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확률과 통계 - sicheonglyul hwaglyulgwa tong-gye

시청률 확률과 통계 - sicheonglyul hwaglyulgwa tong-gye

고석만 연출은 발령 이튿날인 1999년 2월21일 저녁 에스비에스 스튜디오에서 생중계된 김대중(맨오른쪽) 대통령의 제3차 ‘국민과의 대화’ 감독을 맡았다. 진행자는 시사평론가 정범구와 방송인 김연주(왼쪽)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99년 2월 프리랜서 제작자에서 청와대 공보비서실 행정관으로 변신해 안팎의 비상한 화제를 모은 고석만(왼쪽) 연출은 김대중(오른쪽) 대통령이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보기 드물게 ‘엔지’(NG)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 역량을 인정받았다. 고석만 피디 제공

방송 시청률의 영향력은, 이 시대 ‘언론의 영향력’이다. ‘첨병’의 최대 관심사이다. 정글에서 첨병이 한 발짝 틀어지면, 대지를 만날 수도 수백 미터 협곡에 빠질 수도 있다. 방송의 시청률 공표는, 곧 광고와 직결되고, 문화를, 산업을, 사회현상을 바꿔 나간다.

최근 통계청장이 경질되었다. 지난 8월26일 정부는 황수경 청장을 해임하고 후임에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을 발탁했다. 강 신임 청장은 가계동향조사의 소득부문 통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장본인이다. 야당은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를 통계 분식으로 덮으려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청와대는 “통계에 조금이라도 개입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황 청장은 이임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계청의 독립성·전문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는데 왜 이런 발언이 나왔을까. 청와대는 소득주도 성장을 열심히 했으니까 결과가 좋게 나올 것으로 봤는데 더 나빠졌다. 그와 관련해 홍장표 경제수석이 경질됐고, 결과가 나빠지는 데 대해 이해가 되지 않으니 통계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혹시 표본에 문제가 없느냐는 청와대의 문제제기에 황 청장은 ‘문제가 없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니 황 청장이 ‘윗선 말은 잘 듣는 편이 아니었다’고 하질 않았겠나. 통계의 정치 도구화는 막아야 한다. 사실관계가 정확해야 사회 개혁을 이끈다. 방송의 시청률은 조작될 수 있다. 역사가 깊다.

2006년 <에스비에스>(SBS)는 시청률조사업체 티엔에스(TNS·현 TNMS)를 ‘시청률 조작’을 이유로 고소했다. “2003년 10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에스비에스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 600건 이상을 조작했다”는 티엔에스 전 직원의 제보가 근거였다. 한편 티엔에스는 제보자의 배경에 의심이 간다며 경쟁업체 에이지비(AGB)닐슨을 ‘허위 문건 배포’ 이유로 맞고소했다. 1심, 2심, 대법원까지 “티엔에스의 시청률 산정 프로그램에 별다른 장애가 없었고, 수치가 인위적으로 조작된 흔적이 있다”고 판결했다. 2011년 4월 에스비에스가 최종 승소했다.

2011년 에스비에스는 시청률조사업체 ‘티엔엠에스’를 상대로 2006년 제기한 ‘600여건 시청률 조작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대법원 판결 소식을 밤 메인 뉴스 시간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에스비에스 제공

앞서 2003년 일본에서는 방송사 프로듀서가 시청률 조사대상 가구를 매수한 사건도 있었다. 티브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담당 프로듀서가 흥신소에 의뢰해 조사대상 가구를 알아내어 자신이 제작한 프로의 시청을 부탁하고 그 대가로 상품과 현금을 제공한 것이다. 방송의 공신력에 치명타를 날린 셈이다.

미국에서도 1970~80년대 분기별 ‘일기장 방식 여론조사’에서 종종 매수 사례가 발생했다. 인도에서는 뉴델리의 티브이 방송사가 여론조사업체 닐슨그룹과 칸타그룹을 대상으로 소송을 냈다. 조사회사의 간부가 뇌물을 받고 시청률을 조작해 발표하는 바람에 8년간 최소 8억1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1988년 <문화방송>(MBC) 심의실에서는 전화를 이용한 자체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50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정교한 계획에 따라 시간별, 무작위 전화 설문 조사를 했다. 저비용에 고효율이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 일찍 출근한 담당부장이 전날 조사통계 중 특정한 프로그램의 수치를 고친 사실이 숙직하던 부원들에게 발각됐다. 부장의 개인감정이 작동한 수치스러운 작태였다.

1990년 초 한국프로듀서연합회는 ‘미디어서비스코리아(MSK)와 에스비에스의 시청률 수치 밀매설’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공식 청문회를 열었다. 그때 국내 독점 시청률조사업체였던 미디어서비스코리아에서는 정구호 사장(전 한국방송 사장)을 대신해 전무가 청문회에 참석했다. 검증 방법부터 시작해 검증 질문지 내용, 패널의 대표성, ‘피플미터’ 기기에 대한 공학적 검증, 가구 시청기록, 패널가구 방문 조사, 패널가구의 전화 조사, 일반가구 전화 조사 등에 대해 질문했지만 형식적으로 답변하였다. 이때 최초로 피플미터 문제가 대두되었다. 세차례의 강도 높은 청문회였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피플미터의 정체를 일부 토해냈다. “목동, 방배동 150가구.” 표본 선정의 기초자료를 제시하라 요구했지만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끝내 제출을 거부했다.

시청률이란 무엇인가? 주어진 시간 동안 모집단 전체에서 티브이를 시청하는 가구나 사람들을 백분율로 나타낸다. 표본이 제일 중요하다. 시청률은 가구 시청률과 개인 시청률로 구분한다. 이러한 수용자 정보의 필요에 따라 시청률을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었다. 일기를 쓰듯이 시간대별로 프로그램 시청을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고 길거리 대면 조사도 했지만 무작위 축출 전화 설문 조사 방법이 주종을 이뤘다. 그 뒤 피플미터가 등장했다.

티엔엠에스가 공개한 피플미터 방식의 자사 시청률 조사 체계도.

국내에서는 1990년 6월 갤럽이 피플미터 방식의 시청률 조사를 처음 시작했으나 시청률 자료 구매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통합시스템과 표본축출기 설치, 즉 자료 제공자(피플미터기 가입자)를 확보하지 못해 2년 만에 조사를 중단했다. ‘피플미터’란 섭외된 조사대상 가구의 티브이 수상기에 기기를 설치하고 시청자가 능동적으로 시청 내용을 기록해야 가능한 조사 방식이다. 보상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미디어서비스코리아는 1991년 “서울 지역의 300가구를 표본으로 피플미터를 이용한 시청률 조사를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1999년 미디어서비스코리아를 인수한 미국계 에이시(AC)닐슨은 패널 크기를 확대했다고 발표했다. 이와는 별도로 1999년 티엔에스미디어코리아는 전국 주요 대도시 1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피플미터 방식으로 시청률을 조사하는 회사는 2005년 에이시닐슨과 영국계 에이지비가 합병한 에이지비닐슨미디어리서치와 티엔엠에스(TNMS) 두곳이다.

두 회사의 공식 발표를 가감 없이 옮기면 “에이지비닐슨은 전국 16개 시·도 77개 방송권역을 모두 포함하는 4320가구 규모로 피플미터기를 통한 시청률 데이터를 산출하고 있다. 티엔에스 역시 전국 16개 시·도 지역의 4000가구 규모로 피플미터기 방식의 조사를 하고 있다.”

국내 방송 시청률조사는 1990년 ‘피플미터 방식’이 도입된 이래 에이지비닐슨미디어리서치(왼쪽 로고)와 티엔엠에스(오른쪽 로고), 2개 업체가 지금까지 비슷한 시스템으로 조사를 하고 있다.

피디에게 시청률이란 무엇인가? 시청률은 권력이다. 방송사의 프로그램 편성은 나름 질서가 있다. 중요시간대 프로그램은 더욱 예민하게 붙는다. 경쟁사의 예상 프로그램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에 나선다. 같은 날짜에 방영을 시작하기 일쑤이고 1분1초를 다투어 편성한다. 그런데 방송 뒤 시청률이 발표되면 양상은 달라진다. 시청률표는 ‘경향을 나타낼 뿐’이라고는 하지만 0.1% 이기고 0.1% 졌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다. 그다음의 대응책이 달라진다. 포지티브 전략 대 네거티브 전략, 진 쪽에서는 ‘왜 졌는지’ 밤새 고민할 것이고, 이긴 쪽에서는 ‘잘되었다’ 생각하는 부분만 부추길 것이다. 0.1% 차이의 ‘에스컬레이터 효과’에 대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한번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오르고, 한번 내려가면 돌이킬 수 없이 내려간다. 통계, 거기에 함정이 있다.

방송사의 아침회의는 악마적 수치의 칼춤판이다. 시청률은 방송의 설립 목적, 경영, 인사, 편성 등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다. 개개인에 대한 평가 잣대가 된다. 살생부다.

우리나라의 시청률 조사에 대한 검증은 2000년 방송광고공사 주도로 ‘티브이 시청률 검증협의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협의회는 방송사 3명, 광고기획사 3명, 학계 1명, 방송광고공사 1명으로 구성해 2000년 시청률 자료에 대한 예비검증을 시행했다. 지금은 방송통신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시청률에 관한 학자들의 논리는 정연하고 훌륭하다. 그러나 피플미터의 현장점검을 안 했거나 형식적으로 했을 것이다. 점검했다 해도 몇가구 세팅된 현장만 보았을 것이다. 최소한 발표한 가구수의 10%, 즉 400가구는 ‘루트’까지 확인해야 한다. 시청률조사회사가 제시한, 미국·영국의 거대 업체와 계약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시스템’에 현혹되어 땅속에 숨어 있는 뿌리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문화방송 드라마국에 전설 같은 선배가 있었다. 그분은 드라마 방영이 끝나거나 방영 중에도 집으로 전화를 해 격려하거나 질책하기로 유명했다. 뛰어난 방송평론가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일체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시청률 조사표’가 공식화된 다음부터다. ‘김포천’ 선배의 구수한 방송평이 그립다. 얼마 전 소개된 시청률에 관한 ‘술주정뱅이와 유리조각 줍는 아낙네의 손끝 이야기’도 새삼스럽다. 베트남전 때 통계를 맹신한 미국 국방장관 맥나마라에게 보고된 악마적 숫자 ‘적 전사자 30만’이 ‘전면전’이라는 국가적 오판을 불러낸 사실도 무섭다.

1963년 문화방송 개국 멤버인 김포천 피디는 80년대 제작국장 시절 ‘시청률 조사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실시간 육성 방송비평’을 후배 피디들에게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그는 60년대 초반 <삼김시대> 이영신 작가 등과 함께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춘하추동방송 제공

1990년대 후반 시청률에 관한 두번의 사사로운 실험 사례가 있었다.

실험1: <삼김시대>(1998년). 고석만 연출 최초로 시청률 패배를 감수해야 했던 프로그램이다. 작심을 하고 자체 시청률 조사를 감행했다. 전화 조사에서 미세하게 이겼다. 개인도 방송사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차이였을 것이다.

1988년 5월21일 한국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함께 손잡은 ‘3김 정치인’. 왼쪽부터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 시절이다.

1998년 고석만 연출은 실존 정치인 김종필(왼쪽부터 정동환)·김대중(유인촌)·김영삼(길용우)의 80년대 대권 각축기를 그린 드라마 <삼김시대>를 제작했다. 경쟁 프로보다 낮은 시청률이 의아해 자제 전화조사를 진행해 다른 결과를 얻기도 했다. 에스비에스 제공

실험2: <국민과의 대화>(1999년). 방송 3사가 동시중계했다. 국가정보원이 자체 조사한 시청률이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그런데 미디어서비스코리아의 발표는 절반이나 낮았다. 청와대는 의아해하며 검토를 지시했다. 문화관광부를 거쳐 방송광고공사의 의견을 청취했다. 미디어서비스코리아의 독점체제가 한 원인으로 꼽혔다. 경쟁체제에 대해 대안을 논의할 무렵, 방송광고공사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했던 민경숙 박사가 미국의 리서치 전문 업체 닐슨 본사와 분석표 활용을 제휴하고 98년 설립한 티엔에스에서 새로운 시청률 조사를 시작했다.

1998년 1월 김대중 당선자 시절 처음 시도한 ‘국민과의 대화’는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차츰 시청률이 낮아졌다. 이에 동아일보(사진) 등 보수 언론에서는 비교 분석을 할정도로 민감한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단일한 시청률 자료를 활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두곳의 민간회사에서 각기 다른 시청률을 생산하고 있다. 시청률 자료를 이용하는 방송사와 광고대행사는 어떤 자료를 구매해야 할지 어떤 자료가 더 정확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캐나다도 비영리기관인 비비엠(BBM)과 민간업체 닐슨이 각각 시청률을 산출했지만 2007년 두 회사가 공동출자해 단일화에 성공했다.

1999년 출발한 티엔에스의 맹활약을 보며, 시청률에 대한 ‘의심의 철학’이 발동했다. ‘의심1: 표본의 분포만이라도 공개하라. 개인정보보호법 뒤에 숨은 투명성 의심. 의심2: 티엔에스는 새벽 4시에, 에이지비닐슨은 새벽 5시께 발표한다. 한데 대부분의 수치가 비슷하다. 자료 카피 의심. 또 특정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무려 16%포인트나 오차가 난다. 대표성 의심. 의심3: 한달 뒤 16%포인트 차이가 났던 프로의 시청률이 양사 동수로 나왔다. 조작? 독립성 의심. 의심4: 대략 13명 정도의 젊은 직원이 기본자료를 입력시킨다? 전문성 의심. 의심5: 원 포인트 입력으로 화려하게 바뀌는 마력의 분석표, 과학성 의심. 의심의 막장: ‘피플미터’는 존재하는가? 기초 근거가 없다. 객관성 의심.’

그 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큰 소리로 물어봤다 “피플미터를 보았소?”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2006년 티엔에스의 문화방송 세일 브리핑에서 오차 극복법과 표본의 제시, 즉 피플미터의 기초자료를 정식으로 요구했다. 거부당했다. 회사의 영업기밀이라고 했다. 문화부, 방통위에서도 민간업체의 영업기밀이라 강제할 수 없다고 했다.

투명성·대표성·독립성·전문성·과학성·객관성을 포기한 ‘시청률제조회사’는 지금 호랑이 등에 탄 격이다. 방송법 통제권역을 넘어섰다 하여 시청률제조회사를 이대로 둔다면 이 나라 모든 여론조사가 불신당한다. 통계는 아는 만큼 보인다. 이제는 빅데이터 시대다. 정치권의 여야 모두 ‘유튜브’에 집중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여론 통계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혹여 표본 갖고 장난치면 통계는 막장으로 간다.

통계학의 비전문가가 겁없이 호랑이 앞에 섰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시청률제조업자’는 지금 이 순간 뛰어내려라. 보수 인사들에게는 희생과 숙명의 미학이 없다. 고칠 수 없는 법은 없다. 글쓰기가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집필 고석만/기획·진행 김경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