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브랜드 사례 - manghan beulaendeu salye

한 때 비록 ’비타 500‘의 출현으로 위기는 있었지만 잘 극복해내고 미국과 베트남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어 더욱 성장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박항서 감독님만큼 굉장히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베트남분들은 커피도 쓰고 달게 드시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 이유는 노동력을 많이 쓰시기 때문에 카페인을 즐겨 찾으시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박카스의 타우린 성분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ㅎㅎ

약 50년 전, 아디다스가 시장에 진입했을 당시 아디다스의 주 목표는 축구화와 런닝화를 생산하는 것이였다. 프로 운동선수를 위한 브랜드를 정립함으로써 그 이름은 결국 시장 중심부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80년대에 이르러 Run DMC가 “My Adidas”라는 랩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면서 아디다스는 거리의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나이키와 리복이 마케팅력에서 우위를 드러냈고 심지어 아디다스의 고향인 독일에서까지 그러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신었던 운동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디다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 이후 새 천년은 아디다스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아디다스는 서서히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시작하여 나이키 다음으로 세계 제2의 스포츠 브랜드 기업이 되었다. 어떤 방법으로 아디다스는 성공적인 재포지셔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디다스는 자사의 브랜드 가치인 진실, 영감, 정직, 헌신이 스포츠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신념은 올림픽 선수들과 일찌감치 지속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월드컵과 같은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의 스폰서쉽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가시화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행사들은 스포츠웨어 회사들의 홍보 효과를 위한 경쟁의 장으로 활용되며 이는 곧 시장 점유율을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아시아에서의 아디다스의 빠른 성장은 올해 전세계적으로 2500만의 관람객과 10억의 시청자를 동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과 한국의 월드컵 개최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두 국가는 작년 대비 15% 성장을 달성, 미화8억7천8백만불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아디다스 성공의 핵심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맺은 상당수의 보증 계약에 있다. 아디다스를 대표하는 최근의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게임에서 우수한 실력을 보일 뿐 아니라 대중적 인기 또한 만만치 않다. 영국의 축구 선수 David Beckham의 아디다스와의 관계는 영국에서의 아디다스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상승시켰다. 최근 ‘영국의 켑틴’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Beckham은 2000년 FIFA 월드컵에서 자신의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더욱이 그는 큰 인기를 누렸던 전 spice girls 멤버와 결혼하였고 아디다스 로고가 부착된 의상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종종 스포츠 신문에 등장하곤 한다. 유럽이 아디다스의 최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노출은 곧바로 수치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작년 매출은 7% 성장하여 미화 270억불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Kobe Bryant 가 성공적인 아디다스 보증의 예라 할 수 있다. LA Laker 소속이자 가장 어린 NBA 올스타 선수로서 Bryant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실은 판매로 직결되며 Bryant를 숭배하고 그처럼 농구를 하고자 하는 젊음이들은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을 신고 싶어한다. 미국에서 자라난 러시아 태생인 테니스 선수 Anna Kournikova 또한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그녀는 젊고 뛰어난 운동선수이자 테니스 세계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Bryant나 Beckham처럼 그녀는 신문, 잡지, 스포츠 신문에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재창조는 아디다스 마케팅 전략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제품 라인업에서도 중요한 요소였다.회사의 웹싸이트 상에서 아디다스는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다. “우리가 경쟁하는 시장과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스포츠에 대한 정의의 진화 혹은 혁명에 달려있다. 축구와 농구 등의 팀 스포츠는 스포츠 경기에서 언제까지나 근본적인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스노보딩, 인라인 스케이팅, 서핑과 같은 절충적이고 개인적이며 규칙 없는 스포츠가 중요한 범주로 성장했다. 골프, 하이킹 그리고 산악 자전거와 같은 활동 역시 기존에는 리아프스타일이나 여가생활에 속했으나 현재는 스포츠의 중심부에 속한다. “ 아디다스는 이러한 새로운 범주들에 해당하는 제품을 증대하여 브랜드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아디다스는 매년 발에 편한 60개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아디다스의 신념은 신발을 발로 간주하는 것으로 발에 꼭 맞고 활동성이 좋은 신발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전략을 변경하였고 그 결과, 제품은 하이엔드와 스포츠 전문점에서 재포지셔닝되었다. 주 경쟁상대인 나이키가 미국, 유럽, 호주에 걸쳐 대표격인 NikeTown 상점들을 개설하자, 아디다스 또한 유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시장 인지도를 확대하기 위해 작년에 파리 시장에 첫 아디다스-솔로몬 메가스토어를 개점하였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과 2000년 European Cup Football에서 우승하였다. 아디다스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컨셉을 유럽과 북미의 더 많은 도시들에 확장하기를 기대한다.

아디다스는 재창조의 전략을 통해 자사의 브랜드가 영원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입증시키고 있다.최근에는 올란도 매직의 Tracy Macgrady와의 평생 제휴관계를 맺고 2002 월드컵에 깊이 참여함으로써 젊은 운동선수들의 인기를 활용한 짭짤한 거래들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브랜드의 인지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아디다스 팀은 오늘날의 경쟁적인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활력을 찾은 경쟁자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을 다듬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제는 과거와 현재의 운동화로 당당히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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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님이 예로 드신 푸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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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즐겁게 일하고, 연말에 성과급으로 1년 연봉에 가까운 돈을 또 받는다면? 그것도 2년 전에는 성과급 한 푼 받지 못하는 ‘퇴출 대상 1순위’의 부서가 2년 연속 사내 최고 성과급의 대상이 된 경우라면?

㈜이랜드의 스포츠 브랜드이자 부서명인 ‘푸마’의 직원 33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년도 실적에 대한 포상으로 1100%의 성과급을 받았다. 전원이 1월 중 미국으로 1주일간 휴가도 떠난다. 총 11개 사업부서 가운데 최고의 대우다.

지난해 푸마의 매출은 총 1000억원. 2001년 매출 340억원의 3배에 가까운 성적이다. 2000년 매출은 100억원에 불과했으니 2년 동안 10배 성장한 것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03억원으로 2001년도(70억원)보다 190% 증가했다.

● 지옥에서 천당까지

독일 축구용품 브랜드인 푸마는 80년대 후반 한국 소비자에게 소개됐다. 한 수입업체가 들여와 마라도나 등 유명 축구선수를 모델로 쓰면서 ‘축구 브랜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푸마의 창시자는 아디다스의 창시자인 아디 다슬러의 동생 루돌프 다슬러. 이랜드는 94년 푸마의 라이선스권을 따왔다.

이랜드는 95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스포츠 브랜드 업계에서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아성이 워낙 강해 성장의 동력을 마련할 수 없었다. 95년 159억원이었던 매출은 96년 178억원, 97년 177억원으로 정체였다. 98년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99억원으로 줄었고, 99년 80억원으로까지 떨어졌다.

97년부터 구조조정을 시행한 이랜드는 99년 48개에 이르렀던 브랜드를 절반 이상 퇴출하고, 직원도 3600명에서 1800명으로 줄였다. 구조조정본부에서 마련한 평가측정 지표에 따라 하위 30%에 해당하면 퇴출 대상이었는데 푸마 사업부가 이 30%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이랜드 경영진은 푸마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사업본부장이 적자의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는데 상당히 수긍이 갔다. ‘모기업인 이랜드가 의류업체라 푸마의 라이선스권을 딴 뒤에도 옷에 치중했는데 사실 푸마는 신발이 강한 브랜드다. 그간의 의류 위주 사업구조를 바꾸어 신발을 부각하고, 핵심고객을 잡겠다’는 변화전략을 내놓았다.”(조희상 재무담당 전무·당시 구조조정본부장)

독일 푸마 본사에서도 99년 라이선스 재계약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조희상 전무는 독일로 건너가 한국의 경제상황을 설명하고 본사 관계자들을 설득해 그해 10월 일단 재계약을 했다. 그러나 큰 기대도, 마땅한 대안도 없는 상황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푸마의 위상은 본사에서도 달라졌다.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아시아 지역 미팅에서 이랜드 푸마 사업부는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한국 푸마는 본사에 “아시안 사이즈로 제품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할 만큼 발언권이 커졌다. 미국 유럽 다음으로 푸마의 큰 시장 역할을 하는 일본은 한국을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마케팅 기법을 배우겠다며 도움을 청한다.

● 처음 나온 브랜드처럼

구조조정 문턱까지 갔던 푸마 사업부의 직원들은 배수진을 쳤다. 변신을 위해 반년 동안 모두 6차례에 걸쳐 시장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은 ‘축구 제품, 오래된 중저가 브랜드, 국산인지 외제인지 정체성 모호’라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유럽 및 일본 문화에 익숙한 10대 후반의 일부 마니아들은 ‘힙합 브랜드, 품질 좋은 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푸마 사업부는 여기에 착안했다. 외제 브랜드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줄 것. 고객층을 10대 후반∼20대 초반의 핵심고객으로 제한할 것.위험한 도박이 시작됐다. 어린 시절 마라도나에 열광하며 푸마를 찾았던 30, 40대 아저씨 소비자들은 의도적으로 타깃 고객층에서 배제됐다. 헐렁한 트레이닝복 대신 몸에 꼭 붙어 평상복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패션 트레이닝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가 의류도 구매력이 있는 아저씨층이 아니라 젊은층을 타깃으로 만들었다.

“마치 지금까지 한국에 푸마가 없었던 것처럼, 독일 푸마가 새로 한국에 진출한 것처럼 전략을 짜기로 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아성인 기능성 스포츠웨어는 피하고, 틈새시장을 개발해야 했다.”(김태완 마케팅 팀장)

틈새시장은 ‘패션 스포츠 웨어’에서 잡았다. 기능성 시장을 따라잡지 못할 바에는 패션 시장을 잡자는 것. 그러다보니 패션에 민감하면서 스포츠웨어에 관심을 보이는 여성고객이 주요 타깃이 됐다. 당시 스포츠 의류의 색상은 흰색 아니면 검은색 감색 등으로 단순했다. 푸마는 티셔츠에 분홍색 노란색 베이지색 갈색 하늘색 등 일반 캐주얼 브랜드의 색상을 모두 도입했다.

2000년 5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와 명동에 새로운 컨셉트로 50∼88평 규모의 대규모 직영 매장을 열면서 변화는 본격화됐다. 2000년 김태완 마케팅 팀장은 서울 코엑스 매장에서 한 10대 커플 고객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푸마의 대표적인 축구화인 ‘푸마 킹’을 산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축구화 밑창의 스파이크가 좀 불편할 테니 걷기 편하게 갈아주겠다”고 했다. 김 팀장은 이 사소한 장면에서 한국에서 유통되지 않는 ‘아반티’를 신고 싶은 욕구를 포착했다.

‘아반티’는 독일의 유명 디자이너인 질 샌더가 푸마의 축구화인 ‘푸마 킹’을 스니커즈로 변형해 내놓은 제품. 이미 유럽,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고 2000년 초반에는 한국에서도 일부 연예인이 신기 시작했다. 푸마사업부는 곧 독일 본사에 ‘아반티’ 주문을 냈다.

2000년 10월부터 실험을 하듯 전국의 주요 매장별로 아반티를 몇십족씩 팔아보다가 2001년 3월부터는 선금 1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예약판매를 했다. 10만9000원짜리 아반티는 당초 3000족 판매가 목표였다. 그러나 가을이 되기 전까지 9000족 이상을 팔았으며 결국 재수입 주문을 냈다. 아반티의 주 소비자는 남녀 중고교생이었다. 푸마 사업부는 이 일을 계기로 10대 시장이 ‘된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 이후 푸마는 뉴캣, 로마, 네무스, 모스트로 등 스니커즈 브랜드를 잇따라 선보였다.

주요 고객층은 자연스레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20대 중반 이상이 70%, 남성 고객이 90%였지만 2000년부터 10대 후반∼20대 초반이 80%, 여성이 80%를 차지하게 됐다. 예전에는 10∼20평 규모의 노후한 매장만 23개였으나 2년6개월 동안 ‘외국풍’의 매장이 95개로 늘었으며 크기도 최대 80여평 규모로 대형화됐다.

● 행운과 행운을 넘어서는 무엇

푸마의 성공에는 행운도 따랐다. 대표적인 것이 월드컵.푸마가 제품의 상징색을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꾼 게 2000년 5월이었다.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붉은색 티셔츠가 월드컵 바람을 타고 대박을 터뜨렸다.

월드컵 스타 안정환 선수의 활약도 컸다. 안 선수는 대표선수로 발탁될 지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던 2002년 3월 푸마와 광고모델 계약을 했다. 그는 지금도 일본 프로리그에서 푸마 옷을 입고 뛰고 있다.

월드컵 한국전 때 푸마 사업부는 발빠르게 잠실 야구경기장을 빌린 뒤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표를 나눠줬다. 3, 4위전까지 7차례에 걸쳐 경기장을 빌린 데 든 돈은 7억원. 그러나 광고효과는 70억원이라는 것이 마케팅팀의 추산이다.“그동안 취약점이었던 기능성 스포츠 웨어라는 이미지와 외제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월드컵을 통해 견고해졌다. 운이 좋았다”고 김 팀장은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행운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고 직원들은 느끼고 있다. 월드컵 이후에도 매출이 순항하고 있으며, 당초 변화 경영을 총지휘했던 사업본부장이 1년 동안 투병으로 자리를 비웠는데도 사업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직원들은 일주일에 몇 차례씩 자사 매장과 경쟁 브랜드의 매장을 방문하고, 일주일에 한 차례 두세 시간의 난상토론을 벌여 소비자의 변화를 신속하게 경영에 반영한다. 영업팀 김혁 주임은 “그룹사 전체를 대상으로 고객상담실을 운영하다보니 수선을 맡겨도 오래 걸리거나 상담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아 고객의 불만이 높았다”며 “매장에서 이런 불만을 듣고는 6개월 전부터 푸마 전용 고객상담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잘 나가는’ 매장의 영업 노하우를 시스템으로 만들어 모든 매장의 영업력을 균일화하는 작업을 고민 중이다. 조 전무는 “리더 하나가 자리를 비운다고 기업역량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 바로 지식경영”이라며 “푸마는 그 성과가 나타난 대표 부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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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버버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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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마케팅으로 유명해진 버버리 코트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제작된 영화ꡐ카사블랑카ꡑ는 전 세계 영화팬들의 심금을 진하게 울렸다. 또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 ‘애수’ 역시 큰 감동을 안겨줬다. 이 영화는 몇 개의 공통점이 있다. 둘B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점, 두 연인간의 사랑을 다룬 점, 그리고 마지막의 안개 낀 곳에서의 이별 장면이 압권이라는 점 등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카사블랑카의 히로인 ‘험프리 보가트’와 애수의 ‘로버트 테일러’ 둘 다 버버리 코트를 멋지게 입고 있다는 점이다.

안개낀 장소에서 버버리 코트를 멋지게 입은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하거나 죽는 장면은 좀처럼 영화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게 마련이다. 실제로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버버리 코트는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됐다. 안개가 많이 끼는 영국에서 기후의 특성에 맞게 탄생한 버버리 코트가 영화의 마지막 슬프고도 우울한 장면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버버리 코트는 이후로도 많은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들의 남성다움과 세련된 멋을 살리면서 대히트했다. 이러한 성공은 버버리 코트를 본고장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게 만든 계기가 됐다. 버버리 코트는 스타 마케팅이 일반화되지 않은 20세기 중반에 벌써 스타들이 영화에 입고 나옴으로써 더욱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별도의 홍보수단이 없던 시절에 감동의 명화 속에서 주인공들의 의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고급스런 이미지로 각인 됐다.

이후 버버리 코트는 버버리 체크 무늬 중심의 통일된 제품디자인으로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를 확립했다. 1924년도에 트렌치 코트 라이닝용 천에 버버리 체크가 등장, 버버리 코트를 떠올리면 베이지 색의 고전적인 트렌치 코트, 체크 무늬의 머플러, 핸드백, 우산을 연상시킬 만큼 통일되고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형성됐다. 이후 오드리 헵번, 레이건 전 대통령 등 시대별 주요 명사들의 애장품으로 인기를 얻은 버버리 코트는 영국의 전통과 품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버버리의 브랜드가 유명해지면서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과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에 응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버버리 코트의 디자인 전략은 동전의 양면처럼 위험성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 이유는 한 두 가지의 디자인과 무늬가 너무 강력한 브랜드를 형성,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진부함으로 연결될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90년대에 찾아온 버버리의 위기

전 세계적으로 버버리 코트가 유행하면서 버버리도 다른 패션 회사들처럼 향수, 액세서리 등 토탈 패션을 지향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모두 그렇듯이 버버리사의 행복도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 버버리사는 몇 가지 점에서 실수를 범했다. 실수라기보다 성장의 안정 속에서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태만이 위기를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버리사가 실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디마케팅이 이뤄지지 않았다. 버버리 코트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끌면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수요가 무조건 늘어난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폭발적인 수요는 어떤 요인에 의해 급격한 수요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상품에 대한 고객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는 디마케팅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버버리사는 이를 외면했다.

디마케팅 전략이란? 자사의 상품을 많이 판매하기보다는 오히려 고객들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다. 수요를 줄인다는 점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는 기업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담배 회사의 경우,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킨다”와 같은 담배․술의 경고문구 등이 바로 디마케팅 기법에 해당한다.

이는 소비자보호나 환경보호 등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 기업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장기적으로 수요를 유지하는 데 바람직하다. 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과 거래를 끊거나 우량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은 극대화하는 전략으로도 디마케팅이 사용된다. 버버리사의 경우에도 디마케팅을 통해 적절한 고객관리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버버리사는 무조건적인 확장위주의 전략으로 일관했다가 위기를 맞았다.

둘째, 버버리사는 시대가 요구하는 상품과 트렌드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이는 버버리 사의 가장 큰 실수로 인정된다. 남보다 앞서 나가는 기업은 업종을 불문하고 더 멀리, 더 크게 생각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동기는 무엇이고 이것을 사용하면서 어떤 느낌을 가질까? 소비자의 어떤 욕구 변화 때문인가? 등등 이것이 바로 장기적인 시각에서의 소비 트렌드 파악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 소비자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유행으로 먹고사는 패션의류기업의 경우, 트렌드는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드가 마케팅에서 점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배경은 경쟁과 시장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제품간 경쟁이 단순한 성능과 가격경쟁보다는 가치간, 요구간 경쟁이라는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버리사는 이러한 사회변화의 흐름에 둔감하게 반응, 트렌드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입셍로랑이나 피에르 가르뎅과 같은 세계적 패션기업들도 버버리사와 마찬가지로 패션 트렌드로 인해 큰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이외에도 버버리의 강력한 체크무늬 연상이 오히려 전 세계에 수많은 복제품을 양산한 원인이 됐다. 버버리사의 복제품에 대한 관리 역시 소홀했다. 또 수요가 증가하면서 무차별적으로 유통망을 확장한 점도 버버리사의 실패의 요인이 됐다. 버버리사는 너무 많은 소규모 상점들에 판매를 허용, 매장 주변의 환경에 대한 일괄적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고급 매장의 경우, 버버리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일도 생겼다. 이는 모두 버버리의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버버리사는 변화 없는 디자인과 한정된 제품군으로 소비자들의 외면과 이탈을 자초했다.

새로운 CEO의 영입과 혁신 전략

전 세계 우량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위기에 처한 기업이 새로운 경영자를 맞이하면서 재기에 성공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GE의 잭웰치,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 HP의 칼리 피오리나 등이 바로 그런 CEO들이다. 버버리사 역시 안일한 경영으로 위기에 처하자 새 CEO를 영입,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펼쳤다. 그가 바로 ‘로즈마리 브라보(Rosemary Bravo)’ 現 회장이다.

98년 중반에 새로 영입된 로즈마리 브라보는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미국내 최고 리테일러 4인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ꡐ2003년 세계 최고의 경영자‘ 17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그녀는 ’신선하면서도 전통성을 살린 디자인‘으로 버버리의 재도약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로즈마리 회장은 과감한 인사 개편과 강력한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으로 버버리를 제2의 전성기로 이끌었다. 그녀는 먼저 과거의 성장위주 전략에만 집착하는 임원들에 먼저 메스를 가했다. 그리고 그녀는 업계 최고의 재무, 마케팅, 전략 담당 전문가들을 영입, 경영전략의 새 틀을 마련했다. 또 그녀는 단조로운 버버리 코트 위주의 제품구색을 탈피, 새로운 제품 분야를 개척하는 데 신경을 썼다.

특히, 그녀는 소비자들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버버리 코트의 브랜드 가치를 살리기 위해 과감한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을 구사했다. 사람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발전의 노력 없이 살면 젊은 시절의 활기와 비전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결국 이로 인해 그는 사회에서 도태하게 된다.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의 과정을 밟게 된다. 늘 새롭게 변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는 브랜드 역시 시간의 흐름과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노화하게 마련이며 마지막에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소비자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해 가는 시장 등의 경영환경 속에서 브랜드는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 버버리사는 이러한 노력의 부재 속에 과거의 화려한 브랜드 명성을 점차로 잃고 있었다. 로즈마리 회장은 이를 탈피하기 위해 강력한 브랜드 혁신전략을 추진했다. 그것이 바로 ‘브랜드 리포지셔닝(Brand Repositioning)' 전략이다.

브랜드 리포지셔닝은 기존 제품의 판매가 정체, 하락, 매출이 떨어지는 이유를 분석,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다시 포지셔닝시키는 전략이다.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의 실행은 다음과 같은 때에 필요하다.

첫째, 현재의 브랜드 포지셔닝이 경쟁 브랜드나 트렌드 변화에 의해 경쟁력을 상실했을 경우가 해당된다.

둘째, 해당시장의 규모나 수익성이 낮아 신규시장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이다.

셋째, 내부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있어 내부 타브랜드와 카니발리즘이 발생하고 있을 경우 검토될 수 있는 전략이다.

로즈마리 회장이 취임한 이후 버버리사가 펼친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은 먼저, 버버리의 핵심 브랜드 속성을 달라진 시장 환경에 적합하도록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버버리는 중장년층을 위한 브랜드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모든 세대에 적합한 패밀리 브랜드 이미지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다음으로 품질․스타일이 가지는 전통과 명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실험적 요소들을 조화시키는 감각적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을 구사했다.

제품에 대한 혁신은 디자인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로즈마리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질 샌더’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니체티 (Robert Menichetti)'를 영입, 디자인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후 버버리의 레인코트를 비롯한 여러 전통적인 제품들이 새롭게 디자인됐다. 이에 따라 버버리사는 제품라인을 다양하게 확장, 젊은 층 취향의 연분홍, 연하늘 등 좀 더 밝고 가벼운 색깔의 버버리 체크 무늬를 사용했다.

버버리사의 혁신전략은 광고 전략마저 바꿔놓았다. 이 회사는 브랜드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유명 패션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Mario Testino)', 모델 ’스텔라 테넌트(Stella Tennant)'를 기용, 버버리의 낡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또 버버리사는 원활한 유통 전략을 위해 세계 각국의 주요 명품거리에 매장을 오픈, 기존의 매장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대대적 유통망 개편을 실시했다. 도매 유통망은 브랜드와 관련성이 높은 곳만을 선정하고 라이센싱의 경우, 상당부분을 철수시켰다.

이러한 버버리사의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결실을 맺게 됐다. 버버리사는 효과적인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통해 고가의 명품시장과는 다른 매스티지 럭셔리를 지향, 차별화 된 소비자층을 확보해나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악세사리의 확장과 젊어진 디자인이 이제 버버리 코트의 디자인으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버리는 과거의 실용성과 편안함, 영국적 우아함이라는 기본 틀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이는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을 성공할 수 있게 만든 토대가 됐다. 이 모든 것은 새로 영입된 CEO 로즈마리 회장의 결단력과 주도적 개혁에서 나온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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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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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휘센의 브랜드전략 (성공사례 분석)

1. 프롤로그

휘센은 새천년을 맞은 2000년 1월18일 LG전자의 에어컨 브랜드명으로 공식 선포됐다. 휘센은 3면 '입체냉각방식' 적용, 다양한 모델 개발 등 기술과 디자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제품이었다. 따라서 단지 '시원함'만이 강조되던 기존의 에어컨 기능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킨 '고품격 인테리어 가전'임을 앞세워 치열한 가격경쟁이 펼쳐지던 에어컨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세계 에어컨 시장은 9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수요의 25%(700만대)를 차지했던 일본내 수요에 힘입어 일본 업체들이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였으나,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판매를 확대해 온 LG전자가 2000년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선 이래 5년 연속 이 부문 1위를 지키게 된 것이다

휘센의 사례는 브랜드 경영 전략 관점에서 만도의 딤채와 함께 가전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휘센의 리뉴얼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휘센의 탄생 이후 LG전자가 어떻게 브랜드관리를 했는가를 살펴보고, 휘센의 성공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휘센의 역사

2.1. 휘센의 탄생 배경 및 시장 상황

2.1.1. 경쟁 브랜드

당시 에어컨 시장은 국내에서는 LG/삼성/만도/캐리어/대우/범양/세기/두원/나나냉열/진사전자등의 10여개 이상의 업체가 난립한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만도/LG/삼성/ /캐리어 정도가 수위권을 형성하였다.

'만도 위니아'는 휘센보다 훨씬 앞서 1994년 선보인 브랜드이다. 당시 국내 시장은 대형 종합가전업체들이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펼친 결과, 첫해에 업계 3위라는 성과를거두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런 성과는 제품의 개발에서부터 애프터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문 공조기업으로서의 기술력을 앞세워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어온 결과였다.그후 위니아는 안정적인 브랜드 자산을 형성하여 능률 협회 선정 k-bpi 에어컨 부분 1위를 거듭 수성한 데서 볼 수 있듯 에어컨 부분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구축했다.

'삼성 블루윈'은 국내 제일의 기업 신뢰도에 기반을 둔 강점이 있었으나 위니아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져서 브랜드 파워에서 'LG 바이오'와 함께 2위권을 형성하였다. 또한 캐리어는 100년의 전통과 세계 180여 개국에 진출한 세계성 등을 부각하였다. 이처럼 오직 냉동·공조 시스템 분야에만 100년동안 집중해왔고, 세계적인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캐리어 브랜드는 세계 냉동·공조 분야의 대명사로서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삼성과 LG 대기업에 밀렸고 세계적으로도 90년대 이후엔 일본 업체들에 밀려서 브랜드 집중도가 쇠퇴하는 실정이었다.

2.1.2. Customer Diagnosis

LG가 만든 에어컨 휘센도 처음부터 선두를 달린 건 아니다. 냉동 공조 전문성을 강조한 만도의 위니아에 한참 뒤처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비자들은 LG라는 회사에 대한 신뢰는 있지만, 'LG 바이오에어컨'이라는 브랜드에 대하여 전문성을 인지하지는 못한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 김치냉장고 시장에서 만도의 딤채가 LG와 삼성 등의 대기업들을 따돌리거나, 쿠쿠가 가정용 밥솥 시장에서 더욱 인정을 받는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한국의 소비자들도 90년 후반부터 브랜드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1.3.내부 분석

LG전자의 브랜드 전략은 각기 다른 브랜드를 채택하는 '개별(individual)' 브랜드 전략을 통해 집중화, 전문화를 이루려 한다.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1상품 1브랜드'주의다. 전 제품에 대한 '최고 브랜드 전략'을 세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브랜드전략은 최근 더욱 강화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LG는 그룹차원에서 체계적인 브랜드관리를 시작하였으며 특히, 가전 부문에서는 각 주요 품목에 대하여 개별브랜드 전략을 강화함으로써 향후, 개별 품목(예: 디지털 TV, 노트북 PC, 에어컨 등)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강조하려는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개별 브랜드전략의 선두주자는 휘센 에어컨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2. 휘센의 브랜드 전략

2.2.1. 휘센의 Brand Concept

휘센의 브랜드 컨셉은 '고품격 인테리어 가전'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매출의 수위를 유지하면서 ‘세계성’을 기반으로 대중 시장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설정

휘센은 신기술 확보를 통한 프리미엄 상품을 개발하여 고품격 인테리어 가전을 표방하고 있다. 더불어 LG전자의 디지털 리더를 지표로 하는 비젼에 맞추어 디지털 리더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환경안전 비젼에 맞추어 환경을 강조하였으며, PI 중심 사상에 맞추어 세련되고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이미지 강화를 위한 노력을 하였다. 즉 휘센은 세계에 휘센의 바람이 불도록 하겠다는 목표아래 환경친화적, 디자인 중심, 성능과 기술력 선두, 디지털 리더라는 가치 전달을 위해 노력하였다.

2.2.2.브랜드 커뮤니케이션

Brand Elements

브랜드 네임 : 휘센

휘센(Whisen)은 회오리바람(Whirlwind) 을 전달한다(Sender)는 뜻으로 브랜드 자체에서 시원함을 느낄 정도로 브랜드명의 수작으로 꼽힌다. LG전자는 지난 200년초 신개념 3면 입체냉방 방식의 에어컨을 출시하면서 어떤 이름을 붙일지 고심했다. 신개념 고급 에어컨 이미지에 걸맞은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했다. 검토 결과 여러 후보작 가운데 소용돌이를 뜻하는 'Whirl'과 바람을 보내 준다는 의미의 'Sender'의 합성조어인 휘센이 최종작으로 뽑혔다. 휘센은 우리 말로도 '휘몰아 치는 센바람'의 줄임말로써 강력한 어감을 불러왔다.

로고, 심볼: 부드러운 이미지의 visual로 형상화 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슬로건: 세계를 휩쓴 휘센입니다.

슬로건 에서 휩쓴과 휘센이어감상 절묘하게 반복되면서 강한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음성학적인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또한 세계성을 강조하여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징글: 휘~센 조용한 여성의 목소리

징글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패키지: 제품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포장을 의미한다.

패키지는 구매가 일어나는 접점의 순간에 소비자에게 심미적인 측면에서 임팩트를 줄 수 있다. 휘센은 기본적으로 '고품격 인테리어 가전'이라는 브랜드 컨셉에 맞추어 꾸준히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특히 인테리어 측면을 극대화한 액자형 에어컨은 경쟁 브랜드들과는 차별화된 패키지 디자인으로 히트를 쳤다.

캐릭터: 펭귄을 형상화한 "휘니(WHINI)"란 캐릭터

휘센의 캐릭터는 2004년도에 개발 되었다.그래서 아직 모든 제품에 상용화 하지 않고 휘센 캐릭터 에어컨에 탑재돼 출품되고 있다.에어컨에 탑재된 4인치 TFT-LCD에 휘니가 등장해 풍량 공기청정 간편예약 절전 등 9가지 동작 상태를 재미있고 알기쉽게 안내한다. 휘센 캐릭터 에어컨은 사람과 가전기기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에어컨에 처음으로 감성 디스플레이 기술을 채용한 제품으로, 아바타에 익숙한 신세대들을 겨냥한 것이다.

IMC 전략(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광고

2000년 타 에어컨 광고들은 에어컨을 쐬는 장면을 보여 주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휘센은 에어컨 본연의 역할인 시원함을 보여 주는 데에 충실하고 있다. 이번 CF는 단순히 휘센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휘센을 통해 세계가 시원해 졌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휘센의 TV 광고를 통해 포지셔닝 전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처음엔 제품에 맞쳐 포지셔닝하지 않고 세련된 이미지와 시원한 이미지에 포지셔닝하고, 그 후에 실외기 하나로 두대를 쓴다는 사용상황과 배용준과 아이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족간의 사랑을 담은 감성적인 이미지에 포지셔닝, 현재는 5년 연속 세계1위라는 문구를 보여줌으로써 Quality와 제품의 기능에 의한 속성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홍보 / 이벤트

다양한 형태의 프로모션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LG전자 로드쇼의 새로운 전범(典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 '휘센 로드쇼'. 또한 O.L을 통한 구전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한 '휘센 나들이',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낸 '휘센 눈꽃축제', 신제품 발표회의 전형을 만든 '신제품 발표회' 등도 그에 버금가는 성공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3. 휘센의 브랜드 성공 원인

휘센은 2005년 현재 내수 1위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정용 에어컨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랐다. 또한 한국생산성본부의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 능률협회의 브랜드파워 등 국내의 권위적인 브랜드 경쟁력 지수 조사에서도 수년 간 1위를 차지하며 그 브랜드의 강력함을 인정받고 있다. 비단 매출 뿐만 아니라 강력한 브랜드경쟁력이 높은 성과임을 인정받는 것은 단순한 지수 1위로서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즉, 브랜드경쟁력은 철저하게 소비자의 인지구조 상에 자리매김되는 무형자산이기에 그 브랜드경쟁력은 쉽사리 변경되지 않는다. 특히 에어컨과 같은 내구재의 경우 그러한 현상은 더욱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휘센의 역사와 마케팅전략을 통하여 휘센의 성공원인을 정리하여 그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3.1. 세계 각 지역에 대한 공통화와 차별화의 조화

김쌍수 부회장(58)은 사업구조조정에 의한 선택과 집중, 과감한 수출 드라이브 전략으로 가정용 에어컨부문 세계1위를 달성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90년대초 90%에 달할 정도로 내수 비중이 컸던 점을 개선, 세계시장으로의 진출을 활발히 했다. 특히 10대 전략 국가를 선정해 현지에 적합한 히트상품을개발, 공급, 현재는해외 매출비중이 80%에 이르렀다.

김쌍수 부회장은 "2000년 초 LG에어컨의 새브랜드로'휘센'을 선정, 발표한 이래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 가정용에어컨 세계1위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면서 해당국가의 날씨, 가옥구조, 에어컨 설치 및 사용현황, 시장 경쟁현황 등을 세밀히 분석해 그 지역에 맞는 현지형 제품으로 세계 시장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LG의 에어컨 휘센은 국내 에어컨 시장의 포화를 예감하여 해외시장 진출로 일찍이 눈을 돌려서 세계 각 지역을 차별화한 마케팅 전략을 적용하였다.

먼저, 국내에서는 가전시장에서 프리미엄 시장이 성장하는 사회적 트렌드에 맞춰서 고품격 가전으로 포지셔닝한 것이 주효했다. LG전자는 소비자 및 시장 환경 조사를 통해 중국의 저가 공세가 심한 미주는 터보팬 등의 신기술로 대응하고, 외국 브랜드 제품에 대한 텃세가 심한 중동지역에서는 현지 유통 경쟁력을 확대하는 고객 밀착 마케팅을 펼쳐 사우디 등 11개 국가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경제 파탄에 처한 남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현지 업체들과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유지해 고정거래처를 얻었다.

내수 침체로 인해 수출비중이 70%를 넘는 국내 가전업체들은 지역특화 제품을 내세워 해외 시장을 공략한다. 제품 컨셉트 단계부터 해당지역의 특성을 감안하는 것은 이제는 기본이 됐다. 외관 디자인은 아예 현지에 맡기는 것이 대부분인 추세이다. 휘센도 내수 제품과는 사뭇 다르지만 이같은 지역특화 제품을 통해 해당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에어컨 시장은 330만대 규모(시스템에어컨 60만대 포함)로 전세계 수요 중 약 7%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 30여 개국에서 에어컨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휘센은 중동, 아프리카 환경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하여 성공하였다. 50℃ 이상의 실외 온도에서도 정상 작동이 가능한 트로피칼(Tropical) 에어컨과 사막의 모래 폭풍에도 견딜 수 있는 골드 핀(Gold Fin)' 에어컨, 모래먼지가 많은 지역특성을 감안해 플라즈마(Plasma) 공기 정화 기능을 세계최초로 시스템 에어컨에 적용한 플라즈마 덕트형 에어컨 등이 그것이다.

또한 중동과 아프리카의 경우 높은 기온이 연중 이어져 에어컨 시장규모가 크고, 그중에서도 공동생활을 하는 회교권 문화 특성상 전체수요 중 대형이나 시스템 에어컨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특화모델로 시장을 공략하여 성공하였다. 현지 환경에 꼭 맞는 제품들을 계속 개발해 중동 아프리카의 기후적 악조건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특히 LG전자가 자체 개발한 플라즈마 공기정화 시스템이 채용된 스탠드형 에어컨이 사스확산과 황사철을 맞아 주목을 받았다.

LG전자가 이처럼 에어컨 부문에서 확고히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상품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해당 국가의 날씨나 가옥구조·에어컨 설치·사용현황 등을 면밀히 분석, 현지 적합형 상품으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3.2.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 개발

지난 2000년 LG브랜드를 휘센으로 변경, 브랜드 파워를 강화한 LG 전자는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매년 정기적인 고객니즈 조사는 물론이고 인터넷 조사, 신제품반응조사, 해외 데이터베이스 검색 등 각종 조사를 통해 고객의 소리를 듣고 이를 최대한 제품개발에 반영한 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

또한 꾸준한 기술개발로 매년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판매 후에도 고객 만족도 조사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마케팅 및 상품전략을 점검하고 차기 제품개발에 활용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인터넷으로 제품을 제어 할 수 있는 '인터넷 에어컨', 벽걸이형에 국내최초 3D입체 냉방을 적용하고 인테리어 개념을 도입한 'LG 액자형 에어컨 시리즈', TPS (Twin Power cooling System)장착으로 월간 전기료를 최대 65%까지 절감 할 수 있는 '초절전 에어컨' , 실외기 하나로 거실과 안방을 시원하게 해주는 ' 2in1 (투인원)에어컨' 등을 출시해 에어컨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여기에 인테리어와도 어울리는 깔끔한 디자인이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였다.

최근의 웰빙 트렌드에 맞춰 신제품에는 공기청정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2in1 플러스’는 액자형 공기청정기와 스탠드형 에어컨을 무선으로 연결해 집안 전체의 공기를 순환시켜 항상 쾌적성을 유지시켜준다. 스탠드형 에어컨의 경우 플라스마 클린 시스템과 나노헤파 클린 시스템을 적용해 냄새와 알레르기 원인물질 제거는 물론, 은나노필터를 적용해 살균 기능도 탁월하다. 이와 같이 제품 및 기술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이에 부합하는 제품을 개발하였던 점이 바로 성공요인으로 작용하였다.

3.3. 디자인 중심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

세계 디지털가전의 명품이 되려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성능은 기본이고 글로벌 마케팅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명품의 반열을 결정짓는 요소가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2003년도 에어컨 수요가 급격히 하락한 상황에서도 휘센의 액자형 에어컨이 인테리어 기능을 첨가시켜서 출시 첫해에만 3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히트를 하게 된 사례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실례이다.

3.3.1 LG 전자 내에서의 디자인 부문의 위상

LG전자 김철호 디자인경영센터 소장(부사장)은 "예전에는 LG전자에서 디자인 부문지위는 낮았고 디자인 그 자체가 소모품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 부문이나 영업 부문에서도 우리와 함께 일하려는 분위기가 보이고 있다"며 디자인 부서의 달라진 분위기를 전한다.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하는 DCR(Design Creative Report) 활동은 디자인이 제품 개발을 리드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LG전자는 산업디자인의 개념을 도입, 1983년 디자인종합연구소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디자인 경영에 착수했으며, 1991년 업계 최초로 디자이너 출신을 디자인연구소장으로 임명하며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 왔다.

1999년 '디지털 LG'를 선포하면서 LG전자는 디자인을 4대 핵심역량 중 하나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차별성이 강한 `디자인 중심의 디자이너 상품개발`은 우연히 이루어진게 아니다. 최고경영자의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 인식과 이를 경영의 핵심가치의 하나로 적용하고자하는 확고한 의지가 밑바탕이 됐다. 구자홍 회장은 국내 기업의 CEO로는 드물게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인 `뉴 밀레니움 과정'을 수료하며 디자인 코리아에 앞장서왔다.

디자인 부문은 마케팅, 테크놀로지, 네트워킹과 함께 LG전자 경영의 핵심역량으로 자리잡고 있다.LG 전자의 디자인 조직 구성은 그림에 보듯 디자인 경영센터를 중심을 이루어진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근무 인력은 380여명. 제품별 전문화를 위해 디스플레이, 생활가전, 정보통신 제품별 디자인 연구소를 별도로 두고 있다.휘센은 DA연구소에서 제품 디자인이 이루어 진다.

LG 전자는 1983년 설립한 디자인연구소를 최근 디자인경영센터로 바꾸고, 디자인경영센터를 단순히 디자인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의 문화현상을 연구하고 고객행동조사를 통해 새상품의 개념을 제안하는 경영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4. 결론

지금까지 휘센의 주요 활동과 그 성공원인을 살펴 보았다. 휘센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 글에서 열거된 성공원인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디자인 중심의 제품 활동이나 대규모 광고, 현지화는 어떠한 제품이나, 기업도 실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활동의 기준을 회사나 제품이 아닌 브랜드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모두에서도 밝힌 것처럼 휘센은 단순하게 브랜드 네이밍 차원이 아니다. 기존의 한국 가전시장에서 삼성과 LG(예전에는 금성의 회사 브랜드)라는 회사 위주의 패밀리 전략 게임에서 탈피하여 개별 브랜드 전략을 취함으로써 소비자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이를 통하여 세부 제품에서의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휘센은 강력한 브랜드경쟁력을 갖추어 나갈 수 있었으며 이는 세계화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도 가전시장뿐 아니라 한국시장에서는 많은 산업에서 브랜드경영의 전략은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러한 전문적인 브랜드는 대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중소기업에게 더욱 적절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오랫동안 삼성에 길들여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리버의 소프트하고 심플한 이미지를 선호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