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수 하계연수에서 백종희 수석님 덕분에 내인생에 몇가지 풀지 못했던 문제 중 한가지 해결.
파스퇴르 실험에 보면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파스퇴르 실험을 그려논 대부분의 그림들을 보면 백조목 아랫부분에 물이 고여 있다. 과연 물이 꼭 고여 있어야 하는지 없어도 되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백조목 부분에 물은 증발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물이 없어도 된다는 것 아닌가?
100도가 넘어도 죽지 않는 세균들도 있단다. 물론 파스퇴르가 살던 시절에는 압력밥솥이 없었으니까 플라스크안에 시료를 끓이는 방법을 사용했을 테고, 끓던 시료가 식으면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데, 이때 세균이 빨려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백조목 부분에 응결한 물이 필터역할을 해서 세균이나 먼지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후에 백조목 부분에 물이 증발해서 없어지더라도 세균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백종희 수석님은 모든 실험기구를 압력밥솥안에서 끓였기 때문에 백조목을 만들지 않아도 압력밥솥안은 무균상태가 되어 플라스크 안으로 들어간 공기안에도 세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백조목을 만들지 않고 고무관을 늘어뜨려 놓기만 해도 파스퇴르 실험 재연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스퇴르연구소 박물관에 진열된 백조목 플라스크. 145년전 파스퇴르가 실험한 그대로 보존돼있다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왼쪽)과 주한미군사 헤드룬드 기획참모부장이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 합동실무단 운영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파스퇴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백조목 플라스크’이다. 효모나 다른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백조목 플라스크는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워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내 머릿속에도 파스퇴르 하면 어릴 때 TV에서 봤던 애니메이션 속의 그 플라스크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이는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논쟁을 종식시켰다. 파스퇴르가 살았던 19세기이면 20세기 직전이고 서양의 제국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라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던 병인양요가 1866년에 있었다.) 어지간한 주제에 관해서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났을 법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자연발생설이라는 이론도 그렇다. 이 이론에 따르면 벼룩이나 구더기 같이 작은 동물은 썩은 고기 등에서 자발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다. 자연발생설의 원조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를 열심히 관찰했으나 그 어떤 알 같은 것도 찾을 수 없어 뱀장어는 모래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그의 다른 유산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발생설도 2천 년을 넘게 살아남았고 19세기에도 위세를 떨쳤다. 19세기까지 자연발생설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혈액순환론을 주장한 17세기의 윌리엄 하비,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레디, 18세기 프랑스의 루이 자블로, 이탈리아의 라차로 스팔란차니 등이 자연발생설에 의문을 품고 실험 등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자연발생설은 파스퇴르의 시대까지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장치(1859). 위키미디어 제공
그 시작은 닭 콜레라였다.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균을 배양해 건강한 닭에 투입하는 실험을 계속했다. 지금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그 유명한 코로나19를 포함해서!)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알고 있고 어떤 병원체가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많은 목록을 갖고 있지만 이런 개념이 정립된 것이 바로 19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그 주역은 파스퇴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1843~1910)였다. 코흐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다시 파스퇴르로 돌아오자면, 코흐든 파스퇴르든 미생물과 질병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에게는 특정 질병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세균 따위를 우선 찾아내고 이를 따로 추출해 배양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를 건강한 동물에 주입했을 때 똑같은 질병이 나타나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하고 그래야 그 다음에 병원체를 없애거나 피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탄저병균. Bacillus anthracis 제공 탄저병의 원인이 되는 탄저균은 코흐가 이미 1877년에 분리했다.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의 성공사례가 탄저병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백신개발에 착수했다. 1881년 5월에는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공개적으로 탄저백신 접종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후 상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파스퇴르의 백신을 구하려는 농가가 줄을 이었고 수요에 맞추려고 파스퇴르 연구실은 밤낮으로 백신을 만들었다. 무슨 일이든 무리해서 급하게 하다보면 부작용이 따르는 법, 이렇게 급조한 파스퇴르의 백신들 중에는 불량품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로 백신 때문에 오히려 많은 수의 가축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지금도 백신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백신의 부작용 또는 불량 백신을 우려한다. 파스퇴르의 탄저백신을 살펴본 코흐는 순도가 높지 않고 오염된 경우가 많았다고 결론지었다. 탄저균은 인간에게도 매우 위험한 균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탄저균이 대표적인 생물학무기로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탄저균은 동물의 생체 밖에서는 포자형태로 존재하는데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생존력이 아주 강하다. 이 포자가 인체에 들어오면 탄저병에 걸린다. 감염경로는 크게 피부, 소화기, 호흡기 등이다. 소화기 감염 때에도 치사율이 높지만(25~60%), 호흡기 감염 시 최대 90%가 사망할 수도 있다.
광견병 환자. 발병하면 두통, 발열, 타액 과다분비, 부분마비 등의 증세를 보이다 호흡근 마비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위키미디어 제공 만약 광견병의 잠복기가 아주 짧았다면 요셉은 비참한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잠복기가 충분히 길어 13차례에 걸쳐 접종한 백신이 효력을 발휘했다. 요셉의 치료는 비공개였으나 이후 다른 환자들도 성공적으로 치료했고 그 소식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파스퇴르의 백신 덕분에 광견병에서 살아난 요셉은 이후 파리 소재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수위로 일했다. 2차 대전 때 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뒤 파스퇴르의 지하묘실을 열라고 하자 요셉은 권총자살로 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셉의 최후에 대해서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나치에 맞서 파스퇴르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독일군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오인하고 이를 비관해 가스를 마시고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는 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팀장 유진 울먼의 일기 및 요셉 손녀의 진술에 따른 것이다. 실제 그의 가족들은 살아 있었고, 얄궂게도 요셉이 자살한 그날 파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요셉의 최후에 관련된 가장 구체적인 증언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전자의 경우가 훨씬 더 극적이며 과학적인 영웅주의에 부합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요셉이 자살했다는 것은 팩트이다. 사람들은 나열된 팩트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연결해 기억하고 싶어 한다. 나치의 파리 침공이 실제로 요셉의 자살에 영향을 주긴 했으나, 아마도 사람들은 나치와 요셉의 자살 사이에 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나치군인과 요셉의 대치라는 극한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다. 국내에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에서는 항상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과학을 둘러싼 주변 상황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루이 파스퇴르((1822~1895))와 그의 서명. 위키미디어 제공 ※참고자료 -쑨이린, 《생물학의 역사》(송은진 옮김), 더숲출판사. -이성철, 살아있는 탄저균 1년 넘게 제공…주한미군에 페덱스로 배송, SBS뉴스(2015.5.29.);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98727&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