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 발명 영향 - jeongu balmyeong yeonghyang

전구의 역사

전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들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등잔, 가스등, 양초, 석유 램프 등을 사용했습니다. 최초의 백열전구는 탄소로 이루어진 막대가 촛불 4000개 정도 밝기의 빛을 내도록 만들어진 아크 등입니다. 아크 등은 영국의 화학자인 험프리 데비(Humphry Davy, 1778~1829)라는 사람이 1808년에 발명하였는데, 이것은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밝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부피가 크고 설치 장치가 복잡하지만, 그에 비해 효율이 높고 백색광에 가까운 빛을 내기 때문에 런던에서는 현대의 조명 기구들이 발명된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왔습니다.

▲ 가로등으로 설치되는 아크 등(1889년)(출처: 에듀넷)

지금과 같이 필라멘트를 이용하여 40시간 이상 빛을 낼 수 있는 백열전구를 처음 만든 사람은 발명가인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입니다. 에디슨은 1879년 필라멘트가 들어 있는 백열전구를 발명하면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발전기, 만들어진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선을 따라 흘려보내는 방법, 전선에 너무 많은 전류가 흐르는 것을 막는 방법 등을 함께 고안하였습니다.

1879년 미국 뉴저지의 멘로 공원에서 에디슨의 회사는 전기 조명을 실험하였고, 전기로 빛을 내는 것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업적인 계약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에디슨의 전기조명회사는 이후 제너럴 일렉트릭이라는 회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전구 하나가 고장 나더라도 다른 전구들이 불을 밝히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병렬 방식으로 전구를 연결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현재 좀 더 정교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조명 기구를 설치할 때 같은 방법을 사용합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보다 1년 빠른 1878년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조지프 윌슨 스원 경(Sir Joseph Wilson Swan, 1828~1914)도 진공으로 된 유리구 안에 탄소 필라멘트를 넣은 전구를 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전구뿐만 아니라 발전기와 기타 백열전구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기구들을 함께 개발하였기 때문에 최초의 백열전구를 개발한 사람은 에디슨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가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설치된 것은 1880년 5월 증기선인 ‘컬럼비아호’라고 합니다. 이 배에는 115개의 램프가 설치되었는데 15년 동안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합니다. 1881년에는 뉴욕시에 있는 공장에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설치되었고 그 후 2년 동안 150여 개의 장소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열전구의 밝은 빛 때문에 실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백열전구 아래에서 일을 할 경우 시력이 나빠진다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런던의 안과 의사들이 1898년에 차단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내리쬐는 빛, 즉 직사광선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간접 조명에 대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백열전구가 에디슨에 의해 발명된 후 많은 사람들이 필라멘트의 성능을 개선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시켜왔습니다. 텅스텐으로 필라멘트를 만들고 텅스텐을 용수철 모양처럼 감은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의 발명은 밝은 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구의 수명을 좀 더 길게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기 유입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백열전구가 들어온 것은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8년 만인 1887년으로, 경복궁 내에 있는 건천궁에 처음으로 설치되었습니다. 1887년 3월 초순 저녁 경복궁 내에 있는 건청궁의 뜰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켜졌습니다. 주위에 모여 있는 남녀노소는 모두 이 신기한 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건청궁의 백열전구와 발전 시설은 에디슨 전기조명회사가 만들었는데, 동양에 처음으로 세우는 시설이기 때문에 가장 성능이 뛰어난 장비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건청궁의 발전기는 향원정 연못의 물을 끌어 석탄을 연료로 돌렸다고 합니다. 기계 소리가 매우 커서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 전등에는 온갖 별칭이 붙었는데, 툭하면 꺼지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게 꼭 건달을 닮았다고 해서 ‘건달불(乾達火)’이라고 했고, 발전기가 작동하면서 연못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자 물고기를 찐다는 뜻의 ‘증어(蒸魚)’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 연못 물을 먹고 건청궁 처마 밑을 벌겋게 달군다고 ‘물불’, 묘하다고 ‘묘화(妙火)’, 괴상한 불빛이라며 ‘괴화(怪火)’라고도 했습니다.

▲ 토마스 에디슨(출처: 무료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www.pixabay.com)

[자료출처: 에듀넷]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명가를 꼽으라면 역시 에디슨이죠. 에디슨이 처음 백열전구를 세상에 선보인 것은 1879년입니다. 그리고 불과 3년 후인 1882년에 ‘펄 스트리트 스테이션’이라는 대규모 중앙 발전소를 뉴욕에 세워 본격적으로 '전기 시대'의 막을 올렸지요. 전기 시대, 전기 문명! 그가 발명한 것들은 단지 생활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문명 자체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금 생각으로 보면 별일이 아닌 것 같지만, 백열전구가 몰아낸 것은 단지 밤의 어둠이 아니라, 그때까지 문명이 감싸 안지 못했던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

1892년 에디슨은 경쟁 업체인 톰슨 휴스턴 컴퍼니와 합병, 제너럴 일렉트릭 컴퍼니(GE)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GE는 에디슨이나 엘리후 톰슨과 같은 뛰어난 개인 발명가에 의존하기보다 기업으로서 ‘체계적으로 발명을 이어 간다’는 것을 목표로 시스템을 구축했지요. 1900년, 바로 그러한 결실로 만들어진 것이 과학기술 연구에 특화된 ‘GE 중앙연구소’입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기관이었지요. 처음에 불과 3명의 과학자로 시작한 이 연구소는 115년이 지난 현재 노벨상 수상자를 2명 배출했으며, 세계 9곳의 거점에서 약 3,000명의 과학자(그 중 절반은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입니다)가 일하는 ‘GE 글로벌리서치센터'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이노베이션’은 GE의 기업 운용의 모토이자 핵심이다. 창업 이후 137년동안 GE의 이름으로 역사를 바꾸고 새 시대를 연 10개의 발명을 선정해봤습니다.

1. ‘밤에도 밝은 시대’를 연 백열전구

백열전구는 에디슨의 발명품 중 가장 유명합니다. 최초의 상용 전구는 1879년 10월 21일에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카본 소재를 이용한 필라멘트로 40시간 연속 점등을 기록했지요. 1년 후인 1880년, 교토의 이와시미즈 하치만에서 가져온 대나무 섬유를 탄화시켜 필라멘트에 사용함으로써 점등 시간을 600시간까지 연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882년에는 뉴욕에 미국 최초의 중앙 발전소를 세워 발전, 송전, 배전의 시대를 열면서, ‘세계에서 밤이 사라지다!’라는 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이후로도 GE는 백열전구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형광등, 세계 최초의 붉은색 LED(링크) 등을 계속 선보였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이 조명 분야의 최전선은 무엇일까요? GE라이팅과 GE글로벌리서치센터의 연구진들은 LED 조명과 빅데이터를 조합한 기술 혁신에 여념이 없답니다.

전구 발명 영향 - jeongu balmyeong yeo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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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시대

1906년 크리스마스이브,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송출되었습니다. 성경 구절을 낭독하고 크리스마스 노래를 전파에 실어 내보냈지요. 이 역사적 방송은 2년에 걸쳐 고주파 교류 발전기를 개발했던 GE의 젊은 엔지니어이자 후에 발명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에른스트 프레데릭 워너 알렉산더슨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1922년 뉴욕에서 정규 방송을 시작한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 중의 하나인 WGY가 사용한 송신기도 바로 GE 제품이었습니다. WGY는 1928년 최초로 가정용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며 텔레비전 시대를 여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3. ‘여성의 사회 진출 시대’를 연 전기냉장고

20세기에 들어 GE는 엄청난 수의 가전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예를 들어, 1917년에 발명한 전기냉장고는 식품의 유통 기한을 획기적으로 늘려주었습니다. 이외에도 전기 토스터와 전기밥솥, 전기세탁기,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커피 메이커, 토스터 오븐, 자동 오프너 기계 등 지금도 주방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GE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냉장고와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은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4. ‘밤에 스포츠 관전을 즐기는 시대’를 연 고출력 조명

전 세계인이 즐기는 축구와 야구 등의 야간 스포츠 경기 관람.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엔터테인먼트도 GE의 연구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철도 회사의 요청으로 야간에 거대한 차량 기지를 비추는 고출력 조명을 개발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지요. 운동 경기에 이 고출력 조명을 사용한 것은 순전히 조도 테스트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기왕이면…’이라는 생각으로 1927년 6월 4일에 프로 구단을 초청하여 개최한 게임이 사실상 세계 최초의 야간 경기가 되었습니다. 이 고출력 조명은 1935년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의 본거지인 크로스 리 필드에 설치된 후 전국으로 확대됐고,  사람들은 퇴근 후에도 프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구 발명 영향 - jeongu balmyeong yeo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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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도산 위기에 처해 있던 신시내티 레즈는 구단의 생존을 걸고 야간 조명 시설에 투자했다. 

5. ‘유통의 폭발적인 확대’를 이끈 전기 기관차

전기 기관차 분야에서도 GE는 선구자였습니다. 1895년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90톤의 전기 기관차를, 1908년에는 94톤의 기어 없는 전기 기관차를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 당시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무거운 화물들을 견인하는 데 성공했지요. 화물 유통의 조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이후 철도 회사의 노선 정비와 함께 사람들의 생활을 크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6. 소재 열풍을 불러일으킨 인공 다이아몬드 

1955년 GE의 뉴욕 연구소가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인공 다이아몬드는 세계가 수세기에 걸쳐 계속 쫓아온 꿈을 실현한 것이었습니다. GE의 기술은 마이크로 칩을 위한 실리콘 카바이드(탄화규소) 생산에 활용되고 있으며, 열 성형이 가능한 플라스틱이나 투명 플라스틱 ‘Lexan’, 노릴 수지 등에도 사용됐습니다. 지금 GE는 해당 사업 부문을 매각했지만, 현재 세계 곳곳에서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새로운 소재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바로 GE의 혁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지요.

7. ‘제트 시대’로 거침없이 나아가다

GE가 항공 산업에 진입하게 된 계기는 1917년 NASA의 전신인 미국 국가항공자문위원회에서 받은 요청 때문입니다. 기압이 낮은 상공에서 엔진이 고출력을 발휘하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GE에서 대형 발전소를 위한 터빈 설계를 담당했던 샌포드 모스는 발전 터빈에서 얻은 노하우로 엔진에 보내는 공기를 압축하는 터보 과급기를 설계하여 높은 고도에서도 고출력을 발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트 시대의 개막을 예감한 GE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R&D에 막대하게 투자한 결과, 1942년에 세계 최초의 터보프롭 엔진을 개발했지요. 이후 현재 모든 제트 엔진의 원형이기도 한 축류형 디자인의 'J47'엔진을 완성했습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컨베이어 스카이 워크 엔진 CJ085, 보잉777을 위한 GE90-115B, 독특한 연소시스템을 채택한 GEnx, 실리콘 카바이드 섬유를 바탕으로 세라믹 메트릭스 복합소재 (CMC)라는 최첨단 소재를 사용한 LEAP 엔진, GE9X 등 항상 제트 엔진의 기술 혁신을 선도해나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 된 제트 엔진, GE의 J47. 

8. ‘우주의 시대’를 연 다양한 기술

인간의 발자국을 달에 남길 수 있던 것 또한 GE의 기술 덕분이었습니다. 1969년 달에 인류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인간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암스트롱 선장의 발 밑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던 것은 GE의 실리콘 고무 재질의 부츠였습니다. GE는 1961년에 우주 센터를 개설하고, 아폴로 계획의 시스템 지원 및 품질 관리 테스트 시설의 건설, 위성 통신 시스템의 제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1992년에 NASA가 쏘아 올린 화성 탐험 기계 ‘마스 옵저버’도 GE가 제작한 것이었지요.

큰 수익을 남겼던 GE의 실리콘 사업. 2006년,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세계가 필요로 하는 환경기술 개발에 투자하기 위해 매각했다.

9. 첨단 의료 진단의 시대를 연 초전도 자석

1962년에 100,000가우스의 벽을 깨는 초전도 자석을 개발한 GE는 그 기술을 살려 1983년에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 (MRI)를 개발했습니다. 이로써  당시 X선으로 촬영이 어려웠던 체내의 ‘부드러운’ 조직의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상세하고 선명한 신체 구조의 단면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GE는 MRI 이외에도 X선 촬영,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 검사, 초음파 진단 등 다양한 의료 영상진단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의료 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칼을 대지 않고 체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은 환자의 부담을 줄여준다. 체력 부담이 큰 노인 인구가 많은 고령화 사회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다.

10. ‘초고효율화의 시대’를 일으킨 산업인터넷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계의 사회 · 경제 · 문화에 큰 영향을 준 산업 혁명을 ‘제1의 물결’, 20세기 후반에 세계를 변혁한 인터넷 혁명을 ‘제2의 물결’이라고 한다면, 산업인터넷은 그 둘을 조합한 ‘제3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 엔진의 연료 소비와 장거리 열차 운행 시스템, 화력 발전의 연소 효율을 1% 향상하면 연간 약 200억 달러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1%의 효율성을 실현하는 것이 데이터 분석 기술이지요. 이미 GE는 IT 업계에서 연구를 거듭해온 3,000명 이상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으며, 산업용 데이터 분석을 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흥국의 고성장 추세에 밀려 성장이 둔화한 것처럼 보인 선진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

매 순간 엄청난 규모로 축적되는 데이터. 빅데이터에서 얻은 인사이트의 퀄리티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