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환자 관계 - jeongsingwa uisa-hwanja gwan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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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사랑이야기, 윤리적일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사랑이야기, 윤리적일 수 있을까

2020.06.03 16:28 입력 2020.06.03 16: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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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윤리적’일 수 있을까.

지난 5월부터 방영 중인 KBS2 수목드라마 <영혼수선공>이 정신과 의사와 환자 간 로맨스를 다루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8일 16회까지 전파를 탄 <영혼수선공>은 국내 최초로 정신의학과가 배경인 드라마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위로를 선사한다는 의도로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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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은 정신과 의사 이시준(신하균)과 그의 환자 한우주(정소민)의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그려지면서 시작됐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 같은 전개가 정신과 의사에 의한 ‘그루밍 성범죄’를 미화한다고 비판했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전이(자신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현상)를 이용해 성범죄 대상으로 삼는 사건이 현실에 존재하는 만큼 이 관계를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지침은 “의사는 진료 관계가 종료되기 이전에는 환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경우라 할지라도 환자와 성적 접촉을 비롯하여 애정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미국 정신과학회는 환자와의 성적인 행동은 비윤리적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미국 심리학회는 치료 종결 후 2년 이전까지는 환자와의 성적 관계를 엄격히 금지한다.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과 의사의 성폭력도 있었다. 지난 3월 사망한 유명 정신과 의사 김현철씨의 환자들은 2017년 그가 자신들을 성적으로 이용했다며 김씨를 성폭행 등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의 전 환자로 성폭력 피해를 입은 ㄱ씨는 지난달 29일 트위터에서 <영혼수선공>에 대해 “사회적 인식은 조금이나마 바뀔 줄 알았는데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연애하는 드라마라니 기운이 빠진다”고 적었다.

지난달 31일에는 해당 드라마가 그루밍 성범죄를 미화한다며 제작진의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KBS 시청자 청원이 올라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홈페이지에는 이 드라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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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청자들은 2014년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와 비교하며 <영혼수선공>의 연출이 퇴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정신과 의사인 주인공이 정신과 진단을 받은 연인을 면회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장면이 그려졌다.

KBS 관계자는 “시청자들이 지적해주시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려 고민하고 있으며, 추후 전개 과정을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의료진에 의한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확산됐지만 관련 법률 개정은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6월 의료진의 환자 대상 성범죄에 대해 가중 처벌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환자를 간음·추행한 경우 형법상 미성년자의제강간죄에 준해 처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최민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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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환자 그루밍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는 ‘개원의를 위한 의료윤리사례집’을 통해 남편과의 불화와 성적 불만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환자와 애정관계에 빠진 정신과 원장의 사례에 대해 이같이 결론을 내렸다.

사례에 따르면 정신과 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Y원장은 40세로 2년 전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으며 부인과 딸은 미국에 가 있는 상태였다.

Y원장은 3개월 전부터 남편과의 불화와 성적인 불만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던 미모의 L씨에게 마음이 끌렸다.

L씨 역시 Y원장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되고 증상은 매우 호전됐으며 어느날 L씨는 감사의 표시로 Y원장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Y원장은 자신이 이혼하고 혼자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L씨는 자신의 호전은 Y원장 덕분이라며 남편과 하루라도 빨리 헤어졌으면 좋겠다며 사랑을 고백했다.

L씨는 Y원장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면 자기는 다시 우울증에 빠져 자살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Y원장은 이미 자살을 기도한 전력이 있는 L씨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윤리위는 법률적 측면에서 “환자와의 로맨틱한 관계는 법적인 문제는 아니다”며 “단 Y원장이 아직 이혼하지 않은 L씨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면 그때는 일반적인 간통사건이 되며 L씨 배우자의 고소가 있을 경우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리위는 의협 윤리지침을 근거로 “의사는 진료관계가 종료되기 이전에는 환자의 자유의사와 환자와의 합의에 의한 경우라 할지라도 환자와 성적 접촉을 비롯해 애정관계를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윤리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신과 의사의 5~10%가 환자와의 성적 접촉을 가진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있다”며 “의사-환자 관계에 있어 가끔 이러한 일탈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윤리위는 의사-환자 관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애정관계로 발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환자의 심신에 대한 객관적 파악 어려움 *환자의 순응도 문제 *관계 자체가 환자의 상태 악화 가능성 등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 “부득이하게 진료중 애정관계를 맺는 경우가 생기면 의사-환자 관계를 종료하고 다른 의사에게 환자를 보내 치료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L씨가 아직 혼인상태에 있다는 것이 사회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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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조심스레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연 긴장했다. 간호사가 진료 기록부를 가져다놓을 때까지도 설마 했다. 차트에 쓰인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이려니 하면서도 흠칫했고, 생년월일을 흘끗 보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린 것이다.

“네, 들어오세요.” 목청을 가다듬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겠지, 설마. 그때가 언젠데….’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내심 피어오르는 일말의 기대감은 또 뭔가.

내 음성을 듣고도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문밖 환자의 기척. 주춤주춤 문고리를 돌리는 손길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러지 않으려고 할수록 긴장감은 더했다. 빼꼼 문이 열리며 고개를 반쯤 숙이고 들어서는 50대 초반의 여성, 어깨 길이 생머리에 무릎 길이 파스텔 톤의 민트색 원피스 아래 드러난 매끈한 종아리와 잘 정돈된 맑은 피부, 이지적인 분위기의 이목구비로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데다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 짧은 순간 환자의 외모와 표정이며 옷차림까지 스캔할 정도면 환자에 대해, 특별히 호감 가는 여성 환자에 대해 습관적으로 호기심을 갖는 불순한 의사라는 오해를 받을 법하다.


7년 만에 나타난 그녀

오해를 받든 이해를 받든 아, 어찌 잊으랴 그녀를! 진료 기록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녀가 실체를 드러냈다.

“앉으시지요. 오랜만입니다.”

“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무덤덤함을 가장하려고 애쓸수록 이미 일기 시작한 가슴속의 잔물결은 파고를 높여가고 있었다. 긴장을 감추려다 보니 머리가 다 어찔어찔했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오늘 또 이렇게 진료실을 찾아왔단 말인가. 정신과 의사로서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환자 자격으로 나를 만나러 오는 그 누구에게든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지금 그녀는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일 테고.

“어떤 불편함 때문에 오셨는지요?”

평정심을 찾으며 평소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어쨌거나 환자로서 날 만나러 온 것이니.


“선생님, 저 이혼했어요.”

미리 연습한 듯 나직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 한마디에 가슴속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온몸으로 번져가려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눈물 앞에 나의 방어벽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사각 티슈 상자를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지만, 그녀는 티슈를 뽑는 대신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찍어내듯이 눈가를 조심스레 눌러 닦았다.

7년 전 내 진료실을 떠나갔던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3년을 나와 함께하는 동안 남편의 유흥업소 출입을 막을 뾰족한 방안도, 그녀의 뻥 뚫린 가슴에 적절한 치유도 해주지 못했던 무능한 내 앞에.


의사와 환자, 사랑에 빠지다

10년 전 나는 환자와 사랑에 빠졌다. 나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지금 눈앞의 그녀와. 남편과의 불화에서 비롯된 불면증과 불안 증세로 내원했던 당시 마흔 살의 그녀. 첫 대면부터 한 마리 작은 새처럼 애처롭고 가련해 보였다. 의사 대 환자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보호해주고 싶었다. 의사로서 환자를 보호해주고 싶었다면 무슨 문제일까만,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품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거미줄을 거두듯 힘닿는 데까지 그녀의 불행을 거둬주고 싶었다.

사랑스러웠다. 20년 내 결혼생활의 권태와 무덤덤함을 일시에 씻어줄 것 같은 청량감마저 느껴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성적 매력은 있었지만 남녀 관계로 발전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내면에 장착된 직업윤리라는 엄격한 경계경보가 늘 깜빡이고 있었기에.

결혼한 지 10년 이상 된 중년 부부 갈등이야 특별할 것도 없지 않나. 당사자들이야 그보다 더한 위기가 없을 것같이 굴지만, 들어보면 다 거기서 거기란 건 경험상 이골나게 겪었기에 그녀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단아한 외모에 끌렸다면 의사로서 자격 미달이니 딱 거기까지인 걸로 마음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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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우리 함께 살까요?

의사 이전에 나도 남자니 여성 환자에게 호감 간 일이 실상 처음도 아닌 데다, 첫인상에 가슴이 다소 설렌다고 해도 상담이 오가다 보면 결국 인간적 호의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 생활 20년 짬밥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다른 과와 달리 정신과는 내밀한 사생활과 내면적 속살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환자와의 라포 형성 과정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하지만 곧 정상 궤도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와는 그러지 못했냐고? 선을 지키지 못했다는 뜻이냐고? 고백하자면 그렇다. 둘이 어디까지 갔냐면, 각자 배우자와 이혼하고 함께 살자고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러자고 했고 그녀는 마다했다.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더 안달이 나서 함께 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즈음 우린 면담을 빌미로 진료실에서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맹세코 밖에서 따로 만나지는 않았다. 3년 동안 진료실에서 마주한 것이 전부였고, 따로 만나 밥은 물론 차 한잔 나눈 적도 없었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직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면담 시간 50분 동안만 우리는 서로를 정신적으로 탐했다.

나와 동갑인 그녀의 남편은 금융업계 종사자로 업무적으로는 유능했지만 결혼 초부터 끊임없이 유흥업소를 드나들면서 아내의 신경을 긁었다. 처음 몇 번은 셔츠 깃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변명하고 건성으로 미안해하거나 시늉으로 용서를 빌곤 하더니, 나중에는 그조차 무감각해져서 아내가 추궁할 때면 남자가 바깥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되레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며 적반하장으로 굴었다.

“이혼을 하셨다고요…?”

그때의 생각이 떠올라 의외의 감정이 담긴 내 말꼬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 그녀. 손에 쥔 손수건 끝단을 하릴없이 돌돌 말면서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다.

“이혼은 안 하겠다고 하더니 그간 심경이 변하셨나 봅니다. 그래, 언제?”

“1년 전에요. 우울증을 앓던 아들이 3년 전 자살을 했어요. 그래서 이혼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어요. 결혼 관계를 유지해보려고 애썼지만 원래도 금이 가 있던 부부 관계가 아이를 잃고 좋아질 리가 없잖아요. 좁히려고 애쓸수록 사이가 더 벌어지면서 결국 파경을 맞았어요. 남편은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그간 가정을 등한시했던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늦게라도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비록 헤어졌어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따위는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제가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아들을 잃은 마당에 가뜩이나 정 없던 부부가 새삼 노력해서 같이 살 가치가 있을까 싶었어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후 소식 한 자 없더니 지난 7년간 아들을 잃고,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 이렇게 내 앞에 앉은 그녀.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죽을 것 같은 방황 다시 시작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남편 때문에 시작된 치료였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쪽에서 곪아 불거졌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불화를 보고 자라온 외아들이 아동기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실상 그녀의 정신과 내원 동기도 아들로 인해서였다. 물론 처음부터 아들 이야기를 꺼냈던 건 아니다. 이유는 내가 아들을 보자고 할까봐 겁이 나서였다고 했다. 점차 내게 연애 감정을 느끼면서 모종의 수치심으로 아들 상태를 털어놓고 싶지 않았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그녀의 오판이자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아들은 소아정신과로 보내졌을 테니 내게 치부가 드러날 염려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랬는데 지금 그 아들이 죽었다지 않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그렇게 어이없이 아들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닥쳐올 크나큰 불행을 미리 내다보지 못한 채 별 가망도 없는 남편 바람기 잡기에 대해서만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이 무슨 낭패인가 말이다.

“그랬군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럼 요즘 혼자 지내나요?”

“이혼 후 친정에 들어가 지냈는데 친정어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로 갑자기.”

점입가경이라더니, 불행이 불행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로 위로가 되랴. 내 기억으로 그녀는 외동딸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으니 이제 그녀가 의지할 피붙이는 없다는 뜻이다.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뭐죠?”

“그냥요, 그냥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듣고 싶고 기다렸던 말인가. 7년 전 일방적으로 그녀 쪽에서 발길을 끊은 후 나는 적잖이 방황했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로 인해 아내와는 더 권태롭고 더 지루해져서 그 참에 아내와 헤어져버릴 생각까지 했다. 그랬던 나를 가까스로 추스른 게 불과 2, 3년 전. 그런데 그녀가 내 앞에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났으니. 아, 나의 죽을 것 같은 방황이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