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번 버스 시간표 - 1801beon beoseu siganpyo

동서울터미널에서 인천터미널을 오가는 경기고속 1801번 버스 정보입니다.


1801번 버스 시간표 - 1801beon beoseu siganpyo




□ 기점 : 동서울터미널 1801버스 첫차시간 평일 06:20분 막차시간 22:00분 

                                                     

■ 종점 : 인천터미널 1801버스 첫차시간 평일 06:20분 막차시간 22:00

                                            

■ 버스운행간격 : 25 분. 평균 5대가 운행되는 노선입니다.


■ 본사 : 경기고속 인천종합터미널 032-422-6421


■ 시외버스1801번 정차 정류소 정보



기점 동서울터미널


송파구 잠실역


송파구 가락시장.가락시장역


송파구 장지역


회차점 인천터미널



송파구 장지역.가든파이브


송파구 가락시장.가락시장역


송파구 잠실역


종점 동서울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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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1801번 버스노선 시간표

1801번 버스 시간표 - 1801beon beoseu siganpyo

인천 1801번 버스노선 동서울터미널↔인천터미널 운행 번호에 따른 출발지, 기점, 도착지, 종점, 배차간격, 소요시간, 경유지, 첫차, 막차, 운행구간, 노선도 등 최신 업데이트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인천터미널 운행 정보 입니다.

인천 1801번 버스 이용안내(노선현황)

운행노선 번호(Route number)1801번버스 종류(Bus type)시외 (일반, 좌석, 급행) (General, seat, express)출발지(기점)동서울터미널 (starting point)도착지(종점)인천터미널 (last stop)관련 사이트(Related site)운수 회사(Company)

인천 1801번 버스 배차(시간)안내

첫차(처음 출발하는 시간)막차(마지막 출발하는 시간)배차(시간)간격 (First bus time) (Last bus time) (Service interval)

운행노선 번호(Route number)1801번버스 종류(Bus type)시외 (일반, 좌석, 급행) (General, seat, express)출발지(기점)동서울터미널 (starting point)도착지(종점)인천터미널 (last stop)관련 사이트(Related site)http://bus.incheon.go.kr/bis/main.view운수 회사(Company)

인천 1801번 버스노선 시간표 (교통)안내

동서울터미널인천터미널 운행구간 (경유지) 노선도 및 소요시간동서울터미널(06:18~21:58) →
잠실대교북단(06:23~22:03) →
잠실대교남단(06:24~22:04) →
잠실역.잠실대교남단(중)(06:25~22:09) →
가락시장.가락시장역(중)(06:32~22:16) →
장지역(06:37~22:23) →
송파IC진입(06:40~22:25) →
가천대(06:42~22:27) →
성남TG(06:44~22:28) →
판교JC(06:48~22:31) →
청계터널진입(06:51~22:34) →
학의JC(06:54~22:37) →
평촌IC(06:56~22:39) →
산본IC(06:58~22:41) →
조남JC(07:01~22:44) →
도리JC(07:04~22:47) →
용도수목원(07:06~22:49) →
안현JC(07:08~22:50) →
신천IC(07:11~22:53) →
서창JC(07:13~22:55) →
남동IC출입(07:16~22:57) →
인천터미널(06:22~23:02) →
남동IC진입(06:27~22:04) →
서창JC(06:29~22:06) →
신천IC(06:32~22:09) →
안현JC(06:34~22:11) →
용도수목원(06:36~22:13) →
도리JC(06:38~22:15) →
조남JC(06:42~22:17) →
산본IC(06:46~22:21) →
평촌IC(06:48~22:23) →
학의JC(06:50~22:25) →
청계터널출입(06:55~22:29) →
판교JC(06:58~22:31) →
성남TG(07:02~22:35) →
가천대(07:04~22:37) →
송파IC출입(07:07~22:39) →
장지역.가든파이브(중)(07:10~22:44) →
가락시장.가락시장역(중)(07:18~22:50) →
잠실역.잠실대교남단(중)(07:28~23:00) →
동서울터미널(07:33~23:05) →

인천 1801번 버스노선 시간표에 대한 운행 정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바래기산을 뒤로한지 5분, 시멘트 포장이 깔린 임도에 내려선다. 안부 우측에 비석이 있다.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비석으로 망덕고개(해실이)라 새겨져 있다. 남쪽 산능선 너머에 천주교 미리내성지가 있다.

미리내 교우촌의 유래

미리내 성지의 ’미리내’는 은하수(銀河水)의 순수 우리말로서 시궁산과 쌍령산 중심부의 깊은 골에 자리하고 있다. 골짜기 따라 흐르는 실개천 주위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점점이 흩어져 살던 천주 교우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호롱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보석처럼 비추이고, 그것이 마치 밤하늘 별들이 성군(星群)을 이룬 은하수(미리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아름다운 우리의 옛 지명이다.

신유박해(1801년) 이후에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의 신자들이 산속을 찾아들어와 미리내 인근 산골짜기로 옮겨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훗날 미리내는 공소와 본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신자들은 이곳 골짜기 마다 작은 마을을 이루며 척박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여섯살 소년 김대건이 1827년에 할아버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당진 솔뫼에서 박해를 피해 들어온 곳이 한덕골(묵리 한덕동 광파리골) 교우촌이다. 김대건 신부 묘역이 있는 미리내 고개 너머에 바로 인접한 골짜기 교우촌이다.

미리내 성지

미리내 성지(안성시 양성면 미산리)는, 한국 최초의 방인사제인 김대건 성인의 묘소를 비롯한 16위 무명순교자의 묘역이 있는 거룩한 성지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만25세의 나이로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는 형장의 이슬이 되어 한 점 흠결 없이 순교하였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대건 신부의 경우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파수 경비를 두어 지키게 했다. 17세의 미리내 청년 이민식은 파수군졸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님 치명한지 40일이 지난 1846년 10월26일, 몇 몇 교우들과 시신을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빼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험한 산길로만 1백50여리 길을 밤에만 걸어서 닷새째 되는 날인 10월 30일 자신의 고향 선산이 있는 미리내에 도착하여 신부님을 무사히 안장 시킬 수 있었다.

김대건 신부 묘역 위 미리내 고개(오두재, 일명 애덕고개)를 넘어서면, 거문정이, 굴암골, 한덕골, 먹뱅이, 은이, 골배마실 골짜기에 이르는데, 미리내에서 오두재(애덕고개) 해실이(망덕고개) 어은이고개(신덕고개)를 넘어가면 은이공소(미리내 성지에서 9Km)에 이른다. 은이공소와 골배마실은 작은 산을 사이에 두고 넘나들던 지척 간(1.5Km)이다.

조은산님~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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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

옆산길로 올라가면 바래기산370.5봉이정상이되고 정상엔 산악관측기상장비가있고

장촌으로이어지고 바래기산길을따라가다 한갈래는 병목골을돌아 시궁산아래 거문정까지이어지고

다른한길은 바사리고개지나 문수산터널입구인 고초골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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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동(용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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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관측기상장비(바래기산 370.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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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x358.9봉 전위봉임)

쌍령지맥분기봉

한남정맥의 문수봉(403.m) 남서쪽 395봉에서 하나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분기되는데 약 40km의 이 산줄기를 쌍령지맥이라 한다.

쌍령지맥에는 쌍령산(502.4m), 천덕산(322.2m),덕암산(164.0), 불악산(149m)등이

있으며, 산줄기 동쪽은 안성천이, 서쪽은 진위천이 흐르며 평택 동고리에서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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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번 버스 시간표 - 1801beon beoseu sigan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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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 석유비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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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한남정맥상의문수봉에서 북으로 앵자지맥과독조지맥이분기하고

남으론 쌍령지맥이 분기한다

문수봉오르기전

군이파놓은 참호속에서 떡라면을 끓여먹으니 쌀쌀한바람이불어도

배가부르니 평안했다

한남앵자지맥이란?

한남앵자지맥이란 한남정맥상에 있는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곱든고개, 칠봉산(447m), 갈미봉(447m), 용실산(422m), 배미실고개, 마수고개, 방도리고개, 성황당고개, 해룡산(367m), 국수봉(427m), 정개산(433m), 천덕봉(635m), 앵자봉(667m)을 거쳐 염치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해협산(531m)과 정암산(403m)을 빚어놓고 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63.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한남앵자독조분맥이란?

안성땅 칠장산에서 북서방향으로 뻗어나간 한남정맥이 용인시 원삼면 문수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북으로 한줄기를 떨구니 바로 한남앵자지맥이라

이 앵자지맥이 곱등고개 어두니고개 용실고개 지나 양지면 마수고개로 가면서 독조봉어깨에서 동쪽으로 한줄기를 떨구어 여주벌을 동서로 나누며 청미천과 복하천 양화천의 물길을 구분 지으며 남한강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내양리 양화동 양화천이 남한강이 되는 낮은 비산비야 산줄기지만 그래도 살가운 내나라 우리 산줄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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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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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삼각점

449 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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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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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등고개

동부동 해곡동에서 원삼면 사암리로 넘는 고개다. 굽이가 많아 굽은고개, 곱등고개, 곱든고개라고 한다. 예부터 고개가 험하여 호랑이가 출몰했고 고개 아래에 범암굴, 호리란 지명도 생겼다. 옛날 이 험한 고개에서 임꺽정이 안성 죽산 칠장사에 스승 가파치를 만나러 가다 가짜 임꺽정이와 만난 일화가 담긴 고개이기도 하다. 용인팔경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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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성의 이야기가 있는 길 - 31] 용인 법륜사~문수봉~와우정사

절이 탑으로 돌아오듯 제자리 찾아가면…‘살아서는 진천 살고, 죽어서는 용인 산다’는 문수봉 길

좀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잘 가지 않는 용인의 동쪽 나지막한 산줄기를 버스편으로 가 보기로 한 날이다. 이른 점심을 먹고 양재역에서 5001번 버스에 오른다. 어느새 요즘 사람들 몸에 깊이 밴 습관은 조금만 멀고 낯설면 차를 몰고 갈 생각부터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점회귀하지 않는 길을 걸으려면 도리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버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잠깐 사이에 용인시 기흥구 권내로 들어간다. 여러 승객은 에버랜드 정류장에서 내리고 필자는 버스종합터미널로 향한다.

진천에 가면 입구부터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하고 쌀 브랜드도 생거진천쌀로 ‘내 고장 청정 쌀’을 자랑한다. 그런데 세간(世間)에서 흔히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 하건만 용인 어디에도 사거용인(死居龍仁)을 내세우는 흔적은 없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산다’는 글자 그대로의 뜻을 혹시나 ‘살기는 진천이 좋고 묻히기는 용인이 좋다’라고 해석해 용인이 무덤이 많은 고장이라는 인식이 박힐까 봐 꺼리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연전(年前) 나이들면 용인에 가서 살까 생각한 적이 있어서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에 대해 궁금해 한 때가 있었다. 전고(典故)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한국구비문학대계(정신문화원 간)에 민간에 떠도는 옛이야기를 채록하여 소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죽어서는 용인’이라고 용인에 묘가 많은 게 아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다른 이 몸에 들어가
진천 마누라, 용인 마누라 모두 데리고 산 사내가 있으니…

이야기의 스토리는 이렇다. 용인에 사는 착한이가 젊은 나이에 벼랑에서 굴러온 돌에 깔려 죽었다. 저승에 갔더니 염라대왕이 잘못 왔다고 돌려보냈다. 이미 몸은 돌에 깔려 되돌릴 수가 없게 되어 공천(空天)을 떠돌고 있었다. 혼백이 어디 들어갈 몸이 없을까 찾아다니던 중 마침 진천에 어떤 초상난 집을 찾게 되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시신이 멀쩡하니 혼백이 그 몸에 들어가 살아났다. 몸은 진천 사람이요 정신은 용인 사람이 탄생한 것이다. 이 착한 이는 용인 마누라를 데려 와 진천마누라, 용인마누라 두 마누라를 데리고 잘 살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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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사람이 늙어 죽은 것이다. 용인 마누라 배에서 나온 자식과 진천 마누라 배에서 나온 자식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용인 아들이 이제는 아버지 혼령을 모시고 고향 용인 땅으로 가서 제사를 모시고 살겠다는 것이었다. 싸움에 결론이 나지 않으니 원님이 판결을 내렸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았으니(生居鎭川) 죽어서는 고향 용인에서 살게 하여라(死居龍仁).’ 용인 효자와 진천 효자를 둔 착한 민초 이야기였던 것이다.

어느새 버스가 종합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터미널 안에는 용인 주변 도시와 마을로 떠나는 버스가 가득하다. 마침 16번 마이크로버스가 출발할 시간이다. 길을 물었더니 기사 아저씨가 어떻게 시간을 알고 맞추어 왔느냐고 한다. 사실은 우연이었는데, 머쓱하다.

교통편에 소개했듯이 이 버스는 중간 간격이 너무 길어 시간이 맞지 않으면 이용하지 말고 원삼(면)행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10여 분을 걷지만 길도 쾌적하고 버스도 수시로 있으니 이쪽이 편리하다.

30분이 미처 안 되어 버스가 법륜사 앞에 도착한다. 문수봉(文殊峰) 동쪽 품에 생각지도 못한 큰 가람이 숨겨져 있다. 대웅전 건물이 특이하다. 남방불교에서 볼 수 있는 전각 형태이다.

비구니 스님이 깨우침을 얻자 만공선사는
혹 비구니의 몸으로 주의의 시선을 모을까 걱정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주의도 주셨으니…

들어가 보니 석조 대불을 모셨는데 좌우로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자리하고 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건물을 짓고 석가모니불을 모신 게 아니라 부처를 먼저 모시고 건물을 나중에 지었다고 한다. 석굴암 본존불의 3배나 되는 크기다. 대웅전 기둥도 백두산 홍송으로 지었다 한다.

절에 비치된 자료를 보니 비구니 상륜(相侖)스님이 회주로 계시던 절로 예산 수덕사(修德寺) 말사라고 한다. 왜 이곳에 수덕사 말사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비구니(比丘尼) 상륜스님이란 분의 법맥(法脈)을 따라가 보아야 이해가 된다. 상륜스님이란 분은 북한산 승가사를 가꾼 분이다. 수덕사는 근세의 법맥 경허(鏡虛), 만공(滿空)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이 만공스님이 그 법(法)을 인가한 비구니스님 한 분이 계셨다. 깨우침의 경지를 알아보신 것이다. 그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주의도 주셨다. 스승의 따스함으로 헤아려 볼 때, 비구니의 몸으로 공연히 깨우침을 말하면 주위의 시선을 모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이 비구니스님이 법희(法喜)인데 그 분을 은사로 모시고 수행한 분이 상륜(相侖)이었다. 이제는 비구니의 큰 법맥 법희, 상륜 두 분도 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극락보전 기둥에는 아무런 주련(柱聯)이 없다. 온 자리로 돌아가는데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하랴.

서울에 사는 신도집 마당에 있었다는 고려시대 3층석탑(경기도 문화재 자료 145호)이 절마당에 서 있다. 그 분이 절에 희사하신 것이다. 예전 어느 절 마당에 있었을 그 탑이 있을 곳으로 돌아오니 보기가 좋구나.

절 우측으로는 문수봉으로 오르는 산책길이 열려 있다. 그 아래 산륜스님의 부도가 있다. 길로 들어서니 숲길 아래쪽에서 어린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 들려온다. 이 작은 능선 아래쪽에는 ‘용인농촌테마파크’가 잘 가꾸어져 있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꽃밭도 보이고 그늘막도 보인다.

문수봉을 사이에 두고 용인 시내 쪽 5~6km 되는 곳에는 오토캠핑장이 있고 산 동쪽 이곳에는 농촌테마파크가 있어서 이제는 다 큰 우리 애들을 다시 어린이로 되돌릴 수 있다면 텐트 싸매고 하루 다녀가고 싶다.

10분 여 분 걸으니 산길 주능선에 도착한다. 숲 우거진 평화로운 오솔길이 길게 뻗어 나간다. 길안내판도 서 있는데 문수봉정상, 매봉재, 약수터도 알리고 이 길이 한남정맥(漢南正脈) 길임을 알리는 안내 지도도 있다.

편안한 구간이 끝나고 문수봉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경기지방 낮은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산죽(山竹)도 많다. 오르기를 5분여, 좌측으로 약수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1801번 버스 시간표 - 1801beon beoseu siganpyo

작은 빈터 바위 아래, 가뭄에도 좀처럼 그치지 않는 감로수(甘露水)가 흘러나온다. 예전에는 샘물처럼 고였을 것인데 이제는 파이프를 꽂아 놓았다. 돌아보니 전망이 툭 틔어 아랫녘 들판이 환히 보인다. 이곳이 예전 절터였다. 규모는 작아도 자리는 좋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보현보살은 행함을 대표하는데,
말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행함을 보여주고 문수봉 위에서
세상 내려보는 문수보살의 편한 얼굴이 나는 좋더라

절터를 벗어나 50m 정도 가파르게 오르면 마애불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다가가 몇 칸의 쇠층계를 오르면 ㄱ자 형으로 갈라진 바위 좌우 면에 어린이 같이 천진한 얼굴로 길손을 맞는 두 분 보살이 서 계신다. 키가 2.7m라 하니 작은 보살상은 아니다.

안내판을 살펴보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120호로 고려 전기에 조성한 마애보살상(磨崖菩薩像)이라 한다. 정면에서 볼 때 좌측 보관(寶冠)을 쓴 분이 문수보살(文殊菩薩), 우측 분이 보현보살(普賢菩薩)이라고 한다. 천년을 하루같이 천진한 얼굴로 누구를 기다리신 것인지?

문수는 지혜(智慧)를, 보현은 행함(願行)을 대표하는 보살이다. 비교할 수는 없어도 내게는 보현보살 상(相好: 형상)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말만 가득한 이 세상에 행(行)을 알려준 이, 그리고 지금은 문수봉 바위에 서서 천년을 입 종긋한 모습으로 서계신 이,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처럼 편한 얼굴이 내 마음을 해방시킨다.

그런데 두 분 보살만 계시고 막상 한 가운데 계셔야 할 부처는 어디 가신 것인가? 문수봉 정상에 올라 네 마음에서 찾으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정상을 향해 오른다. 비록 403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실로 그 존재감은 크다. 용인을 지나 광주를 통과하고 한강으로 들어가는 이 고장의 젖줄 경안천(慶安川)은 문수샘에서 발원한다. 또한 한강 이남의 경기도와 서울 산(山)들은 모두 문수봉의 아우들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속리산 천황봉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한 기운을 한남(漢南)과 호서(湖西)지방으로 분기하는데, 이 산줄기가 안성 칠장산에 이르러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남으로 흐르는 산기운(山氣運)은 천안~예산~청양~보령~서천으로 가 군산 앞바다에 닿고, 북으로 달리는 산기운은 안성~용인~수지~의왕~군포~시흥~부천~인천~김포~통진으로 가 강화 앞바다에 닿는다.

1801번 버스 시간표 - 1801beon beoseu siganpyo

이 산줄기가 한남정맥(漢南正脈)인데 문수봉에 이르러 한남정맥은 세 갈래로 분기한다. 한줄기는 남쪽으로 갈라져 천주교의 성지 미리내를 품고 평택으로 달리고(쌍령지맥), 다른 한줄기는 북으로 내달아 독조봉에서 양평 방향으로 뻗어가니 양평의 무갑산, 앵자봉, 양자산을 이룬다(앵자지맥).

또한 독조봉에서 한 줄기 동으로 뻗어나간 산기운은 여주와 이천의 산줄기가 된다(독조지맥). 풍수하는 이들은 명성황후가 난 여주의 집터는 이 산기운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한강 이남 서울-경기에 있는 어느 산을 타올라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산길은 문수봉으로 통하니 키 작은 대형(大兄)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문수봉 정상에서 쌍령지맥과 앵자지막이 갈라져,
한 줄기는 미리내 성지를 품고 평택으로 달려가고
다른 줄기는 북으로 내달아 양평으로 뻗어가니…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정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크게 펼쳐진 용담저수지 주변에 농촌마을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 태봉산과 건지산(巾之山)이 보인다. 어느 왕자나 공주의 태실(胎室)이 있었기에 태봉산일까.

건지산에는 조선(朝鮮)조에 봉화대(烽火臺)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죽산현(竹山縣) 조에 보면 ‘동으로는 충청도 충주 망이산에 응하고 서로는 용인현 보개산에 응한다(東應忠淸道忠州望夷山 西應龍仁縣寶蓋山)’라고 했다. 보개산은 지금은 아파트촌이 된 동백지구 동쪽에 있는 석성산이다.

조선조에는 나라의 비상연락망으로 5개의 봉수(烽燧: 봉화불) 라인이 있었다. 그 중 한 라인이 부산 동래 다대포(多大浦)에서 출발하여 남산(목멱산)에 이르는 제2라인이다. 용인을 거친 제2라인은 서울 청계산 아래 금토동 천림산(天臨山)을 통해 남산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이제 문수봉 정상에서 북쪽 능선길을 따라 내려온다. 앵자지맥의 시작이다. 능선을 내려오면 큰 고개 곱든고개를 만난다. 고도 285m 쯤 되는 고개인데 낮은 곳에서 시작하다 보니 상당히 높다. 고개가 굽이굽이 휘어져 굽은고개, 곱등고개, 곱든고개라 불렸다 한다. 1/50000 지도에는 곱돌고개로 표시되어 있다. 어찌되었든 구불구불한 고개를 표현한 이름인 듯하다.

예전에는 용인현과 죽산현을 잇는 큰 고개였다. 나라일 하던 관리들도 지금 용인시내에 있던 금령역(金嶺驛)에서 원삼에 있던 좌찬역(佐贊驛)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이제는 2차선 포장도로로 큰 눈 쌓인 날 아니고는 차들이 쌩쌩 달린다.

1939년 동아일보 기사에 이 고개를 확장한 일이 보도됐다. 당시 이 곳 군수가 열렬히 상부에 청원해 예산 일만원(一萬圓)을 따내어 고개를 확장했다는 것이다. 그 때도 기간도로였던 것 같다. 중앙 일간지에 실렸던 것을 보면.

안성 칠장사에서 혜소국사가 가난하고 불량한 자들을
보살피고 가르쳤다 하고, 칠장사 명부전에는
홍길동 벽화가 그려져 있으니 단순한 우연일까?

이 고개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용인시 명승을 선정하는 위원회가 이 고개를 용인팔경 중 3경에 선정했다. 그 자료에 의하면 예전 이 고개에는 호랑이 출몰도 잦았다 하며, 안성 죽산 칠장사에 계신 스승(갖바치 병해대사)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임꺽정이 이 고개를 지났는데 가짜 임꺽정과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1801번 버스 시간표 - 1801beon beoseu siganpyo

명종실록에 보면 그 당시 가짜들이 각지에서 임꺽정을 사칭해 도적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나라에서도 가짜를 잡고 임금께 보고한 일도 있으니 실상을 짐작할 만하다. 명종 16년(1561년) 1월 조에는 “황해도 순경사 이사회와 강원도 순경사 김세한이 복명하기를 도둑 두목 임꺽정을 체포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임꺽정이 아니고 도적 가도치였다)고 쓰여 있다.

黃海道巡警使李思會 江源道巡警使金世澣復命, 以捕捉賊魁林巨叱正入啓(其實非林巨叱正, 乃賊人加都致也)

소설 임꺽정은 벽초 홍명희(洪命熹) 선생이 1928년부터 11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이다. 안성 칠장사에는 고려 현종 때 혜소국사(慧炤國師) 비가 있다. 그 내용 중에 주변의 가난한 자나 불량한 자들을 보살피고 가르친 내용이 전해진다. 아마도 벽초 선생은 이 내용을 모티브로, 실록에 기록된 도적 임꺽정과 연결 스토리를 엮었을 것이다. 칠장사 명부전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인 ‘병해대사와 7인의 도적’ 벽화를 그려 놓았다(임꺽정, 이봉학, 박유복, 배돌석, 곽주오, 황천왕동, 길막봉).

이제 임꺽정을 뒤로 하고 곱든고개를 내려간다. 아래에서 산악바이크를 하는 이들이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올라온다. 고개 아래에 와우정사 안내판이 있다.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불두상(佛頭像)이 나그네를 맞는다. 와우정사(臥牛精舍)는 근래에 세운 열반종의 종찰로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곳이다.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조성한 부처님 열반 와불(涅槃臥佛)도 봉안돼 있고 남방불교의 느낌을 주는 탑과 여러 불상들도 봉안됐다. 들러 볼 만한 곳이다.

문수봉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들어선 법륜사, 와우정사라는 대찰(大刹)과 문수봉 남녘에 자리한 마애보살상이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마애보살들께서 원하시던 1000년의 바람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