번 협주곡]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1832년 2월에 가진 정식 파리 데뷔 연주회에서야 비로소 [1번 협주곡]은 그가 기대했던 수준의 찬사를 이끌어내게 되었다. 이후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1번 협주곡]은 파리에서의 쇼팽의 위상을 확고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번 협주곡]은 1830년 3월 17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이 공연은 쇼팽의 바르샤바 정식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당시 관습에 따라 1악장 연주를 마치고 난 뒤 호른과 현악기를 위한 즉흥곡을 한 곡 연주하고 2, 3악장을 연주했다. 초연 당시의 여러 신문들은 이 협주곡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쇼팽의 뛰어난 연주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특히 당시 비평 중에 오케스트라 튜티 부분이 피아노와 잘 어우러지며 협주곡의 정신을 완벽하게 전달했다는 비평이 이채롭다. 현재 작품번호는 제1번 e단조가 Op.11로 앞서 있지만, 사실은 제2번 f단조 Op.21이 한 해 먼저 작곡되었다. 이렇게 작곡 순서와 출판번호가 뒤바뀐 이유는 쇼팽이 먼저 작곡한 2번에 비해 나중에 쓴 1번을 더 만족스러워했기 때문에 이를 먼저 출판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1악장 -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이어 등장하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명인기적인 활약이 탁월하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젊은 쇼팽의 수줍은 열정이 조용히 피어오르는 모습이 느껴지는 듯한 대목이다. 전형적인 제시-발전-재현-코다의 틀을 지니고 있으나 내용면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진행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그 청초한 서정성을 만들어 나간다.

2악장 - 로망스 : 라르게토

빠르기표에서 암시되었듯이 낭만적인 서정성의 효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악장이다.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에 의해 짧은 서주가 제시된 뒤 칸타빌레 주제의 피아노가 등장하며 아름답고 깊은 내면의 소리를 표현해 낸다.

3악장 - 비바체

C샤프 단조로 시작하는 짧은 주제에 이어 피아노에 의해 제시되는 론도는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재기발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꾸밈음과 장식음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독주 피아노는 종지부에 이르면서 더욱 빠르고 강한 에너지와 화려함을 더한다.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

1악장 - 마에스토소 

고전적 협주곡 스타일에 따라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훨씬 간결하고 압축된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2악장 - 라르게토 

쇼팽 피아노 협주곡의 백미는 단연 느린 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차 있는 이 라르게토 악장은 첫사랑에 대한 지고지순한 쇼팽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더욱 애절하다.

3악장 - 알레그로 비바체 

쇼팽의 조국인 폴란드를 대표하는 무곡인 마주르카 스타일의 리듬을 가진 세 개의 주제로 엮어진다. 후반부는 호른의 팡파레에 의해 분위기가 고조되며 피아노의 화려함과 더불어 웅장한 피날레로 이어진다.

추천음반

가장 고전적 명반이자 건강한 생명력이 돋보이는 루빈스타인의 녹음(RCA)은 자의적이거나 도취적인 스타일을 배재하고 폴란드 고유 정서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강조한 연주다. 상송 프랑수아의 연주(EMI)는 즉흥성 넘치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해석이며,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지휘자 뒤투아와 함께 한 연주(EMI) 또한 쇼팽의 찬연한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잘 살려낸 명연이다. 침메르만의 두 번째 녹음(DG)은 작품에 대한 가장 완벽주의적이면서도 폴란드적인 해석의 표본으로 쇼팽 해석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연주자 Murray Perahia,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 녹음연도 1989년 
  • 레이블 Sony SMK 87323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은 작품 번호가 뒤바뀌어 있다. 쇼팽은 ‘첫 번째’ 협주곡인 E단조를 실제로 ‘두 번째’ F단조보다 일 년 늦게 작곡했다. 하지만 출판은 작품 번호대로 이루어졌다. 두 작품 모두 오랫동안 폄하되었는데, 관현악이 뒤로 밀려난 반면 피아노가 너무 강조되어 있다는 이유였다. 독주자가 뛰어난 기교를 마음껏 펼치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무대를 아름답게 장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인 상황을 무시한 해석이다. 쇼팽이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독주자는 영웅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므로 기교를 뽐내면 뽐낼수록 더 좋았던 것이다. 쇼팽은 어딘가 모자란 듯한 모델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켰다. 물론 두 작품에서 빛을 볼 기회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펜 끝에서 나온 선율들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흐른다. 

쇼팽의 협주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자신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단원들과의 2중주 기회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운 음향은 뛰어난 비르투오소만큼 필수적이다. 쇼팽의 느린 악장은 가장 열광적이므로 독주자는 환상곡의 진중한 비행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반면, 오케스트라는 환하게 빛나는 커튼과 같은 사운드를 들려주어야 한다. 

쇼팽의 작품을 즐기면서 연주하는 머레이 페라이아의 연주야말로 그 진가를 누구보다 확실히 표현한다. 제2번의 3악장에는 젊은이 특유의 감정이 솟구치는데, 쇼팽이 십대에 이 곡들을 지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아노 협주곡 [Piano Concertos]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21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쇼팽이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약 일 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1830년 3월 17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그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청년시절 쇼팽은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는데,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번〉보다 먼저 작곡되고 초연되었지만 〈피아노 협주곡 1번〉보다 늦게 출판되어 작품의 순서가 뒤바뀌게 되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F 단조(Op. 21)은 1번보다 먼저 작곡되었던 곡으로 1830년 3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프레데리크 쇼팽 자신이 직접 연주한 것이다. 당시에는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협주곡과 같이 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은 1829년에 만들어 1836년에 출판되었는데, 쇼팽이 가장 처음 만든 협주곡이다. 콘스탄티아 그라도코프스카에 대한 첫사랑을 표현한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콘스탄티아는 당시 19세, 쇼팽보다 3개월 아래였다. 황실 별장 관리자의 딸로서, 음악학교에서 4년간 성악을 배웠고, 우수한 학생이며 또 빼어난 미인으로서 합창단의 두드러진 존재였다. 쇼팽이 폴란드를 떠날 때 콘스탄티아는 리본을 떼어 그에게 주었는데, 쇼팽은 이 리본을 평생 몸 가까이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1악장 Maestoso. 

우주의 세계를 감도는 듯한 애처로운 가락, 환상적인 진행, 로맨틱하고 매혹적인 곡조가 흡족하게 계속된다. 

제2악장 Larghetto. 

쇼팽은 그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이상적인 모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네. 그것을 나는 진지하게 숭배하고 있네. 벌써 6개월이나 지났는데, 나는 매일 밤 꿈에 보는 그 소녀와 아직 한 마디도 말을 못했다네. 그 소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이 협주곡의 제2악장을 만들었네.’ 리스트는 이 곡을 ‘위엄 있는 묵직한 악풍으로 빛나고, 또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갖가지 장엄한 가락을 포함하고 있다’고 평했다. 

제3악장 Allegro vivace. 

이 악장의 연주는 흔히 매우 어렵다는 평을 듣고 있다. 빛을 발산해 가는 아름다움, 상쾌한 가락, 춤추듯이 솟아오르는 곡의 깊은 정취는 백화가 만발한 꽃밭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첫 해외 여행과 첫사랑 콘스탄티아 

1828년 베를린 여행에서 쇼팽은 약간 악마적인 영광을 안고 있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초인적인 예술의 힘을 느끼게 되고 이 큰 충격은 <에튀드>를 작곡하는 계기가 된다. 1829년 그는 혼자만의 사랑이었던 첫사랑을 만난다. 바르샤바 음악원 학생 콘스탄티아 글라드코프스카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해 6월 마침내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함으로써 음악연구에 바쳐진 대단원의 학창시절을 끝내고 음악가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음악의 도시 빈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여러 사람의 설득에 의해 1829년 8월 12일 케룬트너 트루 극장에서 콘서트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 전문적인 비평가 중에는 쇼팽의 연주가 너무 섬세하고 나약하다는 평을 한 사람도 있었는데 쇼팽도 이를 예상하고 이런 말을 남긴다. ‘누구라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너무 힘을 많이 주어 연주한다고 비난받는 것보다 지금처럼 평가되는 것이 좋다’ 1829년 12곡의 에튀드(Op.10)와 피아노협주곡 제2번 f단조(Op.21)작곡을 시작한다.

바르샤바 연주회와 조국과의 이별 

1830년 초 20세의 쇼팽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이 무렵을 전후해서 상류사회의 살롱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살롱에서의 교제는 음악가들보다 문인들과 더 가까웠는데 쇼팽이 만든 훌륭한 즉흥소품은 이들 문학가들이 영향을 준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이며, 이들은 영속적으로 쇼팽의 정감에 영향을 미쳤다. 

쇼팽은 내성적 성격때문인지 바르샤바에서의 공개연주를 미뤄왔으나 마침내 대중 앞에서 연주회 개최를 결심했다. 1830년 3월17일 쇼팽은 바르샤바국립극장에서 제1회 콘서트를 열었다, 입장권은 가장 비싼 특별석까지 개최 3일전에 이미 매진되었다. 연주회를 앞두고 쇼팽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한 것이 있었다. 남모르게 가슴 태우며 연모하는 콘스탄티아가 연주회에 와서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콘스탄티아를 위해 협주곡 제2번 f단조(Op.21)를 만들고 이어서 만든 e단조 협주곡 제1번 아다지오(Op.11)도 그녀의 생각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사랑의 감정은 이처럼 예술가에게 있어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가장 강한 힘이다. 쇼팽은 콘스탄티아에게 노래하기를 바라며 음악원 시절부터 딱 질색이던 가곡도 몇 곡 만든 일이 있었다. 

음악적인 발전을 위해 바르샤바를 떠나기 전날 오후 쇼팽은 작슨공원의 가로수가 있는 조용한 길에서 콘스탄티아와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콘스탄티아는 그에게 리본을 선물했고 쇼팽은 반지를 주었다. 그들은 서로 만났지만 쇼팽은 어떤 약속의 말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전하지 못한 사랑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청년시절 그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협주곡을 쓰던 당시 쇼팽은 바르샤바 음악원에 재학 중이었다. 쇼팽은 그와 같은 학교에 다니며 성악을 전공하는 콘스탄치아라는 여인에게 사랑에 빠졌고, 그녀에 대한 마음을 담아 2악장을 작곡하였다. 당시 쇼팽은 로시니, 벨리니와 같은 당대 유명한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에게도 영향을 받았는데,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이 노래하듯 흐르는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은 성악을 전공하는 콘스탄치아를 생각하며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쇼팽은 친구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2악장은 콘스탄치아에 대한 연정으로 물들어져 있다”라고 고백하였다. 하지만 쇼팽은 소심한 성격 탓에 그녀에게 끝내 고백 한 번 하지 못하고 폴란드를 떠났고, 〈피아노 협주곡 2번〉도 콘스탄치아가 아닌 파리에서 친하게 지냈던 델피나 포토츠카 백작부인에게 헌정하였다. 콘스탄치아는 쇼팽이 죽고 난 후에야 모리츠 카라소프스키가 쓴 쇼팽 전기를 읽고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해설 - syopaeng piano hyeobjugog 2beon haeseol

쇼팽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헌정한 델피나 포토츠카 부인

쇼팽이 자신의 첫사랑 콘스탄치아를 위해 작곡했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고, 포토츠카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빈약한 오케스트라 작곡가

쇼팽이 활동하던 19세기 당시 청중들은 기교가 뛰어난 연주가 즉 비르투오소에 열광하였다. 비르투오소들은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보다 화려하고 까다로운 곡을 직접 만들어 연주하였는데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장르는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쇼팽 역시 청년시절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만들었다.

본래 고전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부분과 독주 부분이 대조와 조화를 이루며 음악이 진행된다. 하지만 19세기 비르투오소가 작곡한 협주곡 대부분은 독주파트에 많은 비중을 두었는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또한 피아노를 우선시한 협주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쇼팽의 협주곡은 총 3악장으로 고전적인 형식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오케스트라와 독주부분이 불균형하게 다루어진다. 특히 그 모습이 1악장과 3악장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오케스트라는 주로 곡을 시작하거나 마무리 지을 때 쓰이거나 피아노 보조의 역할로서 사용된다. 이에 많은 비평가들은 쇼팽을 ‘빈약한 오케스트라 작곡가’라고 평하고 있다.

오케스트라부분에 아쉬움을 가진 많은 작곡가들은 이를 개정하여 연주하였고 그중 카를 클린트보르트(Karl Klindworth)의 개정판이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피아노를 돋보이게 하는 원곡을 더 많이 연주한다.

ⓒ 음악세계 & 음악사연구회(사)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프레데리크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기 전 작곡한 두 편의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로, 협주곡 1번이 된 E 단조 곡보다 1년 먼저 작곡되었으나 악보 출판 순서에 따라 협주곡 2번이 되었다. 쇼팽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이자 낭만주의 시대 협주곡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준 곡이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을 두 곡 작곡했는데, 그 두 곡은 작품 완성 시기와는 역으로 출판되었다. 2번 f단조 는 1829년에 작곡되어 1836년에 출판되었으며, 1번 e단조는 2번보다 1년 늦은 1830년에 작곡되어 1833년에 출판되었다. 따라서 작품번호도 1번이 Op.11, 2번이 Op.21로 뒤바뀌게 되었다. 

두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쇼팽이 스무 살 무렵 청년 시절에 창작한 것이어서 내용과 기법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상주의의 편린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오케스트레이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 특유의 활달한 정서와 신선한 감각, 표현의 다양함은 낭만주의 협주곡 양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 협주곡들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취약하다는 것은 사실이고 쇼팽 또한 자신의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이 빈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훗날 많은 음악가들이 관현악 파트에 손을 가했는데, 1번 e단조에 대한 타우지히(Karl Tausig)의 개정, 2번 f단조에 대한 클린트보르트(Karl Klindworth)의 개정이 잘 알려져 있다.

짝사랑 여인을 떠올리며 작곡을 하다 

2번 협주곡에는 쇼팽의 첫사랑인 바르샤바 음악원 성악과 학생 콘스탄치아 그와트코프스카에 대한 연정이 담겨 있다. 쇼팽이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에게 1829년 10월 3일에 쓴 편지에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적혀 있다. “나는 내 이상형을 찾았다네. 매일 밤 그녀 꿈을 꿀 정도야.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본 지 반년이 지나도록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네. 그녀를 떠올리면서 협주곡의 아다지오를 작곡했어.” 그러나 이 곡은 2악장 라르게토를 쓰는 데 영감을 준 짝사랑 그와트코프스카에게 바쳐지지 않았고, 훗날 파리에서 친분을 맺고 쇼팽의 임종 자리에도 초대를 받아 노래를 부른 델핀 포토츠카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2번 협주곡은 1830년 3월 17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입장권이 매진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공연은 쇼팽의 바르샤바 무대에서의 공식 데뷔이기도 했다. 당시 관습에 따라 1악장 연주를 마치고 난 뒤 호른과 현악기를 위한 즉흥곡을 한 곡 연주한 다음 2악장과 3악장을 연주했다. 초연 당시의 여러 신문들은 이 협주곡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쇼팽의 뛰어난 연주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특히 당시 기사 중에 오케스트라 투티 부분이 피아노와 잘 어우러져 협주곡의 정신을 완벽하게 전달했다는 비평이 이채롭다. 연주 후 쇼팽은 친구 티투스에게 소감을 말했다. 

“1악장 알레그로는 갈채를 받았어. 이 갈채는 대중이 진지한 음악을 어떻게 음미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라르게토는 아주 큰 효과를 냈어. 연주를 마치자 박수와 브라보의 외침이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왔어.”

작품 배경 

어린 시절부터 쇼팽은 폴란드에서 기대를 한몸에 받는 음악가였다. 이미 7살 때 《폴로네즈 G단조 Polonaise in G Minor》를 작곡해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8살 때는 피아니스트로 첫 공개 연주회를 가져 호평을 받았다. 9살 되던 해에 바르샤바 신문에선 “경이로운 천재. 우리도 천재를 낳을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기억시키고자 한다.”는 기사로 그를 소개했으며, 15살 이후부터는 폴란드 내에서 쇼팽이 유명 인사로 대우받을 정도였다. 

16살 때 새로 설립된 바르샤바 음악원에 진학한 쇼팽은 단연 돋보이는 학생이었다. 1829년 음악원의 원장이자 저명한 작곡가로 폴란드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던 요제프 엘스너(Józef Elsner)도 쇼팽을 가르친 후 ‘위대한 천재’라고 극찬했다. 또한 이 해 쇼팽은 빈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져 열띤 호응을 얻기도 했는데, 이에 고무된 쇼팽은 작곡가와 연주자로서 화려한 조명을 받을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 작곡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당시 쇼팽은 같은 음악원의 동급생인 성악 전공의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Konstancja Gladkowska)를 열렬히 짝사랑하고 있었다. 작곡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그녀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쇼팽은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감정들을 곡 속에 녹여냈다. 

1829년 10월 3일 쇼팽이 친구인 티투스 보이체코프스키(Tytus Woyciechowski)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그녀와 이 곡의 연관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나는 슬프게도 나의 이상형을 발견했어. 매일 밤 그녀 꿈을 꿀 정도야. 하지만 난 6개월이 지나도록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있어. 그녀를 생각하며 F 단조 협주곡의 느린 악장을 작곡했어.” 1829년 12월 완성된 곡은 이듬해 3월 17일 바르샤바에서 쇼팽 자신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초연의 반응은 뜨거웠다. 덕분에 쇼팽의 폴란드 내 입지는 확고해졌고, 그에 대한 기대치도 더욱 높아졌다. 그는 곡의 성공에 힘입어 두 번째 협주곡 작곡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 후 완성된 두 번째 협주곡에도 글라드코프스카에 대한 연정이 담겼다. 그러나, 쇼팽은 끝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채 고국을 떠났다. 

한편 이 곡은 E 단조 협주곡보다 먼저 작곡되고 초연이 되었음에도 협주곡 2번으로 명명되었다. 이는 출판사 측에서 악보 출판 순서에 따라 작품 번호를 매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곡 순서와는 상관없이 1833년 출판된 E 단조 협주곡이 협주곡 1번이 되었으며, 1836년에 출판된 이 곡은 협주곡 2번이 되었다. 

이 곡이 늦게 출판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쇼팽이 이 곡보다 E 단조 협주곡을 선호했기 때문에 일부러 늦게 출판하게 된 것이라는 설과 다른 하나는 빈으로 건너간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던 쇼팽이 예기치 않게 이 곡의 악보를 분실하는 바람에 출판이 미루어졌다는 설이다. 곡은 그녀가 짝사랑했던 글라드코프스카에게 헌정하는 대신 파리 사교계에서 쇼팽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델피나 포토카(Delfina Potocka)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음악 구성 

전체 3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협주곡 1번과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라기보다는 피아노의 기능을 더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전편에 걸쳐 피아노의 화려한 특성과 기교가 돋보이는 반면 오케스트라는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1번 2악장의 느린 로만체는 달콤하기 그지 없으며, 도취적인 기분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2악장을 쓸 때 쇼팽은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낭만적이고 조용하고 감상적인 마음으로 썼다. 나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생각하며..."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쇼팽이 사랑했던 여인과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며, 고국을 떠나는 자신만의 이별 의식이었다.

이 '피아노협주곡 2번 F 단조'를 감상하시면서 특히 Larghetto로 느리고 우아하게 연주되는 이 2악장을 감상하시면 '피아노협주곡 1번 E 단조'에서와 비슷한 느낌을 상당히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가슴 속으로 남 몰래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 약관의 청년 쇼팽(chopin)의 연분홍 감정,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우면서도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설레임과 부끄러움이 선율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승화되어 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쇼팽의 첫번째 협주곡 작품입니다. 작곡은 1829-1830 년입니다. 이 곡에는 그의 첫사랑이자 바르샤바 음악원 성악과 학생이던 콘스탄치아 그와트코프스카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곡은 그와트코프스카에게 바쳐진 게 아니라, 훗날 파리에서 친분을 맺은 델핀 포토츠카 백작 부인에게 헌정되었습니다. 초연은 공식적으로는 1830년 3월 17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쇼팽의 첫 귀국 연주회에서 직접 솔로파트를 맡아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 입장권은 전부 매진되어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제1악장 Maestoso (마에스토소)  f단조 4/4박자.

소나타현식 처음에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제시부가 나오고 그 후 제1테마가 노래조로 나타난다. 다시 오보가 제2테마를 연주한 후 제1바이올린이 이어받고 피아노로 넘어간다. 우주의 세계를 감도는 듯한 애처로운 가락, 환상적인 진행, 로맨틱하고 매혹적인 곡조가 흡족하게 계속된다.

이 악장은 [제1번] e단조협주곡의 제1악장에 비해 전체적으로 구성이 간결합니다. 곡의 처음에 관현악 합주가 있으며 현이 아름다운 제1주제를 제시합니다. 이어 오보에가 Ab장조의 제2주제를 나타내고 그것이 제1바이올린으로 이어져 간 후 바로 독주 피아노가 나타나고 서주적 진향이 있은 후, 제1주제를 다시 제시하고 그것을 처리하여 화려한 경과구를 지나 다시 제2주제를 역시 Ab장조로 연주한 뒤 피아노가 e단조의 새로운 자료를 유도합니다. 전개부에서는 제1주제만이 취급되며 피아노와 관현악이 서로 어울려 처리하며, 형식대로 재현부를 지나 제1주제에 의한 짧을 코다로 악장을 마칩니다.

고전적 협주곡 스타일에 따라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훨씬 간결하고 압축된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곡 첫머리에 모든 관현악의 합주가 있고, 현이 우아하게 제1주제를 제시한다. 이어서 제2주제가 오보에로 연주된 후 플루트, 바이올린으로 옮겨 간다. 그것이 끝나면 독주 피아노가 나타나 제1주제를 다시 제시하고 화려한 경과구를 거쳐 다시 제2주제를 연주한다. 격렬한 관현악으로 제시부를 마친다. 발전부에서는 제1주제가 중심적으로 다루어지며 피아노의 화려한 활약에 관현악이 보조를 맞춘다. 모든 관현악의 합주를 사이에 둔 뒤 시작하는 재현부에서는 제1주제를 짧게 다루고 곧이어 제2주제로 넘어간다. 그리고 제1주제에 의한 짧은 코다로 악장을 마친다.

1악장 마에스토소(Maestoso) 제시부-발전부-재현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소나타형식을 따르고 있다. 감정을 끌어올리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전주부에서 현과 오보에에 의해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제시되고, 이어 피아노가 나타나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는 전개를 보여준다. 이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긴장감 있는 조화를 연출하다가 제 1주제에 의한 짧은 코다로 마무리 된다.

제2악장 Larghetto (라르겟토) A장조 4/4박자.

자유로운 론도형식. 첫사랑의 소녀를 생각하며 작곡한 이 곡에는 정서가 충만하게 흘러 넘치는데, 쇼팽의 순정이 단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형태는 녹턴형식을 띠고 있는데, 처음에 우아하고 달콤한 테마가 반복된다. 예리하고도 어둡고 정열적인 중간부를 지나 테마가 재현된다. 쇼팽은 그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이상적인 모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네. 그것을 나는 진지하게 숭배하고 있네. 벌써 6개월이나 지났는데, 나는 매일 밤 꿈에 보는 그 소녀와 아직 한 마디도 말을 못했다네. 그 소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이 협주곡의 제2악장을 만들었네.’ 리스트는 이 곡을 ‘위엄 있는 묵직한 악풍으로 빛나고, 또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갖가지 장엄한 가락을 포함하고 있다’고 평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쇼팽의 첫사랑이었던 콘스탄티아에 대한 젊은 날의 연민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 2악장 라르게토는 첫사랑 콘스탄티아에 대한 청춘의 애환과 순정이 그대로 건반으로 옮겨져 건반 하나하나에 쇼팽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이 쏟아 질 듯이 아름답다. 별이 많은 밤에 이 대목을 들어 보면, 피아노의 한 음 한 음이 모두 별을 그려내는 듯하여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첫사랑의 부인 콘스탄티아 그라드코프스카를 꿈에 그리면서 작곡된 애틋한 정서로 가득 차 있는 악장으로 청년시대의 쇼팽의 작품 중 가장 순수한 감정을 단적으로 나타낸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곡의 형식은 일종의 녹턴풍이며 느리기는 하지만 매우 달콤한 주제가 세 번 반복되는데 그 때마다 장식이 복잡하고 정밀해 지며,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 레치타티보풍의 간주가 삽입되어 더욱 열정적인 정서를 나타냅니다. 또한 피아노가 이 간주를 연주할 때 현이 이를 떠받치며 마지막에는 짧은 코다로 끝납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의 백미는 단연 느린 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차 있는 이 라르게토 악장은 첫사랑에 대한 지고지순한 쇼팽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더욱 애절하다. 청년 시절의 순수한 감정을 단적으로 표출한 악장이다. 곡의 형태는 일종의 녹턴이다. 조금 길지만 매우 감미로운 주제가 세 번 반복되는데, 그때마다 정취가 고조를 이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는 극적인 레치타티보 풍의 간주가 삽입되어 열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끝에 짧은 코다가 있다.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청년 쇼팽의 연정이 녹아있는 악장이다. 전곡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악장으로 야상곡을 연상시키는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이 인상적이다. 감미로운 주제가 세 번 반복되며 단순하게 전개되는 듯하나 음악적으로는 후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원숙미와 깊은 울림도 감지된다. 쇼팽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악장에 대해 “낭만적이고 조용하고 감상적인 기분으로 만들었다. 나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라고 밝혔다.

제3악장 Allegro vivace (알레그로 비바체) F단조 3/4박자.

론도형식 제1테마가 피아노로 연주된다. 전악장은 마주르카풍의 리듬을 가진 테마로 구성된다. 향토성이 짙고 화려하게 즉흥적인 발전을 보이는 환희에 찬 악장이다. 이 악장의 연주는 흔히 매우 어렵다는 평을 듣고 있다. 빛을 발산해 가는 아름다움, 상쾌한 가락, 춤추듯이 솟아오르는 곡의 깊은 정취는 백화가 만발한 꽃밭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악장의 구성은 매우 약합니다. 전곡은 마주르카풍의 리듬을 가지는 여러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나 [제1번]의 피날레처럼 빛나는 효과는 볼 수 없습니다. 처음에 피아노에 의해 제1주제가 나타나고 관현악의 전 합주에 이어 제1주제가 장식을 달리하여 재현되며 이어서 피아노의 하강 반복 진행이 있은 후 3잇단음표의 화려한 패시지에 이어 관현악이 연주하는 제1주제를 지나 피아노는 Ab장조, 스케르짠도의 제2주제를 제시하지만 매우 인상적인 선율입니다. 이 주제가 처린된 후 제1주제가 재현되며 마지막에는 호른의 신호레 따ㅣ라 최종 단락에 이르고 여기서 피아노가 3잇단음표적인 음형처리를 마치고 화려한 코다로 들어섭니다.

쇼팽의 조국인 폴란드를 대표하는 춤곡인 마주르카 스타일의 리듬을 가진 세 개의 주제로 엮어진다. 첫머리에 피아노로 제1주제가 나타난다. 모든 관현악의 합주에 이어 피아노의 하강하는 패시지를 거쳐 셋잇단음표의 화려하고 질주하는 듯한 악구에 이른다. 이어서 관현악 연주를 거쳐 피아노가 스케르찬도의 제2주제를 제시하는데 섬세한 선율이 매우 인상적이다. 후반부는 호른의 팡파르에 의해 분위기가 고조되며 피아노의 화려함과 더불어 웅장한 피날레로 종곡을 한다.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Allegro Vivace) 폴란드 민속춤곡인 마주르카풍의 리듬이 여러 개의 주제로 나타나는 밝고 경쾌한 악장이다. 시작과 동시에 피아노에 의해 매혹적인 제1주제가 제시되고 곧이어 오케스트라가 화려하게 등장해 호흡을 맞춰나가면서 제 2주제를 들려준다. 이어 피아노의 현란한 리드 아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다 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쇼팽의 열정과 기백, 조국애와 유머 감각까지도 엿볼 수 있는 악장이다.

연주 정보 

20세기 쇼팽 스페셜리스트들이 남긴 명연이 즐비하다. 먼저 쇼팽의 후예인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의 연주로는 쇼팽 연주에 있어 하나의 기준이 되어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역시 폴란드 출신의 지휘자 스테니슬라프 스코로바츠비스키(Stanislaw Skrowaczewski)이 지휘하는 런던 뉴심포니 오케스트라(New Symphony Orchestra Of London)와 협연한 1961년 녹음이 고전적인 명연으로 꼽히며,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 Zimerman)의 두 종, 스물 세 살 때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가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79년 녹음과 그 자신이 지휘까지 겸했던 폴리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Polish Festival Orchestra)와의 1999년 녹음도 훌륭하다. 특히, 폴란드 연주자 55명을 엄선해서 조직한 폴리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1999년 녹음은 폴란드의 혼이 살아숨쉬는 가장 이상작인 명연으로 평가받는다. 

그 외 2005년 제15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라파우 블레하츠(Rafal Blechacz)가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지휘자 예르지 셈코프(Jerzy Semkow)가 지휘하는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와 협연한 2009년 녹음도 역대급이라는 평을 받는다. 한편 탁월한 쇼팽 전문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리 프랑스 출신의 샹송 프랑스와(Samson Francois)가 역시 프랑스의 지휘자 루이 프리망(Louis Fremaux)이 이끄는 몬테카를로 국립 오케스트라(Monte Carlo National Opera Orchestra)와 협연한 1967년 녹음, 불가리아 출신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 (Alexis Weissenberg)가 폴란드의 지휘자 스타니슬라프 스크로바체프스키(Stanisław Skrowaczewski)가 지휘하는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68년 녹음, 한국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안토니 비트(Antoni Wit)가 지휘하는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arsaw Philharmonic Orchestra)와 협연한 2003년 녹음도 널리 정평이 나있다. 

여성 피아니스트의 연주 중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의 두 종,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가 지휘하는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78년 녹음과 스위스의 지휘자 샤를 뒤투아(Charles Dutoit)가 이끄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99년 녹음이 자타가 공인하는 명연이다. 또,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ão Pires)의 두 종, 아르맹 조르당(Armin Jordan)이 지휘하는 몬테 카를로 내쇼날 오페라 오케스트라(Orchestre National de l'Opera de Monte-Carlo)와 협연한 1979년 녹음과 독일 태생의 미국인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Andre Previn)이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Orchestra)와 협연한 1994년 녹음도 현대적인 감성과 품격을 갖춘 명연으로 분류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쇼팽이 막 20세가 되었을 무렵에 이제 막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를 바르샤바 국립 극장에서 초연했던 것은 1830년 3월 17일 이었다. 이 연주는 크게 성공하여 5일 후 다시 연주하여야 했다. 기로베츠, 리스, 모쉐레스, 그리고 훔멜과 같은 당시 그에게 친숙했던 당대 바르샤바 최고의 작곡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기교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쇼팽은 거기에 그만의 독특한 시적 감수성을 더하고 있다. 관현악 부분의 빈약함이 작품의 출판을 지연시켜 그 뒤에 작곡된 e단조 작품11이 먼저 출판되고 나서야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f단조 협주곡의 작품번호가 e단조 보다 뒤가 되었고 사람들도 대개 이것을 2번 협주곡이라 여기게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고전주의적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시작부분은 당당하고 거만한 듯한 f단조의 제1주제와 훨씬 서정적인 A플랫 장조의 제2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제1주제와 제2주제는 모두 오케스트라에 의해 먼저 제시되고 그 후에 건반악기다운 매력적인 장식음들을 수반한 아름다운 독주부가 뒤따른다. 발전부와 재현부 전체를 통해 피아니스틱한 기교가 매우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형식적인 카덴짜는 필요없다.

A플랫 장조의 느린 악장은 젊은 쇼팽이 당시 유행하던 이태리 오페라의 벨칸토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악과(科) 학생이었던 콘스탄티아 그라드고프스키에 대한 그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관현악의 반주가 곁들여진 녹턴 같은 양식으로 시작과 끝 부분에서는 섬세한 장식음들로 꾸며진 아름다운 노래가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가운데 부분은 정열적이다.

가벼운 왈츠로 시작하는 마지막 악장은 현악기의 인상적인 꼴 레뇨(활등으로 연주하는 것) 반주 위에 마주르카 같은 제2주제를 갖고 있어 민족주의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자유로운 발전부와 재현부에서 쇼팽은 특별한 상상력을 자극했음이 틀림 없다. 적어도 협주곡이 F장조로 돌아오고 있음을 알리는 혼의 울림이 얼마나 훌륭하게 변형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폴란드 땅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통합하여

두 피아노 협주곡 No.1과 No.2가 완성된 후, 쇼팽이 세번째의 피아노 협주곡을 시도했었다는 기록이 1834년 쇼팽의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나 있지만, 쇼팽의 건강상 이유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서는 화려한 찬사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레이션의 빈약함과 전통적 작곡 양식에 어긋나는 대담한 조성에 대해 반대하는 비평이 동시에 따라 다닌다.

위 1악장의 조성 변화에서 '자살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도날드 토비는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선 '쇼팽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몇 몇 불필요한 트롬본 파트를 제외하면 과장 없고 정확한 피아노 반주'로 해석 하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에서 다시 한번 쇼팽은 조국 폴란드에 대한 사랑을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다. 바르샤바 언론은 다음과 같이 쇼팽을 이야기 한다.

"쇼팽은 폴란드의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알고 있고, 폴란드 마을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는 노래들을 들어 왔다. 그는 폴란드 땅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들을 통합하여, 이를 자신의 독창적이고 고도로 숙련된 작곡과 우아한 연주로 승화시켰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해설 - syopaeng piano hyeobjugog 2beon haeseol

필유린의 클래식 음악

좋은 음반, 좋은 음원으로 더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