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29 [4K] BLACKPINK 제니 직캠 - 불장난 (PLAYING WITH FIRE) @ MMA https://t.co/kQ2iDaF97n #OurStarJennieDay pic.twitter.com/A2oezgDR0k Show 일러두기: 한국 아이돌, 나아가서 K-POP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태동기를 포함한 현 시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목록에 적혀있는 가수들 가운데에 아이돌 컨셉이 아닌 가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은 1980년대 후반을 포함한 2020년대 이후 현재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모두 설명하기 위해서 서술한 것이다.
2. 1세대 아이돌 이전 (~1994년 이전)[편집]1세대 아이돌 이전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밴드 · 보이그룹 샌드페블즈(1970) 산울림 (1977) 송골매 (1979) 들국화 (1985) 시나위, 백두산, 부활 (1986) 걸밴드 · 걸그룹 세또래 (1987) 휘파람새 (1989)[6] S.O.S, 애플, 칼라[7], 크림, 혜성 (1993) 코코 혼성그룹 현이와 덕이 (1976), 높은음자리 (1985), 세대교체 (1988), 마로니에 (1989), 철이와 미애, 1730[8] (1992) 잼 (1993) 남성솔로 신중현 (1958) 전영록 (1975) 이수만 (1977) 구창모 (1978) 조용필[9] (1979)[10] 이문세 (1983) 여성솔로 윤시내 (1974) 혜은이, 이은하 (1975) 2.1. 1970~1980년대[편집]1970년대 이전의 한국 음악 역사에 대해서는 한국 음악 문서를 참고. 2.2. 1990년대 초반[편집]그리고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오늘날과 같은 본격적인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효시로 거론되는 가수는, 1992년의 서태지와 아이들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이후 1년 뒤 듀스의 데뷔를 더해서 두 그룹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전의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주도권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30~40대의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었지만, 두 그룹의 충격적인 데뷔는 10~20대에게 대중음악계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는 계기가 되어, 이후 가요계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불기 시작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힙합 Remix
3. 1세대 아이돌 (1994~1998년)[편집]1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윤도현밴드(YB), 토이, DJ DOC (1994) 걸그룹 비비, 에코, 미스미스터, 뚜띠[40] (1996) 혼성그룹 룰라, 투투, 뮤, 쿨[44] (1994) 남성솔로 서지원, 박진영[53], 김경호[54], 바비 킴, 김정민, 성진우, 구본승 (1994) 여성솔로 이예린[58] (1994) 1990년대 Kpop Idol History H.O.T. '캔디' 젝스키스 '폼생폼사' 1세대 아이돌 댄스그룹의 조상격이자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H.O.T.와 젝스키스의 공연장면. 4. 1.5세대 아이돌 (1999~2003년)[편집]1.5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god,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클릭비, Y2K, A4, 피플크루, 야다, 플라워, 프리스타일, 드렁큰 타이거, 배치기 (1999) 걸그룹 클레오, 티티마, O-24, 애즈원[69], 타샤니, See U, 두리안 (1999) 혼성그룹 허니 패밀리 (1990) 남성솔로 강현수, 김범수, 박효신, 현승민, 조PD, 김사랑 (1999) 여성솔로 유채영[78], 이정현, 백지영[79], 소냐, 샤니, 채정안, 이수영[80] (1999) 이효리 '10 Minutes' 쥬얼리 '니가 참 좋아'
5. 2세대 아이돌 (2004~2008년)[편집]2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동방신기, TRAX, V.O.S, SG워너비, 엠투엠, 다이나믹듀오, 원티드, 엠스트리트(M.street) (2004) 혼성그룹 클래지콰이 (2004) 익스 (2005) 걸그룹 Shyne (2004) 남성 솔로 KCM, 이승기, 테이, 일락,아웃사이더(래퍼)(2004) 여성 솔로 럼블 피쉬[98], 윤하[99], 데이라이트, 이안 (2004) 2004년 2월 21일, MBC 음악캠프 중 동방신기 'Hug' 2007년 9월 8일, MBC 음악중심 중 원더걸스 'Tell Me' 2007년 9월 29일, MBC 음악중심 중 BIGBANG '거짓말'
6. 2.5세대 아이돌 (2009~2013년)[편집]2.5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슈프림팀[해체], 비스트[118], 엠블랙[해체], SHU-I[해체], 디셈버[계약종료] (2009) 걸그룹 2NE1[해체], 포미닛[해체], 애프터스쿨[계약종료], 티아라, f(x)[해체], 레인보우[계약종료], 시크릿[해체], JQT[해체], HAM[해체], 브랜뉴데이[해체] (2009) 혼성 그룹 어반자카파 (2009) 남녀공학[해체] (2010), 트러블 메이커 (2011) 남성 솔로 태군[176], AJ[177], 청림[178], 서인국, G-DRAGON[BIGBANG] (2009) 여성 솔로 NS윤지, 김소리, 메이다니, 박봄[투애니원] (2009) 2009년에 이르러 YG(BIGBANG,2NE1), SM(천상지희, 소녀시대, 샤이니,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JYP(2PM, 원더걸스)의 3강 구도가 뚜렷해졌다. 7. 3세대 아이돌 (2014~2018년)[편집]3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GOT7[계약종료], WINNER, 비아이지, 매드타운[해체], 핫샷[해체], HIGH4[해체], 잔나비 (2014) 걸그룹 멜로디데이[해체], 베리굿[해체], 배드키즈, 마마무, Red Velvet, 러블리즈[계약종료], 라붐 (2014) 혼성그룹 AKMU, 신현희와 김루트[해체] (2014) 남성 솔로 에디킴, 태민[샤이니], 박재정, 한동근, 지코[블락비], 비와이, 창모, 나플라, 규현 [슈퍼주니어] (2014) 여성 솔로 샤넌, 박보람, 권진아, 헤이즈, 레이나[애프터스쿨], 펀치 (2014)
8. 3.5세대 아이돌 (2019년~2021년)[편집]3.5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원어스, VERIVERY,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원더나인[프로젝트종료], DKZ, 원위, AB6IX, OnlyOneOf, CIX, 디원스, X1[조기해체][279], BDC, 호미들[280](2019) 걸그룹 체리블렛, ITZY, EVERGLOW, BVNDIT[해체], 핑크판타지 SHY, FANATICS, 로켓펀치, HINAPIA[해체], MDD[활동일시중단] (2019) 혼성그룹 K-TIGERS ZERO (2019) 남성 솔로 윤지성[워너원], 하성운[워너원][핫샷], 박지훈[워너원], 김재환[워너원], 첸[엑소], 백현[엑소], 강다니엘[워너원], 노태현[핫샷], 권현빈[JBJ], 이진혁[업텐션], 정동원, BIG Naughty, 조광일, 김진우[WINNER] (2019) 여성 솔로 유키카, 화사[마마무], 전소미[IOI], LANA, 이영지, 오하영[에이핑크], 김지연(Kei)[러블리즈], 루리, AleXa, 정유진, 신예영,Yuzion (2019)
남자 솔로 부문에서는 거대 보이그룹이었던 Wanna One이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그 멤버들 일부가 솔로로 혹은 유닛으로 데뷔하기 시작했다. 9. 4세대 아이돌 (2022년~)[편집]4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TRENDZ, TAN, JWiiver, TEMPEST, YOUNITE, NINE.i, TNX, ATBO, AIMERS (2022) 걸그룹 GOT the beat, Kep1er, H1-KEY, NMIXX, VIVIZ, ILY:1, LE SSERAFIM, CLASS:y, Lapillus, IRRIS, 소녀세상, Apink 초봄, WSG워너비, 첫사랑, PRIKIL, NewJeans, mimiirose, LIMELIGHT, 퀸즈아이, tripleS, ARTBEAT (2022) 혼성그룹 - 남성 솔로 우지[세븐틴], 마크[NCT], 원필[DAY6], 기현[몬스타엑스], 제이홉[방탄소년단], 진[방탄소년단] (2022) 여성 솔로 최예나[아이즈원], 정예인[러블리즈], 홍의진[소나무], 이수정[러블리즈], 미연[(여자)아이들], 예린[여자친구], 나연[트와이스], 최유정[위키미키], 슬기[레드벨벳], 이채연[아이즈원] (2022) SM, JYP, YG 3강 구도를 깨버린 빅히트가 하이브로 사명을 변경한 후 처음으로 론칭한 LE SSERAFIM과 NewJeans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대형 기획사의 4강 구도를 견고히 하고 있다. 10. 세대 구분의 모호성[편집]
[1]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2]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 멜론뮤직어워드[3] 골든디스크 본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 남녀그룹상/가수상, 멜론뮤직어워드 TOP10[4] ZAM의 조진수가 이 그룹으로 데뷔했었다.[5] 사실상 대중가요계의 레전드이자 최종보스급 체급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우상이자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대한민국 아이돌을 사실상 시작했다고 볼수 있는 그룹으로 활동기에는 그냥 서태지와 아이들 독주 체제 시대였을만큼 압도적인 그룹이였다.[6] 고적대 컨셉으로 활동한 3인조 걸그룹 참조 영상[7] 1993년 처음으로 언론에 걸그룹으로 소개된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 4학년생들이 만든 칼라라는 걸그룹으로 1993년 강변가요제에서 "후회하고 있는거야" 라는 데뷔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칼라는 당시 걸그룹이라 불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빅마마같은 보컬 그룹이라 할수있기 때문에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형태의 최초 걸그룹은 애플이 시조새라 할 수 있다.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8] 배우 이혜영이 '로미'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었다. 해체 이후로는 윤현숙과 같이 여성 듀오 '코코'에서도 활동했다.[9] 전 세대에 걸쳐서 사랑받는 국민가수였지만, 한편으로는 1980년대 시절에 최대 규모로 수많은 10대 팬들을 거느렸던 아이돌이었으며 팬클럽도 있었다.[10] 물론, 음악활동은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게 시작이며, 이미 1979년 이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몇개의 앨범을 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히트곡을 남겼지만, 공식적으로는 <창밖의 여자>가 나온 1979년을 데뷔년도로 친다.[11] 김승진과 박혜성은 1980년대 여학생들의 우상으로 군림했으며, 남성 솔로 "하이틴 스타"의 원조격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었다. (물론, 남진과 나훈아가 라이벌 구도이긴 했지만...) 영화 품행제로에서도 "이 둘 중에 누가 더 멋있냐?"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12] 못 믿겠지만 무한궤도 때와 솔로활동을 할 때만 해도 아이돌 포지션에 가까웠다. 물론 신해철 본인은 이 시절을 흑역사 아닌 흑역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넥스트 때보다 이 때의 신해철을 더 좋아한다는 게 함정(...)이다.[13] 동명의 여가수 이정현과는 다른 가수.[14] 한창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시기에는 사실상 아이돌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10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었고, 당시의 199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도 장난아니었던 시기였다.[15] 실질적인 음악활동은 1987~88년부터. 작곡가▶아이돌(...) 루트를 탄 거의 유일무이한 케이스다.[16] 김민종은 가수 데뷔 이전부터 탤런트로 유명했지만, 발라드 가수로도 같이 활동했으며 히트곡도 많이 남겼다. 발라드 장르로서는 신승훈이나 이승환 정도는 아니지만 가수로서도 존재감이 컸고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겼던 케이스다.[17] 벌써 이 밤이 다 지나고를 부른 여고생 가수였다.[18] 물론, 엄정화는 1993년에 이미 가수로 데뷔를 했었고, 이미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가수로 활약했던 리즈 시절 히트곡의 시대는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그 유명한 1997년 3집의 배반의 장미, 4집의 포이즌부터 5집의 몰라, 페스티벌 등으로 연달아 히트곡을 냈다. 오히려 다나, 하늘같은 아이돌 가수보다 실질적인 여자 싱글 가수로서 톱을 차지했던 가수는 역시 엄정화, 김현정, 박지윤, 이정현, 백지영, 채정안이었다.[19] 대표적으로,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와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기차와 버스 안에서 영미권의 영향력이 컸던 시대에 맞는 팝송을 부르고 경쾌한 댄스 곡에 맞춰서 춤을 추는 장기자랑을 하는 것이 당시의 상황에 맞는 고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386세대 중에서 춤 좀 춘다는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흉내내보지 않은 사람 거의 없었다.[20]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이 저물면서 이를 대체할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다. 특히 해당시기 MTV의 등장으로 영미권에서도 비주얼이 중심이 된 아이돌 음악이 융성하기 시작했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21] touch by touch의 조이, atlantis is calling의 모던 토킹, bambina의 데이비드 라임. 영미권에서는 전혀 인지도가 없으며 유럽 일부지역에서만 인기였었다. 물론 유로댄스는 80년대 전반 국내에서 대유행했다. words의 F.R. 데이비드, I like chopin의 가제보 등.[22] 노래 가사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도입부와 후렴구인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에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 이 노래는 원래 김현준과 같이 부른 듀엣곡이었으나 민해경이 스캔들 때문에 잠시 국내 활동을 중단했고 김현준이 가요계를 떠나면서 사실상 민해경의 솔로곡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23] 김완선은 2011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출연한 프로그램 등에서 혹독한 감금훈련, 13년동안의 노예같은 생활 등 많은 일화를 공개했다. 문나이트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교류하기에도 수월했다.[24] 물론, 락의 역사는 1980년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정부의 탄압을 당했던 암흑기였다.[25] NKOB는 1990년대에 국내에서 대유행을 했으며 이 여파로 1992년 내한공연까지 했다. 참고로 국내 엔터사가 공연장 관리를 개판으로 해서 관객 중 사망자가 나왔다. 당연 당시 주류 언론에서는 공연장 관리 이야기 보다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공연장에 드나드는 10대들이 이상하다같은 뉘앙스의 언론보도가 대부분이였다. 지금 와서 보면 대중문화의 발전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대 청소년들이고, 부모 세대는 대부분 시골에서 자랐고 서울도 일부를 제외하면 뭐 대단히 번화하진 않았다. 당시의 부모 세대는 공동체 문화를 위주로 열심히 일해서 잘 살기 시작했고 더욱 나라를 잘 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형누나 세대는 옳은 가치인 민주화와 독재 타도에 한 몸 바쳤으니, 대중가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이 세대 청소년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지도 이해할 만하다. 반면에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야말로 본격적인 서구인, 도시인, 대한민국의 시민이다.[26] 여담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드림콘서트에서 3층 센터석을 당대 최고 가수들의 팬클럽만 앉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버린 가수이기도 했다. 사실은 3층 센터석이라고 해서 별로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1995년 1회 드림콘서트의 참가 가수 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 서태지가 "공식 팬클럽 같은거 인정하면, 공식 팬클럽이 아닌 사람은 팬도 아니란거냐?" 라는 말과 함께 공식 팬클럽을 해체한 상태라서 사실상 공식적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다. PC 통신상의 팬클럽 참가의사를 체크해서 3층의 하프 센터를 배정했다. 그런데 당일 동원된 인원수가 워낙 많아서 그냥 3층 센터 전체를 차지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를 뒤져봐도 "가요계의 일대 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끝판왕"이었고, 남성 그룹인데도 당대의 10~20대 소년들에게도 절대적인 충성도를 자랑했었다.# 이러니까 당연히 여성 팬덤들은 어땠을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즉, 이 시기에 "3층 센터는 다른 팬클럽에게 주려고 한 자리를 먹어치웠다"는 이미지가 조성되었고 2년 뒤인 1997년엔 당시 최고 주가를 자랑하던 H.O.T.가 차지하면서 당대 최고 가수들의 팬클럽을 위한 자리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3층 센터는 공연을 관람할 목적으론 가면 후회할 정도로 전망이 매우 나쁘다. 면봉드립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27] 이게 코메디인게, 서정적인 샹송 정도나 어울린다고 생각한 프랑스어 노래도 국내에서 프랑스어로 된 랩 음악인 debut de soiree의 nuit de folie가 이미 80년대 후반 클럽에서 대 유행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일본어로 된 랩이 있는 쿠보다 토시노부의 TIMEシャワーに射たれて도 국내에서 암암리에 유행했었다. 당대 프로듀서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몰랐던가, 아니면 높은 사람들의 검열을 뚫을 수 없어 에둘러서 말했던 것이다.[28] 이 부분은 약간 후대에서 뭘 모르고 멋대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80년대는 비교적 여러 장르의 음악이 유행했지만, 대부분의 가수들은 옛날 경향대로 아름다운 노랫말을 또렷하게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시나위나 들국화 같은 80년대 중반의 일부 락스타들이 이상한 발음을 활용하긴 했지만 대중음악 전체로 볼 때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79년에 데뷔한 송골매의 경우만 해도 구창모나 배철수 모두 상당히 또렷한 발음을 구사했고, 여타 대중가요나 변진섭이 날아다니던 발라드, 마지막 맹위를 떨치던 민중가요 등과 비교하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인 것이다. 서태지가 랩을 하려고 괜히 몇 달간 골방에 처박혀 사식처럼 들여다주는 밥먹으며 연구했던 것이 아니다. 프랑스어는 당연히 영어랑 훨씬 비슷한 언어고, 일본어는 평탄어가 아니라 억양이 분명히 있다. 난 알아요의 랩은 잘 들어보면 한국말이면서도 약간 교포처럼 억양이 희한, 혹은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서태지에 뒤이어 나온 거목인 듀스만 해도 억양은 대단히 평탄해서 마치 내레이션을 방불케 하지만, 초보적인 각운이 있고 평탄하나마 가사가 리듬에 딱딱 맞춰가거나 괜찮게 엇박을 타는 부분도 있어서 랩이 성립된다. H.O.T.나 젝스키스의 랩도 들어 보면 노래 못하는 70년대 출생자 멤버를 대강 랩으로 돌린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외국물 좀 먹어본 은지원 빼면 가관도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이 랩을 바비 킴이 짜줬다고 고백해 주는 바람에 대강 바비 킴의 원형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한국어로 랩을 못한다고 하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평론가들이 괜히 했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29] 비록, 듀스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룰라, 김건모, 신승훈의 명성에 가려진 면이 있었지만, 트렌드를 앞서 간 김성재의 세련된 힙합 패션스타일과 이현도의 뛰어난 작곡능력은 후배 힙합 가수들에게 끼친 영향력이 매우 강하며, 1995년 7월 듀스의 해체 이후 김성재의 솔로 앨범과 이듬해 1996년 이현도의 솔로 앨범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1997년 이후의 힙합계는 DJ DOC, 지누션, 원타임, 드렁큰타이거, 가리온, 업타운 등으로 활발하게 이어진다.[30] 이전에는 컴백같은 휴식기의 개념이 없었다. 트로트 같은 경우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 신곡을 내면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한다. 이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당연히 똑같은 타이틀 곡이 오랫동안 나오기 때문에 금방 식상해진다.[31]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은 YG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하고 아이돌 후배가수들을 키우면서 거대한 회사로 성장시키는 성공적인 음반기획자가 되었다. 여러모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셈이다.[32] 이 경우엔 가수와 배우를 모두 포함.[33]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 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34] 당돌한 ses 걸그룹 핑클 2.5집 앨범 출반[35] 대중적인 영향력은 1997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1996년엔 김건모, 클론, 솔리드 등의 선배 가수들이 H.O.T.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H.O.T.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가요계를 이끌게 되었다. 종종 서태지와 아이들과 비교되는데, 아이돌로서 팬덤파워나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파급력은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 현대적인 한국 아이돌의 시초였고 영향력 부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변화와 가요계 주류를 완전히 뒤바꾼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H.O.T.는 서태지 이후 댄스, 랩뮤직으로 재편된 가요계 주류 안에서도 본격적인 아이돌 전성시대의 왕조를 세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36] NRG의 전신으로 이성진, 천명훈이 속한 2인조 남성듀오였다. 당시에는 노유민, 문성훈이 백댄서로 활동했었다.[37] 장민호가 멤버로 있던 그룹이었다.[38] 송원근, 유건, 뮤지컬 배우 이창희가 속해 있었던 그룹으로 당시 8인조라는 최다 인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 아이돌 최초로 유닛 활동을 시도했다.[39] 2001년에 론이 솔로로 재데뷔, 이글파이브의 막내 대니는 리치로 재데뷔 했으며 심재원은 2002년 블랙비트로 재데뷔.[40] 노정현, 노현정 일란성 쌍둥이로 구성된 듀엣. '대리민족'이라는 노래가 조금 알려지기는 했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몇년 뒤 트로트로 전향했다.[41] 1집이 실패해서 그렇지, 데뷔는 S.E.S., 핑클, 디바보다 먼저 했다.[42] 대한민국 걸그룹 역사에서 거의 유일한 걸밴드 컨셉으로 데뷔 및 활동했다. AOA의 경우는 데뷔만 걸밴드로 하고 얼마 못가 걸댄스 그룹으로 전향했다. 이 과정에서 걸밴드로밖에 써먹지 못하는 서유경이 AOA에서 탈퇴했다.[43] 대한민국 사상 최초 다국적 걸그룹이다. 당시 이지현, 한보람이 소속되었던 팀이다.[44] 1994년에 데뷔를 했지만, 당시 음악적 스타일은 어설픈 힙합 스타일로 완전 딴판이었던데다 여자 멤버 또한 당시에는 유리가 아닌 유채영이었다. 그리고, 유채영이 쿨에서 탈퇴를 하고 1995년 그룹 US에서 활동했으며, 나중에 솔로로 다시 데뷔한다. 그리고, 영입된 유리가 활동하는 시점인 1996년부터 지금의 쿨의 음악적 이미지를 갖췄고, 1세대 아이돌 시대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활동했다.[45] 유채영이 쿨을 탈퇴했던 혼성그룹으로 활동했던 그룹이다.[46] 김준희, 원투 오창훈이 당시 활동했던 혼성듀오.[47] 이켠이 속해있던 혼성그룹으로 쿨과 비슷한 이유로 1997년부터 점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48] 1996년에 모기야, 우울한 우연이라는 곡을 불렀다. 이 중 우울한 우연은 베이비복스가 나중에 리메이크해서 유명해졌다. 본래 3인조로 데뷔했었지만 후에 5인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강원래의 배우자로 유명한 김송이 과거 소속되었던 혼성 그룹으로만 기억할 뿐.[49] 비록 아이돌적인 요소는 부족하지만, 10대~20대를 대상으로 강하게 어필하였고 아티스트적인 요소가 강했다. 1집 뿐이었지만 락밴드로서는 드물게 국민적인 히트곡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1990년대 후반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였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이 치열한 죽음의 조나 다름없었던 시대에도 데뷔곡 '16/20'과 '나는 나'가 가요차트에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모던 락의 붐을 지속적으로 일으킨 선구적인 공로가 인정된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주주클럽의 곡을 리메이크한 사례가 많다.[50] 공전절후의 히트곡 기다려 늑대를 부른 가수다.[51] 룰라의 멤버 이상민이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에 참여했던 에스더가 데뷔했던 혼성그룹이다. 동년배 나이대 가수들 사이에서는 가창력으로 호평받았던 것으로 유명했었다.[52] 김완선이 기획한 혼성그룹이다.[53] 박진영은 데뷔 컨셉부터 현재까지 10대보다 노골적으로 20대 이상을 타겟으로 노렸다.[54] 1997년 가을, 김경호는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만, 김경호는 아이돌적인 요소보다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다.[55] 1995년, 1집 앨범 "이미 나에게로" 타이틀곡으로 데뷔를 했지만, 실질적인 메가 히트곡의 시대는 스티브 유나 H.O.T., 그리고 발라드의 황태자 조성모가 활약했던 시기가 겹친다. 물론, 임창정은 아이돌 컨셉이 아니라 이미 영화배우로 유명했으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데뷔를 했지만 10대 소년들을 비롯한 소녀팬들도 정말 많았었다. 1세대 아이돌이 피터지게 경쟁하던 시절이었던 1997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3집 앨범의 '그때 또 다시'가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여 상반기 골든컵을 거머쥐게 되고, 하반기에 '결혼해줘'로 다시 한 번 골든컵을 타게 되면서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들로 골든컵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진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1997년 KBS 가요대상을 거머쥔다. 실제로 1위곡을 두번 연속으로 차지한 골든컵의 기록을 보유한 가수들로는 임창정 이외에 조용필, 박남정, 김민우,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있다.[56] 배우 출신이다.[57] 발라드 가수지만 프로듀서가 아이돌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리즈시절에는 아이돌 가수와 유사한 방식의 활동을 했다.[58] 1994년 1집 LEE YE RIN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는 아이돌적인 컨셉도 있었고 타겟을 10대보다는 20대 이상을 노렸다. 이 당시는 청순녀 컨셉으로 발랄한 미드 템포의 포크 곡 '포플러 나무 아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냥 반응만 있었을 뿐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1996년 2집 때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컨셉을 섹시 노선으로 변경한 뒤 발표한 2집 Impression의 타이틀곡 '늘 지금처럼'이 대박이 터졌다. 노래도 좋았지만 이예린의 골반 댄스가 제대로 먹혔었다. 대한민국 여가수의 섹시 컨셉 전환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3집 용서, 4집 변심 등의 댄스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2003년까지 활동하다가 소속사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2007년에 싱글을 발표했지만, 2008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재즈를 공부했다. 2011년에 귀국한 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다.[59] 시기상으로 봤을 때 교실 이데아, 필승, 컴백홈 정도는 알고 있을 나이대며 3집과 4집으로 활동했을 때다.[60] 상기한 걸그룹이 사실상 2군으로 분류된다.[61] 국민학교는 1995년 명칭이 폐지된다. 다만, 시기상으로 완전히 폐지가 된 것은 사실상 1996년 3월 1일 부터다. 1986년생은 초등 3학년까지는 국민학교였다가, 4학년이 되어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보다 2살 어린 1988년생은 국민학교의 마지막 입학세대였다.[62] 참고로 중학교 의무교육시작, 중학교 7차교육과정은 2002년 1989년생부터 시작되었다. 2004년 1989년생들이 중3 무렵에 중학교 의무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이 완료되었다.[63] 당시의 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도 성인들 못지않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에 전국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똑같았다.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이후 H.O.T.는 1996년, 젝스키스는 1997년에 데뷔했다. 비록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이 서로 반목하는 관계로 유명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고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로 서로 갈라졌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너 나 할것 없이 모두 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64] 물론, 초등학생들도 서태지와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65] 89년생이 초등학교 때 이수했던 6차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실과시간에 컴퓨터 수업이 편성되어 있어서 집에 컴퓨터가 없었던 89년생이라도 이 당시 컴퓨터를 접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89년생까지는 Window 98로 공교육을 받았던 세대이다.[66] 이 팀의 멤버인 장해영은 1997년 2인조 남성 그룹 키드에서 '오! 난리야'라는 곡으로 활동한 바 있다.[67] 원티드 김재석이 당시 활동했었다.[68] 인디 데뷔는 2001년이지만 서태지의 발굴로 메이저에 진출한건 2003년 Let it Rain앨범부터[69] 여기 작성된 1세대 걸그룹 목록에서 유일하게 해체나 긴 공백기 없이 18년동안 꾸준히 활동했다. 원하고 원망하죠는 거의 국민 노래방 애창곡 수준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다.[70] 강성진의 아내인 이현영이 당시 활동했었다.[71] 립싱크로 인한 부작용이 해체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걸그룹으로 이후로 립싱크 무대는 전멸하게 된다.[72] 트로트 가수 연지후가 속해 있었던 걸그룹.[73] 결성은 1997년에 이루어진 혼성밴드.[74] 배우 박하나가 당시 활동했었다.[75] 사실, 성시경이나 싸이는 아이돌로 생각하기에는 살짝 부족하고,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0~20대를 타겟으로 하는 음악들을 많이 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76] 이글파이브 출신 론은 유승준을 닮아 당시 제 2의 유승준으로 불렸다.[77] 솔로 이전에 남성그룹 세븐데이즈의 멤버로 먼저 데뷔한 바 있다.[78] 혼성그룹 쿨 출신이었다.[79] 백지영은 1999년 데뷔 1집보다, 2000년에 들어서 전성기를 맞는다. 2001년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5년 후에 복귀했다.[80] 데뷔는 1999년이었지만, 이수영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2003~04년이였다. 역시, 아이돌적인 컨셉보다 발라드 가수같은 면이 강했다.[81] 듀스의 명곡으로 유명한 '여름안에서'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82] 인기댄스그룹 '젝스키스' 해체 발표 [83] 사실,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로 유명했던 1990년대에 나왔던 노래들이 1세대 아이돌 데뷔 이전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가창력을 비롯해서 음악성이 저평가를 받는 감이 있지만, 그 시절에도 음악성이나 가창력이 뛰어났던 가수들은 많았다. 얀, 야다, 플라워, 김상민, 이브, 김경호, 박완규, 더 크로스 등등... 이 때 당시 유명해졌던 명곡들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84] 미디엄템포 R&B는 아니지만 미디엄템포는 혼성그룹 쿨의 정규 5집 수록곡이자 응답하라 1997의 메인 OST의 원곡이었던 All For You도 해당된다.[85] 댄스그룹 H.O.T 해체됐다... 장우혁등 3인 소속사 옮겨 [86] 원래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스스로 R&B 보컬그룹으로 성격을 전환했다. 후일의 브라운아이드걸스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다.[87] 물론, 블랙비트 등 보이밴드도 실패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이 시기는 이수만이 경영에서 손을 떼던 시기였는데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88] DSP에서 동방신기의 대항마로 내놓은 보이밴드로 김현중이 이쪽 출신이다. 전성기 시절은 동방신기에 못지 않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89] 국내에서의 인기는 그저 그랬지만 아시아권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90] 사실, 버즈는 아이돌로 보는 시각과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갈린다. 하지만, 버즈는 스스로 아이돌을 자처하지 않았으며 보컬리스트 민경훈이 잘생긴 외모로 마치 조성모처럼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인기를 얻긴 했지만 아이돌과 같은 팬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한, 보컬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별로 각광받지 못했으며 밴드의 구성을 취하고는 있지만 2집의 대히트 이후 사실상 SG워너비나 김종국 등의 당시 인기 발라드 가수들과 비슷한 테크를 타면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창법은 당시 유행했던 소몰이창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버즈가 잠정 해체된 이유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형태의 활동보다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활동들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해당 문서 참조.[91] 엄밀히 따지자면, 소몰이창법으로 일원화할 수는 없다. SG워너비만 해도 소몰이창법만 한 것은 절대 아니며, 버즈의 보컬 민경훈의 당시 창법은 전형적 소몰이창법과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다. 음색이 차별화된 가수들도 많았기 때문이다.[92] 이 시기는 이효리와 비가 가요대상을 탔을 때였다. 그런데, 앨범 판매가 다른 전성기를 차지했던 가수들보다 판매량이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들의 반응은 "왜 이효리나 비가 대상을 받았지? 미쳤냐?"라는 반응도 많았다. 심지어 이효리가 없는 가수 시상식이 열린다고 말이 많았던 때였다.[93] 물론 현재는 장르의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져 인디가수들도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아이돌 그룹(대표적으로 f(x), SHINee)들도 EDM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 후크송이 가요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94] 대표적으로 버즈 역시 발라드 계열의 노래로 득세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이 엮여서 취급받는 경우가 많으나 버즈는 어디까지나 군입대로 인해 해체한 것이지, 이들처럼 약발이 다 되어 몰락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동시대 테이의 히트곡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와 버즈의 '겁쟁이' 의 지금 위상을 잘 비교해보자.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테이가 버즈의 노래를 부를 때 그럭저럭 잘 커버한다는 것이다.[95] 혼성그룹으로 시작했으나, 2014년부터 걸그룹으로 전환되었다.[96] 완전한 아이돌 컨셉이라기 보단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발라드 가수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남성 듀엣으로 따지면 지금의 플라이투더스카이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격.[BIGBANG] 97.1 97.2 [98] 일본의 ZARD처럼 초기에는 혼성밴드였으나 나중에는 여성보컬 1인 체제이자 여성 솔로 가수로 변경되었다.[99] 국내 정식 데뷔는 이보다 2년 뒤인 2006년이다.[100] 이 당시 소녀시대의 인기는 당연 걸그룹 중 탑이었을 뿐 아니라 팬덤이 막강한 남돌 사이에서도 막강한 탑이었다. 즉 아이돌 최강자 자리에 있었던 셈.[101] 실제로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주요 대중 조사에서 걸그룹 최초로 1위에 선정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아이돌 그룹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2년 연속(2011, 2012년) 1위라는 대기록이다. (참고로 H.O.T.와 방탄소년단이 각각 1999년, 2018년에 1회씩 1위를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 최초이자 유일하게 해당 조사에서 6년 연속 TOP 10 순위권 안에 들었다. (2009년 6위, 2010년 6위, 2011년 1위, 2012년 1위, 2013년 5위, 2014년 9위.)[102] 그 외 순위로는 빅뱅, 조용필 등이 있다.[103] Oh!와 Run Devil Run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서로 상반되는 컨셉으로, 소녀시대는 이 두 컨셉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어 인기를 끌었다.[104] 일본 발매곡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한국어 버전이 흥행하였다. 이것만 봐도 그 당시 소녀시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105] #[106] 왕따 논란이 있었긴 했지만, 당시 연간 음원 1등을 하며 인기 걸그룹 중 하나에 속해 있었다.[107]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아이돌로 통일된 것도 이 시기다.[108] 데뷔 시기는 2003년 말부터였지만, 후배 아이돌 그룹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2008년에도 4집 활동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109] 싱글 2집 <스노우 프린스>가 대박을 쳤고, 2007년에는 정규1집 <4CHANCE>로 지상파 첫 1위를 달성했으며, <암욜맨>으로 아이돌 유닛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110] 2집으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고, 2009년 3집 <Sorry, Sorry>활동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2007년 이후에 데뷔한 후배 아이돌 못지 않는 영향력을 지녔다.[111] 2006년 싱글 <LaLaLa>로 데뷔한 후, 2007년에 낸 미니 1집 <거짓말>이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고 연말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붉은 노을>> 등이 연달아 대히트하는 등 후에 음악과 스타일적으로 후배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며 수많은 빅뱅키즈들을 양산해낸다. 이후에도 내는 곡마다 엄청난 음원 성적을 유지하고 보이그룹 최고 연간 1위, 1억 스트리밍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음원 강자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2018년까지 최고의 아이돌을 뽑는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1위를 하며 KING OF KPOP이란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고 국내 음악방송 최고 시청률, 음악방송 최다 1위와 음원차트 줄세우기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전문가, 대중들이 선정한 최고의 보이그룹 1위, 최고의 보이그룹 히트곡 1위를 하며 국내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그룹이자 2세대를 상징하는 그룹이란 평가를 받는다.[112] 2007년 당시 데뷔한 남성 아이돌 그룹 중에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룹이었기 때문에 차세대 아이돌 시장의 자리를 어느 정도 선점할 수 있었다.[113]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 - <소녀시대> - <Baby Baby> - <Kissing You>로 BIGBANG과 원더걸스 사이에서 존재감을 알린 뒤, <Gee> - <소원을 말해봐>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압도적인 입지를 굳히면서 레전드 걸그룹이라는 소녀시대의 길을 열었다. 특히 <Gee>는 이후의 아이돌 시장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소원을 말해봐>는 여돌 최초로 걸그룹 칼군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으며, <The Boys>는 여돌 최초이자 유일하게 남돌의 음반 판매량을 넘어서서 연간 음반 판매량 1위를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는 발매 당시에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현재는 후배 걸그룹들의 데뷔 시 필수로 쓰이는 명곡이 되었다. <I Got A Boy>는 초반에는 호불호가 있었지만, 해외에서 엄청난 극찬을 받으며 빌보드가 선정한 2010년대 최고의 K-Pop 100곡에서 5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K-Pop 걸그룹 중 가장 높은 순위이다.) 또한, 빌보드가 선정한 10년을 정의하는 100곡에도 선정이 되어 걸그룹으로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현재는 K-Pop 명곡으로 많이 선정되는 곡이다.[114] 2007년 싱글로 데뷔 후, <Tell Me> - <So Hot> - <Nobody>로 3연타의 성공을 이루었다.[115] 2007년 정규 2집의 실패 이후 장르를 댄스로 변경해 2008년에 여러 곡들을 발표한다. <L.O.V.E> - <어쩌다> - <My Style>이 3연타 대박을 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2009년 활동곡인 <Abracadabra> - <Sign>이 연달아 메가히트를 치며 가요계에 큰 획을 긋게 된다.[116] 김성희의 탈퇴 이후 낸 <Rock U>가 좋은 반응을 얻고, <Pretty Girl>에서 카밀리아의 고무장갑 응원을 비롯한 열정적인 서포트, 인지도 급상승으로 <Honey>와 엉덩이춤인 미스터를 통해 자리를 매김했다. 이후 일본 진출에 성공을 하며 인기 걸그룹 반열에 올랐다.[해체] 117.1 117.2 117.3 117.4 117.5 117.6 117.7 117.8 117.9 117.10 117.11 117.12 117.13 117.14 117.15 117.16 117.17 117.18 117.19 117.20 117.21 117.22 117.23 117.24 117.25 117.26 117.27 117.28 117.29 117.30 117.31 117.32 117.33 117.34 117.35 117.36 117.37 117.38 117.39 117.40 117.41 117.42 117.43 117.44 117.45 117.46 117.47 117.48 117.49 117.50 117.51 117.52 117.53 117.54 117.55 117.56 117.57 117.58 117.59 117.60 117.61 117.62 117.63 117.64 117.65 117.66 117.67 117.68 117.69 117.70 117.71 117.72 117.73 117.74 117.75 [118] 2016년 하이라이트로 그룹명 변경[계약종료] 121.1 121.2 121.3 121.4 121.5 121.6 121.7 121.8 121.9 121.10 121.11 121.12 121.13 [152] 다만 원년 멤버들은 전부 탈퇴했고 현 멤버들은 모두 3세대인 2016년에 합류한 멤버들이다. 대표곡 롤린은 4세대때 떴다.[166] 황지현과 이해인이 속해있었던 7인조 걸그룹[176] JYJ 김재중의 고향 친구.[177] 이기광이 과거 예명으로 잠시 활동했었다.[178] 당시 제 2의 비로 불렸다.[180] 그 유명한 슈퍼스타 K의 힙통령이다.[A] 정준영 등 도촬 및 음란물 유포 사건에 덜미가 잡혔다.[투애니원] 182.1 182.2 [포미닛] [씨스타] 185.1 185.2 [186] 하지만 결과적으론 두 그룹은 이미지가 상반되어 서로 윈윈하는 구조가 되었다.[187] 이들이 시작한 걸크러쉬 트렌드는 소속사 후배인 BLACKPINK로 인해 3세대에서는 걸그룹 세계화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4세대에 와서는 ITZY, aespa 등의 대활약으로 걸그룹 주류 트렌드가 되었다.[188] 남돌 중에선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 인피니트, 비스트, 엑소가 1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고, 여돌 중에선 유일하게 소녀시대가 1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189] 비아이돌 가수로는 버스커 버스커와 싸이와 나얼 등이 10만장을 넘겼다.[190] 참고로 여기서 음반형 아이돌과 음원형 아이돌의 구분은 그 아이돌의 음악성과는 전혀 무관하므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대중 공략에 유리한 음악과 음악성이 높은 음악과는 (오히려 반비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 특히 후크송이 범람하고 쉽고 짧고 강렬한 반복소절로 수 초 안에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걸 목표로 하는 노래들이 대부분인 요즈음의 가요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 빌보드에서 'K-pop이 지닌 혁신을 증명했다'며 '2012년 최고의 K-pop'으로 꼽은 곡은 인피니트의 "추격자"였다. 앨범형 아이돌의 경우 팬들의 고정 수요가 보장되기에 음악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며, 특히 타이틀 곡보다 부담이 적은 앨범 수록곡에서 음악성에 집중한 곡 선정이 가능하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항상 그런 건 당연히 아니다. 형편없는 곡으로 트랙 개수만 채워서 앨범이라고 내놓는 그룹도 있다. 물론 이런 그룹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지만.[191] 소위 1군 보이그룹으로 평가 받으려면 걸그룹보단 덜 하지만 팬덤 뿐만 아니라 어느정도의 음원 성적도 받쳐 줘야 한다.[192] 이 쪽도 1군으로 평가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팬덤은 받쳐 줘야 한다.[193] 멜론 같은 음원 사이트 연간 차트에 들지 못했을 때이다.[194] 단, BIGBANG은 2007년부터 일본진출을 했다. 싱글(How Gee, With U) 등을 내고 일본 언더에서부터 데뷔해 시장을 개척했고, 이때부터 팬이 된 일본 팬들도 상당수다.[195]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방송사한테 밉보이기 때문에 많은 기획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201] 2019년 이후로 활동 전무[204] 비스트 원년멤버 5명이 제데뷔한 그룹.[프로젝트종료] 206.1 206.2 206.3 206.4 206.5 206.6 206.7 206.8 206.9 206.10 [211] JBJ의 95년생 멤버 2명이 제데뷔한 그룹.[샤이니] 234.1 234.2 234.3 234.4 [블락비] [슈퍼주니어] 236.1 236.2 [틴탑] [위아이] 240.1 240.2 [빅스] [WINNER] 244.1 244.2 244.3 [애프터스쿨] [f(x)] 246.1 246.2 [소녀시대] 247.1 247.2 247.3 247.4 247.5 [AOA] [에이핑크] 249.1 249.2 249.3 [IOI] 254.1 254.2 [(여자)아이들] 256.1 256.2 [네이쳐] [마마무] 258.1 258.2 258.3 258.4 [여자친구] 260.1 260.2 [원더걸스] [BLACKPINK] [264] 아이러니한 건 후자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세대 후반에서 3세대의 걸출한 아이돌들을 수도 없이 배출시켰다는 것.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제인물이 되어 아이돌이 된 케이스는 WINNER의 이승훈하고 강승윤(각각 K팝스타1과 슈스케2에서 둘다 4위), AKMU 등이 있다.[265] 하지만 그만큼 작곡가와 안무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제작팀들의 역량이 쌓이면서 2세대보다 더욱 음악적 퀄리티가 높아지고, 질 좋은 K-POP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디지페디, 손성득, 이기용배, SM의 해외 작곡팀, 블랙아이드필승 등 과 같은 새로운 스타 제작진들도 탄생했다.[266] 두 걸그룹은 2.5세대때 데뷔했지만, 3세대때 전성기를 누렸다.[267] TWICE의 대상 수상 및 음원 연간차트 1위, 여자친구의 음원 연간차트 호성적 등.[268] 2020년 12월 31일 해체[269] 여러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1위를 하기도 했다.[270] 〈뿜뿜〉과 〈사랑을 했다〉는 당시 이 노래를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을 정도로 굉장히 유행한 곡이였다고 한다. 3세대 아이돌 음악 중 사실상 전 세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노래라고 봐도 무방한 편이다.[271]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핫 100 10위와 빌보드 200 앨범차트 1위의 역사를 썼다.[272] 빌보드 핫 100 11위, 빌보드 200 앨범차트 1위[273] 뚜두뚜두 뮤비는 현재 K-POP 남녀 그룹 통틀어 최고 조회수를 기록중이다[274] K-POP 아이돌 솔로 뮤비 최고 조회수[275] 미니 1집 컬러아이즈로 역대 걸그룹 데뷔 초동 기록을 다시 썼다[276] 이 기록은 무려 3년이 지난 2021~2년 IVE, LE SSERAFIM에 의하여 깨지는데, IZ*ONE의 멤버였던 IVE의 장원영과 안유진, LE SSERAFIM의 김채원과 사쿠라가 속해 있는 그룹이다.[조기해체] [279]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의 여파로 인해 활동기간을 1년도 못 채우고 해체했다.[280] 힙합그룹[활동일시중단] [285] 싹쓰리, MSG워너비와 같은 MBC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289] 국내 스트리머 우왁굳이 기획한 가상 아이돌 프로젝트 그룹.[290] MSG워너비, 환불원정대와 같은 MBC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워너원] 291.1 291.2 291.3 291.4 291.5 [핫샷] 293.1 293.2 [엑소] 296.1 296.2 296.3 296.4 296.5 [JBJ] [업텐션] 301.1 301.2 [트레저] [빅톤] 306.1 306.2 [YOUNITE] [세븐틴] 310.1 310.2 [GOT7] 311.1 311.2 311.3 311.4 [디원스] [DAY6] 316.1 316.2 316.3 [러블리즈] 324.1 324.2 324.3 324.4 [구구단] [오마이걸] [블랙핑크] 330.1 330.2 [레드벨벳] 331.1 331.2 331.3 [아이즈원] 333.1 333.2 333.3 333.4 [336] ITZY는 데뷔곡 달라달라가 모든 차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걸그룹 최초로 데뷔곡 지상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음반 판매량이 많은 보이그룹임을 감안해도 데뷔 앨범 초동 7만 7천장을 넘기는 성과를 얻었다.[337] 아이돌 커버 영상에서도 기존 안무와 태권도를 혼합하여 커버하곤 했다.[338] 단일 음반 판매량 여자가수 역대 1위[339] HYBE의 Weverse가 대표적인 예[340] 특히 한국의 K-POP 관련 웹 페이지를 번역하던 이들은, 그냥 한국어를 음차해 한국어 단어 그대로 부르는 식으로 수입해갔고, 그대로 해당 단어가 정착되었다.[341] 1990년대~00년대 초중반에서는 중학생은 되어야 아이돌 노래를 알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나온 노래는 알더라도 유치원 시절까지는 아이돌 노래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2010년대 후반은 되어야 접점이 생기기 시작했다.[342] 물론 2000년대 이후 저출산 문제로 인해 이런 어린아이들의 머릿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문제는 그 수가 적어도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고등학생/성인 팬덤들이 대거 탈덕할 위험이 있다. 2030년대가 되기 전까지 알파세대의 sns 홍보력이나 투표 참여력은 높지만 앨범 구매력은 아직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이며 sns 및 오프라인 행사장에서의 미숙한 말이나 행동으로 인한 MZ세대의 불만 및 팬덤 탈퇴 등으로 논란을 빚을 수 있는 만큼 이 변수를 어떻게 잘 컨트롤할 것인가가 중요할 듯 하다. 이 어린 팬덤들의 행보들 중 예를 들어보자면 지나친 수준의 개인팬, 타 멤버 혹은 타 그룹 모욕, 굿즈/포카 등을 구걸, sns 플랫폼에서 예절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들이 있다..[343] 전체적인 아이돌 팬덤 규모로 보자면 미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서바이벌 및 해당 데뷔 그룹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존재감이 컸다. 성인 팬덤을 제대로 확보하고 관리하지 못하여 어린 팬덤의 규모가 상당수를 차지했고, 이들이 몰표를 준 멤버들이 모두 데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NCT] [몬스타엑스] [방탄소년단] 348.1 348.2 [소나무] [트와이스] [위키미키] [360] 이들의 나이대는 대부분 30대이며, 곧 40대를 바라보거나, 이미 40대가 됐음에도 활동중이거나 컴백을 하는 보이그룹 멤버들이 나올 정도다.[361] 이로 인해 소년판타지 참가자들이 대부분 외국인, 데뷔경험이 있으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인 참가자가 대다수이며, 보이즈플래닛도 K그룹 참가자들 중 전 시즌에 비해 경력직이 다수 참여하였다.[362] 단, H.O.T.와 젝스키스는 재결합을 하였으며 SES 역시 단기간 재결성하여 활동을 한 바 있다.[363] 즉 n 세대 아이돌들의 7년 활동 종료 → (n+1) 세대 신생 아이돌들의 바통 터치 정도로만 '세대'라는 단어가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사실상 유명무실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