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 mueos-eul eotteohge saeng-gaghaneungaga

인간 복제 기술을 논하는 철학자,
종교의 가치를 고민하는 과학자를 만나다

지금 인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문제들에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 경제에 대해선 경제학자만 답하거나, 사회 문제에 사회학자만 답하지 않는다. 철학자가 유전자 공학에, 사회학자가 IT혁명에 답하기도 한다. 갇혀 있던 사상을 깨고 새로운 사상으로 도약한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의 흐름을 제공한다.

- 근대 사회에서 푸코의 파놉티콘 개념은 사회를 이해하는 근본 이론이었다. 그러나 파놉티콘의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 사이의 비대칭성은 현대 사회는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한다. 이미 낡은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미디어학자 마크 포스터는 파놉티콘을 현대에 맞게 다시 읽어내 ‘슈퍼 파놉티콘’이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면서 인간은 ‘감시당하고 있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데 이르렀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거나 구입하면 그다음 방문 때 맞춤 추천 도서가 화면에 뜨는데, 이를 무심코 구매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보통 ‘자신의 의사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감시당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거대 기업의 전략에 넘어갔을 뿐이다. 나아가 노르웨이의 사회학자 토마스 매티슨은 ‘시놉티콘’이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동시에’를 나타내는 ‘syn’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인간들은 모두 ‘감시받는 자’인 동시에 ‘구경하는 자’임을 역설한다. 우리는 늘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통해 구경하는 동시에 구경당하고 있지 않은가. _본문 중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며 다양한 사상가들의 생각을 끌어온다. 하나의 주제에 관해 일관된 주장이 아닌 상반되는 두 가지 이상의 사상을 정리해놓았다.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dolly) 이후 인간의 유전자 조작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한때는 ‘복제 인간설’이 돌기도 했는데 이것의 가치 판단과 관련해 다양한 주장이 전개되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복제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 많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일란성 쌍둥이도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복제 인간”임을 지적하면서 현대가 진정 민주적인 세상이라면 인간 복제도 가로막아서는 안 됨을 역설했다.
또한 생명논리학자 그레고리 펜스는 ‘대다수가 인간 복제를 두려워한다’는 이유만으로 복제를 금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에 근거한 편견이라는 것이다. 과거엔 인종 차별이나 여성 차별도 편견의 한 종류였다. 1970년대 시험관 아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반면,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복제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내린 판단을 평생 짊어져야 한다”며 복제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인간의 생명 자체가 타인에게 책임을 돌릴 여지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 중 누구의 것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이 상상하는 미래 혹은 가치 판단을 통해 더 구체적인 자신만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이 책을 통해 도출해낸 정답이 곧 미래가 될 것이다.

인류는 이제 지식의 통합 없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이 책은 총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IT혁명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나 종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래는 이 책의 다섯 가지 주제다.

1. IT혁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는가
2.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3. 자본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 인류는 종교를 버릴 수 있을까
5. 인류는 환경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파편적인 지식으로는 고도로 발전한 현대를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어느 한 분야를 이해하려면 연결되어 있는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이 책은 유리되어 있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연결해 복잡한 세상을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 아마티아 센은 경제와 환경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와 환경을 어떻게 통합하느냐는 점입니다. 그 시도의 하나로 생태계 서비스라는 개념에 주목해봅시다. 21세기를 맞이할 무렵 국제연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론인데, 사람들이 생태계에서 직접·간접적으로 향유하는 편익을 의미합니다. (중략) 여기서 우리는 생태계라는 환경의 가치가 서비스라는 인간의 경제이익과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_본문 중에서

구체적인 사례와 일러스트는 이해를 돕고, 각 부마다 삽입되어 있는 북가이드는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사고를 확장해야 하는지 안내한다. 분리되어 있는 줄 알았던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는 지적 경험을 하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미래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념적 혼성이 말하는 인간 마음의 작용

이 책은 인간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는 인지 이론인 ‘개념적 혼성’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질 포코니에와 마크 터너는 촘스키 이후 언어학의 중심 조류인 인지언어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로, 둘이서 함께 개념적 혼성(Conceptual Blending) 이론을 학계에 제안했다. 처음에 이들의 이론은 은유와 같은 언어의 창조적 측면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후 철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면서 개념적 혼성이 비단 언어만이 아닌 인간의 모든 사고와 상상력의 중심에 존재한다는 견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 이론은 인간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조지 레이코프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등 여러 학자들이 다방면에서 이루어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개념적 혼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인간사의 온갖 분야에서 벌어지는 개념적 혼성의 사례와 그 원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개념적 혼성이란 무엇인가?
개념적 혼성 이론의 기본 원리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마치 서로 다른 품종의 커피 원두나 포도를 섞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블렌딩 기법처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 영역에서 끄집어낸 정보를 통합하고 섞음으로써(blending)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보자. 바이러스는 본래 생물학적 개념이며, 컴퓨터 바이러스는 생물학적 바이러스와 같지 않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컴퓨터와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혼성으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컴퓨터 바이러스와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이어서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거나 ‘컴퓨터를 치료했다’라고 말할 수 있고 ‘바이러스 백신’이라는 개념도 새로 나타난다. “내가 너라면 검정색 옷을 입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어떤가. 이 표현은 ‘나’가 완전히 ‘너’가 된다는 뜻이 아니며 사실 ‘나’와 ‘너’가 완전히 동일하다면 이 표현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 표현은 ‘나’가 ‘너’의 상황과 입장이 된다면 검은색 옷을 입겠다는 뜻이다. 이는 ‘나’라는 사람의 성격과 특징을 ‘너’의 상황과 입장과 혼성해야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우리는 이런 표현들을 아무 노력 없이 이해할 수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이해에는 사실 매우 고난도의 인지 작용이 필요하다.

개념적 혼성의 방식
저자들은 마가렛 대처가 미국에서는 당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의미의 “그렇지만 노동조합이 마가렛 대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여기서는 결코 당선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예로 든다. 누구나 쉽게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 이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가렛 대처는 영국인이며 영국의 수상이다. 그녀는 미국 선거에 나갈 수 없고 당선될 수 없다. 영국의 정치체제는 미국의 정치체제와 다르며 수상은 선거로 뽑지 않는다. 또 미국의 노동조합은 영국의 노동조합과 다르며 대처에 대한 나쁜 역사적 경험이 없다. 대처를 그대로 미국의 정치 체제에 대입해서는 의미하는 요점을 이해할 수 없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영국의 특징과 대처가 있는 정신공간(입력공간1)과 미국의 특징이 있는 정신공간(입력공간2)를 혼성해서 그 자체의 특징이 있는 새로운 정신공간(혼성공간)을 구축할 때 이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는 미국의 노동조합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온 대처를 미워하며 그래서 그녀는 당선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미국 노동조합의 대처에 대한 미움은 대처가 영국 노동조합을 가혹하게 탄압한 실제 영국의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문장도 사실은 복잡한 혼성 과정을 거쳐 일어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에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다.

저자들은 ‘칸트와의 논쟁’이라는 흥미로운 예를 분석하면서 개념적 혼성에 수반되는 복잡한 작용을 도식으로 나타낸다. 한 현대 철학자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다음처럼 말한다고 생각해보자.

저는 이성이 자체 발달적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칸트는 이 점에서 저와 의견이 다르죠. 그는 이성이 선천적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것이 논점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대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선천적인 관념만이 힘을 가진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면 뉴런 집단 선택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하죠(96쪽).

칸트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철탇자이다. 그렇지만 현대 철학자는 마치 칸트가 살아 있어서 직접 자신과 논쟁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한다. 이런 이해는 혼성공간에서 나온다. 한 정신공간에는 영어로 주장을 펴고 있는 현대 철학자가 있다. 다른 정신공간에는 독일어로 글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칸트가 있다. 이 두 정신공간의 요소들은 적절히 섞여서 혼성공간에는 똑같은 언어로 서로 논쟁하고 있는 칸트와 현대 철학자가 존재하게 된다. 칸트와 칸트의 생각은 혼성공간으로 투사되지만 칸트가 죽었다는 사실과 칸트가 현대 철학자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투사되지 않는다. 그 밖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혼성공간은 완성되고 우리는 예문을 이해할 수 있다.

수학에서 이미지 클럽과 농담까지
-개념적 혼성의 다양한 산물들

같은 음의 제곱근을 뜻하는 복소수는 더하고 곱할 수 있는 보통 수의 특징과 크기, 각, 좌표 같은 2차원 평면의 특징을 모두 동시에 갖고 있는 수이다. 이런 특징을 지닌 복소수는 2차원 공간과 수의 혼성에서 나온 산물이다. 데스크탑이라 불리는 컴퓨터 인터페이스에는 문서(파일), 서류철(폴더), 휴지통 같은 보통 사무실 일의 요소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사무실에서 하듯 파일을 폴더에 넣고, 옮기고, 이름표를 붙이고 복사한다. 데스크탑(Desktop)은 컴퓨터 작업을 마치 사무실에서 책상 위(Desk Top)에서 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혼성이다. 성매매 여성이 교복을 입고 남성 손님을 맞이하는 ‘이미지 클럽’은 고등학생과 성매매 여성을 혼성해서 남성의 성적 환상을 실현시켜준다. 비슷하게 “내 바이퍼는 나의 샤론스톤이다. 그 차는 도로에서 가장 섹시한 자동차이다”라는 문장은 성과 자동차를 혼성하고 있다. 또한 시침과 분침, 초침이 있는 시계는 바늘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혼성해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또한 “조지 부시는 태어나기를 3루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자신이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한다”라는 문장은 사회적 신분과 야구 경기를 절묘하게 혼성한 재치 있는 농담이다.
개념적 혼성의 사례는 무궁무진하며 우리의 사고에 핵심적이다. “29세에 식물인간 상태로 있으면서 강간을 당한 그녀는 낙태를 반대할 것인가?”라는 문장은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우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이 이해는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29세의 여성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29세 여성을 혼성함으로써 가능하다. “만약 지구가 금성만큼 태양에 가까웠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은 결코 우리 행성에서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반사실문은 지구와 현재 금성의 위치를 혼성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모든 반사실문은 혼성을 수반한다(11장).
그 밖에 수학과 논리학의 주요 도구인 귀류법, 무덤이나 성당 같은 상징적 장소와 도구, 졸업식이나 결혼식 같은 인간의 의례행사를 비롯해 인간의 다양한 창조물과 표현들이 모두 개념적 혼성의 결과이다. 저자들은 이런 분석을 통해 약 4만 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에 언어를 비롯해 문화, 종교, 과학 등의 ‘창조적 폭발’이 일어난 원인은 개념적 혼성 능력의 발달이었다고 제안한다(9장).

간단한 생각 속에 숨어 있는 복잡한 인지 과정
아울러 아주 간단한 언어 구문도 복잡한 혼성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안전하다’라는 간단한 형용사를 예로 들어보자. 기존의 이론에서 형용사는 명사에 고정된 특성을 부여한다고 간주된다. 그렇지만 어린이가 해변에서 삽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맥락에서 “저 아이는 안전하다”, “저 해변은 안전하다”, “저 삽은 안전하다” 같은 평범한 ‘안전하다’의 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 첫 번째 문장은 아이가 해를 입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도 그렇다. 여기서는 결코 해변이나 삽이 해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세 문장의 형식은 완전히 똑같지만 해석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첫 번째는 아이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으로, 두 번째는 해변에 아이에게 위험을 주는 요소가 없다는 뜻으로, 세 번째는 삽이 날카롭지 않아서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저자들에 따르면 ‘안전하다’라는 단어는 위험 프레임을 환기시키며, 이 프레임이 아이가 해변에서 삽을 가지고 노는 특정한 상황과 혼성되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 위험 프레임과 혼성되는 상황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아이가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라면 "저 삽은 안전하다"에서 희생자는 아이이다. 그러나 아이가 삽을 부러뜨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라면 삽이 희생자다.
‘검은색’이라는 색깔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한 주전자에 검은 장식 디자인이 있다면 그 주전자를 ‘검은 주전자’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모든 주전자에는 녹색 얼룩이 있지만 한 주전자에만 검은 얼룩이 있다면 그 주전자는 ‘검은 주전자’이다. 두 주전자가 모두 검은 부분이 없지만 그 중 한 주전자만 검은 오븐 위에 있다면 마찬가지로 ‘검은 주전자’라고 부를 수 있다. 또한 흑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서 만든 주전자를 가리켜 ‘검은 주전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검은색은 고정된 의미가 아니며, 우리는 ‘검은색’이라는 특성을 다른 것들과 다양하게 결합시켜서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아주 쉽고 간단하다고 여기고 있던 생각에도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인지 과정이 숨어 있다.

상상력의 과학의 시대
우리는 모든 사람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을 시시하게 여긴다. 간단하게 이해되는 의미는 그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 역시 간단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컴퓨터는 세제곱근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방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로봇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컴퓨터는 체스로는 세계챔피언도 이길 수 있지만 아주 간단한 말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인지신경과학은 나무를 나무로 인식하고, 컵을 컵으로 인식하는 더없이 쉬운 인식이 끔찍이 어려운 문제임이 밝혀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된다고 해서 그 과정이 간단하리라 가정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쉽게 해온 생각들이 사실은 개념적 혼성이라는 고도의 인지 과정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비유, 농담, 속담, 반사실문, 그리고 평범한 표현 역시도 막상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이해 과정이 매우 복잡한 것으로 들어난다. 다만 그 과정이 의식 이면에서 일어나기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시각이나 청각 등의 지각 과정이 사실은 매우 복잡한 뇌의 작용이지만 우리가 그 작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뇌가 수행하는 인지 과정은 의식으로부터 가려져 있고 결과물만이 의식에 떠오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놀라운 복잡성을 파헤치면서, 인간의 인지에 대한 이해를 크게 넓혀준다.
무엇보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우리에게 상상력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개념적 혼성은 상상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이며 외관상 아주 간단한 경우에도 그렇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신적 개념을 혼성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은 전적으로 상상력의 역할이다. 상상력의 작용에 따라 개념적 혼성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이런 상상력이 어떤 원리와 법칙에 의해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면서 상상력의 과학을 위한 첫발을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