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감독 - 7beonbang-ui seonmul gam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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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킹 류승룡!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바보'로 돌아오다! 최악의 흉악범들이 모인 교도소 7번방에 이상한 놈이 들어왔다! 그는 바로 6살 지능의 딸바보 '용구'! 평생 죄만 짓고 살아온 7번방 패밀리들에게 떨어진 미션은 바로 '용구' 딸 '예승'이를 외부인 절대 출입금지인 교도소에 반.입.하.는.것! 2013년 새해, 웃음과 감동 가득한 사상초유의 합동작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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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번방의 선물 감독 - 7beonbang-ui seonmul gamdog

    캐릭터 학대를 통해 얻어낸 눈물의 의미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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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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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dinci Kogustaki Mucize, 7. Koğuştaki Mucize, 2019 원문 더보기

Yedinci Kogustaki Mucize, 7. Koğuştaki Muciz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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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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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in Cell No.7, 2012 원문 더보기

Miracle in Cell No.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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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2013.01.23장르드라마국가한국등급15세이상관람가러닝타임127분

평점8.7누적관객12,812,144명수상내역34회 황금촬영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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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가족영화는 재미없다는 평을 들으니 오기가 생겨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며 "우리들의 근간이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걸 되짚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환경 감독 주변에는 그의 선한 성품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만난 그는 역시 웃음과 정이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영화는 그의 모습처럼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외면 받아왔다. 경주마와 소녀의 우정을 그린 영화 '각설탕(2006)'도 그랬고 부녀 간의 사랑을 그린 '챔프(2011)'는 흥행 측면에서 더 호된 성적표를 받았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그가 흥행에 실패했던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가족영화다. 주목을 끌 만한 스타도, 막대한 제작비도 들지 않았던 이 영화가 흥행할 거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1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이 영화는 사랑을 받았고 가족이 다 함께 와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1000만 돌파 기록을 세운 지 일주일이 지난 1일 현재까지도 '7번방의 선물'은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어 앞으로 어떤 기록을 세울지 주목되고 있다.

7번방의 선물 감독 - 7beonbang-ui seonmul gam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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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경 감독의 꿈은 원래 연기자였다.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에 차석으로 합격한 것도 '연출'이 아닌 '연기' 전공으로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대학에는 잘생긴 친구들이 너무나 많아서 끼일 틈이 없었다. 자신을 캐스팅해 주지 않자 직접 연출에 나서기 시작한 게 감독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고 그가 만든 단편으로 모교에서 수여하는 최고 예술상인 '예술의 빛' 상을 세 번이나 받으며 영화인으로 꿈을 키우게 됐다.

처음으로 기성 영화의 연출부에 들어간 건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가족'이었다. 2년간 이 감독과 함께했으나 영화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박종원 감독의 '송어'의 연출부로 충무로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를 더 하고 싶었지만 결혼을 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고 CJ 39쇼핑에 PD로 입사했다. 적은 방송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영화에 있었던 그는 아버지의 암 수술을 계기로 직장에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들었다.

2004년 '그놈은 멋있었다'로 데뷔한 그는 2006년 '각설탕', 2011년 '챔프'를 만들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7번방의 선물'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려하게 회생했다.

-1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도 열기가 식지 않는다. 기분이 어떤가?

▶매일 아침 놀란다. 기쁜 마음을 즐길 틈도 없이 관객들이 찾아주셨다. 예상치도 못하게 빠른 속도로 흥행이 됐다. 내가 스스로를 낮추려고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라, 한편으로는 우리 영화만 아주 사랑해주시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나도 전작을 실패한 감독이라서, 같은 영화인으로서 우리 영화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모두 잘됐으면 한다.

-영화의 어떤 점이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생각하나?

▶난 두 아이의 아빠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내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들도 대부분 자식이 있는 '아버지'였다. 만드는 사람들 모두가 아빠의 마음으로 만드니까 관객들도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또 누군가의 부모로서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왜 가족영화를 고집하나, 가족영화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했고 그게 대사에 그대로 담겨 있다. 예승이가 아버지 용구에게 "절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과 용구가 딸에게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모든 사람들이 혼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로 인해 어떤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 책임감만 명확히 하고 가도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어서 가족 영화를 계속 만드는 것 같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사실 영화에 가족이 총출동했다.(웃음) 주인공 이름 '예승'이는 실제 내 딸의 이름이다. 아내는 작가인데 영화 속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의 작사를 해줬다. 그리고 작년에 태어난 내 아들은 "아기가 웃기게 생겼다'고 말하는 사진 속 주인공이다. 웃기게 생긴 애의 사진을 구할 수 없어서 아내 몰래 그냥 내 아들 사진을 썼다.

-만화 캐릭터 '세일러문'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나 어렸을 때도 '세일러문'이 있었는데 딸아이도 '세일러문'을 안다고 하더라. 어린아이들도 알고 40대까지 아는 만화캐릭터인 것이다. 아이와 노는 걸 좋아하다 보니 늘 함께 세일러문 노래를 부르고 놀았고 그 소재를 그대로 가져왔다. 특히 세일러문이 외치는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문구를 끌어와서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면 전 세대가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전작 '챔프'도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다. 왜 가족 중에서도 특히 '부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가?

▶첫째인 딸이 6학년이고 둘째인 아들이 지난해에 태어났다. 딸의 아빠로서 지낸 시간이 더 많다.

주변에서 나보고 '딸바보'라고 하지만 사실 딸에게 그렇게 헌신적으로 하지 못했다.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이 딸아이가 나만 보면 "아빠, 언제 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았다.

-교도소, 지적장애인, 사형제도 등 다소 극단적인 소재 때문에 비판도 많다. 특히 이야기 논리가 맞지 않고 지적장애인을 희화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극단적인 장치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의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아이를 남기고 교도소에 간 아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그걸 보면서 딸은 혼자서 어떻게 지내나, 아빠가 딸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교도소가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 거다. 그동안 '각설탕'이나 '챔프'에서 이미 가족 이야기를 해왔는데 계속 실패했다. 가족 이야기를 전에 하지 않았다면 이런 극단적인 배경은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른 게 필요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을 희화화한다는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다. 주인공 용구는 죽은 내 친구의 실제 이름이다. 성격도 외모도 용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용구는 지적장애인은 아니었다. 다만 바보처럼 아주 순수하고 많은 것을 주던 친구였다. 용구는 스물아홉 살에 죽었다. 채 피지 못한 용구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대변해주고 싶었다. 지적장애인을 희화화하려는 게 아니라 용구의 모습을 담은 거였다. 영화가 잘된 것도 용구가 하늘에서 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아이앰샘'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두 작품을 모두 생각하고 만든 게 사실이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용구가 예승이를 보러 오는 건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오마주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면서 일부러 다시 보진 않았다. 그 느낌은 갖고 오되, 치우지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을 법한 이야기가 이어지다보니 '판타지'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밖에서는 지적장애인과 어린아이를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았지만 오히려 교도소에서는 따뜻하게 받아주지 않나. 바깥은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차갑게 찍고 교도소 안은 파스텔톤으로 찍어 병치효과를 줬다. 교도소 안이 마치 '꿈'에 있는 듯이 보이게 하고 싶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최초의 '코미디'라고 하지만 웃음 못지않게 눈물도 많은 영화다. 어느 쪽이 더 주효했다고 보나?

▶내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최정점이 웃고 있으면서도 눈물이 나는 거다. 그게 정말 어렵기 때문에 희열도 큰 것 같다. 극과 극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다. 웃음 때문에 눈물이 커지고 눈물 때문에 웃음이 커진다.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에 관객들의 감정을 극대화시킨 것 같다.

■아들영화 나올때마다 아버지는 달린다 아들·주인공 이름 옷에 새기고 동네 뛰어…

7번방의 선물 감독 - 7beonbang-ui seonmul gam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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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경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마다 아버지 이의식 씨는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을 하나 맞춘다. 운동복 조끼에 아들의 이름과 아들이 만든 영화 제목, 주연 배우 이름을 새기고는 동네를 달린다. 이번 영화 때도 이씨는 파란 조끼에 '7번방의 선물'이라는 이름을 새기고 뛰었다. 이의식 씨는 암 선고를 받은 후 마라톤을 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운동한 끝에 예순이 넘어 철인3종경기에 나갈 정도로 건강해졌고 일흔이 넘은 지금도 각종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이 감독은 "아버지가 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싶어하셨다"며 "이번 4월에는 꼭 보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이 감독의 집엔 과일이 풍부했다. 과일가게를 하는 아버지 덕에 맛 좋은 과일을 늘 먹을 수 있었다. 하루는 그가 아버지에게 가게에서 파는 과일은 집에 가져오는 과일과 다르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파는 과일이 더 안 좋을 거라는 게 어린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파는 과일과 집에 가져오는 건 똑같다고 말했다.

"파는 물건도 자식이 먹는 것과 똑같아야 한다. 그게 바로 장사다."

이 감독은 아버지의 이런 철학을 영화를 만들 때 늘 떠올린다고 했다. 내 가족이 보는 것처럼 관객을 생각하는 것, 그의 영화가 1000만을 돌파한 비밀이다.

■ He is…

△1970년 서울 출생 △1991년 서울예술대학 입학 △1995년 이명세 감독 영화 '가족' 조감독으로 영화계 입문 △1997년 박종원 감독 '송어' 조감독 △1999년 CJ홈쇼핑(당시 39쇼핑) 입사 △1999년 아버지 위암 말기 판정 소식을 들은 후 퇴사 △1999년 MBC 무비스에서 영화제작기획 PD 재직 △2004년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로 데뷔 △2004년 영화 '각설탕' 연출 △2011년 영화 '챔프' 연출 △2012년 영화 '7번방의 선물'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