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6 7 - samsang 16 7

묵상말씀 : 삼상 16:7-14
제목 : 하나님이 찾는 사람
                                       김경열 목사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But the LORD said unto Samuel, Look not
 on his countenance, or on the height of his stature,
 because l have refused him: for the LORD seeth
 not as man seeth; for man looketh
 on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eth on the heart.(1 Samuel 16:7)]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이
설렁탕집을 인수받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설렁탕집을 열면서
“하나님!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을
 예수님 대접하는 것처럼 모시겠습니다.”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방장이 이전에 하던 습관대로
커피에 넣는 프림을 섞어서 하루 종일 팔 만큼의
설렁탕 국물을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치 뼈다귀를 오래 우린 진국같이 보이도록
프림을 넣어 만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그는 그 날 음식점 문을 닫고
문에 글을 써 붙었습니다.
“오늘 하루 영업을 쉽니다.”
그리고 그 설렁탕 국물을 모두 쏟아버렸답니다.

그 후 그는 양심적이고 신앙적으로
음식점을 경영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주위에 퍼졌습니다.
이 음식점은 지금 대단히 번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든지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면 손해 볼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인정받게 됩니다.

하나님도 정직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2대 왕을 뽑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여 왕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름병을 들고
이새의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기다리고 있던
장남 엘리압이 나타났습니다.

큰 아들이고 외모가 준수하여
겉만 보고 기름을 부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무엘아, 네 손에 든 기름병을 멈추어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내가 찾는 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둘째, 셋째, 넷째, 일곱째까지 데려 왔지만
하나님이 찾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인가요?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왕을 뽑으려고 하는 기회가 왔는데도
왕이 되려는 야심보다 오직 자신에게 맡겨진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찾으셨고
그를 데려와 기름부었을 때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행 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일군은 하나님이 찾아 쓰십니다.

하버드 의대에 한 한인교포가 지원을 했습니다.
중,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고
하버드 의대시험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합격 되었습니다.
의아해서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더니, 답변이 왔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인류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인류의 고통을 치료하겠다는 당신은
 헌혈도 한번 한 적이 없고 봉사와 헌신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은 다윗의 '정직성'을 보셨습니다.(7절)

1)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기준이 다릅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겉만 보고 평가하기 때문에 사무엘도 실수할 뻔 했습니다.
사람은 거짓을 말해도 진실로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사람이 볼 수 없는
우리의 내면 세계까지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왜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주일도 잘 지키고, 십일조,
금식도 잘 하고 절기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중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회칠한 무덤 속 같다고 하셨습니다.
중심이 바로 되지 못했고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겉을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을 더 꾸며야 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찾으면서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중심'은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도 천국 복음을 위해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때에 글 잘 쓰는 문필가나
말 잘하는 정치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어부였던 베드로를 불러서
예수님의 수제자로 삼았습니다.
베드로의 우직하고 정직한 중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도 농부였던 기드온 같은 사람,
뽕나무를 가꾸며 살아가던 아모스 같은
중심이 바로 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보다 중심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도 있고 실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흠이 없고 실수가 없고
완전하기 때문에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는 중심이 바로 되고
정직한 자가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도
(1) 기도를 해도 정직한 기도에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십니다.
(2) 찬양을 드릴 때도 중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3) 봉사와 헌신을 해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4) 헌금을 드려도 정직하게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 51:10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주소서.”
우리 안에 정한 마음이나 정직한 영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허물과 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심이 정직하게 바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가 됩니다.
중심으로 정직하게 살기를 기도하세요.

2. 하나님은 다윗의 '책임감'을 보셨습니다.(11절)

1)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11절)고 했습니다.

형들은 왕이 되려는 야심만 품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다윗은 야심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동으로서 양떼를 목숨 걸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책임감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일곱 형제를 제쳐놓고
다윗을 왕으로 뽑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에 충성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군인으로 있을 때 충성을 다했고
양을 치는 목동으로 자기 맡은 책임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책임감 있는 다윗을 보시고
귀하게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2) 책임감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백성들이 신음하고 있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수없는 사고와 재난이 일어나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맡겨진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회도, 교회도, 신앙도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책임감이라고 봅니다.
책임을 맡았으면 끝까지 책임지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격이요, 덕목입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가 됩니다.
진정한 충성은 목숨 건 책임감입니다.

대상 11:15-19에 나오는 다윗의 세 용사들을 보세요.
블레셋과 전쟁 중에 목이 말랐습니다.
이때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블레셋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누가 이 물을 내게 마시게 할꼬 할 때
세 용사가 목숨 걸고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는
적군 속을 들어가 물을 떠서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이에 다윗은 감동하며 그 물을 먹지 않고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드렸습니다.

다윗이 하는 말이 대상 11:19절에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까.” 그들이 자기 생명도 돌아보지 않고
가져왔다고 감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진정한 충성자요,
왕을 위해 목숨을 건 호위무사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어야 잘 됩니다.
이익이 되면 옆에서 아부를 하다가 위급할 것 같으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참모들이 많습니다.

생색낼 때 앞에서 이름을 냈던 자들이
시대가 불리해지자 숨어버린 비열한 신앙으로
어떻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비진리를 지켜 갈 수 있겠습니까?
책임은 곧 충성입니다.

다윗은 맡은 일에 책임지는 충성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찾으셨습니다.

영국의 왕자가 사냥을 하다가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때에 양떼를 치는 목동을 만났습니다.
목동에게 내가 이 나라 왕자인데
길을 잃었으니 큰 길까지 인도해 달라하니
못 간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절박했던지 네가 하루 일한 것의
백배의 보상을 주마 그래도 못 간다고 했습니다.
왕자는 화가 나서 총을 가슴에 겨누면서
내가 너를 죽일 수 있는 권한도 있다고 했습니다.
내 길을 인도해 주지 않겠는가?
그래도 못 갑니다.

나는 오늘 이 양떼를 책임져야 할 사명을 맡은 목동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왕자님께 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훗날에 이 왕자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 목동을 찾아서 재상으로 발탁을 했습니다.
그가 유명한 영국의 존 제임스라는 사람입니다.

맡은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입니다.
한국 교회도, 교회에서뿐 아니라
직장이든, 사회든, 맡겨진 책임을 완수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된 자입니다.(13절)

1)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자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받은 자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입니다.

슥 4:6에 “힘으로도 안 되고 능력으로도 안 되나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여기서 힘은
'하일'이란 말로 군사적 세력이나 경제적 힘을 나타낼 때 씁니다.

능력은 '코아흐'라는 말로
주로 개인의 육체적인 능력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그러나 군사적, 경제적 힘이나 육체적인 능력으로도 안 되나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의 영, '루하흐'는 곧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일은 물리적인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야 합니다.

성령께 사로잡혀
오히려 내 힘은 빼야 합니다.
모든 운동의 제일 중요한 것이 힘을 빼는 것입니다.
힘이 들어가면 안 맞습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한 교회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며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훌륭한 목사님께 비결을 물으니 나도 방법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겸손히 섬겼다고 고백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이랍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감동을 따라
여기까지 왔을 뿐입니다.
기도를 하든, 설교를 하든, 사역을 하든
하나님의 감동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은 몸이 약했습니다.
강단에 설 때마다 성령이여 오소서 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감동을 사모하며
주의 일을 한다면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설 때
맏형 엘리압이 책망을 하면서 말렸지만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 떨고 있는 골리앗 앞에
전혀 두려움 없이 싸우러 나섰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 감동된 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도 찬양을 하든, 기도를 하든,
예배를 드리든, 헌신을 하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가되시길 축원합니다.

2) 반면에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을 보세요.(14절)

하나님이 버리셨고 그 날 부터
악령이 그를 지배하면서 황폐하게 망가졌습니다.

(1)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하였습니다.
번뇌란 원문에 '압박하다. 놀라게 하다' 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서부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압박에 눌려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답을 찾으려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무당, 점쟁이를 찾지만
그 곳에는 길도 없고 답도 없습니다. 

(2) 사울은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온통 마음이 번뇌하여 시기 질투로 자기 사위와 비교하면서
열등 의식에 빠져 사위까지 죽이려고
미친 개처럼 찾아 날뛰다가 인생을 망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가장 중요한 자원은 과거나 현재나 사람입니다.
(2) 하나님도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국가도 사람을 통해 일합니다. 특히,
(3) 난국일수록 좋은 지도자를 찾게 됩니다.
지도자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도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소돔성의 심판을 막지 못한
슬픈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이 제시한 다윗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역대 왕들 중에 가장 영토를 넓힌
훌륭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뿌리에서 예수가 나셨습니다.
다윗처럼 정직한 사람, 책임성 있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고 백성을 섬길 줄 아는
중심이 바로 된 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9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