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드개 에스더 관계 - moleudeugae eseudeo gwangye

2019년 9월호 기쁜소식
이 달의 설교

모르드개 에스더 관계 - moleudeugae eseudeo gwangye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갈 수 있단 말인가?
에스더 성경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높이 세우고,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절하는데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는다고 모르드개만 아니라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고 했다. 그 일을 왕에게 고하고 허락을 받아서 ‘십이 월 십삼 일 하루 동안 모든 유대인을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라’는 조서를 쓰고, 왕의 인장반지로 인을 쳐서 온 나라에 반포했다. 이에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다.
에스더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자신에게 시중드는 사람을 보내서 모르드개가 입고 있는 베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려고 했지만 모르드개가 거부했다. 그제야 사람을 다시 보내서 무슨 연고인지 알아 보라고 했고, 모르드개는 유대인이 죽게 된 상황을 이야기하며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 유대인을 살려 달라고 청하라’고 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어전에 나가면 죽이는 법이다. 왕이 금홀을 내밀어야만 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지가 한 달이 되었다’라고 전했다.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왕에게 나갈 수 있겠느냐고, 부담스러우니 피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두려움에 쌓인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한 권고는 강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하고 주님을 위하도록 새로 지음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더러운 죄에서 벗어나 새 생명을 얻어 영생을 얻었으니 마땅히 삶을 다 바쳐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갈 때 주님이 항상 우리를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 눈에 주님보다 어려움이 더 크게 보이게 해서 마음에 말할 수 없이 큰 부담을 갖게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믿음으로 부담을 넘어서 달려갔고, 그럴 때마다 주님은 단 한 번도 그들을 버리지 않고 도우셨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주어 부담을 피하게 만들어서 주님의 뜻을 떠나게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버리고 주님을 떠나서 사탄의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평생을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을 어둡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때에 영적인 인도자가 필요하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가서 유대인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처럼 두려움에 쌓여서 허우적거리는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한 권고는 너무나 강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대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모르드개의 말은 아주 정확하고 강했다. 에스더가 사탄에게 속아서 자기 하나 위하려는 안일 속에 빠져 있었는데, 모르드개의 냉정한 말은 에스더의 마음을 사탄의 계획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길은 사탄의 길이요, 파멸의 길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시험에 들 때도 있고, 시련이 닥쳐오면 부담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때에 어린 성도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려워서 주님의 뜻을 떠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유대인이 다 죽는데도 자기만 거기서 벗어나 피하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향하는 것이다. 그 길은 사탄의 길이요, 파멸의 길이다.
내가 구원받은 1962년 당시에, 선교학교에 들어가서 보니 얼마나 많은 형제 자매들이 구원받은 뒤 감사에 젖어서 자기 일생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고자 했는지 모른다. 자신을 복음을 위해 드리고자 한 사람이 100명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갔는지, 그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 후로도 복음을 위해서 직장을 버리고, 자신을 주님께 드려 복음만을 위해서 살려고 전도자의 길로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버리고 떠났는지 모른다. 사탄에게 이끌려 교회를 떠나서 지금은 거짓말로 교회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모르드개가 인도할 때 자기 생각을 버리고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어도 말씀으로 이끌어서 에스더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귀한 직분을 감당하도록 지도했다. 에스더 역시 모르드개를 사촌오빠가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여서, 모르드개가 인도할 때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을 가졌다. 주님의 크신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것이 참된 교회의 그림자이다.
하나님은 에스더를 왕비로 세우실 때, 장차 하만이 유대인을 죽이려고 할 것을 아시고 왕비 와스디를 폐위 당하게 한 뒤 에스더를 세우셨다. 그런데 에스더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에 부담으로 인해 왕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했다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에스더도 유대인이므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반대로 부담을 넘어 왕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에스더에게 한없는 영광을 주시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살리는 데 크게 공헌하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순종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다
에스더 5장에 보면, 에스더가 어전 문을 열고 뜰로 들어서자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향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왕비 에스더를 보고는 바로 금홀을 내밀며 말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나님의 뜻 앞에서 사탄은 에스더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어서 에스더로 하여금 다른 길로 가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에스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에스더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축복이요, 하나님이 당신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다.
왕은 에스더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유대인을 죽이려고 했던 하만을 나무에 달게 했으며 유대인들을 모두 살렸다. 하만의 열 아들도 죽임을 당했다. 이 일은 에스더 시대뿐 아니라 이후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복된 삶이 어떠한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사탄이 살아 일하는 동안 우리 삶에 에스더 시대와 같은 시련이 찾아오고 우리가 위험을 만나지만, 나 자신의 지혜나 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나아가는 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고 축복하셔서, 그들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간증들을 만들고 계신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사탄은 항상 어렵고 힘들고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자녀를 버리지 않고 도우신다. 다만 그처럼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인간의 방법으로 피해 가면 그 사람은 바로 사탄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아서
에스더와 모르드개, 두 사람은 사촌 관계였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에스더는 어릴 때부터 믿음의 사람인 모르드개에게 양육을 받았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고 자라서 왕비가 되는 영광을 얻었을 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을 죽음에서 구하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다. 에스더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음 안에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장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 속에서 그 일생이 한없이 복되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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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 에스더 관계 - moleudeugae eseudeo gwangye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주전 5세기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히브리 여인 에스더를 도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 기스의 증손이며 시므이의 손자이고, 야일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났다(에 2:5). 그의 히브리어 이름 ‘모르드카이’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잘 모르지만 바벨론의 신 ‘마르둑’의 명칭에서 유래됐다. 아마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그곳 황제로부터 하사 받은 별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들을 사로잡아 갈 때 모르드개도 포로 대열에 포함됐었다. 모르드개는 사람들에게 불려진 이름과는 정반대로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중심의 삶을 살았다.

모르드개는 삼촌인 에스더의 부모가 일찍이 죽자, 나이 어린 천혜의 고아를 자기 딸처럼 넓은 사랑으로 양육했다. 혹자는 모르드개를 에스더의 친 삼촌으로 본다. 그것이 옳다면,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조카가 될 것이다. 어찌하든 모르드개의 결혼 기사가 성경에 없는 것으로 보아 사촌 여동생(또는 조카) 에스더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름답게 양육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킨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신실한 가르침과 희생적인 노력으로 인하여 주전 486-466년에 페르시아를 통치한 아하스에로(본명 크세르크스)의 제1왕후가 될 수 있었다(에 2:7-20). 물론 에스더가 연약한 식민지 백성으로서 대제국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는 위대한 섭리였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지혜롭고 성실해서 페르시아 제국 왕궁에서 상당한 직위를 받고 일하게 된 이스라엘 사람 모르드개는 은밀히 진행되던 왕의 암살 계획을 왕후 에스더에게 은밀히 알려줬다. 페르시아 제국을 부인하고 개인적인 야망을 실현하려던 사악한 범인 빅단과 데레스가 긴급 체포돼 반역죄로 처형됐다(에 2:21,22).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는 불의한 일이 페르시아 궁중에서 은밀히 진행되는 것을 성격상 묵과할 수 없었다.

아각 사람 하만이 페르시아 왕의 은총을 입고 총리대신으로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의 발 앞에 굴복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만은 총리 하만에게 고개 숙여 절하지 않았다.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로서 하만이 백성들에게 존경받을 수 없는 무절조(無節操)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요, 또한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의 최대 대적인 아각(아말렉)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말렉(아각) 족속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 최초의 적으로서, 주전 1446년 힘들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었다. 지도자 모세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침략을 감행하여 무례를 범한 아말렉 족속들을 이 땅에서 영원히 도말(塗抹)할 것을 하나님은 음성을 통해서 만방에 선언했다(출 17:13-16).

개인적인 모욕을 받고 적의에 찬 하만 총리는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땅에 거처하고 있는 온 유대인에게 보복하기로 결심했다(에 3:5-11). 뇌물과 입에 바른 말로 페르시아 황제를 설득한 하만은 이스라엘 민족을 살해할 D-DAY를 잡게 됐다. 황제의 조서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페르시아 땅에서 사라질 날이 곧 결정됐다. 하만의 계획이 자신의 뜻대로 시행되는 듯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무죄한 이스라엘 민족들이 비참하게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어느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신하들이 적어 놓은 궁중일기를 읽게 됐다. 왕 암살 계획에 대한 기록을 대할 때, 자기를 구한 사람에게 전혀 호의를 베풀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사실을 알게 됐다. 날이 밝자 충실한 신하 모르드개를 불러 화려한 왕의 의복을 입히고 말에 태워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고 외치면서 수산성을 돌게 했다.

얼마 후, 모르드개의 지시를 받은 왕후 에스더의 지혜로 총리 하만이 무죄한 이스라엘 민족을 고사(枯死)시키려 한다는 사악한 하만의 음모가 페르시아 왕 앞에서 모두 폭로됐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그의 집 마당에 세웠던 나무(십자형 교수대)에 하만과 아들이 달려 죽게 됐다. 금방 죽을 것 같았던 모르드개는 하만을 대신해 페르시아 왕 다음가는 제2인자가 됐다(에 8:15, 9:10).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생명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으셨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르드개의 희생적이고 지혜로운 처신 때문에 위기 속에서 모두 구원될 수 있었다.

하만을 대신해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가 된 히브리 사람 모르드개는 온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됐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날을 부림절로 정하여 성대하게 지키고 있다. 부림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름을 함께 부르며 그들을 칭송하고 있다.

어떤 위기와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지키며,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의로운 사역을 감당한 모르드개의 승리는 오늘날 우리들에 그대로 적용된다. 잠깐 동안의 개인적 영화와 유익을 위해 사람 및 하나님과의 약속을 무참히 짓밟고 저버리는 사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라도 하나님 및 사람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자라야 영원한 최후의 승리자로 남을 수 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켜 최종 승리자가 된 것을 하나님의 교회는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