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생애 시간표 - yesunim saeng-ae sigan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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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학처 댓글 0건 조회 800회 작성일 20-06-13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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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서로 재구성한 예수님의 33년 생애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사생애 30년과 공생애 3년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를 시간 순서로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 복음서 저자들은 주제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묶어서 기록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4복음서를 읽으면서도 예수님의 생애를 시간 순서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참평안’은 2016년 사순절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시간 순서로 좇아가 보는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던 33년은 7번의 예루살렘 방문을 중심으로 나눠볼 수 있다. 모든 사건을 완벽하게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다만 7번 예루살렘 방문을 중심으로 주요 사건들의 시기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 사건의 시기와 흐름을 파악한다면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차 예루살렘 방문

주전 4년, 태어나신 지 40일 만에 결례를 받으시기 위해(눅 2:22)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 대왕의 죽음을 주전 4년 유월절 직전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은 헤롯 대왕 죽음 얼마 전의 일이다(마 2장). 당시 유대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으로 주전 8년부터 시작된 인구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1) 당시 인구 조사 방식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호적을 받는 로마 방식과 자신의 지파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받는 유대 방식 두 가지가 있었는데, 예수님 출생 무렵에는 유대 방식으로 호적을 실행했기에 요셉과 아기 예수를 임신 중인 마리아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 했다(눅 2:3-5).

이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 출생의 기쁨과 목동들의 경배, 동방박사들의 경배도 잠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헤롯의 유아 살해 명령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할 것을 명령하셨다(마 2:12-15).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는 120km 거리로, 산모의 걸음을 생각하면 약 10-15일 거리에 해당한다. 아기 예수님 가정이 애굽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레 헤롯이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현몽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말씀하셨다(마 2:19). 이 모든 일은 단 40일 만에 이루어졌으며, 예수님께서는 40일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레위기 12:1-8에 기록된 출산 규례를 행하실 수 있었다(눅 2:22-24). 결례를 마치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를 만나셨고,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알아보고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예언했다(눅 2:25-38).

2차 예루살렘 방문

예수님 12세 되던 해 유월절(눅 2:42)

예수님께서는 12세 되셨을 때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다(눅 2:41-42). 육신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 절기를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갔지만, 예수님은 ‘아버지 집’, 성전에 남아서 랍비들과 대화하셨다(눅 2:43-50). 누가복음 2:52의 아기 예수님께서 ‘지혜와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장하시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셨음을 보여준다. 그 말씀과 같이, 갈릴리로 돌아온 이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사생애(私生涯) 동안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하던 목수 일을 하시면서(마 13:55, 막 6:3), 십계명의 제 5계명, 부모 공경의 명령대로 육신의 부모에게 효도를 행하시며 순종하고 받드셨다(눅 2:51).

3차 예루살렘 방문

공생애 시작 후 첫 입성, 성전 정화(요 2:13-22).

예수님은 서른 살이 되실 때 사역을 시작하셨다(눅 3:23).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으며(마 3:13-17, 막 1:9-11, 눅 3:21-22),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고 시험을 받으셨다(마 4:1-11, 막 1:12-13, 눅 4:1-13). 그 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요단 동편의 베다니 :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가 살던 예루살렘 인근 베다니와는 다른 곳)로 돌아가셔서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를 만나 하루 함께 거하며 말씀을 가르치시고 제자를 삼으셨다(요 1:19-40).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를 전도하고, 예수님을 만나 전도받은 빌립은 나다나엘을 전도했다(요 1:40-51). 이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돌아가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첫 번째 이적을 보이셨다(요 2:1-11). 갈릴리 지역 회당들을 순회하면서 말씀을 선포하던 예수님께서는(눅 4:14-15),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표에 따라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셨다(눅 4:16-30). 정확한 날짜에 희년을 선포하셨다면 이 날은 아마도 유대력 7월 10일이었을 것이다(레 25:9-11).

이후 유월절 가까이에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시작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신다. 장사하는 집으로 타락한 성전을 정화(淨化)하시고 이 성전을 헐어버리면 3일 만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다(요 2:13-25). 이는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한 성전이 완성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성전 청결을 마친 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니고데모를 만나 거듭남에 대해서 가르치셨으며(요 3:1-21), 유대 땅에서 제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셨다(요 3:22, 4:1-2). 당시 세례 요한은 살렘 가까운 애논 땅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는데, 그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로 가는 모습을 보며 중매자의 기쁨을 고백했다(요 3:23-36).

그런데 이 시점에 상황이 급변한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할 세례 요한이 헤롯의 부도덕함을 지적하다가 투옥되고 만 것이다(마 14:3, 막 6:17-18, 눅 3:19-20). 이에 예수님께서는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물러가셨다(마 4:12, 막 1:14).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 땅에서 갈릴리에 가려면 부정하다고 생각한 사마리아를 피해서 요단강을 건너 베레아 지방으로 우회했지만 예수님은 수가 성의 한 여인을 전도하시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거리낌 없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셨다(요 4:5-42).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라는 말씀을 볼 때, 이때는 보리가 익기 전인 유대력 9월에 해당했을 것이다(요 4:35).

사마리아를 지나 갈릴리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행하신 이적은 가나에 사는 왕의 신하의 죽어가는 아들을 말씀 한 마디로 고치신 것이었다(요 4:43-54). 이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을 본부 삼아 갈릴리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안식일마다 가르치시고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다(마 4:13-17, 막 1:14-15, 눅 4:31-32).그리고 갈릴리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다(마 4:18-22, 막 1:16-20, 눅 5:1-11).2)

4차 예루살렘 방문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다(요 5:1-9)

요한복음 5:1-9에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 ‘유대인의 명절’은 요한복음 6:4에서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라는 말씀을 볼 때, 유월절 바로 전 절기인 부림절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때는 유대력으로 12월경이다. 예수님께서 부림절 전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날은 안식일이었는데,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시작했다(요 5:16).

이후 예수님께서는 다시 갈릴리로 올라가셔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다(마 9:9-13, 10:24, 막 2:13-17, 3:13-19, 눅 5:27-32, 6:12-19). 그리고 안식일에 일하심으로 안식일의 주인되심을 나타내시고(마 12:1-13, 막 2:23-28, 3:1-5, 눅 6:1-10) 병자들을 치유하시다가, 한 산에 오르셔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팔복(八福)을 선포하셨다(마 5-7장). 그 뒤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셔서 종을 고치셨으며(마 8:1, 5-15, 막 3:20-21, 눅 7:110),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다(눅 7:11-17). 또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다양한 비유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시며 갈릴리의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셨지만(마 13:1-52, 막 4:1-34, 눅 8:4-18), 정작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인기를 시기했고 모친과 형제들은 예수님이 미쳤다며 배척했다(마 12:46-50, 막 3:21, 31-35). 실로 예수님께는 머리 두실 곳조차 없었다(마 8:19-20).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버나움 지방에서 거라사(가다라) 지역으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 배를 타고 이동하다 큰 풍랑을 만났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폭풍을 잠잠케 하심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되심을 분명히 보이셨다(마 8:18, 23-27, 막 4:35-41, 눅 8:22-25). 그리고 거라사 지방에서 군대 귀신을 쫓아내시고(마 8:28-34, 막 5:1-20, 눅 8:26-39) 다시 가버나움으로 친히 찾아가셔서 혈루병 걸린 여인을 치료하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마 9:18-26, 막 5:21-43, 눅 8:40-56).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을 때, 나사렛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아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며 예수님을 배척했다(마 13:54-58, 막 6:1-6). 이후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둘씩 곳곳으로 파송하신다(마 10:1, 5-42, 11:1, 막 6:7-13, 눅 9:1-6).

이 시기에 옥에 갇혀 있었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메시아로 소개했던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었다(마 11:1-2, 눅 7:18-28).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실족을 안타까워하시며 그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로 비유하셨다(마 11:7). 세례 요한은 결국 엘리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헤로디아의 궤계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마 14:3-12, 막 6:21-29)

세례 요한의 죽음을 들으신 예수님은 침통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벳새다의 빈 들로 향하셨다(마 14:13, 막 6:32, 눅 9:10, 요 6:1). 요한복음 6장 4절을 볼 때, 이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빈들에 모여있는 큰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하여 남자만 오천이나 되는 큰 무리를 배불리 먹이셨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4). 몰려든 무리가 예수님을 영적 양식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닌, 단순히 식량을 배부르게 주시는 분으로 오해할 것을 우려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게네사렛 땅으로 가도록 하시고 홀로 산에 올라가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다(마 14:22, 막 6:45-46, 요 6:15). 밤중에 풍랑을 만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가 그들을 구원하시고 믿음 없음을 꾸중하신 뒤, 게네사렛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말씀을 전하셨다(마 14:23-36, 막 6:47-56, 요 6:16-21). 이때 종교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게네세렛까지 올라와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트집을 잡았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유전으로 폐하는 그들을 책망하셨다(마 15:1-20, 막 7:1-23).

오병이어 사건을 목도했던 무리는 배를 타고 예수님을 쫓아왔다. 그들은 게네사렛 인근을 찾다가 결국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보이는 떡을 먹기 위해서였다(요 6:2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버나움에서 보이는 떡이 아닌 생명의 떡으로 오신 자신에 대해서 가르치셨지만, 수많은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고 하면서 다 예수의 곁을 떠나버리고 열두 제자만이 남았다(요 6:22-71).

이후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올라가셔서 이방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 그녀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귀신들린 딸을 치유하신다(마 15:21-28, 막 7:24-30). 이를 시작으로 이방 지역과 갈릴리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을 전도하시다가 데가볼리에서 칠병이어로 이방인 사천 명을 먹이시고(마 15:32-39, 막 8:1-10), 막달라 지방에서 ‘요나의 표적’에 대한 가르침과 건너편 벳새다에서 ‘종교지도자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마 16:1-12, 막 8:11-21). 이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으며, 예수님은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셨다(마 16:13-20, 막 8:27-30, 눅 9:18-21). 그리고 이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마 16:21-28, 막 8:31-38, 눅 9:22-27).

약 팔일 후(눅 9:28),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시기 위해 변화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중에,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일에 대해서 논의하셨다(마 17:1-21, 막 9:2-29, 눅 9:28-43). 다음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다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해서 예고하셨으며(마 17:22-23, 막 9:30-32, 눅 9:44-45), 조용히 가버나움을 지나가면서 통행료 반 세겔을 내시고(마 17:24-27)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믿음이 없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도 못했고(막 9:14-29, 눅 9:38-43) 길 위에서 계속 누가 크냐며 쟁론을 벌였던(마 18:1-22, 막 9:33-50, 눅 9:44-62) 철부지들이었다.

5차 예루살렘 방문

초막절(요 7:1-10)

예수님께서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셨던 것은 유대 지역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종교 지도자들이 칼을 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요 7:1). 그런데 예수님의 형제들은 도리어 예수님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면서 유대로 가라고 종용했다. 이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미쳤다고 생각하여 빨리 잡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요 7:5, 참고-막 3:21). 예수님께서는 비통한 마음 가운데, 형제들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서 초막절에 맞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요 7:10). 이는 고난주간 약 6개월 전으로, 승천하실 때를 맞추시기 위함이었다(눅 9:51).

이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지나가기를 원하셨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간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통행을 거부했다(눅 9:52-53). 길 가실 때 찾아온 한 서기관은 의로운 척 “어디로 가시든 나는 좇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속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인자에겐 머리 둘 곳이 없다”며 한탄하셨다(눅 9:5758, 참고-마 8:19-20).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 70명의 전도특공대를 세우시고 그들을 앞세워 보내셨다(눅 10:1-16). 이들은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증거하며 귀신들을 쫓아냈다. 이들이 기뻐 보고할 때, 예수님의 눈은 사단의 총 두목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계셨다(눅 10:17-18). 사단이 땅으로 떨어진 뒤, 더욱 극심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 베다니를 지나가실 때, 처음으로 마리아의 집에 거하시며 마리아와 마르다의 봉사를 받으셨을 것이다(눅 10:38-42).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오시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예수님이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무리를 미혹하는 자인지에 대해서 논쟁이 뜨거운 상태였기 때문이다(요 7:12, 43). 예수님께서는 장막절 중간이 되어 성전에서 가르침을 시작하셨다(요 7:11-36). 이후 장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들은 무리들의 혹자는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참 선지자라, 또 다른 혹자는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올 수 있겠냐며 논쟁했다(요 7:37-53).

이러한 와중에도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시고 백성들을 가르치시며(요 8:1-2),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요 8:3-11). 그리고 성전에서 유대인들을 가르치시며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나(요 8:57-58), 유대인들은 그 말씀에 격분하여 돌로 예수님을 치려고 했다(요 8:59). 이들에게 쫓겨 나가시는 긴급한 와중에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이를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으로 고쳐주셨고, 이 소경의 증거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메시아인지, 귀신의 힘을 입은 것인지 논란을 만들었다(요 9:1-41, 10:1-21).

6차 예루살렘 방문

수전절(요 10:22) 

겨울이 되어 수전절(修殿節)이 되었다. 수전절은 유대력 9월 25일부터 8일간으로, 고난주간 약 4개월 전이다. 솔로몬 행각에 다니시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찾아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밝히 드러내라고 종용하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밝혀주셨다(요 10:22-30). 그러나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다시 돌로 치려 했고(요 10:31-39), 이 사건 이후 종교지도자들은 공개수배령을 내려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했다(참고-요 11:57). 당시 교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도리어 바리새인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밀고하기까지 했다(참고-요 11:46). 이에 예수님은 요단을 건너 베레아 지방으로 물러나셨다(요 10:40-42).

예수님께서는 베레아 지역에서 3개월 가량을 머무셨다. 이 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눅 11:1-4), 주로 비유를 통해 서 천국에 대한 말씀들을 집중적으로 선포하셨다(눅 11:5-16:31).

겨울 무렵,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이틀 뒤 나사로를 찾아가신다. 베다니가 위치한 유대 지역은 예수님을 이단이라며 돌로 쳐 죽이려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요 11: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기꺼이 베다니로 향하셨고, “나사로야 나오라”말씀 한 마디로 나사로를 살리셨다(요 11:1-44).

이 사건은 유대 지역 종교지도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소식으로 인해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날로 늘어간 것이다(참고-요 12:9-11). 이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했으며 (요 11:47-53),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피해 약 5km 떨어진 에브라임 광야로 피하셨다(요 11:54-55).

에브라임 광야로 피하시는 긴급한 와중에도 예수님께서는 전도하시기를 쉬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를 빙 돌아 경유하시면서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눅 17:12-19) 하나님 나라와 재림에 대해 가르치시며(눅 17:20-37), 기도의 자세(눅 18:1-14)와 율법의 참 의미(마 19:3-12, 16-30, 막 10:2-12, 17-31, 눅 18:18-30) 등을 말씀하셨다. 이 시기를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최후 순회전도라고 표현한다. 유대력 12월경,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어 세상적인 정권을 차지할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마 20:17-28, 막 10:32-45, 눅 18:31-34).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여리고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소경 바디매오를 고쳐주시고(마 20:29-34, 막 10:46-52, 눅 18:35-43),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며 그를 구원하시고 열 므나의 비유를 가르치셨다(눅 19:1-28). 그리고 마침내 주전 29년 유월절 엿새 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빈민촌 베다니에 예수님께서 도착하셨다(요 12:1).

1) 구레뇨는 주후 6년에 수리아 총독으로 임명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실질적으로 주전 12년부터 수리아 지방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원어적으로 누가복음 2:2의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는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라는 의미이며, 당시 구레뇨가 실질적으로 총독과 같이 영향력을 행했음을 보여준다.

2) 이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 그리고 그들이 예수 앞으로 데리고 나온 베드로는 요한복음 1:19-51을 볼 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자들이었다. 신학자들은 이들 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을 수발했던 자들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을 돕다가(참고- 요 4:2, 8), 모종의 이유로 갈릴리로 돌아가 어부로 일하고 있었다.

3) 마태복음 8:19-20에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 나는 좇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의 허례허식을 보시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신 사건은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9:57-58의 묘사를 볼 때 다섯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는 길에 있었던 사건일 것이다. 마태가 이 사건의 위치를 바꿔서 배치한 것은, 예수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가 미쳤다며 배척하는 상황을 전달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4) ‘베레아’는 요단강 동편 유대 건너 지역으로서, 헬라에 위치한 사도행전 17:10-14의 ‘베뢰아’와는 다른 지역이다.

7차 예루살렘 방문  주후 29년

종려주일

(마 21:1-11, 막 11:1-11, 눅 19:29-40, 요 12:12-19)

갈릴리와 데가볼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따라 남하하다가 여리고를 지나 벳바게와 베다니를 지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보다 앞서 예루살렘을 향하시며 두 제자를 불러 벳바게에 가서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나귀는 말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덩치가 작다. 더구나 나귀 새끼는 어린애 하나 태우기도 벅찰 정도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귀 새끼를 타셨으니 땅에 발이 닿을 듯 말 듯, 보는 사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나귀새끼 위에 오르셨고, 나귀 새끼는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등에 만왕의 왕을 태운 채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약 270만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입성을 기뻐하면서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호산나’는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 의 히브리어 ‘호쉬안나’(הוֹ ִשיָעה ָנא, 시 118:25)의 음역으로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로마의 압제 속에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의 환호성 속에서도 저들이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칠 것을 미리 보시면서 고독하게 입성하셨다.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다(눅 19:41-44). 여기 ‘우시며’는 헬라어 ‘클라이오’로, ‘격렬한 괴로움, 비통함, 대성통곡’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통곡하고 격렬하게 괴로워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통곡하신 이유는 약 40년 뒤, 주후 70년 8월 10일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약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할 것을 보셨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멸망 당시, 흰 돌로 세워져 해가 높이 뜨면 황금색으로 빛을 반사해 ‘황금의 성’이라고 불리던 예루살렘의 별명 때문에 로마군 사이에 ‘예루살렘은 돌과 돌 사이에 황금을 넣고 지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로마군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않고’ 성벽과 성전을 파괴하였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며 ‘그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소리쳤다(마 27:25). 그 소리친 대로 성취되어 예루살렘의 멸망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고 이후 세계 각지로 흩어져 오랜 기간 동안 천대받고 배척받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둘러보셨고, 해가 저물자 베다니로 가셔서 유하셨다(막 11:11).

월요일: 권위의 날

(마 21:12-22, 막 11:29-19, 눅 19:45-48, 요한복음에는 월요일에 대한 기사가 없다)

고난주간 월요일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깨끗이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신 날이다.

종려주일 다음날인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며 성전으로 향하셨다. 베다니에서 나와 사랑하는 제자들과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던 예수님께서는, ‘무화과의 집’이라는 지명의 ‘벳바게’를 지나실 때쯤 시장함을 느끼시고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찾으셨으나 열매가 하나도 없음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무화과나무는 3-4월경에 아직 먹을 수 없는 초록색 열매가 먼저 열리고, 뒤이어 잎이 나기 시작하여 6월경에 열매가 노랗게 익어 먹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아직 무화과의 때는 아니었다 (막 11:13). 그러나 이 나무는 잎이 무성했지만 초록색 열매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 처음 맺혀지는 초록색 열매는 먼저 언약 백성이 된 장자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같이 권위적인 종교의식들은 가득했지만, 정작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예수님께 저주를 듣게 되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깨닫지 못하고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망, 그리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한 믿음의 요구였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이 하셨다. 이 성전 정화사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있었던 사건(요 2:13-22)에 이어 두 번째이다. 성전에는 ‘돈 바꾸는 자들’이 가득했는데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렙돈’, ‘드라크마’과 같은 헬라 돈과 ‘데나리온’ 같은 로마 돈을 사용했지만 절기마다 속전의 값으로 드리는 성전세 반 세겔(노동자 2일 품삯에 해당)을 내기 위해서는 유대 돈인 ‘세겔’로 환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환전하면서 약 12.5%의 커미션을 떼었고, 제사장들은 상인들과 결탁하여 백성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트집잡아 돌려보내고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며 팔고 있는 제물을 사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당시 하나님의 기도하는 성전은 장사하는 곳,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여 성전의 매매하는 자들에게 강도라고 소리지르시고 내쫓으셨다. 유대 백성들에게 가장 대접받던 종교지도자들을 강도라고 부르며 쫓아내신 예수님의 폭탄선언은 삽시간에 예루살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화요일: 변론의 날

(마 21:23-26, 막 11:20-14:11, 눅 20:1-22:6, 요 12:20-50)

고난주간 화요일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공개 전도 최후의 날로 하루 종일 종교지도자들과 변론하시며 시달림을 당하셨던 날이다.

화요일 아침, 베다니를 떠나 벳바게를 지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저주받았던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막 11:20-21, 마태는 이 사건을 즉시 일어난 것으로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다 – 마 21:19-20). 뿌리까지 마른 것은 무화과나무의 생존권까지도 박탈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씀으로 권고 받을 때가 바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때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종려주일에 백성들이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맞이한 일 때문에 시기와 질투가 극에 달해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대중 앞에서 예수를 망신시키고자 갖은 변론과 질문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서 질문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종교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지만 도리어 요한의 세례에 대한 역질문을 답하지 못하고 망신만 당했으며(마 21:23-27, 막 11:27-33, 눅 20:1-8),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 악한 농부의 비유: 막 12:1-12, 혼인잔치 비유:마 22:1-14, 눅 14:15-24)를 통하여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이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책망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잡고 백성들 앞에서 다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다(마 21:45-46).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외적인 율법 준수에 대해서만 토론하는 사변(思辨)의 종교로 빠져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고 정결해져야 한다면 손은 몇 분 동안 어떻게 씻어야 하는가?’와 같은 허례허식이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종교지도자들은 그중 난해한 사변들, 즉 납세의 대상에 대한 문제나 부활의문제,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의 문제 등 어려운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을 명쾌히 해결하시고,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어찌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칭하셨는가?’(마 22:41-46, 막 12:35-37, 눅 20:39-44, 시 110:1)라는 질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임을 선포하셨다. 이외에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일곱 가지 화를 말씀하시고(마 23:1-36, 막 12:38-40, 눅 20:45-47),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보시며 탄식하셨다(마 23:37-39).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던 중, 한 과부가 연보궤(헌금통)에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를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 렙돈은 1/128 데나리온으로(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 임금으로 약 10만 원의 가치), 두 렙돈이면 오늘날 약 1,500원 정도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구차한 중에서도 자기 모든 소유를 드릴 만큼 아낌없이 헌금했음을 칭찬하셨다(막 12:43-44).

그 후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도행전 17:21을 볼 때 이들은 ‘새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당시 대단한 이슈의 주인공이었던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시간이 다가옴을 말씀하셨고(요 12:24-26),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 길을 놓고 번민하며 기도하시자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약속하는 음성이 들렸다(요 12:27-33).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 땅에서의 ‘들림’과 그 들림으로 말미암은 ‘이끎’에 대해서 가르치셨고(요 12:32-33), 믿지 않는 군중들을 떠나가 숨으셨다(요 12:36, 37-50).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나오시는 길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마 24-25장, 막 13장, 눅 17, 21장). 예수님께서는 가까운 미래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시고(마 24:1-2) 종말의 징조와 종말을 깨어 예비하고 기도하며 준비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열 처녀의 비유(마 25:1-13)와 달란트에 대한 비유(마 25:14-30, 눅 19:11-27),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를 통해 늘 깨어 종말을 준비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변론과 가르침으로 분주히 다니시는 동안 악한 종교지도자들 역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그들은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를 죽일 방책을 연구하고 언제 죽일지 회의를 벌였다(마 26:1-5, 막 14:1-2, 눅 22:1-2). 회의 끝에 백성들의 반응이 두려우니 명절이 지나서 예수를 죽이자고 합의를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 동안 저녁마다 예루살렘에서 베다니로 돌아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묵으셨다. 이날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으로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했다(마 26:6-13, 막 14:3-9, 요 12:3-8).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 오늘날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리아의 행동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고(마 26:12) 도리어 가룟 유다의 선동에 휘말려 마리아를 질책했다(요 12:4-5).그러나 가룟 유다의 질책은 선한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리아의 헌금을 몰래 빼돌려 도둑질할 생각 때문이었다(요 12:6).이 마음을 꿰뚫어보신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가룟 유다를 도적으로 지적하셨고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마리아를 기념하라며 칭찬하셨다(마 26:10-13, 막 14:6-9).

수요일: 침묵의 날, 기도의 날

(마 26:1-5, 막 14:1-2, 눅 22:1-6)

4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수요일에 행하신 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날 예수님께서 화요일에 행하신 일이 많아 베다니의 집에서 편안히 쉬셨다고 설명하면서 ‘은퇴의 날’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 1분 1초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편안히 쉬실 리가 없다. 이날예수님께서는 내적으로 깊이 침묵하시며 공생애 3년 동안의 모든 행적을 마음 속에 기도하심으로 정리하셨다. 그리고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을 생각하시고 나사로에게 피할 것을 통지하셨다(요 12:9-11).

시몬의 집에서 망신을 당한 가룟 유다는 한밤 중에 빠져나갔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대제사장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팔겠노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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